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997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997)
117. 개막 (7)
은광 글로벌 스타디움.
초대형 이계 시뮬레이터의 가동 직후.
경기장 중앙엔 거대한 이계의 틈을 마주하고 있는 수비대만이 남았다.
한국 대표팀의 수비대는 다섯 명으로 수비대장은 3학년 허채아, 수비대원은 2학년 맹효돈, 안다인, 주수혁 그리고 1학년 차석원이었다.
아직 이계의 틈에서 에너미가 나타나지 않아 수비대는 여유가 있었다.
“어, 부반장 어디 간 거냐?”
“공격대는 이계 시뮬레이터 내부로 이동했어. 우리 위치에서는 육안으로 볼 수 없어.”
맹효돈의 질문에 주수혁이 답했다.
덤으로 이능파와 전기를 활용한 시뮬레이터 작동 원리도 간단히 설명했으나 맹효돈은 조의신을 비롯한 공격대원이 안 보일 거라는 말 외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맹효돈을 비롯해 몇몇 감 좋은 이들은 방금 시뮬레이터가 가동될 때, 이능파와 전기 외의 힘이 작용했다는 걸 알아챘다.
맹효돈은 찝찝한 기분으로 경기장 바닥을 내려다봤다.
‘땅에서 엄청 큰 힘이 올라오지 않았나? 이능파랑 뭔가 좀 다른 거 같은데…….’
한국 선수 외에도 중국, 일본 선수 중에도 이를 감지한 이들이 있었으나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한국의 지력이 풍부하니 지력을 활용해 이계 시뮬레이터를 가동한다고 생각했기에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한국 학생들은 은광 글로벌 스타디움에 설치된 이계 시뮬레이터의 작동 원리에 관해 아는 이들은 의문을 품긴 했으나 우선은 지켜보고자 했다.
대부분 맹효돈과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바깥에는 선생님도 있고 우리 반 애들도 있어. 무슨 일이 있으면 해결해 줄 거야.’
수비대원들은 스타디움에 온 이들을 믿었고, 지금은 그들의 응원에 보답하고자 했다.
맹효돈은 불투명한 결계 탓에 흐릿하게 보이는 관중석을 응시했다.
잘 안 보이는 와중에도 오로라빛이 넘실거리는 0반 응원석은 눈에 아주 잘 들어왔다.
맹효돈의 머릿속에서 잡념이 점점 사라져 갔다.
“에너미가 오고 있어.”
허채아가 이계의 틈을 보며 경고했다.
현재 한중일 수비대는 이계의 틈을 중심으로 세 방향으로 나뉘어 포위하고 있었으며 각각 결계가 전개된 거대한 문을 등지고 있었다.
시나리오상 수비대는 스타디움 내에 발생한 SSR+급 유적형 이계의 확장을 막아야 한다.
수비대는 이계의 틈에 접근하여 적극적으로 에너미를 토벌할 수도 있고, 결계 앞에서 버티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자유지만, 팀이 지키는 문 앞 결계가 손상될 때마다 포인트를 잃으며 내구도가 0이 된 순간 해당 팀은 실격 처리된다.
에너미를 다수 토벌해 공헌도를 쌓아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수비대의 기본인 방어를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에너미의 격파율 외에도 결계의 내구도도 점수에 반영되는 거 잊지 마. 수혁이랑 효돈이는 전방을 맡을 거야. 나도 같이 가서 에너미와 접촉하면 전방에 실드를 칠 거니까 편하게 돌진해. 다인이랑 석원이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니까 결계 앞에서 대기하면서 원호해 줘.”
허채아가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자 수비대원들의 긴장이 조금 완화되었다.
허채아가 내리는 지시는 전부 기본적인 것들이었으나 변수가 많은 큰 무대에서 기본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에너미 분석을 마치는 대로 신호를 보낼게.”
수비대원들이 무기를 실체화하고 자리를 잡았을 때, 동시다발적으로 에너미가 여럿 생성되었다.
실체를 갖추는 에너미를 본 허채아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으나 지시를 내리는 목소리에는 동요가 전해지지 않았다.
허채아는 수비대장으로서 대원에게 차분하게 사실을 전했다.
등장한 희귀도는 전부 SSR급 이상, SSR+급 이계에 이끌려 나타난 에너미라 해도 저 숫자에 SR급이 하나도 없다는 건 다소 이상했다.
“희귀도가 생각보다 높아. 전투가 길어질 거야. SSR+급보다 더 높은 희귀도의 이계를 상정하고 이능파를 아껴 써.”
차석원은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떴는데, 다른 셋은 달랐다.
주수혁, 안다인, 맹효돈은 오히려 의욕이 넘치는 듯했다.
“수비대에서도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 다행이야.”
“후위에서는 할 일이 없을까 봐 걱정했어. 어지간한 에너미는 수혁이랑 효돈이 선에서 정리되잖아. 나도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네.”
“저거보다 높은 희귀도 있지 않냐? 그것도 나왔으면 좋겠네.”
한국 대표팀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대표팀도 높은 희귀도를 환영하는 눈치였다.
염준열이 뽑은 것보다 높은 희귀도로 경기가 진행되어도 불만을 가질 학생들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경기장 밖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던 각 대표팀의 총책임자들이 말했다.
[중국 대표팀은 경기 속행에 동의합니다. 이 정도면 문제없습니다.] [일본 대표팀도요.]동샤오단과 코즈카 야시로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퍼졌다.
수비대가 에너미와 격돌한 사이, 각 대표팀의 총책임자들은 운영팀으로부터 긴급 무전을 받았다.
이계 시뮬레이터에서 설정한 값보다 높은 희귀도로 가동되었다는 게 그 내용이었다.
각 팀의 코치진들은 학생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경기 속행 의사를 타진하기로 했는데, 중국과 일본은 금방 동의했다.
[한국 대표팀도 동의할게.]이어서 한국 대표팀의 총책임자, 용제건도 동의했다.
용제건의 능글능글한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퍼지자 잠시 침묵이 퍼졌다.
본래 용제건이 한국 대표팀의 코치진 중 하나였긴 했으나 총책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개막 직전 정당한 절차를 밟아 한국 대표팀에서 용제건을 총책임자로 선정했다.
이는 코즈카 야시로가 호족(狐族)임이 드러나자 어쩔 수 없이 택한 고육지책이었다.
진족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진족이므로 가장 자유롭고 권한이 있는 자리에 용제건을 두자고 조의신이 제안했고, 황호는 이에 동의했다.
무전을 듣던 황호가 저 긴장감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탄식했다.
“용제건을 저 자리에 둬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
“어쩔 수 없죠. 진족이나 후예를 배치해야 하는데, 여우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적호 님의 아드님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 위험한 처지에 놓이는 건 저 유희계 용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은광 글로벌 스타디움의 VIP 전용석.
개별 룸으로 분리된 이곳엔 현재 황명호의 모습을 한 황호와 은호가 있었다.
황호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경기를 관람할 예정이었고, 은호는 이사장 인터뷰 및 취재를 핑계로 이 자리에서 같이 볼 계획이었다.
이들은 그저 호족의 은인이 어떤 활약을 보일지 기대하며 모였으나 지금은 예상외의 일에 대처하기 바빴다.
“황호 님께서 새기셨다는 인장의 힘이 발동했다고 하셨죠. 그리고 그것 외에도 다른 힘을 느꼈다고도 하셨고요.”
“그렇다. 조의신 주변에서 그 힘을 느꼈던 적이 몇 번 있었지.”
황호는 운명력이 발동한 순간 몇 번 곁에 있던 적이 있었다.
그 힘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조의신이 그 힘에 관해 자세히 언급하는 걸 피하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정보가 적군. 이계 시뮬레이터 분석은 아직인가?”
삣!
황호의 독촉을 들은 것처럼 곧바로 비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황호가 즉시 응답했다.
“보고하도록.”
[보고드립니다. 이계 시뮬레이터의 프로세스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공격대의 모니터링도 진행 중입니다만, 시공간 왜곡으로 인한 시차 현상은 희귀도를 고려하면 상정 내의 범위입니다.]“시차는 어느 정도지?”
[아직 정확한 계산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차로 인해 실시간 중계 및 소통이 불가능하나 모든 공격대원들의 바이탈 사인은 정상임을 확인했습니다.]시뮬레이터 내부의 공격대원이 무사한 건 확실하지만, 황호는 안심할 수 없었다.
현재 공격대원들은 높은 희귀도로 가동한 이계 시뮬레이터에 이 땅의 지력과 조의신이 지닌 의문의 힘이 더해져 구현한 개천신화에 돌입했다.
5천 년 전 한반도가 처한 상황과 호족이 벌인 처절한 싸움을 생각하면 도통 안심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신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때의 상황을 전부 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조의신이 개천신화에 관해 조사했기에 지식이 있겠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할 테니 골치가 아팠다.
황호가 비서에게 물었다.
“안전장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네, 확인했습니다. 탈출 커맨드를 입력하거나 일정 피해를 입은 경우, 해당 플레이어의 시뮬레이션이 종료됩니다.]“내부 상황을 지금 볼 수 있나?”
[시차가 커서 처리에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이계 시뮬레이터가 기록 처리를 하려면 삼십 분 이상 소요될 것 같습니다. 그사이에 수비대를 중심으로 중계를 진행할 예정입니다.]황호는 질문을 몇 가지 더 던졌으나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돌입과 동시에 개천신화 속에 떨어진 공격대원들의 모습이 담긴 짤막한 영상 외에는 내부 상황을 알 수 있는 단서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현재 공격대원들의 바이탈 사인이 정상 범위 안에 있다는 게 위안이었다.
“애초에 이계 시뮬레이터에 내장된 기능은 중계용이 아니라 훈련 기록용이죠.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활력 징후나 이능파 상태는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것 같으니 이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수밖에요.”
현재 이계 시뮬레이터의 내부는 외부보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정확하게는 내부에 있는 이들이 느끼는 시간 감각이 어그러져 있다.
은광고인들이 퍼스트 크리스마스에서 학교 안에 갇혔을 때, 긴 시간을 체험한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그러니 외부에서 내부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측하기 까다로운 상태였다.
또, 훈련용으로 만들어진 이계 시뮬레이터는 주기적으로 레포트를 작성해 내부 상황을 외부로 보고하도록 되어 있으나 현재 변수가 많아 공격대원들의 상황이 온전히 전해질지 의문이었다.
“황호 님께선 의신이 형이 많이 걱정되시나 봐요.”
“그 시대를 경험해 본 자라면 누구나 걱정할 거다.”
“그런가요? 그런 것치곤 백호 형님은 말이 없네요.”
은호가 백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호는 오늘 드물게 스타디움에서 직관하겠다고 자청했고, 이 자리에 왔다.
백호는 말없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다가 은호의 말을 듣고 눈을 떴다.
“백호 형님, 저기 용족이 앉아 있는 자리가 보이시나요? 저들은 염준열을 걱정하면서도 얌전히 있어요. 염준열은 용왕신의 가호를 받았으니 여차하면 이를 이용해 소통하면 된다고 여기나 봐요.”
은호는 홍룡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 이들이 앉아 있는 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은호의 말대로 저들은 실시간 중계가 되지 않아 염준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자 불만이 많은 듯했지만,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백호는 그쪽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은호를 바라봤다.
은호는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조의신은 괜찮을 거다.”
백호는 눈을 돌려 전투에 돌입한 수비대를 보여 주고 있는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홀로그램에는 좀처럼 기세가 줄어들지 않는 이계의 틈도 보였다.
이계 공략 상태가 부진하다는 증거였다.
백호가 이를 보며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군.”
* * *
유적형 이계가 개천신화를 구현했다는 걸 확인한 후에도 공격대는 정확한 시대 파악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다.
개천신화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긴 기간에 걸친 역사와 설화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지금 우리는 정확히 개천신화의 어느 순간에 와 있는지 알아야 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정보 수집을 개시하기 전, 단서를 얻었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 태양의 위치를 보면 아직 해가 질 때가 아니고, 구름도 별로 없는데…… 빛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좋은 징후는 아니네요. 한반도의 하늘이 어둠으로 덮이는 건 그거잖아요.”
염준열과 독고미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한반도를 노리던 외적은 하늘을 삿된 어둠으로 덮어 천신의 목소리를 단절시켰다.
그리고 지금 삿된 어둠이 차오르고 있다면, 그 시점일 가능성이 컸다.
“아직 어둠이 하늘을 가리지 않았다는 건, 외적이 암살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일 거예요.”
“암살이라면 설마…….”
곽경구도 개천신화를 공부해 둔 건지 내가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알아챈 것 같았다.
나는 설명을 계속했다.
“곧 호족을 이끌던 신인이 습격당할 거예요. 웅족의 수장까지 암살당하면 삿된 어둠이 한반도의 하늘을 완전히 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