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91
1091화 개판에 살신전 뿌리기
장정의는 뒤로 조금 물러서며 차가운 눈빛으로 백령을 노려보았다.
‘대연 태자와 황태손의 주구가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어리숙한 녀석의 모습을 보니 겁대가리 없이 단신으로 여기까지 쫓아온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상당히 복잡하고도 난처한 상황이 펼쳐졌다.
백령은 자신이 쫓던 이가 순목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장정의를 쫓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장정의는 자신의 뒤에 쫓아오는 자가 대연 태자와 황태손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백령이었던 것이다.
순목은 자신의 은신처를 습격한 사람이 율종의 노승인 줄 알고 있었지만 사실 범인은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린 북두성종의 두 고수의 짓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증거가 모두 사라지며 노승이 뒤집어쓰게 된 것.
노승은 순목이 자신을 사람을 죽이고 보물을 빼앗은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정의와 순목은 같은 모태에서 태어난 쌍둥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서로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개판이 따로 없었다.
“태자가 보낸 사람이냐? 아니면 황태손이 보낸 사람이냐?”
장정의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기괴한 모습의 백령을 노려보며 물었다.
백령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멍하게 있던 그는 고개를 힘차게 가로저었다.
“둘 다 아닌데…….”
장정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양쪽이 모두 아니라면 분명 태자와 황태손의 보물을 노리고 여기까지 찾아온 녀석이 분명하다.
생긴 걸로 보아 요국에서 온 놈이 분명했다.
다만 요국에서 쫓겨나 대연에 숨어 살다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탕을 노리려고 튀어나온 녀석이 분명했다.
어리바리한 요괴의 모습에 장정의는 일단 관심을 끄고 노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봐, 대머리. 여기 일은 당신이랑 추호도 관련 없으니까 괜한 생각 품지 말고 그냥 가는 게 좋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절대 그럴 순 없다!”
잠자코 보고 있던 순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노승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던 듯했다.
그는 들고 있던 자흑색 금화를 내려놓으며 다시 한번 해명했다.
“노승은 정말로 보물을 노리고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정말 단순하게 주운 것에 불과합니다.
알 수 없는 괴생명체가 아직 근처에 있는 것 같으니 모두 속히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놈은 평범한 수도사가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자꾸 짜증 나게 뭐라는 거야? 당신이 사람을 죽였든 보물을 빼앗았든 그건 관심 없다니깐. 얼른 꺼지기나 해.”
장정의는 짜증 가득한 말투로 버럭 소리를 지르곤 다시 순목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쓰레기 같은 놈.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다른 사람들도 전부 네 녀석 같은 줄 아느냐?”
물론 율종 승려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한때 그의 스승도 극북까지 와서 율종의 승려와 한바탕 큰 싸움을 벌였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일종의 진정한 고행승들은 성품이나 성격 모두 흠잡을 곳 없는 선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눈앞에 있는 노승은 진정한 고행승이 맞는 듯했다.
값진 물건을 보고 쉽게 욕심을 부릴 만한 사람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물질적으로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아닌데 뭐하러 사람을 죽이고 보물을 빼앗겠는가?
어느 정도 해명이 먹힌 듯하자 노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노승이 주워서 정리해둔 것들입니다. 원한다면 여러분들께서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건 원래 내 것이라니깐!”
순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주님께서 원하시면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노승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망할 땡중 놈아! 그게 무슨 말이냐? 마음대로 남의 물건을 가져간 걸로도 모자라 이젠 내가 물건을 강탈하려 한다는 것이냐?”
순목은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디서 굴러먹은 땡중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걸로 보아 결코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닌 듯했다.
순목이 손을 뻗어 금화를 주우려는 순간 잡다한 물건 사이에 떨어져 있던 금화가 장정의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그 누구도 장정의가 힘을 쓰는 건 느끼지 못했다.
뒤늦게 발견했을 때 금화는 이미 장정의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
이때 반사된 빛에 의해 금화 주변에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볼 수 없는 얇고 희미한 거미줄 같은 것이 감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얇은 실은 눈이 쌓인 땅에 뒤덮여있었다.
모두들 잔뜩 흥분한 채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무 파동도 없이 주위를 뒤덮은 것이다.
장정의가 금화를 손에 넣자 순목의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장정의의 몸에선 격렬한 진원의 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장정의가 두 손가락을 구부리며 한곳으로 모았다.
그러자 눈밭에 뻗어져 있던 얇은 거미줄이 퉁- 하고 튀어 오르며 팽팽해졌다.
수십 갈래의 은실은 순목의 몸과 연결되어있었다.
“수화(繡花)!”
순목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금 전 장정의에게 습격을 당해 피로 범벅이 된 뒤통수에서 은실이 뿜어져 나오며 선혈이 터져 나왔다.
터져 나온 선혈은 추운 날씨로 인해 금세 붉은 결정이 되어 얼어붙었다.
마치 눈밭 위에 새빨간 우담화가 피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꽃잎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얇은 은실이 연결되어 작은 진법을 이루고 있었다.
도문과 부문까지도 완벽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법이 완성되는 순간 순목은 한층 더 처절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의 머리 가죽을 뜯어냈다.
은실과 함께 살덩어리가 뜯겨 나왔다.
붉은 결정으로 이루어진 꽃이 허공에 피어났고, 주변 수 리 내에 있던 한기가 순식간에 그것을 집어삼켰다.
수많은 부문과 도문이 발동하며 강렬한 힘이 일어났다.
웅-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백, 청, 홍 세 가지 색깔의 불꽃이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켰고 한기는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 리 내에 떨어지던 눈꽃이 그대로 허공에 얼어붙었다.
작은 조각으로 잘려 나간 은실은 스스로 날아 장정의의 손톱 밑으로 돌아왔다.
장정의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역시 암살은 내 전문이 아니라니깐…….’
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단 도굴, 아니, 고고학 탐사에 훨씬 더 특화된 사람이다.
만약 진양이 있었다면 분명 일말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순목을 단숨에 끝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한 번으로 부족하면 두 번이든 세 번이든 계속해서 시도해 보면 되니까!’
장정의는 왼손으로 결인을 맺으며 오른손은 쫙 뻗어 순목을 향했다.
순목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의 표정은 더 이상 찌푸려질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있었다.
체내의 모든 혈맥, 경맥, 그리고 기맥이 거미줄 같은 얇은 은실에 의해 꿰여있는 것이 느껴졌다.
방금 전에 있었던 건 단순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머리 가죽을 뜯어내며 영혼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던 순간 은실은 이미 온몸을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 이상 장정의의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기껏해야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장정의는 순목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 공법은 ‘실뽑기’라고 얼마 전에 이름 지은 공법이다.”
이어서 장정의는 결인을 완성시켰고, 남은 한 손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외부에 있던 모든 은실이 강제로 회수되었다.
순목의 두 손과 발에서 마치 털옷처럼 실이 뽑혀 나오는 듯했다.
장정의의 손에 실 끝이 쥐어졌다.
은실이 다시 날아오며 순목의 손끝과 발끝이 점점 메말라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의 살은 사라지고 새하얀 뼈만 남게 되었다.
순목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강제로 은실을 끊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실은 애초에 장정의 손으로 다시 회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수된 실에는 그의 살과 경맥, 기맥, 혈맥이 매달려있었다.
마치 털옷에서 실이 뽑혀 나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순목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눈앞에 있는 장정의는 지금껏 그가 알던 장정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령의 몸에서 부문이 피어올랐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니 손가락뼈 한 조각이 빛에 휩싸이며 빠른 속도로 장정의의 등을 노리며 날아갔다.
퍽- 하는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장정의는 심하게 비틀거렸다.
그의 입에서 왈칵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사이 순목은 다시 한번 수십 보 뒤로 물러났다.
그의 발아래 쌓인 새하얀 눈은 어느새 검게 변하고 있었다.
마치 검은 기름과 같은 무언가 배어 나오며 백골만 앙상하게 남은 그의 두 다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검은 기름은 빠르게 순목의 몸 전체를 감쌌다.
장정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남아있던 은실을 모두 회수했다.
순목은 이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검은 기름에선 상당히 기괴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원에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듯 진원의 힘을 전부 삼켜버리고 있었다.
장정의는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백령을 노려보았다.
그는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닦으며 다시 한번 기침과 함께 선혈을 토해냈다.
웅-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 강한 살기가 내려앉았다.
이어서 한 발의 검은 화살이 천 리나 되는 거리를 순식간에 가로지르며 다가왔다.
화살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기운이 둘러싸여져 있었다.
“살신전!”
노승은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그것을 막아내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그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두 번째 살신전의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백령도 난처한 건 마찬가지였다.
영혼까지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을 땐 더 이상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렇게 되면 그냥 몸으로 맞아내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순간 검은 화살이 백령의 가슴으로 날아와 관통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살신전은 백령의 몸을 매단 채 지면을 향해 날아갔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살신전이 떨어진 곳에 땅이 움푹 파였다.
만년빙이 산산조각 나며 눈 깜짝할 사이에 백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거대한 구덩이 아래 백령은 가슴에 화살이 박힌 채 만년빙 위에 누워있었다.
백령의 얼굴은 하얀색에서 검은색으로, 검은색에서 하얀색으로 수십 번 바뀌었다.
그의 얼굴에 연달아 세 개의 얼굴 형상이 나타나며 파괴되었다.
심지어 그가 입고 있던 장포에서도 세 개의 신통력을 의미하는 부문이 떠오르며 파괴되었다.
그는 구덩이 하부에 누운 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도망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또 다른 살신전의 살기는 그의 미간을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또다시 화살에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만약 여기까지라면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멀리 진양이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는 점이다.
화살을 쏜 것은 다름 아닌 진양이었다.
진양은 엄청난 갑부다.
게다가 살신전을 가지고 있는 건 대영 신조의 대제뿐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진양이 아무렇지 않게 살신전을 사용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백령은 저항을 포기한 채 얌전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