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56
1156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진양과 연운이 함께 대제가 된다.
진양은 그저 명목상 대제라는 감투를 쓰게 되겠지만 신조의 힘은 여전히 빌려서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대영에서 쳐들어올 이유도 없어진다.
실질적으로 황위에 앉는 건 연운이다.
이제 막 도군의 경지에 올랐으니 능력도 충분하고, 신분이나 명분을 따져봐도 충분히 모두가 수긍할 만했다.
무엇보다 연운이 황위에 앉게 되면 대연은 큰 풍파에 시달릴 필요도 없어진다.
진양과 연운은 동시에 두꺼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두꺼비가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비록 껍데기뿐인 경지가 전부지만 황위에 앉게 된다면 빠른 속도로 진정한 도군의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거다. 적어도 역사상 가장 빠르게 운명한 도군이 되는 건 면할 수 있겠지.
만약 그대가 황위를 거절한다면 대연은 심각한 내란에 시달리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네 목숨도 위험해지게 되겠지.
게다가 도군까지 올랐는데 더 높은 경지를 노려볼 생각은 없는 건가?”
이어서 두꺼비의 시선이 진양에게 향했다.
“마찬가지로 명목상으로 진양을 대제로 인정하고 신조의 힘을 빌려줄 수도 있다.
내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천천히 논의해서 누가 대제가 될지 정해도 상관없다.
아니면, 자격을 가진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때까지만이라도 대제의 자리를 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전까진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돕겠다고 약속하겠다.”
“듣고 보니 꽤 그럴싸한 얘기인걸.”
진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확실히 역사상 가장 빠르게 운명한 도군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보단 황위를 받아들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진 않거든요.”
연운은 마땅히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진양은 그제서야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이마를 탁 쳤다.
이어서 손을 뻗으니 멀리서 요람 하나가 날아왔다.
아이를 돌보고 있는 닭은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다만 보는 눈이 있어서 그런지 평소처럼 성질을 부리진 않았다.
“잠깐만 기다려봐.”
진양은 눈을 감고 삼세신의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다행히 이 아이는 삼세신의 내용과는 맞지 않았다.
만약 그가 대제의 삼세신 중 하나였다면 심문 안에 또 다른 심문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대제와 아이의 심문이 중첩되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연운도 함께 아이를 살펴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록 대제가 마련해둔 퇴로이긴 하지만 저와는 다르게 아무 문제는 없는 듯합니다.”
“그럼 됐습니다. 당신이 직접 데려가서 키우도록 하세요. 아이가 충분하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그때 황위를 물려주면 되잖아요. 어차피 조서에서 계승자로 지목되기도 했었으니 안 될 것도 없죠.”
아이가 삼세신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선 놀랄 것도 없었다.
대제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겨우 다시 한번 사는 걸로 한 번의 기회를 낭비할 위인은 아니다.
연운의 몸에서 성공했다면 다시 살았을 것이다.
만약 실패했다고 해도 눈속임을 위해 내놓은 이 아이를 진짜 퇴로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연운은 처음에는 전부 거절하고 싶었지만 두꺼비와 진양의 말을 듣고 보니 꽤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지금 그는 상당히 위태로운 상태다.
안 될 것도 없었다.
새롭게 준비된 계승자도 있었고 진양도 함께 황위를 이어받기로 했으니 말이다.
대략적으로 시간 계산을 해 보니 도군의 실력을 완전히 되찾을 즈음이면 아이도 성인이 되어있을 듯했다.
그러니 때가 되면 아이에게 황위를 물려주면 된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적당히 회복되자마자 진양에게 모든 짐을 떠넘기고 떠나버려도 상관없다.
잠깐의 고민 후 연운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진양은 더더욱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장기적으로 힘을 빌린다면 모래알 강화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이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 밑지는 장사도 아니었다.
설령 연운이 짐을 떠넘긴다고 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진양은 정식적인 방법으로 신조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니다.
도천결을 사용하기 때문에 힘을 빌리는 방법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신조의 힘이 진양을 집어삼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모든 게 정해졌다.
무엇보다 언제든 황위를 떠넘길 수 있었기에 진양과 연운 모두 만족할 만한 결정이었다.
한편 내환과 우환이 겹친 상황이라 두꺼비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국운의 화신에 불과하다.
가령 대연이 제사를 지내는 대상은 대연 신조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의 지능이 조금 높다고 해도 큰 소용은 없었다.
죽은 대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 대연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자신만 살 수 있다면 대연 전체를 산 제물로 바쳤을지도 모른다.
대제를 제외하면 현군의 상을 가지고 있던 자는 죽어버렸다.
남은 하찮은 녀석들은 대제의 작은 부추김에도 서로 박이 터져라 싸웠다.
내부 외에도 남쪽에는 함부로 쓰러뜨릴 수 없는 강자가 버티고 있었고, 서쪽에는 요족이라는 늑대 무리가 침을 흘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임기응변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대연 신조를 위해서였다.
많은 이들이 등극 대전에서 일어난 소동을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그 내막까지 이해하며 본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그러나 이들은 전부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다.
이들은 전부 정상급 고수들이다.
자신의 힘으로 도군의 경지에 오른 것인지, 아니면 신조의 힘을 받아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도군에 오른 대제가 정식으로 등극하여 대연 신조의 힘을 받게 된다면, 그 실력은 도군 중에선 단연 으뜸일 것이다.
특히 푸른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북두구성도가 펼쳐지는 모습만 봐도 운친왕이 어떤 신분인지 알 수 있었다.
전투에 특화된 자가 여러 방면의 뒷받침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도군 경지에서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런 대제에게 불만을 표출하거나 반기를 들 만큼 대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묘하게 시작된 소동은 마찬가지로 미묘하게 끝을 맺었다.
묵양은 수백만 개나 되는 인형 군단과 수백 개의 훼멸구로 도성 전체를 압도하고 고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 일은 진양이 일전에 귀빈석에서 보았던 신하들의 화려한 말솜씨로 제법 그럴싸하게 포장되었다.
그는 대제의 절친한 친구인데 특별히 부탁을 받고 나선 것이고, 만약 그가 없었다면 대연은 사악한 이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법 그럴싸한 증거도 있었다.
그렇게 소동의 진상은 천천히 묻히게 되었다.
연운은 간단한 등극 의식을 치렀다.
이어서 진양에게도 대제의 칭호를 정해주었다.
진제(秦帝).
다만 진양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강력하게 항의했고, 결국 다른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듣기에 상당히 거슬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양제라고 하자니 마찬가지로 어감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자를 따서 유덕제라고 짓기로 했다.
하지만 대연 예부 상서의 반대로 ‘유’를 빼고 덕제로 최종 결정되었다.
사실 말 그대로 이름뿐인 이름이라 진양은 더 이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요란하게 자신의 새로운 호칭에 대해 알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설령 이견이 있다고 해도 말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진양이 권력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마치 ‘제천대성’과 같이 유명무실한 호칭에 불과했기 때문일까.
그저 운제만 만족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등극한 지 사흘 만에 열린 조회에서 운제는 한 가지 일을 들춰냈다.
겉으로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척했지만 어느 정도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선제는 이미 죽었다.
게다가 이 일은 선제가 재위하던 시절의 폐태자와 연관된 일이다.
그러니 더 이상 얘기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폐태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굳이 반대하는 이도 없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대부분 모두 죽었다.
폐태자의 아들인 황태손도 완전히 실종되고 없었다.
황실 사당에서 들려온 소문에 따르면 며칠 전에 황태손이 신조의 운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설령 죽지 않았다고 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황태손이 오랜 시간 이루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염원은 순조롭게 풀려갔다.
나름 최고의 대우가 있었다.
이 사실을 천하에 공포하고 위패는 다시 사당으로 복귀되었다.
이 외에 숨겨져 있던 사실까지 모두 드러나며 폐태자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 * *
소식이 한참 퍼지고 있을 때, 동쪽 국경지대.
국경지대를 나설 준비 중이던 황태손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멀리 도성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악가, 이만 갑세.”
멀리 한 척의 비주에서 수염 난 남자가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황태손은 미소를 지으며 비주에 올랐다.
현재 그는 황실의 모든 신분을 버렸다.
본명까지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부친이 직접 지어준 이름을 완전히 버리자니 아쉬웠다.
그래서 성을 버리고 이름을 반대로 뒤집었다.
이제 대연의 황태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남은 건 산수 악가뿐이다.
* * *
대연 궁성.
진양은 넓은 뜰 한가운데에서 눈을 감은 채 햇볕을 쬐고 있었다.
확실히 대영보단 만족스럽지 않았다.
북쪽이라 그런지 찬바람이 불어 햇볕이 따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떠날 순 없었다.
새로 얻은 기능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대연 황실 장서고를 뒤져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제에게 한동안은 대연에 머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의 힘이 충분히 회복되고 나면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은 탓이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진 않았지만 확실히 누군가 운제를 노릴 수도 있었다.
한창 눈을 감고 햇볕을 쬐던 진양은 돌연 눈을 뜨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미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가 완전히 연화시켰던 무언가 나타난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상당히 강해 보였다.
충분히 강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멀리서도 뚜렷하게 느껴질 리는 없다.
* * *
극북빙원.
하늘에 벌어진 작은 틈 사이로 환해의 주인이 머리를 내밀어 밖을 살폈다.
그녀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탁자 하나를 밖으로 던졌다.
산하도가 그려진 탁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서 그녀는 돌아섰다.
하지만 다시 몸을 돌려 눈 쌓인 대지 위에 홀로 남겨진 탁자를 한참 동안 살폈다.
황급히 떠난 그녀가 환해로 돌아가자마자 한 가장 첫 번째 일은 바로 봉인된 사본을 꺼낸 것이다.
처음에 진양이 환해를 여는 걸 본 그녀는 적지 않게 놀랐었다.
그러나 잠시 진정하고 나니 돌연 탁자가 떠올랐다.
만리산하도의 사본이었다.
한참 생각해도 그것밖에는 없었다.
아무리 좋은 보물이라고 해도 사본은 결코 원본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러니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그냥 버리는 편이 안전하다.
하지만 이대로 버린다면 누군가 또다시 가져가 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양은 모든 책임을 환해 일족에게 물으려고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