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25
1125화 재미있는 놈이로군
이미 수명이 다한 대제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우습지 않더냐? 짐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수명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조의 힘을 빌어 하늘을 거스른 덕분에 강제적으로 마지막 남은 숨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최근 대연에는 재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영에게 수천 리나 되는 영토까지 내어주고 말았지.
요국과의 마찰도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니 이제 곧 큰 전쟁으로 번질 것도 시간문제나 다름없구나.
짐이 지금까지 마지막 남은 숨을 붙들고 있던 대가가 국운의 쇠퇴로 나타나는구나.”
연운은 조용히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놀랄 것도 없었고, 대제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누구든 죽음을 거부하는 건 당연한 법.
한 나라의 대제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연운이 온갖 고생을 감내하며 순목과 손을 잡고 명황이 열반했던 곳을 찾아 흑오동을 찾았던 것.
심지어 오늘 대제를 만나러 온 것 역시 연명을 위해서였다.
그 역시 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황제의 행위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없는 건 당연한 법이다.
아마, 입장을 바꿔놓고 봐도 그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대제가 계속해서 말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순 없다. 이대로 마지막 숨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는다 하더라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나 자신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대로 내가 버티면 대연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짐이 묻힐 곳조차 사라져버리게 될지도 모르지.
허나 짐은 결코 이렇게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태자든 ‘자칭’ 태손이든 그 누구에게도 대연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대연의 국운 역시 그들을 선택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널 부른 것이다.
넌 나의 누이의 유일한 혈육이다. 그러니 네게 대연을 물려주도록 하겠다.”
연운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대연의 국운의 화신이 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도성을 떠난 그는 북두성종으로 들어갔고 오늘날 대연 제일가는 종문의 종주의 자리에 올랐다.
어째서 대연의 국운의 화신이 대제를 지나 자신을 선택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태자나 태손을 선택하지 않은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대연 황제가 계속해서 화신을 쥐어짜며 대연 신조의 힘을 빨아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대연은 끝장이었다.
태자와 태손은 서로의 경쟁에만 집중할 뿐 대연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연 내에서 북두성종의 명성이 드높았던 이유는 바로 연운이라는 종주 덕분이었다.
겉으로는 조정의 일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연 신조의 안정을 위해 누구보다 힘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가 익힌 북두칠살진은 살벌한 기운이 강력하여 태생적으로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음을 통해 활력과 힘을 얻는 공법이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오랜 시간 동안 도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건 아직 기연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수명이 모두 소모되고 기혈마저 쇠퇴하기 시작한다면 기연을 찾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연 신조의 힘을 받아들였다.
계속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으나 그래도 부족했다.
신조의 대제나 태자가 익히는 공법도 익혔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얼마 전 대영 신조에서 새로운 대제가 등극하며 도군의 경지에 올라 전조 대제를 압도하여 죽였다는 소식이 흘러들었다.
연운은 그제서야 어떻게 해야 충분한 것인지 깨달았다.
스스로 대연 신조의 새로운 대제가 되어야 마지막 남은 한 걸음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흑오동으로 들어갈 때부터 이것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명황이 육신을 빼앗고 부활할 핵심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순목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안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수명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만 호언장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는 대연 신조의 국운의 화신에게 선택받은 몸이다.
그는 태자만이 익힐 수 있는 공법까지도 익혔다.
현재 그의 모든 것은 대연 신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었다.
단순히 힘으로만 따진다면 그는 대연 신조의 실질적인 황태자였다.
황태자 역시 군주다.
천하의 어떠한 공법도, 아무리 강한 사람도 군주를 죽일 수는 있어도 신조의 군주의 몸을 빼앗을 수는 없다.
그가 대담하게 흑오동을 찾아갔던 건 바로 이러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포기했던 건 완전히 육신을 빼앗길까 봐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의 이성, 자아, 그리고 기억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까 봐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내부부터 붕괴되며 영혼까지 소멸되는 죽음을 맞이할까 봐 그런 것이다.
“짐은 이미 오랫동안 너를 주시해왔다. 대연의 국운이 너를 선택했다는 것도 짐은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대제가 정곡을 찔렀다.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연운은 그제서야 대답했다.
“그래. 두 녀석에게 주는 것보단 차라리 네게 물려주는 게 훨씬 낫겠지. 네가 충분히 이 자리를 지켜낸다면 이 자리는 곧 완전히 네 것이 될 것이다.”
대제는 개의치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연운은 또다시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가 원하는 건 황위가 아니다.
그저 황위를 이용하여 도군에 오르고 수명을 늘리려는 게 전부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같은 결과라면 굳이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반나절 뒤.
연운은 성지가 적힌 죽간과 영패 하나를 챙겨 그곳을 빠져나왔다.
* * *
“진양, 제대로 온 거 맞아?”
검둥이가 목을 길게 빼며 물었다.
앞쪽으로는 깎아지르는듯한 절벽이 늘어져 있었고 아래로는 새까만 심연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엔 사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가끔 살기와 원한을 품고 있는 사악한 존재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곳이 바로 살자비가 발견되었던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살자비가 발견된 이후로 수많은 이들이 또 다른 기연을 얻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자는 몇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억울하게 죽은 수도사의 원한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고 결국 이런 모습이 된 것이다.
황폐해진 이곳을 찾는 이는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여기가 확실해. 아직 살자비의 살기가 남아있어.”
진양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냥 안 들어가는 건 어떨까? 그 많은 고수들이 몰려들었는데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잖아. 진곤 그 녀석도 여기 없을 거라고. 괜히 힘 낭비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검둥이는 진심으로 두려웠다.
목숨을 건 도박은 웬만해선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연 안쪽을 들여다보던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진곤 대인께서 안에 계실 확률은 희박한 것 같군.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진양은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투천보경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것은 보천선전과 다른 듯 비슷한 오묘함을 가진 공법이다.
익히고 난다면 그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일전에 고심주를 하나의 결점으로 간주하고 보천선전을 통해 보충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보천선전이 강력한 건 사실이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두 권의 보천선전은 전부 잔본이었다.
투천보경의 핵심에선 천지지간에는 반드시 생기가 있다고 간주하고 있었다.
보경엔 바로 이 생기를 잡는 공법이 들어있었다.
진곤을 찾으며 새로 얻은 공법을 익히는 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깨닫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대략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이 정도면 입문하는 데 문제는 없을 듯했다.
사흘 뒤.
진양의 머리에서 하얀빛이 날아올라 백옥 신문의 형상을 이루었다.
허공에 뜬 백옥 신문에서 재질과 표면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어서 아래로 무지개가 하나 뻗어져 나오며 백옥 신문을 붙잡자 상공 위로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순간 백옥 신문을 떠받치는 소세계가 만들어진 듯했다.
검둥이는 번쩍이는 빛에 눈이 부신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래도 네 녀석은 다른 고심주에 걸렸던 녀석들과는 다를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까 다를 게 없구나. 다 끝났어. 진양, 넌 앞으로 평생 백옥 신문을 열지 못할 거라고.”
“상관없어. 못 열면 그냥 버리면 그만이지.”
눈을 뜬 진양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백옥 신문을 다시 거둬들였다.
아쉬울 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선 장기적인 이익보단 단기적인 이익이 훨씬 더 큰 이익이었다.
만약 고심주에 심각한 결점이 존재한다면 미래는 없다.
백 살까지 살지도 못하면서 오백 살 때의 계획을 세우는 건 시간 낭비나 다름없다.
진양은 눈을 감은 채 새로 익힌 투천보경을 느껴보았다.
확실히 수련 공법은 아니었다.
수도사의 경지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순수한 신통력에 더 가까웠다.
설령 생기를 찾아 붙잡는다고 해도 단순히 보경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점점 가라앉으며 이성 중에 마음속 세계가 떠올랐다.
오직 황량함과 적막함인 이곳.
활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양의 이성의 화신은 허공에 뜬 채 이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투천보경이 시전되며 온 세상은 회색 빛깔의 적막의 기운으로 뒤덮여있었다.
그것은 약점이자 발목을 잡고 있는 족쇄다.
진양은 손을 뻗었다.
감정은 여전히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다.
심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눈앞에 나타날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분명 소요가 일어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다시 투천보경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마침내 이것이 거대한 결점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투천보경으로도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거대한 결점이었다.
아마 이제 막 투천보경에 입문하여 경지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보충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가 지금까지 이룬 최고의 경지는 법신이다.
이런 결점을 안고선 영원히 도군의 경지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이 족쇄는 단순히 힘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때가 되어서도 족쇄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유명무실한 힘만 가지고는 족쇄를 부수는 것도, 강제로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고심주의 결점을 보완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직접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진양의 이성은 적막의 세계 안에 있는 메마른 호수의 중심으로 향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대지에 손을 가져다 대니 손끝에서 모래가 만져졌다.
눈앞에 있던 한 알의 모래가 순식간에 커졌다.
투천보경의 빛과 함께 그의 손끝에서 무지개가 피어오르며 모래 안으로 흘러들었다.
보천선전이 시전되며 일곱 가지의 빛이 진양의 손끝에서 피어올랐고 체내의 힘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기 시작했다.
도기에 섞인 미약한 선천 기운이 일곱 빛깔로 흘러들며 진양의 손끝을 따라 모래 안으로 흘러들었다.
잠시 뒤.
흑백으로 가득하던 적막의 세계에 일곱 빛깔의 모래알 하나가 생겨났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진양은 돌연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놈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