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rcist and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04
204
#분신사바의 저주 (2)
김영미가 투신해서 죽은 후 효인은 무섭기도 했지만 기쁨이 훨씬 컸다. 이 세상에 김영미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표정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 효인을 본 김영미의 친구 강미정과 박지혜가 시비를 걸었다.
“좋냐? 영미 죽어서 좋냐고!”
“아냐, 그래서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당연히 좋겠지, 네 얼굴에 그렇게 써 있구먼. 근데 우린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꼴을 못 보겠어.”
김영미가 없어지니 이번엔 강미정과 박지혜가 효인을 괴롭혔다.
‘둘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효인은 둘을 노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강미정은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부탄가스통이 폭발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당했고, 박지혜는 밤에 길을 걷다가 묻지마 폭행을 당해 간신히 목숨만 구해서 병원에 입원했다.
둘을 문병 갔던 친구들 말에 의하면 둘 다 사고가 나기 직전에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이상한 여자를 봤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후 효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고를 당했고 한 사람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효인의 아빠도 성적이 안 나왔다고 효인을 혼낸 다음 날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물론 효인의 아빠도 사고 직전에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이상한 여자를 봤다고 했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고 죽어 나가자 효인도 점점 이상하게 변해 갔다. 아예 학교는 무단결석이고 볼펜을 줬던 그 여자처럼 얼굴을 가린 채 방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다.
학교에 누가 퍼뜨렸는지 효인을 화나게 하면 저주가 내린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효인의 엄마도 효인을 보면 왠지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말도 잘 걸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 효인은 세상 사람들이 점점 자신을 무서워하는 상황이 좋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도 자신의 곁에 오려고 하지 않았고 저주가 반복되면서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계속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면 괜히 겁이 나고 이유 없이 분노가 치밀어서 또 다른 누구를 미워하고, 그 사람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나중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길에서 마주친 사람한테도 저주를 내렸다.
한번은 효인이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버스를 탔는데 70대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이런 더운 날에 저런 모자를 왜 쓰고 다녀. 보기 싫게.”
순간 효인은 노인을 노려보면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노인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팔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고는 중얼거렸다.
“귀, 귀신이야.”
노인이 왜 여자를 보자마자 귀신이 보인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 순간 버스가 급정거를 했고, 손잡이조차 잡지 않고 있던 노인은 그대로 꼬꾸라져서 목이 부러졌다.
효인은 그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선영에게 보고하는 것처럼 카톡으로 내용을 보냈다.
선영은 그런 카톡을 받을 때마다 효인이 자신에게 ‘너도 공범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효인이 점점 무서워지기도 했고.
덕분에 최근에는 효인에게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멀리하려는 마음이 강했다. 근데 며칠 전에 효인에게 카톡이 왔다.
[요즘 왜 나한테 연락 안 해?]카톡을 보는데 괜히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미안, 요즘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랬어.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당분간은 연락이 좀 어려울 것 같아.]선영이 불안했던 건 그렇게 카톡을 보냈는데 효인에게서 아무런 답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영은 다시 카톡을 보낼까 하다가 그만 뒀다. 제발 효인이 자신을 잊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영은 엄마한테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물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저께 밤늦은 시각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선영아.”
효인이었다.
근데 목소리를 돋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일어서는 것 같았다.
선영은 영적인 감각이 상당히 발달한 편이었기에 곁에 귀신이 있으면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린다. 귀신은 귀기라는 기운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근데 방금 목소리에서 그 귀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선영이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돌아섰다.
건물 구석진 어둠 속에 누군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정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효인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효인이는 일전에 볼펜을 건네줬던 그 여자처럼 후드 모자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이나 표정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선영을 두렵게 만든 건 효인이의 그런 옷차림이 아니었다. 바로 효인이 뒤쪽에 바싹 붙어서 서 있는 흐릿한 형체 때문이었다.
그 형체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유난히 하얀 맨발이 어둠 속에서도 뽀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선영은 최대한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물었다.
“거, 거기 효인이니?”
“응, 나야.”
“이쪽으로 나와, 왜 그렇게 어두운 곳에 서 있어.”
“나 요즘 빛이 싫어, 그래서 방 안에서도 하루 종일 불을 끄고 지내. 그러니까 네가 이쪽으로 왔으면 좋겠어.”
선영은 심장이 쿵쿵거렸지만 싫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어쩔 수 없이 효인에게 다가갔다.
후드 모자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번뜩이는 효인의 두 눈이 선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선영아.”
“응, 말해.”
“나 있잖아.”
“응.”
“요즘 네가 자꾸 미워지려고 해.”
“……!”
선영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효인의 뒤에 서 있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원혼을 바라봤다.
그저 흐릿한 형체만 보였지만 여자가 긴 생머리를 하고 있고 고개를 푹 숙였지만,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선영은 주먹을 움켜쥐며 속으로 생각했다.
‘침착해야 해.’
효인이 다시 말했다.
“난 미워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예전에 네가 나한테 잘못했던 일들만 생각이 나. 그리고 요즘 네가 연락이 없으니까 날 멀리하려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
“선영아, 어떡하지?”
“효, 효인아. 내가 왜 널 멀리해? 우린 분신사바도 같이 했잖아.”
그러자 효인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너도 같이 한 거지? 나 혼자 한 게 아니지? 근데 왜…… 나한테만 자꾸 그 여자가 보이는 거야?”
“그, 그 여자라니?”
효인이 스윽 선영의 앞으로 다가오자 뒤에 달라붙어 있던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원혼의 얼굴도 똑같이 스윽 선영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
선영과 불과 1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두 개의 얼굴이 쌍둥이처럼 다가와 있었다. 효인의 얼굴과 원혼의 얼굴.
소름이 끼치는 건 선영에게 효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원혼의 얼굴만 시야에 하나 가득 들어온다는 사실이었다.
얼굴을 가린 원혼의 머리카락은 물에 젖어 축축했고 그 머리카락 안에서 번들거리는 원혼의 동공이 선영을 쏘아보고 있었다.
선영은 너무 무서워서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가 없었다.
효인은 자신의 바로 뒤쪽에 원혼이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목소리를 죽여서 선영에게 속삭였다.
“그 여자 있잖아, 우리가 분신사바로 불러낸 원혼. 물에 젖은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 여자 원혼 말이야.”
“……!”
당연한 말이지만 원혼도 효인의 얘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
“근데 너한테는 그 여자 원혼이 안 나타났지?”
선영이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대답했다.
“응. 나, 나한테는 안 나타났어.”
효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난 내가 널 미워해서 혹시라도 그 여자 원혼이 너한테 보이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 그럼 너도 사고를 당한다는 얘기잖아.”
“……!”
“선영아, 우리 절친 맞지?”
선영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맞아,”
갑자기 효인이 선영의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럴 줄 알았어. 고마워, 선영아.”
물론 선영을 끌어안은 건 효인만이 아니었다. 축축하면서 서늘한 원피스의 감촉도 함께 느껴졌으니까.
효인이 손을 흔들고 돌아간 후 선영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그제야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선영은 이제 효인을 그대로 계속 놔두면 점점 더 큰 일이 생길 것 같고 자신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 더 이상은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누구한테든 도움을 청해야만 하는데 세상에서 딱 한 사람을 제외하면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영은 QBS 방송국 게시판에 들어가서 글을 올리고는 자신의 사연이 채택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
강 신부의 권유로 현준은 할머니와 함께 희망복지원으로 거처를 옮겼고 학교도 전학을 했다. 할머니는 복지원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대하면서 돌봐줬고, 현준도 형과 동생이 잔뜩 생겨서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희망복지원은 다른 복지원과 마찬가지로 주로 부모가 없거나 버려진 원아들을 돌보는 곳이지만 다른 복지원들하고는 분위기부터 확연히 달랐다.
대부분의 복지원 아이들이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태도가 경직되어 있는데 반해 희망복지원 아이들은 표정도 밝았고 심성도 다들 착했다.
희망복지원은 강 신부가 14년 전 설립했을 때만 해도 시설도 열악하고 후원금도 적었지만, 지금은 강형진 신부의 진심에 공감한 많은 후원자들의 적극적인 기부와 봉사로 고아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시설도 좋아졌고 아이들도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
강 신부의 꿈은 지금의 희망복지원을 발판으로 고아들뿐만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행복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고, 여러 시민 단체들이 그런 강 신부를 돕고 있었다.
현준은 학교가 끝난 후에는 강 신부의 권유로 복지원 뒷산에서 차크라를 운용하는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 현준은 차크라의 기운을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지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운용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엄마인 이시이 미오도 현준이 각성하던 순간만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로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현준은 엄마의 영혼이 자신과 늘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현준은 복지원 뒷산에 널따란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산의 정기를 들이마시며 호흡법을 익혔다.
호흡법은 딱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몸속 곳곳에 흐르는 차크라의 기운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기조식과 같은 호흡법을 따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수련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고 오늘은 마침내 차크라의 기운을 육신의 외부로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현준은 이미 목촌리 마을 회관에서 자신의 차크라를 외부로 끄집어냈지만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마의 도움으로 행한 일이었기에 여전히 혼자 힘으로는 차크라를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많은 차크라는 아니지만 육신에서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리는 차크라의 기운이 뿜어지자 주변 바닥에 흩어져 있던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들썩이는 모습이 보였다.
현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크라는 정신적인 에너지와 육체적인 동작이 어우러져야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
현준은 자신의 주변으로 흐르는 차크라의 기운이 흐르는 대로 손과 발의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의 전통 무술인 택견 같기도 했고 소림사의 무술 동작 같기도 했다.
차크라의 흐름과 현준의 동작이 일치하면서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의 농도도 점점 짙어졌다.
처음엔 현준이 차크라의 기운을 따라서 움직였는데 어느새 차크라가 현준의 손끝, 발끝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신비하면서도 황홀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오른손을 뻗어서 바닥에 놓여 있는 작은 돌멩이를 가리키며 정신을 집중하자 차크라가 뻗어 나가 돌멩이를 감싸는 게 보였다.
현준의 손끝과 돌멩이를 차크라가 이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남들에겐 그런 차크라의 기운이 보이지 않겠지만.
현준이 팔을 휙 들어 올리는 순간 돌멩이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툭.
허공으로 튀어 올랐던 돌멩이가 바닥에 툭 떨어지자 현준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발전하는 속도가 빠르구나.”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강 신부가 뒷짐을 진 채 현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준은 얼른 강 신부에게 인사를 했다. 비록 종교적으로 전혀 다른 영역의 속해 있는 두 사람이지만 강 신부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강 신부는 멀지 않은 미래에 사탄의 무리들이 세상을 침범하는 순간이 온다고 믿고 있었기에 태수나 현준 같은 영능력자가 좀 더 많이 나와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희망복지원에서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태수가 널 찾고 있다.”
순간 현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왜요?”
“아마 악귀를 퇴마할 모양이야. 실전을 통해서 경험도 쌓고, 퇴마를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도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테니 다녀오너라.”
태수는 김영아에게 선영의 사연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태수는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를 취소하고 곧장 파인미디어 사무실로 달려갔다.
김영아는 한달음에 달려온 태수를 보고 방송도 아닌데 굳이 무리해서 나설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다.
태수의 안에 있는 노인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귀들을 퇴치하는 칠성문의 퇴마사였고, 태수는 그 노인의 영능력을 전수받았으니 당연히 그런 위험을 막아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이다.
얘기만 들어 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 정도로 위급한 심령현상인데, 그런 악귀를 방치했다가는 더 큰 사건과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태수는 파인미디어로 가는 길에 강 신부에게 연락해서 현준을 보내 줄 수 있는지도 문의를 했다. 물론 태수 혼자서 얼마든지 처리할 수가 있을 테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현준에게도 퇴마의 경험을 전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현준에게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될 수가 있었다.
파인미디어에 도착했을 때는 사연을 보낸 김선영이 이미 사무실에 와 있었다.
파인미디어 사무실에 와서도 두려움에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던 선영은 사무실로 들어서는 태수를 보더니 비로소 긴장이 풀어지는 듯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 냈다.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평소 너무도 좋아했던 스타를 만났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