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52
1152화 구분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
원래의 진양은 곧바로 냉정한 진양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냉정한 진양이 날카롭게 주위를 살피는 동안 원래의 진양이 말했다.
“그 환해 일족의 고수는 분명 아직 이곳에 있을 거야. 놈은 내 발목을 완전히 붙잡아두었다고 생각해서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게 분명해.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내 발목을 잡으려 한다는 건 내가 녀석들의 계획을 망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최대한 빨리 녀석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운친왕의 심문 안으로 들어가야 돼.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돌이킬 수도 없을 거야.”
냉정한 진양은 원래 있던 자리에 분신을 남겨둔 뒤 허공 안으로 들어섰다.
허공엔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던 여인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채 진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양의 왼손에 흑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왼손은 검은색으로 물들며 치명적인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진양은 오직 앞만 바라보며 빠르게 달려 나갔다.
순간 여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특히, 차갑게 얼어붙은 진양의 눈빛과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양의 앞길을 막는다면 그는 어떠한 대가도 막론하고 반드시 그녀를 철저한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잠깐의 고민 사이 진양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여인은 길을 비켜주었다.
감히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만한 용기는 없었던 것이었다.
진양은 그녀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검둥이의 왼손과 흑검까지 거둬들이며 등 뒤를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진양이 이럴수록 여인은 한층 더 등골이 오싹해졌다.
방금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만약 길을 막았다면 그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허공을 빠져나온 진양이 운친왕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양은 묵양을 꺼내 주위를 경계하도록 한 뒤 백피등롱을 꺼냈다.
“마음을 열어주십시오.”
무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운친왕이 힘겹게 눈꺼풀을 올렸다.
눈빛으로 보아 힘겹게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듯했다.
이어서 심문이 나타났다.
심문은 회색과 검은색으로 시시각각 바뀌어 가고 있었다.
갓난아기의 심문 속에서 보았던 검은 문의 형상과 평범한 회색 나무 문이 번갈아 가며 모습을 드러냈다.
진양은 나무 문이 나타나는 순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운친왕의 눈빛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악랄하고 사나운 눈빛과 꺾이지 않는 의지로 가득 찬 눈빛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운친왕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또 다른 누군가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쪽의 모습은 급격히 늙어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버섯이 가득한 대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운친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탈사를 당하다니. 그럴 리 없다.”
“그래. 그런 공법을 익혔으니 당연히 탈사를 당할 리 없겠지. 설령 삼신도군이 직접 삼신술을 사용하여 널 연화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전에 네가 먼저 죽게 될 거다. 그리고 네가 죽는다고 해도 화신으로 연화시키는 건 불가능하겠지.
넌 그야말로 탈사 방어에 최적화된 요새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난 네 육신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다.”
대제는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연운, 넌 본래 나다. 허나 난 네가 아니다. 난 단지 나의 것을 되찾으려는 것뿐이다.”
운친왕은 마치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과거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중엔 그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겨버렸던 일도 있었다.
대제의 수명은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수명 마찬가지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전엔 단순히 북두칠살경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여러 방면으로 나타나는 현상 역시 그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상이 밝혀지고 나니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앞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사실 두 사람의 수명이 한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화신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누군가 그를 탈사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아가 사라지는 게 너무나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가 가진 모든 것, 속마음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전부 대제의 내면의 세계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두 사람이 이위일체였기 때문이다.
즉, 그는 사실상 늙은 대제와 같은 몸이라는 뜻.
연운은 그저 또 다른 하나의 몸에 불과하다.
시간이 흐르며 또 다른 이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이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뿐.
비통함과 절망이 마음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내면의 세계가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엄청난 힘이 쏟아져 들어오며 점점 더 강해지곤 있었지만 자아는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는 단칼에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연운, 그는 말단 잡역부에서 대연 최고의 명문 문파 종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온갖 고초와 역경에도 단 한 번도 포기한 적 없던 사람이다.
진양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데 어찌 그가 먼저 포기할 수 있겠는가?
순간,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단순한 생각 하나가 전부였지만 전대미문의 강력한 힘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운친왕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손을 뻗어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그가 온 힘을 쥐어짜 소리쳤다.
“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황위를 진양에게 계승하노라!”
외침과 함께 입 밖으로 터져 나온 피는 작은 방울이 되어 하늘 위에 떠 있는 일곱 빛깔의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미친 듯이 체내로 흘러들던 힘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운친왕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듯하면서도 도저히 만질 수 없었던 ‘도군’이라는 경지가 점차 멀어져갔다.
그러나 속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통쾌하고 후련했다.
“그깟 황위 따위! 다시 한번 황위를 손에 쥘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꿈도 크구나!”
큰소리로 웃고 있는 운친왕의 몸은 점점 제어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의 이성은 또다시 강한 힘에 의해 짓눌려버렸다.
* * *
내면의 세계.
내면의 세계에 일어나는 변화를 살피던 진양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즉시 파악할 수 있었다.
운친왕의 모습이 한쪽에 나타났다.
온 세계와 비교하면 점점 더 약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원래의 진양이 주도권을 잡았다.
운친왕의 내면의 세계는 한층 더 큰 세계에 의해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진양은 그것을 저지하지 않고 천천히 물었다.
“상고에는 이성을 중시하는 파벌과 기억은 중시하는 파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들어본 적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지지하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진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흑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큰소리로 웃었다.
“그까짓 걸 구분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대제만 죽이고 나면 어느 쪽을 지지하건 큰 상관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저 기분에 따라 하루하루 결정을 바꿔도 무방하죠. 하하하……!”
운친왕은 처음에는 놀란 듯 진양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리곤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맞는 말씀이십니다.”
대제는 이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뒷일을 모두 고려하여 판을 짠 듯했다.
하지만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황위가 오랜 시간 황실을 벗어나 사방을 유랑하던 이에게 돌아갈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더 나아가 새로운 대제가 등극 대전에서 진양이라는 대영 사람에게 황위를 물려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대연 황실의 핏줄도 아닌 대영의 관직까지 가지고 있는 철저한 외부인에게 황위를 물려주다니.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허공에 떠 있는 운친왕의 곁으로 일곱 빛깔의 구름이 몰려들었다.
대연 신조의 힘이 끊임없이 몸 안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빠져나가는 힘은 운친왕의 몸에서부터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흘러드는 힘은 대제의 내면의 세계 안에 있는 황위를 직접 계승 받은 자에게 흘러들고 있었다.
* * *
소환된 묵양은 늘 그렇듯 조각상처럼 제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이어서 수백 개도 더 되는 크고 작은 인형들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에는 강력한 파괴의 기운을 품고 있는 훼멸구도 함께 나타나 허공을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한편, 닭은 마치 암탉이 닭을 품는 것처럼 요람에 얌전히 자리를 잡은 채 앉아있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진유덕, 이 망할 자식! 이번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테다. 반드시 끝장을 내주겠어!”
그러나 잔뜩 툴툴거리는 입과는 달리 몸으로는 아이가 편안한 자세로 잠을 잘 수 있도록 날개를 받쳐주고 있었다.
현재 도성 내에는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다른 마음을 품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눈앞에 나타난 엄청난 수의 인형 군단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건 파괴적인 기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훼멸구였다.
엄청난 수의 훼멸구가 한 번에 폭발한다면 도성의 방어는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아니, 도성의 방어가 버텨낼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도성에 있는 사람의 구 할이 훼멸구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증발해버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환해 일족의 부인이 소리 없이 성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조용히 묵양과 제자리에 우뚝 서 있는 운친왕, 그리고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고 있는 심문을 지켜보았다.
이어서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며 심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온몸에 눈이 달린 기괴한 인형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각 눈알에서는 그녀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묵양은 제자리에 선 채 고개만 돌려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미 과거의 경험이 있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답은 나왔다.
환해 일족의 정점급 고수들은 그가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러므로 괜히 힘 낭비할 것 없이 그냥 놔두기로 한 것이다.
묵양은 그저 다른 사람들만 잘 막아내면 된다.
그 누구도 심문과 백피등롱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감시하기만 하면 된다.
남은 건 진양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만약 진양조차 해결하지 못한다면 묵양은 더더욱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순식간에 간단한 해법을 찾은 묵양은 상당히 흡족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했기 때문이다.
환해 일족의 여인은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돌연 멈춰 섰다.
차가운 묵양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인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냉담한 진양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도 않았는데 등골이 오싹해졌다.
죽은 대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냉혈하고 냉담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