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26
1126화 사라져 줄 수 있지?
진양의 웃음소리에 검둥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멍하게 있던 묵양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이게 된다고?”
검둥이는 크게 놀랐다.
방금 그 웃음소리는 예전의 진양만이 낼 수 있는 소리다.
고심주에 걸린 사람은 결코 웃음을 지을 수 없다.
물론 웃는 것처럼 입꼬리를 올리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건 단순히 웃는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
검둥이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진양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작은 빛 하나 들지 않은 세계 속.
진양은 손끝으로 일곱 빛깔의 모래를 건드렸다.
모래는 눈앞에서 커지기 시작하며 새로운 진양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안에 있는 진양도 손을 뻗고 있었다.
그의 손끝은 바깥에 있는 진양과 모래알을 두고 맞닿아있었다.
안쪽에 있는 진양은 안타깝다는 듯 탄식을 했고 주변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누가 봐도 원래의 진양의 모습이었다.
마음속 세계에서 두 개로 나뉘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진양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정신 분열이라면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분신은 분명 자기 자신과 같은 존재였지만 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감정을 가진 녀석이든 감정을 가지지 않은 녀석이든 하나 더 생겨난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이해한다고 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웬만큼은 이해할 것이다.
자기 자신과 상의한다면 적어도 불필요한 조건들은 모두 생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높은 확률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 고심주를 없애야 한다는 건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이네.”
감정을 가진 원래 모습의 진양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
감정 없는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심주를 없애고 나면 너도 사라질 거야.”
“나는 곧 너고, 너는 곧 나다. 오직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이 우선일 뿐.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 시간 낭비나 다름없는 질문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여기 있는 일곱 빛깔의 모래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원래의 진양이 한층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원래는 진곤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고심주를 푼 사람이니 반드시 푸는 방법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외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풀고 난 다음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혹여나 부작용은 없는지. 여러 방면으로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성공한 사례가 있으니 굳이 모험을 할 필요 없이 최대한 안전한 쪽을 택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제 진곤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가 여전히 방법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미지수고, 심지어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성이 남아있는지조차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만약 소통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괜한 시간 낭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처음 이 방법을 떠올렸을 당시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라 어쩔 수 없이 움직였던 것뿐이지.”
“그래서 지금은?”
원래의 진양은 진지하게 냉정한 진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가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네 모습이 고심주에 걸리기 전의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 이것만 봐도 고심주는 감정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게 아니라는 게 증명이 된 셈이다.
네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고심주를 푼다는 건 폐허가 된 이 세계를 재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폐허 속에서 부활의 생기를 찾는 것이지. 그 외에 남은 건 스스로 하기에 달려 있는 거고.
이렇게 되면 난이도는 대폭 낮아진다.”
“같은 편끼리 왜 이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본론만 얘기해. 질질 끌지 말고.”
“불가능한 방법을 모두 제외하고 나면 당장 이론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총 세 개가 있다.”
“세 개나?”
원래의 진양은 냉정한 진양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과연 난 천재라니깐.”
“투천보경과 보천선전을 함께 사용하니 과연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남아있는 보천선전의 잔본을 더 찾아낸다면 가능성을 더 높아지게 될 거다.
첫 번째 방법. 고심주에 손을 대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심주가 극도로 악랄한 저주 정도인 줄로만 알았다. 허나 극단적일수록 장점과 단점은 더욱 명확하고, 그 약점은 더욱 쉽게 드러나는 법. 그러나 푸는 건 어려운 법이지. 길을 알면서도 곤경에 빠지게 되는 거다.
이제 보니 고심(枯心)이라는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군.
고심주는 생각한 것보다 극단적이진 않다. 마치 사계절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의 법을 따르고, 한참의 적막 뒤에 부활하게 될 거다. 다만 웬만한 사람들은 그 부활의 날이 언제인지 모를 뿐이지.
천지의 법도에 잘 맞기 때문에 그 자체의 결점은 더욱 적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찾아내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찾아내고 보완한다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쉬워질 거다.
투천보경과 선천보전이라는 조합을 가졌다는 전제하에 고심주의 약점을 찾아내고 생기를 붙잡는다면 고심주에 손을 댈 수 있을 것이고 고심주 본연의 약점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오호, 흥미로운데.”
원래의 진양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심주 자체의 결점만 보완한다면 엄청나게 강해지는 거 아니야?”
“아니. 고심주는 봄, 여름, 가을을 전부 잘라내고 차가운 겨울만 남긴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겨울이라고 해서 생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 고심주는 본질적으로 천지의 법도를 따르기에 봄이 오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법이지. 잠깐 막는 건 가능하겠지만 영원히 막을 순 없다.
다만, 이때 고심주에 걸린 사람의 앞길과 자아를 파괴시키기엔 충분할 거다.
우린 그저 자연의 법도를 흉내 내기만 하면 된다. 완전히 보완할 필요는 없어. 그저 봄이 오도록 보완하고 외부의 천지대세와 합의를 이루면 되는 거지. 이렇게 되면 일 년만 기다리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며 다시 부활하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고심주도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겠지.”
“확실히 불가능한 방법은 아닌 것 같군.”
원래의 진양은 감탄하는 듯했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만한 힘이 없잖아.”
“대영 신조의 힘을 빌린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가 익힌 주도정의 대명궁이 도천결도 아닌데, 당연히 대영 신조의 힘을 빌릴 수 있다. 다만 이 방법은 신조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빌린 힘이 다소 부족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 대영 신조에 가지고 있는 신분을 더한다면 충분한 힘을 빌려 천지의 힘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예부 상서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
“그렇다. 사자결을 통해 판단을 내린 결과 가장 안전한 방법은 가희를 죽이고 대제가 되는 것이다. 대영 전체를 감싸고 있는 힘이라면 충분하겠지. 아마 짧으면 한 달이면 충분할 거다.”
“…….”
원래의 진양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네 녀석의 사정만 아니었다면 진작 베어버렸을 텐데 말이야.”
“지금 넌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냉정한 진양은 무뚝뚝하게 사실을 얘기했다.
“알았으니까 계속해서 얘기해 봐.”
“두 번째, 대영의 태자가 되는 것이다. 아마 이 정도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때려 죽어도 싫어.”
“세 번째는 대제의 부군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일들과 현재 가희가 널 특별히 중시한다는 점, 그리고 가희의 신분이 대제라는 걸 고려한다면 아마 이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데릴사위가 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
“네 번째는?’
“없다.”
원래의 진양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고심주 자체에 손을 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두 번째, 오색 모래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땅을 오색 빛깔로 물들이며 다시 생기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지.
이미 실험은 성공했으니 이 방법은 지금으로선 성공률이 가장 높은 방법이다. 뜻하지 않은 이변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차근차근 이뤄나가면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엄청난 힘과 시간이 소모된다는 점이지. 보천선전의 일부를 보완하게 된다면 대폭으로 시간을 줄일 순 있겠지만 말이야.”
“세 번째 방법은?”
“한 알의 모래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널 모래 안에서 회복시키는 데도 성공했으니 계속해서 이를 공고히 다지면서 생기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한 알의 모래에 펼쳐진 세계가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이길 정도로 강화되면 흑백의 세계를 부수고 모래로 그 세계를 대체하면 된다. 그럼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흑백의 세계는 겉보기에는 황무지나 다름없고 매우 커 보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론 매우 취약하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버린 후 대체하는 것도 성공률은 꽤 높다.
장점은 필요한 시간이나 힘이 대폭으로 줄어든다는 거고, 단점은 위험성은 적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속이 무너진다면 재건되고 난 후로 돌이킬 수 없는 흉터가 남게 된다.
어쩌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속이 좁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네 모습을 고려해 본다면 이 정도 부작용은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이지.”
“…….”
원래의 진양은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현재 직면한 문제와 앞으로 직면할 문제를 고려해 본다면 첫 번째 방법을 추천한다. 그다음으로는 세 번째 방법이고. 두 번째 방법은 최대한 뒤로 미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진곤을 다시 찾거나 진곤이 한때 머물렀던 곳을 찾아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면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해 보도록 해야겠지만.”
“그래. 그럼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넌 사라져 줄 수 있지?”
원래의 진양은 조심스럽게 찔러보았다.
현재 냉정한 진양과 그의 차이는 매우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불가능하다.”
냉정한 진양은 단호했다.
“재건된 모래알은 너무 약하다. 지속적으로 힘을 쏟아붓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붕괴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아직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이대로 네가 넘겨받는다면 모래알이 쉽게 부서질 수도 있다.”
듣고 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뭐, 충분히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네. 내 생각엔 동시에 셋, 아니, 진곤까지 포함해서 네 가지의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것 같아.
첫째로는 모래알을 단단하게 다지는 거지.
방금 말을 좀 잘못했는데 사라져달라는 게 아니라 잠깐 비켜달라는 거였어. 네가 잠시 비켜주면 내가 직접 살펴보고 싶어서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네 판단은 비록 이성적인 판단이긴 해도 적절한 판단이라고 볼 순 없잖아.”
냉정한 진양은 잠깐의 고민 후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 단순히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하고 직접 해 보지 않는다면 안 되지. 정보도 없이 맹목적으로 결정을 내릴 순 없으니까.
좋다. 난 잠시 물러날 테니 네가 움직이도록 해라. 이렇게 하면 훨씬 더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좋았어!”
진양은 크게 기뻐했다.
냉정한 진양은 제자리에 선 채 손끝으로 일곱 빛깔의 모래를 건드렸다.
그러자 일곱 빛깔 안에 있던 원래의 진양은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