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27
1127화 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진양은 곧바로 눈을 뜨는 대신 고개를 들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으윽, 바다 비린내. 도저히 맡아줄 수가 없군…….”
눈을 뜨자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검둥이 녀석이 보였다.
“너, 안 씻은 지 얼마나 됐어? 꼴이 이게 뭐야?”
검둥이는 멍한 눈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서, 설마 고심주가 풀린 거야?”
고심주에 대한 전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것들뿐이었다.
고심주에 걸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또 고심주에 걸리면 어떤 현상에 시달리게 되는지까지.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이 깨져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쉽게 고심주를 푼 거야?”
검둥이는 곧장 진양의 팔에 매달렸다.
지금 그는 마음속에 차오르는 호기심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후후, 고심주 따위. 거는 방법도 있다면 당연히 푸는 방법도 있는 거 아니겠어? 하하하!”
진양의 입꼬리는 금방이라도 귀에 걸릴 듯한 기세였다.
회복되었다는 상쾌함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같은 시각.
흑백 세계에 남겨진 냉정한 진양은 손가락을 모래알에 가져다 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무표정으로 모래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모래알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리게 번쩍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빠르게 번쩍이며 눈을 뜨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때.
팟-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빛이 부서졌다.
오색 빛깔 모래에서 흘러나오던 빛도 빠르게 소멸되며 다시 검은 모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밖에선 진양이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음속을 가득 채운 기쁨은 마치 맹독처럼 빠르게 퍼져나갔다.
어느덧 공포심이 피어오르긴 했으나 금세 기쁨에 의해 뒤덮여버렸다.
순간 그는 무언가 부서진 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그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 다경 정도가 지나고 나자 그는 다시 차가운 눈빛에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냉정한 진양은 지금까지의 변화를 모두 기록해두었다.
이건 상당히 귀한 자료들이다.
원래의 진양의 말이 맞았다.
그에겐 결점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때도 결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처음 계산했던 감정과 기분에 대한 부분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원래의 진양이 밖으로 나오고 몇 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웃다가 죽어버린 것이다.
이건 상당히 귀중한 검증 자료다.
이는 곧 정확한 방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냉정한 진양은 과감하게 다시 흑백의 세계로 돌아와 일곱 빛깔의 모래를 만들어냈다.
일곱 빛깔 모래와 함께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원래의 진양의 모습이 나타났다.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웃다가 죽어버리다니.
냉정한 진양은 백지를 하나 꺼내 이전의 과정을 모두 기록하기 시작했다.
“뭘 이런 걸 또 기록해…………”
원래의 진양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처음에는 나도 기록할 필요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토록 본능적으로 필요성을 느낀 건 몇 없다. 전부 다 적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기록해야 할 듯하다.”
냉정한 진양은 기록을 모두 마친 후 결론을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새로 만들어진 모래알은 애초에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약하다. 네가 밖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모래 안에 만들어진 세계 안에 있었다.
외부로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면 마음속이 연약해지며 쉽게 붕괴되는 듯하다. 아주 작은 감정이라도 말이지.
하지만 이로써 세 번째 방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증명되었다. 모래알을 충분히 강화시키기만 한다면 흑백 세계를 뒤집어버릴 수 있을 것 같군.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니다. 결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완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까.
이론적으로 본다면 모래알을 무제한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 아마 일정 수준에 이르면 검둥이처럼 불멸의 이성을 갖게 될지도 모르지.
장점이 많으니 계속해서 시도해 봐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일단 모래알을 충분히 강화하고 난 뒤에 네가 나서는 게 좋을 듯하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가치 있는 정보를 모을 수 있을 거다.”
“…….”
원래의 진양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이젠 밖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 집착도 사라져버렸다.
“일단 모래알부터 강화시키고 난 다음 생각해 보자고. 충분히 강해지고 난 다음 나서거나 꼭 필요할 때만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외엔 네가 나서도록 하고.
어차피 너와 나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잖아. 혹여나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만 찾아와서 나와 상의하면 될 테고 말이야.”
앞으론 꼭 나서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필 죽어도 웃다가 죽다니.
이러다가 다음에는 울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진양의 명성은 형편없이 바닥을 치게 될지도 모른다.
진양이 정신병에 걸려 웃다가 죽었다든지, 울다가 죽었다든지 등등의 헛소문도 잔뜩 돌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은 결코 원치 않았다.
아니, 때려죽여도 그런 부끄러운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고심주는 상당히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자존심을 짓밟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다니.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이런 걸 만들어낸 건지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었다.
원래의 진양이 홀로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고 있는 사이.
냉정한 진양은 기록 정리를 모두 마쳤다.
이 외에,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들도 전부 계산을 마쳤다.
그는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야 보천선전과 투천보경을 운용하여 모래알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눈을 뜬 진양은 무표정으로 멀리 보이는 심연을 바라보았다.
“아래로 내려가 보자.”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전부 부정당한 느낌이었던 검둥이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진양에게 물었다.
“괜찮은 거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진양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 방금 분명……. 회복되지 않았었어?”
검둥이는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들었던 전설 중에 이런 상황에 대한 전설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완전히 풀든지, 아니면 풀지 못하고 죽든지.
둘 중 하나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고심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지 고심주를 풀었다고 할 순 없다. 아직 실험 중이긴 하지만 확신은 없다. 그러니 일단 진곤이 있는 곳부터 찾는 게 우선이다.”
“그건……. 알았어.”
검둥이는 여전히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진양은 그를 상대해 주기 싫은 듯 이미 심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검둥이는 어쩔 수 없이 일단 호기심을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묵양은 진양이 먼저 심연 아래로 뛰어들며 사라지자 검둥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보기 드물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 그런 건 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묵양과 눈을 마주친 검둥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음속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연 이런 건 모르는 게 좋을 듯했다.
너무 많은 걸 알아봤자 좋을 게 없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까지 퍼지게 될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나온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특히 고심주를 푸는 일은 더 이상 개인적인 원한에만 얽혀있는 게 아니다.
검둥이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묵양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묵양은 그런 그의 인사는 무시한 채 비주를 챙겨 넣은 뒤 진양의 뒤를 따랐다.
검둥이는 먼저 진양을 따라간 묵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왠지 모르게 지금의 묵양은 예전의 묵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단지 엄청 강해졌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과거 묵양은 해안에 들어와서도 말 한마디 뱉지 않던 묵묵한 녀석이었다.
방금 전 그의 한마디로 검둥이는 묵양에 대한 호기심마저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강제로 억눌러버렸다.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괜히 물었다간 자신이 알아선 안 될 사실까지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렵게 환생했는데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
* * *
심연 아래엔 원한, 죽음의 기운, 그리고 이 외의 부정한 기운들이 들끓고 있었다.
진양은 무표정으로 기혈을 끌어올려 그것을 불태워버렸다.
그다음 삼양개태지법을 시전하자 몸에서 태양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어서 손을 뻗어 닭을 밖으로 꺼냈다.
진양의 몸에서 흘러나온 태양의 기운은 닭의 몸에 있던 천화를 자극했다.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태양이 떠오르며 어둠을 밀어내듯 주위에 있던 부정적인 기운은 강제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곳에 숨어있던 사악한 존재들은 빛에 닿자마자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녀석들은 전부 진양에게 멀리 떨어졌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악한 존재들이 살아있는 자의 기운을 느낀 듯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잠시 뒤.
심연의 최하층부에 도착했다.
거대한 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끝에 검은 돌로 만들어진 패방이 꽂혀있는 모습이 보였다.
농후한 살기는 바로 이 패방에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패방에는 고대의 문자로 무언가 새겨져있었다.
다만 새겨진 글자는 이곳에 일어졌던 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글자였다.
‘지살(止殺)’
‘지살’ 패방이 언제부터 이곳에 서 있던 건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전부터 이곳에 서 있었던 듯했다.
다만 전투로 인해 남은 검흔이나 여타 흔적은 없었다.
이 패방은 아마 그 자체만으로도 보물일 것이다.
이곳에 벌어졌던 일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비경으로 향하는 문일지도 모른다.
뒤쪽의 동굴과 이곳을 잇는 일종의 통로로 이곳에 고정된 상태라 아무도 이것을 가져가지 못한 것이다.
진양은 패방에 손을 얹고 진원을 흘렸다.
진원이 패방 전체를 뒤덮었으나 능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예상대로 패방 하나만 덜렁 서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이곳에 고정이 된 게 분명했다.
즉,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의 일부임이 틀림없었다.
진양은 패방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으나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여기서 조금이라도 힘을 가했다간 금방 가루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진원으로 손바닥을 뒤덮은 뒤 용혈보술을 사용하자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지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긴 했으나 패방에선 살자비에 견줄 만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양의 육신 방어를 뚫고도 남을 만큼 강한 살기였다.
검둥이가 다가와 지살 패방을 살펴보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예상대로군. 이곳에 칠살비가 있던 게 틀림없어. 지살 패방이 여기 있다는 건 곧 진곤도 대황에 떨어졌다는 뜻이야. 다만 언제 대황에 떨어진 건지는 알 수가 없을 뿐이지.
지살이라. 진곤 그놈도 참 낯짝 두꺼운 놈이군. 다른 지부놈들이라면 몰라도 놈이 지살 패방을 세우다니 말이야.
놈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살생을 저질렀는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걸.”
검둥이는 이미 체념한 듯했다.
설령 진곤이 정말로 있다고 해도 무조건 그를 죽인다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