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57
1157화 파도가 가라앉다
한참을 고민하던 환해의 주인은 산하도 사본 근처에 환술을 펼쳐두었다.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접근조차 불가능하지만 진양은 충분히 알아볼 정도의 수준이었다.
볼일을 마친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 환해로 돌아갔다.
그리고 환해를 완전히 봉쇄하여 외부와의 연결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렸다.
대세는 이미 모두 지나갔다.
바깥에서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잠시 기운을 느끼던 진양은 비로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손에 만리산하인을 맺자 곧바로 산하도가 있는 곳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극북빙원 어딘가였다.
진양의 앞에 빛으로 만들어진 문이 나타났다.
진양은 머리카락을 뽑아 분신을 만들어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잠시 뒤.
분신이 사라지며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안전하다는 게 확인되고 나서야 빛의 문을 통해 산하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산하도가 그려진 탁자는 눈밭에 삐딱하게 처박혀있었다.
주위에는 산하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몇 층이나 되는 환술 금제가 걸려있었다.
동술을 펼치니 눈앞에 펼쳐졌던 환술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마땅히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진양은 산하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곤 하늘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럴 것까지야…….’
진양은 환해로 찾아갈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지레 겁을 먹고 산하도를 외진 곳에 버려두었다.
이런 엄청난 보물을 과감히 포기해버리다니.
상당히 결단력 있는 여인이었다.
진양은 산하도를 거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쩔 수 없지.’
상대는 대제를 상대하는 진양 일행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산하도까지 돌려주었다.
이렇게까지 굽히고 나오는데 집안까지 쳐들어가서 칼춤을 출 이유는 없다.
역시 무엇이든 길게 놓고 봐야 하는 법이다.
처음부터 너무 극단적으로 나오면 그다음에는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 상관 없이 상대가 먼저 목숨을 걸고 덤벼들 수도 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은원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원을 맺을 때마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구는 건 생각만 해도 번거로웠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한편, 만 장 높은 곳에서 문틈을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환해의 주인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완전히 환해의 문을 닫았다.
* * *
하늘로 날아오른 진양은 돌연 멈춰 섰다.
잠시 대연 신조의 힘을 사용하여 운제의 변화를 느껴보았다.
그다음 조용히 동쪽으로 향했다.
이 틈에 대연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대연 영토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
진양은 신조의 힘을 이용하여 짧은 편지를 남겼다.
‘연 형, 전 아직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아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걱정 마시고 수련에만 전념하시길.’
대제로 살아가는 건 피곤하면서도 귀찮은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모래알 강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줄 알았으나 그 효과는 예상에 전혀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평소에 비해 아주 조금 더 빨라진 게 전부였던 것이다.
회복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과 그동안 도성에만 죽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가성비가 상당히 나빴다.
그래서 이 기회에 도망을 치려고 한 것이다.
진양이 사라지고 반나절 뒤.
진양의 남긴 편지는 운제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한편, 대영에서는 사신을 보내왔다.
새 대제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였다.
물론 이건 단순한 명분이었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겉으로는 대연에 두 명이나 되는 대제가 등극한 것은 크게 기뻐할 일이라는 둥, 덕제를 통해 대영과 대연의 우호적인 발전을 기대한다는 둥 온갖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사실상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은 딱 한마디였다.
‘우리 대제께서 덕제와 따로 볼일이 있으시니, 헛소리 말고 사람을 내놔라.’
사신이 가져온 편지를 살펴보던 운제는 풍문처럼 떠돌던 한 정보를 떠올렸다.
그는 곧장 생각에 잠겼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과연 소문 그대로군. 다만 소문은 소문일 뿐이니 전부 믿을 순 없는 법이지. 하지만 진 형제가 따로 마음이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대영의 대제가 진 형제에게……. 쯔쯧…….’
이쯤 되니 진양이 몰래 대연을 빠져나간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서 더 이상은 따지지 않기로 했다.
아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진 형에게도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 * *
한편, 진양은 비주를 타고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제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었다.
입으로는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짐을 던져버리고 도망치거나 절대로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지만, 막상 진양이 도망쳐버린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란 말이지.’
진양은 우선 동해로 향했다.
얼마 전에 백리칠이 또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갈수록 사고를 치는 게 아무래도 이번에는 단단히 혼을 내야 할 듯했다.
그렇게 진양이 탄 비주가 대영 신조의 영해로 들어서는 순간.
하늘에서 흘러 내려온 빛이 한곳으로 모이며 가희의 허상이 나타났다.
“소저, 오랜만이네요.”
“설마……. 회복된 건가요?”
가희는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고심주가 어떤 건지는 그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고요. 대략 절반 정도 회복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래도 계속 연구해 보고 있어요.”
가희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파도가 가라앉았어요.”
진양의 얼굴에서 여유롭게 히죽거리던 모습을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곧장 진지하게 물었다.
“언제 그런 거죠?”
“며칠 전이요. 응백 소저로부터 괴산에 변화가 있었다는 소식을 받았거든요. 괴산 범위 내에 소저가 감당할 수 없는 곳이 생겼다고 했었어요.”
“알겠어요. 소저는 여기 계세요. 제가 직접 괴산에 다녀오도록 할게요.”
진양은 즉시 결단을 내렸다.
이어서 잠깐의 고민 후 한층 더 냉정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파도가 가라앉으며 출입이 가능해졌지만 아직은 많은 제약이 있을 겁니다.
일단 들어가는 입구에 제약을 걸도록 하죠. 응백 소저께 도와달라고 할게요. 아마 괴산 깊은 곳까지 찾아가서 일념의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나오는 출구는 큰 문제 없을 거예요. 파도가 가라앉은 이상 그곳에 들어간 외부인들의 문은 전부 사라져버렸을 테니까요. 아마 밖으로 나올 방법은 없을 거예요.
일단 정보가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만은 무조건 막아야 돼요. 그래야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어요.”
“하지만 영제가 안에서 해탈을 하게 된다면 문 없이도 밖으로 나올 수 있을 텐데요.”
가희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영제가 얼마나 강한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대황을 수만 년 동안 압도했던 인물이다.
설령 일념의 바다가 다시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진양은 잠깐의 고민 후 위로하듯 한마디 건넸다.
“설령 모든 게 순조롭다고 하더라도 금방 해탈하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지금쯤이면 아직 기반을 다지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 없을 겁니다.
게다가 그곳엔 영제가 상대해야 할 적도 있잖아요. 쉽게 적을 꺾진 못할 겁니다.
일단 시간은 충분해요. 그러니 경지를 높이느라 너무 많은 걸 희생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안정적으로 기반을 잘 다지기만 하면 충분할 거예요.
언젠간 해탈하고 밖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때쯤이면 전 봉호도군이 되어있을 테니까요. 그땐 그냥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꺾어버리면 그만이죠.”
말만 들으면 당장이라도 영제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진양은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한 것은 단순히 가희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진양은 실제로 영제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가 만나본 건 제군법신에 불과하다.
제군법신의 행동은 본존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전성기 시절의 영제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영제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강한 건 단순히 실력이 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많은 걸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영제를 두려워했다.
영제라는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이러한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렵지만은 않았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치면 그만이다.
끝없는 바다로 도망치는 방법도 있고,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면 대황 세계 자체를 벗어나 버리는 방법도 있다.
불가능할 것도 없다.
애초에 도망은 부끄러운 게 아니니 말이다.
진양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이 크게 신경 쓰는 것들을 진양이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종문 내의 수도사들은 자신의 학예를 제자에게 자제에게로 계속해서 전수하는 것,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전승’을 목숨보다도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긴다.
그러나 진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념의 바다에 일어났던 파도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영제가 말도 안 되는 기연을 손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해탈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만약 해탈한 영제가 밖으로 나온다면 설령 신조의 힘을 더 이상 누리진 못한다고 해도 종합적인 능력만 본다면 이전보다 강해지면 강해지겠지 약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막 봉호도군의 자리에 오른 상태에서 이러한 그와 마주한다면 어떤 꼴이 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이런 속마음과는 달리 진양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기반을 대영 신조에 묶어둔 것도 아니잖아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전부 내던지고 끝없는 바다로 가서 물고기나 낚으며 살아가도 될 거고요. 게다가 그동안 돌아다니며 퇴로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이 만들어놨거든요.”
“맞아요. 사실 저도 황위 따위에는 별 관심 없거든요. 언제든 미련 없이 버리고 도망칠 준비가 되어있죠.”
고개를 끄덕이는 가희는 방금 전보다는 마음이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진양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녀도 운제처럼 황위에는 일말의 미련조차 없었다.
황위는 단지 수단에 불과했을 뿐이지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황에 신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은 대영과 대연이 전부다.
그러나 이 두 신조 모두 황위에 아무 미련 없는 이들이 황위에 앉아있다.
반대로, 황위를 원하는 이들은 감히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잠깐의 대화가 끝나고 나자 가희의 허상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진양은 곧바로 선수를 괴산 방향으로 틀었다.
그다음 눈을 감고 심전(心田) 안으로 들어갔다.
냉정한 진양은 무언가를 한창 바쁘게 살펴보고 있었다.
바깥의 일은 시간 낭비나 다름없었기에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