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81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81)
123. 두 명 (6)
‘주수혁이 저런 눈을 하게 만들다니!’
플마고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지혜와 용기를 잃지 않았던 정의롭고 총명하고 용감한 타이틀 히어로가 웃고는 있었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주수혁이 무언가를 잘못할 리는 없으니 원인은 모두 나와 이 세상에 있었다.
주수혁과 안다인 두 사람의 청춘에 끼어든 불순물인 나를 비롯해 둘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대표팀 멤버들이 인사를 건네는 가운데, 공허한 시선으로 이쪽을 보던 주수혁이 말했다.
“의신아, 다인아! 이제 너희 둘 사이를 오해하는 사람이 없어져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다.”
새로운 오해가 생긴 것 같으니 다행은 아닌 것 같다.
주수혁은 마치 다짐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무슨 다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다짐의 계기에 내가 포함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안다인이 주수혁의 말에 웃으며 화답했다.
“수혁아, 고마워. 수혁이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의신이 사이에 아무 불화가 없다는 걸 믿어 준 덕에 견딜 수 있었어.”
“당연히 믿지. 두 사람은 내 소중한…… 친구니까.”
안다인은 햇살을 응시하는 것 같은 시선으로 주수혁을 바라봤지만, 주수혁은 얼음꽃이 녹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아련한 눈길이었다.
주수혁에게 소중한 친구라고 불린 건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순수하게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진짜 위험한 거 아닌가?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나서면 더 일이 잘못될 것 같은 예감이 마구 솟았다.
둔한 맹효돈조차 주수혁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주수혁 왜 저러냐?”
내 몸 상태를 살피던 맹효돈이 주수혁을 보며 한마디 했지만, 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눈을 한 이들이 몇 명 있을 뿐이었다.
‘이능파 상태가 별로네.’라며 나를 보며 한마디 한 독고미로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기자들 피해서 지익회관으로 올 줄 알았어. 정문으로 오다니, 의외야.”
“……다 내 잘못이야.”
“잘잘못 가리려고 한 소리 아닌데? 더 길어지기 전에 빠지자.”
독고미로의 태도는 그냥 반 친구를 걱정하는 패왕다웠다.
가까이에서 보니 독고미로의 눈 밑이 다소 어두웠다.
청호와 헤어진 후에도 계속 깨어 있었던 것 같았다.
‘용제건한테 나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텐데.’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일단 독고미로의 말대로 먼저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굴려서 도움을 청할 상대를 찾았다.
그러자 나와 안다인에게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대신 대응해 주던 염준열과 눈이 마주쳤다.
염준열은 마치 내 의도를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가호로 내 머릿속을 다 읽어 놓고도 실실 웃기만 하는 흰 호랑이와 다르게 염준열은 눈빛 한 번에 내 뜻을 알아주는 믿음직스럽고 훌륭한 선배이자 제자였다.
“엔트리에 변경은 없어요. 3차전 첫 출전자는 의신이와 다인이입니다. 대표팀은 두 사람을 전력으로 서포트할 거예요. 그렇다면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선 돌아가자, 얘들아.”
“잠시만요, 무명의 초신성에게 질문할 게 더……!”
“신탄의 사수! 질문이 있습니다!”
기자들이 뭐라고 더 말하긴 했지만, 염준열이 등을 돌리고 오늘 경호원 역을 맡은 붉은 사자의 팀원이 앞을 가로막았다.
정문의 결계를 넘어서자 완전히 잠잠해졌다.
우리의 뒤를 따르는 기자는 이제 은광고 출입이 자유로운 문새론뿐이었다.
문새론은 절규를 한 번한 후에는 아무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그저 귀기 어린 태도로 카메라를 조작하며 ‘아, 얼굴 합은 완전 잘 맞네! 이러니까 더 소문이……!’라며 중얼거리곤 했을 뿐이었다.
‘일단 오늘 경기에 집중해야 해. 안다인과 내 팀워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지금까지 들인 수고가 허사로 돌아갈 거야.’
이미 망해 버렸는데 다른 것까지 망하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평소보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주수혁의 기운에 크나큰 고통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부반장 왜 저러냐?”
“이유를 알 것 같아. 의신이는 진짜 열심히 두 명을 응원했거든.”
“어? 응원해서 저러는 거라고?”
맹효돈과 박승현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그나마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맹효돈은 뭐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하는 말이 묘하게 뼈를 때렸다.
“은광 스타디움으로 가기 전에 의신이와 다인이를 포함해서 브리핑을 한번 하고 가자. 안에 동하가 기다리고 있어.”
정문을 넘어서자마자 디바이스로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던 염준열이 말했다.
연락하고 있는 상대가 천동하였나 보다.
천동하의 냉철한 분석과 브리핑을 들으면 집중력이 오를 것 같았다.
천동하라면 호족의 사정도 어느 정도 전해 들었을 거고, 아침에 일어난 난리를 언급해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벌써 마음이 가라앉고 평안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익회관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 들려온 말에 평정심이 무너지려 했다.
“의신아, 다인아! 어서 와. 둘이 등교하는 방송 아주 잘 봤어. 의신이랑 다인이가 많이 친해 보이더라고. 둘이 친하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게 되었구나. 안 그래, 김신록 선생님?”
“…….”
회의실에는 천동하 외에도 용제건과 김신록이 있었다.
용제건은 ‘많이 친해 보이더라고.’라고 말할 때, 나와 안다인 외에도 주수혁을 봤다.
저 유희계 용이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저런 소리를 한 게 분명했다.
그 덕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주수혁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자, 빨리 앉아. 의신이는 아주 피곤해 보이니까 힘을 아껴야지. 만약 1차전에서 잘 싸우지 못하면 또 불화설이 나올까 봐 걱정된다!”
“제건이 형…… 아니, 용제건 선생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신아, 일단 앉자.”
용제건이 걱정되네 마네 하긴 했지만, 진짜로 나를 걱정하는 염준열과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싱글벙글거렸다.
대표팀 멤버는 용제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착석했는데, 자리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바람에 용제건과 멀리 떨어진 자리일수록 경쟁이 치열했다.
그 바람에 넋이 나가 있는 상태인 주수혁이 용제건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고 말았다.
게다가 주수혁의 맞은편에는 나와 안다인이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용제건의 도발에 안다인이 늠름하게 응수하기까지 했다.
“의신아, 걱정하지 마. 내가 의신이 몫까지 싸울게. 나를 믿어 줘.”
“물론 믿고 있어.”
“믿어 줘서 고마워……!”
여기에서 감히 망설이거나 안다인을 믿지 못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수 없어서 반사적으로 저렇게 답해 버렸는데, 이 대화를 들었을 눈앞에 앉은 두 명의 희비가 엇갈렸다.
용제건은 저러다 잘난 얼굴이 고장 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활짝 웃었고, 주수혁은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또한, 회의하는 장면을 멀리서 찍기 위해 떨어져 있던 문새론이 ‘으아아악! 용쌤! 아아아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천동하가 이지적인 눈으로 이 개판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회의를 시작할게. 준열아, 용제건 선생님 좀 맡아 줘. 무슨 말을 하든 화제를 돌려.”
“응?”
“먼저 3차전 룰부터 확인할게.”
천동하가 나서고 염준열이 적극적으로 상황 정리에 개입하자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3차전은 염준열이 선언한 대로 2대2 싸움으로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지정된 공간에서 싸우는데, 범위 밖의 지면, 벽에 신체의 일부가 닿으면 장외 판정을 받아 시합에서 더는 싸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2대1로 전투를 속행할 수 있어. 이 점을 잊지 말고,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돼. 그리고 한 명이 남아 있을 때에도 선수 교체 룰이 적용된다는 것도 명심해.”
2대2 싸움에는 선수 교체 룰이 적용되었다.
각 팀은 지정된 구역에서 대기 중인 선수와 하이터치를 하면 교대할 수 있었다.
물론, 교대하기 전에 두 선수가 장외 판정을 받거나 전투 불능 상태라고 심판이 선언하거나 항복하면 대기 멤버가 얼마나 남아 있든 승패가 갈린다.
이번 2대2의 싸움은 엄밀히 말하면 팀 전체의 대결이나 다름없었고, 출전 중인 두 명뿐만 아니라 대기 중인 멤버와의 팀워크도 필요했다.
“그리고 한 번 출전한 선수는 두 번 출전할 수 없어. 선수 교체는 신중하게 진행해야 해. 1, 2차전에서 확인된 상대 팀 선수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궁합이 좋은 상대를 체크해 뒀어. 각자 명단을 확인해 둬. 해당 선수가 등판하면 출전할 각오를 해.”
천동하가 홀로그램으로 명단을 배부했다.
나와 안다인은 첫 출전이 확정되어 있어서 명단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명단을 받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수혁이는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는 올라운더야. 항상 준비해.”
“알겠습니다.”
주수혁은 언제 넋이 빠졌나 싶을 정도로 눈에 총기가 돌아와 있었다.
아무리 마음이 흔들릴 일이 있어도 다잡고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하는 게 과연 타이틀 히어로다웠다.
브리핑이 시작된 이후로 주수혁은 평소보다 심호흡을 자주 하는 것 외에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동하야, 내가 받은 명단엔 이름이 두 개밖에 없어! 뭐가 많이 빠진 것 같아!”
“아니, 네가 상대할 만한 선수가 둘밖에 없어서 그런 거야. 너는 들어가도 서포터 역을 할 거니까 잊지 마.”
“어…….”
마진승이 명단을 보며 풀 죽은 얼굴로 답했다.
마진승은 2차전을 계기로 완전히 서포터 취급을 받게 되었다.
마진승의 광림, ‘초원을 부르는 함성’의 특성상 이번 2대2 시합에서 활약하긴 어려울 테니 명단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첫 시합은 일본 대표팀이야. 오늘 기자 회견 때문에 더 주목받고 있어.”
천동하가 담담히 말하며 나와 안다인을 바라봤다.
“모두가 연꽃의 화신이 첫 출전을 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몰라. 허를 찌르기 위해 다른 조합으로 나올 수도 있어.”
“어떤 조합으로 오든 상관없어요. 저와 의신이는 이길 거예요.”
안다인의 자신 넘치는 말에 대표팀이 ‘오오’하고 술렁였다.
안다인의 말에 천동하도 표정이 누그러질 정도였다.
아침에 있던 해프닝과 용제건의 유희성 발언으로 매우 어수선했던 회의의 시작은 천동하와 안다인의 완벽한 말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건 전투에 임하는 것뿐이었다.
‘교류전이 끝나면 할 일이 많아. 우선 이번 건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어렵겠지만 천단수에 가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주수혁이 나를 불렀다.
“의신아.”
주수혁이 나를 불러 세웠다.
천동하와 안다인이 일본 대표팀의 조합에 따른 작전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느라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다른 팀 멤버는 흘끗 이쪽을 돌아봤지만, 눈치껏 걸음을 서둘러 앞으로 향한 덕에 주변이 조용했다.
“시합 전에 붙잡아서 미안해. 할 말이 있어.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
주수혁의 곧은 시선을 받으며 답하려고 했으나 그전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아, 의신아! 나도 할 말이 있는데 같이…….”
“용쌤! 이리 좀 와 보십쇼!”
용제건이 중간에 난입했지만, 눈을 부릅뜬 문새론이 난입하여 막무가내로 끌고 갔다.
저 유희계 용이 문새론 혼자만의 힘으로 어찌 될 상대는 아니었으나 말없이 김신록과 염준열이 협력해 준 덕에 처리할 수 있었다.
회의실에는 주수혁과 나, 두 명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