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09
1009화 대황을 향하는 신수
주작은 고통스러운 듯 연신 신음과 포효를 내뱉어대고 있었다.
포효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 난 두 개의 긁힌 자국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빛은 기이한 힘을 품고 있었는데, 빛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어둠의 세계를 환하게 비추었다.
검은 기운이 그녀의 몸을 관통하며 그녀의 이마의 피부 위로 아홉 개의 부문이 드러났다.
피부가 떨어져나오자 뼈에 새겨진 부문이 드러났다.
이어서 뼈도 가루가 되어 사라졌으나 부문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녀의 육신이 붕괴하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하지만 아홉 개의 부문과 뺨에 난 두 줄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고통스러운 포효성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부터 연장된 검은 기운은 점점 수축되기 시작했다.
살과 피부가 다시 자라났다.
마른 시체나 다름없었던 몸뚱이도 다시 살이 붙으며 불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검은 기운이 모여들며 그녀의 체내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고통스러운 포효성은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뺨에 남아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던 두 줄의 상처는 빛을 잃었다.
그곳에선 검은 기운이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작은 눈을 뜨며 양손을 뻗어 자신의 뺨과 이마에 새겨진 아홉 개의 부문을 만졌다.
그녀의 눈은 조금씩 새까맣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널 단단히 얕잡아 본 모양이구나. 두 차례 동안 이곳을 훔쳐본 건 아마도 너겠지?
나의 시선을 피하다니. 꽤 제법이구나. 모두에게 네가 죽음조차 불사하는 것처럼 믿게 만들다니.
두 개의 상처. 죽지만 않는다면 도군이 될 기회도 얻을 수 있을 텐데. 이렇게까지 목숨을 내던질 필요가 있단 말이냐?”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듣기 거북할 정도로 잔뜩 쉬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억제하지 못한 분노와 살기가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살기를 분출할 곳은 없었다.
주작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한 모든 행동은 사실 그녀를 노린 것이었다.
주작은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주위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어둠 속에 있던 수많은 이족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검은 기운과 연결되어있던 생기들도 날아들며 그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의 기운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법신의 한계점에 이르고 나서야 멈춰 섰다.
이어서 그녀의 몸에 새로운 검은 장삼이 입혀졌다.
주작은 맨발로 어둠을 헤치고 밖으로 나가 밝은 빛과 마주했다.
밖을 지키고 있던 추격수가 미소를 지었다.
기뻐하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염려하는 얼굴이었다.
“너무 일찍 나온 거 아니냐?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흑주작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얕잡아본 듯합니다. 그녀는 법상을 폐지당하며 천마왕의 족쇄에서 벗어났습니다.
오히려 잘된 일이지요. 두 줄의 도흔(道痕)을 갖고 있다니. 도군이 될 희망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한 방이면 완전히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덫을 놓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허나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되면 어쨌든 희망은 한층 더 커지게 되는 법. 이제 우린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신수족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녀석들에겐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추격수는 확신에 가득 찼다.
그는 그 누구보다 신수족을 잘 알고 있다.
선천적으로 강인함을 타고났지만, 선천적인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들.
신수를 사수하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존재들.
그러나 이것이 족쇄가 되어 신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 * *
청소 작업은 어느 정도 끝이 났다.
흑옥 신문에 모아둔 조각만 해도 하나로 연결하면 수십만 리는 거뜬히 넘길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분신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정보를 모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외층 전장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며 무인지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진양은 계속해서 주작이 남긴 편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가 남긴 공법들 중 일부는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들이고 나머지는 순천사 거점에서 본 것들이다.
한참을 살펴봐도 대부분 얻기도 힘들고 수련하기도 힘든 공법들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며칠 뒤.
한 공법을 살펴보고 이어서 다음 공법을 살펴보고 있을 때.
진양은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린 진양은 재빨리 바로 이전에 살펴봤던 공법을 펼쳤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사자결을 발동했다.
전혀 연결점 하나 찾을 수 없던 공법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겨났다.
‘그렇구나!’
진양은 계속해서 공법을 살펴보며 각각의 연결고리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 *
보름 후.
거점 주변을 순찰하던 순천사 한 명이 허겁지겁 진양을 찾아왔다.
거대한 신수가 대황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신수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족 전체가 멸족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험을 하기로 선택한 듯했다.
그러다 문득 추격수가 신수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분명 신수족과 추격수는 모종의 거래를 했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격수는 떠났고, 신수족은 진양과 추격수 사이의 은원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리 없다고 생각했었다.
어딘가 답답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추격수는 애초에 신수족과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의심 많은 그가 다른 이와 쉽게 손을 잡을 리 만무하다.
그는 그저 신수족을 함정에 빠뜨리려던 게 분명하다.
신수족은 매우 신중한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이 모든 걸 다 걸고 모험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건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하나.
신수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추격수가 신수 안으로 들어간 다음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던 게 떠올랐다.
녀석은 분명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그는 결코 등을 떠밀려 그곳을 떠난 게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모두 이루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곳을 떠난 것이다.
신수는 본체만 해도 수만 리에 달한다.
거기에 오색빛깔의 고리까지 더한다면 족히 수십만 리에 달한다.
이토록 거대한 덩치가 대황으로 들어오는 걸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황에 도달하기도 전에 신수가 파괴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어느 정도만 뚫고 나가면 그다음부터는 추격수 혼자서도 뚫고 나가는 데 큰 문제가 없으니까.
상황이 벌어지자 순천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드시 신수가 방어선에 도달하기 전에 대처를 해야 한다.
도착하고 난 다음 움직인다면 때는 이미 늦고 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수를 막아야 한다.
정 안 되면 신수를 파괴할 방법이라도 모색해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순천사와 신수족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불가피할 것이다.
외층 공간은 아직 대황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다.
순천사들은 반드시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방어선을 뚫고 지나가도록 놔둬선 안 된다.
* * *
며칠 뒤.
진양은 신수족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신수 가까이 다가가 살필 것도 없었다.
멀리서만 봐도 신수의 아랫부분이 짙은 죽음의 기운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었다.
뿌리 부분만 다소 침착되어있던 지난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신수가 곧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신수족은 다급해진 것이다.
지금 신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황으로 들어가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되면 충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한쪽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나머지 한쪽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싸운다.
그 어느 쪽도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수의 순천사들이 신수를 막아서기 위해 방어선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신수는 방어선 가장자리의 가장 약한 부분이 아닌 다른 곳을 노리고 있었다.
순천사가 지키고 있는 범위를 노리는 것 역시 아니었다.
아예 순천사가 지키고 있는 범위를 빙 돌아서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층으로 나눠서 본다면 대황이 있는 곳이 가장 작고, 이어서 외층 공간의 첫 번째 층, 두 번째 층 순으로 이어진다.
그보다 더 밖으로 나가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에 순천사 하나만으로 모든 지역을 방어하기엔 무리다.
사실 순천사들이 막고 있는 곳은 대영 신조의 영공뿐이다.
이곳은 별의 힘도 안정적이고 영기도 온순하기 때문에 설령 강풍층을 뚫고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 비하면 훨씬 더 안전하다.
굳이 강풍층을 뚫고 가야 한다면 이곳이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반드시 이곳을 통해야만 강풍층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수족은 애초에 순천사가 지키고 있는 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곳을 통해 대황으로 진입하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대영 신조의 영토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진양은 지도를 꺼내 신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폈다.
그때, 이전에 보았던 한 고대의 기록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 요괴가 강풍층을 뚫고 대황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요괴는 순천사의 방어선을 뚫은 게 아니라 다른 곳을 통해 강풍층을 뚫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는 순천사의 기록이다.
그리고 같은 시기 대황에도 비슷한 기록이 남겨졌다.
하늘에서 호량으로 거대한 마석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이었다.
떨어진 마석은 대지와 수십 개의 비경을 뚫고 지나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해는 진정한 죽음의 바다가 되어버렸다.
당시 종적을 감추었다던 마석이 바로 검둥이의 본체 중 손이 끼이게 된 해안마석이다.
검둥이는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억울하게 해안마석과 함께 그 자리에서 봉인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유령 해적단 역시 이 시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쨌든 과거의 기록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어쩌면 과거 마석이 떨어졌던 그 길 그대로 대황으로 향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천사들이 지키고 있는 곳을 제외하면 다른 곳은 강풍층을 뚫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보자면 순천사들을 마주하지 않고도 강풍층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성공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순천사들이 지키고 있는 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면 강풍층의 강도도 그다지 강하진 않을 것이다.
과거 해안마석과 검둥이의 본체는 함께 대황으로 떨어졌다.
때문에 강풍층으로는 막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해안마석은 선천지물이기 때문에 그곳의 하늘을 곧바로 관통한 것이다.
신수는 이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곳을 통해 뚫고 들어온다면 성공률은 오히려 높아지게 되는 것.
무엇보다 이곳을 통해 들어가면 순천사들과 정면으로 맞붙을 필요도 없고 순천사의 방어선을 뚫고 지나갈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