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92
1092화 솔직한 게 더 나을지도
노승은 조용히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곳으로 다가갔다.
순목은 이제 곧 완전히 삼켜질 듯한 모습이었다.
노승이 합장을 하자 황금빛이 뿜어져 나와 검은 기름을 소멸시켰다.
순목의 모습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온몸의 뼈는 백골만 남아있었고 내장도 일부가 소실되어있었다.
이대로라면 살아있긴 힘들 듯했다.
노승은 안타깝다는 듯 끌끌 혀를 차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애석하게도 노승의 힘으로는 시주님을 구해드릴 수 없을 듯합니다. 그저 시주님의 몸을 사악한 존재들로부터 구해내는 것이 최선일 듯합니다.
쯔쯧……. 형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같은 핏줄을 죽이려는 건지. 그리고 한 번만 더 말씀드리자면 전 결코 사람을 죽이고 보물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 물건들은 정체불명의 사악한 존재를 죽이고 나서 손에 넣은 것들일 뿐입니다.”
순목은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완전하게 하얗게 돌아오지 않은 눈 쌓인 땅을 향해 백골이 된 손을 뻗으며 조금씩 기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노승은 자신의 승복을 벗어 순목의 몸을 감쌌다.
“노승이 시주님께 해드릴 수 있는 건 양지바른 곳에 묻어드리는 것이 전부일 듯합니다.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반드시 좋은 곳에 묻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순목은 여전히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머리 위에 남아있던 검은 기름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그의 눈빛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승복에 둘러싸인 채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이성이 희미해져 가는 순간까지도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노승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놈!”
나지막하게 마지막 말을 내뱉은 순목은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
노승은 순목의 시신을 옆에 두고 합장을 한 채 고개를 숙였다.
“비록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못 들었습니다만. 고마워하실 건 없습니다.”
* * *
한 척의 비주가 눈폭풍을 뚫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양은 선수에 서 있었고, 그의 어깨에는 불길에 휩싸인 닭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진양은 커다란 활을 들고 있었고 활시위에는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살신전이 걸려있었다.
비주에서 내린 진양은 커다란 구덩이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살신전에 못 박힌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백령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역시 살아 나올 줄 알았다니깐. 솔직히 네가 날 먼저 자극하지 않는다면 나도 널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었거든. 근데 날 찾아온 것도 모자라 감히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사제까지 건드려?”
“쿨럭……. 사, 사형…….”
장정의는 창백해진 얼굴로 진양의 곁으로 다가왔다.
장정의의 모습을 본 진양은 곧바로 백령에게 화살 한 발을 더 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백령의 목에 꽂혔다.
이어서 장포에서 또다시 부문 세 개가 피어오르며 파괴되었다.
그는 여전히 죽은 것처럼 누워있었다.
몸에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호흡도 없었고, 영혼의 파동도 없었고, 이성의 파동도 없었고, 힘의 파동도 없었다.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괜찮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장정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구덩이 아래 처박힌 채 차갑게 누워있는 백령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제야 다 끝났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서 미리 방비를 해두어서 망정이었죠.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하필 순목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군요.”
장정의는 등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옷 안에서 심하게 찌그러진 호심경(護心鏡) 하나를 꺼내 바닥에 버렸다.
“…….”
진양은 황당하다는 듯 녀석을 노려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살신전을 낭비하는 게 아니었는데.’
진양이 장정의의 목에 손을 탁 올리며 물었다.
“이제 얘기해 봐. 날 왜 부른 거야? 순목을 죽여달라고?”
“그럴 생각이었긴 합니다만 순목은 어차피 이미 죽었고 시체는 저기 있으니까요. 다른 걸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장정의는 문득 목을 통해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움찔하긴 했지만, 왠지 모를 친밀감이 느껴졌다.
순간 장정의는 무언가 깨달은 듯 흠칫 놀랐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덩이 안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살신전처럼 귀한 물건을 그냥 낭비해선 안 되죠.”
장정의는 구덩이 아래 누워있는 백령의 몸에 박힌 살신전 두 개를 뽑아냈다.
그리고 올라오면서 백령의 시신도 함께 가지고 올라왔다.
그는 눈으로 살신전을 깨끗이 닦은 뒤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여기, 다시 회수해왔습니다.”
진양은 살신전을 건네받으며 손가락을 긁적였다.
뭔가 부족하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양은 백령의 시신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빌어먹을 녀석. 끝까지 죽은 척하고 있을 셈이지? 그렇다면 여기서 완전히 끝을 내주마.’
저번에 놈을 성불시키지 못한 건 지부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엔 지부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지면에 누워있던 백령의 시신이 돌연 사라져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완벽히 죽은 시신이었던 녀석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장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생기도 회복하여 멀쩡하게 눈을 뜨고 서 있었다.
진양은 씨익 웃으며 손을 다시 거두었다.
“내 사제가 네 녀석한테 뭘 잘못하기라도 한 거냐?”
백령의 몸에 뚫려있던 화살 구멍은 점차 사라졌다.
그는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뒷걸음질 치며 진양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히 말을 꺼냈다간 진양이 무언가 눈치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냥 오해가 좀 있었습니다. 절대 당신의 사제가 신봉 혈맥이라는 걸 알고 찾아온 게 아닙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법.
이미 호되게 당한 탓에 진양이 어떤 인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자신이 진양에게 속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실의 세계에서는 실력이 끼치는 영향이 그다지 크지 않은 탓이었다.
진양의 경지가 그의 실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작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는 진양이 걸었던 길을 직접 걸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피해도 입지 않고 진실의 세계를 벗어나려면 어느 정도의 지혜와 실력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단 하나의 목숨만 가지고 그곳을 빠져나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고 있었다.
진양은 실력으로만 보면 절대적으로 그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순식간에 그를 소멸시켜버리고도 남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쩌면 온 천하에 있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진양이 진심으로 두려웠다.
때문에, 언제든 바로 도망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방금 죽은 척하고 누워있을 때 똑똑히 느꼈었다.
만약 진양이 자신을 만지게 내버려 두었다면 아마 그는 정말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 그리고 몸에 품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까지.
이를 통해 본능적으로 느낀 불길한 예감은 절대적으로 사실일 것이다.
“내 말 안 들리냐? 그리고 날 노리고 온 거면 나만 건드리면 되지 아무 상관 없는 내 사제는 왜 건드리는 건데?”
백령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어느새 기운은커녕 살아있는 사람의 기운조차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강자가 무표정으로 그의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 있는 게 전부였을 뿐이었는데도 그의 몸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백령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상대는 백령을 압도적으로 짓누르고도 남을 절세의 고수가 분명했다.
“사형,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장정의는 태자와 황태손의 보물창고를 털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백령을 가리켰다.
“다른 추격자 녀석들은 모두 떼어냈는데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저 녀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절 따라오더군요. 분명 보물을 노리고 쫓아온 게 분명합니다.”
“뭐라고?”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백령이 어딘가 문제가 있는 녀석인 건 확실하지만 겨우 보물 따위에 눈이 멀어 물불 가리지 않고 쫓아올 만한 위인은 아니다.
아니, 분명 무언가 눈치채지 못한 게 있을 것이다.
“혹시 보물 안에 들어있는 어떤 다른 물건 때문은 아닐까?”
“맞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장정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멍하게 상황을 살피던 백령이 한마디 했다.
“가능하다면 다른 보물을 주고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가고 싶다. 진양, 넌 내게 두 발의 화살을 쏘았다. 이걸로 우리 사이의 원한은 깨끗이 잊기로 하자. 어떤가? 앞으로는 네 근처에는 얼씬조차 하지 않겠다.”
장정의는 들고 있던 자흑색 금화를 진양에게 건넸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다시 금화를 하나 꺼냈다.
“사형,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태자의 보물창고에서 가져온 겁니다. 남은 하나는 순목이 가지고 있던 건데 아마 황태손의 보물창고에서 가져온 게 분명합니다.
제 몸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로 들어갈 수 있는 신물이 바로 이겁니다. 저 녀석, 이거 때문에 여기까지 쫓아온 게 분명해요!”
진양은 백령을 쳐다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네 녀석이 알고 있는 거 전부 다 털어놔, 그럼 우리 사이의 은원은 없던 걸로 해 줄 테니까.
솔직히 나도 네 녀석이 졸졸 쫓아다니는 게 슬슬 짜증 나려던 참이거든. 이번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앞으로는 서로 마주치지 말자고. 어때? 난 한 번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니까 믿어도 좋아.”
“…….”
백령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다.
괜히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오히려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제 와서 자신이 노리던 건 금화도 보물도 아니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과연 진양이 믿어줄까?
아니, 사실대로 다 털어놓는다고 해도 진양은 믿지 않을 것이다.
한참 고민하던 백령은 멀리 승복으로 시신을 감싸고 있는 노승을 힐끔 바라보았다.
괜히 잔머리를 굴리는 것보단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금화는 상고 지부의 보물이자 화폐로 사용되던 물건으로 오직 극소수만이 존재하며 속칭 매명전(買命錢)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상고 지부가 사라지고 난 뒤로 매명전은 더 이상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저 상고 지부에서 흘러나온 수많은 보물 중 하나이자 쓸모없는 물건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
“하지만 매명전이 아예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절세의 보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남아있으니까. 그중 한 곳이 상고 지부의 조각이다.
내가 가진 다른 보물과 그 금화를 맞바꾸고 싶다. 대신 값은 네가 만족할 만큼 쳐주도록 하겠다. 어때?”
백령은 덤덤하게 말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