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42
1142화 이젠 힘으로 싸움을 벌일 때
운친왕의 저택.
운친왕은 높은 누각에 올라 사당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하, 따로 준비하실 것은 없으십니까?”
“아니, 우리가 먼저 나설 필요는 없다. 누군가 먼저 나서줄 게다. 대제가 죽기를 바라는 건 우리 말고도 더 있으니까…….”
* * *
황태손부.
사방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황태손은 놀라 펄쩍 뛰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황급히 사당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이건……. 붕어 제문이잖아!”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황태손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궁성을 바라보았다.
궁성에서 모여든 농후한 죽음의 기운이 황실 사당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간 황태손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치며 지나갔다.
제문이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곧 대제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궁성에서는 강한 반발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는 곧 대제가 아직 죽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뜻이었다.
즉, 대제가 수명이 다하여 강제로 명줄을 붙들고 있다는 걸 안 누군가 때를 노리고 대제를 공격한 것이다.
‘누구지? 설마 태자?’
한편, 황태손의 몸은 머리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대제의 반발을 막아낼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상황이 이미 이렇게까지 흘러버린 이상 대제를 살려놓는 건 태자나 자신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절반쯤 날아왔을 때 그는 돌연 멈춰 섰다.
다른 한쪽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 *
태자부.
현임 태자는 비록 죽은 선태자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대연 하늘을 가득 채운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 소리는 곧 그의 황위 등극을 알리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대제가 얌전히 죽어주기만 한다면 황위는 자연스럽게 태자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제는 어떻게든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걸 막으려고 저항할 것이다.
태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이 일은 결코 그가 벌인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황태손뿐이다.
그러나 황태손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는 엄청난 갈등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대제를 막지 않는다면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막았다간 모든 책임을 전부 뒤집어쓸 수도 있다.
설령 대제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황태손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이젠 정말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대제만 죽는다면 아무 문제 없다!’
일단 성공하기만 한다면 모든 상황이 태자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정식으로 책봉된 태자였으니까.
순간 태자의 기운이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원할 수 있는 대연 신조의 힘을 최대한 동원하여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당으로 날아간 그는 죽음의 기운이 사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냈다.
손에 황금 인장을 든 태자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진압!”
백금색의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도성 전체가 대낮처럼 훤해졌다.
이어서 모습을 드러낸 백금색의 날카로운 검은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 죽음의 기운을 베었다.
이때,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제문 소리와 함께 붉은 하늘에서 새빨간 선혈과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궁성 내부.
보좌에 앉은 대제는 멀리 궁 밖으로 보이는 태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
“아들아. 참으로 조급하구나.”
대제의 힘이 빠르게 줄어들며 어느덧 도궁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신조의 힘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국운의 화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던 속박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대제는 망설임 없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격했다.
순간 온몸의 혈관이 푸른색으로 변했다.
이어서 눈, 코, 입, 귀 등 모든 구멍에서 대량의 삼천인이 쏟아져나왔다.
대제는 순식간에 삼천인으로 뒤덮여버렸다.
생기가 끊어지자 죽음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던 신조의 힘이 갑자기 역으로 솟구쳤다.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신조의 힘의 양도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신조의 기운, 그리고 죽음의 기운까지 더해지며 대제의 기세는 순식간에 법신 최고봉에 도달했다.
대제는 고개를 들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경지는 법신의 경계를 뛰어넘어 도군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새까만 죽음의 기운이 연기처럼 하늘 위로 솟구치며 사방에서 내리던 붉은 빗방울은 다시 승천하기 시작했다.
대제는 뒷짐을 진 채 태자를 노려보며 무섭게 소리쳤다.
“천하의 후레자식!”
대제를 본 태자는 너무 당황하여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의 귓속에 수천만이나 되는 이들이 동시에 함성을 지르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후레자식’이라는 한마디가 그의 영혼, 정신, 그리고 의식에 낙인이 찍힌 것처럼 새겨졌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대제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얼굴로 태자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태자의 육신은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죽음의 기운조차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영혼와 이성까지 완벽하게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 * *
한편, 사당에선 진양이 이제 막 최대한 간략하게 쓴 제문을 모두 다 읽었다.
고개를 든 진양의 눈에 태자가 최후를 맞는 모습이 들어왔다.
“젠장, 큰일이군……. 저 독한 늙은이, 자기 자신을 옹종갑사로 만들어버렸잖아.”
문득 고심주에 걸린 이후로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때 주도면밀한 면이 부족해졌다는 걸 느꼈다.
대제가 이토록 과감한 선택을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연 황실 무덤에서 황실 사람을 옹종갑사로 만들어 무덤을 지키게 했던 걸 봤었다.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은 전임 대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옹종갑사로 만든 건 어쩌면 현임 대제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들을 봤으면 대제가 자기 자신도 옹종갑사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진작 인지했어야 한다.
도기를 이용해 제천을 시전하면 대제가 신조의 힘을 통해 연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죽은 대제가 옹종갑사가 되어 신조의 힘을 부리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일이 상당히 귀찮게 되어버렸다.
불사불멸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경지도 법신을 뛰어넘어 도군의 수준으로 올라갔다.
심지어 의식까지 가지고 있는 옹종갑사라면 전투 시 동급 수도사를 월등히 뛰어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단독으로 싸운다고 치면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만 간신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해도 승산을 보장할 순 없을지도 모른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을 때 마음속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강한 힘에 의해 그는 강제로 일곱 빛깔 모래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뭐 하는 거야?”
“모든 일이 머리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이젠 힘으로 싸움을 벌일 때다. 지금부턴 나에게 맡겨라.”
냉정한 진양은 강제로 육신의 주도권을 빼앗아갔다.
눈을 감았다 뜬 진양은 다시 냉담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힘들은 조금도 새어나감 없이 완벽하게 제어되고 있었다.
순간, 해안에서 끓어오르던 마기가 체내와 체외로 흘러들었다.
진양의 눈은 검게 물들어갔고 머리카락은 길어졌으며 육신 표면에 도문이 일어났다.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새까만 화염이 되어 온몸을 뒤덮었고 머리 위로는 빛의 고리가 하나 피어올랐다.
입마 형태를 드러낸 진양은 체내의 기혈을 다시 한번 불태웠다.
방대한 양의 기혈에 육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화염을 분출해냈다.
이어서 패왕사갑 오 단계가 시전되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진양의 기운은 법상에서 법신으로 강화되어있었다.
매 순간 소모되는 힘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태자를 처치한 대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황실 사당을 바라보았다.
한 손으로 결인을 맺자 나머지 한 손에는 죽음의 기운이 몰려들었고, 새까맣고 거대한 도장이 되어 황실 사당을 향해 떨어졌다.
도장은 아직 완전히 떨어지지도 않았으나 엄청난 위압감이 거대한 산맥처럼 황실 사당의 방어 진법과 금제를 짓눌렀다.
엄청난 압력에 의해 변형이 된 방어 진법과 금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파괴되어버렸다.
무형의 충격파가 도달하며 황실 사당은 순식간에 박살 나 버렸다.
사방에 먼지가 흩날리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충격파는 사방을 중심으로 방원 십 리 이내를 평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이곳이 각종 방어 진법과 금제가 펼쳐져 있는 도성이라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만약 방어 진법과 금제가 없었다면 방금 전의 충격파로 인해 도성 절반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진양이 서 있는 곳에서도 공간의 왜곡이 일어났다.
마치 주름이 진 것처럼 공간이 구겨졌다.
공간 내에 진양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진양은 고개를 들어 도장에 새겨진 두 개의 글자를 살폈다.
‘대난(大難, 큰 재앙)’
농후한 살기와 신조의 힘까지 더해져 매우 강력한 위력을 내뿜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몸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진양은 동술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검은 도장이 층층이 분해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많은 부문으로 나뉘어졌고, 이어서 죽음의 기운과 신조의 힘도 따로 분리되었다.
진양은 하얀 두꺼비 가죽을 두른 상태였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신조의 힘을 부릴 수 있다.
신조의 힘을 다소 끌어모아 도장 안에 흐르고 있는 신조의 힘의 변화의 규칙부터 살폈다.
그다음 죽음의 기운의 변화와 부문의 구조를 살폈다.
그리고 나서야 도장의 약점을 찾기 시작했다.
모든 분석 과정은 일순간에 진행되었다.
눈앞에 나타난 모든 허상들도 수십 배나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거대한 도장은 진양의 머리 위로 몇 장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진양은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의 힘을 주먹에 모으기 시작했다.
흑뇌(黑雷), 마화(魔火), 진원, 그리고 검둥이 손의 힘까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진양 주위 구겨진 공간들이 주먹에서 피어오른 힘에 의해 강제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진양은 위를 향해 튀어 오르며 주먹을 뻗었다.
“뇌화 신통력!”
굉음과 함께 번개가 터져 나왔다.
흑뇌와 마화가 뒤섞인 힘에 육신의 힘까지 더해져 강력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때는 마침 검은 도장이 새로운 변화로 접어들려는 순간이었다.
진양의 오른팔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근육은 끊어지고 뼈는 박살이 나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른팔 전체가 힘없는 종잇장처럼 펄럭이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도장은 허공에 둥둥 뜬 채 멈춰버렸다.
쩌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진양의 주먹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번갯불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도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쩌저적- 콰광-!
검은 도장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