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91
1191화 천하제일 고수
울먹이는 닭과 다른 녀석들을 위로해 준 뒤.
여전히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있는 영제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영제를 성불시키고 시신조차 남기지 않을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진양은 관을 꺼내 영제의 시신을 수습해 주었다.
그리고 영향 세 개를 꺼내 피운 뒤 관 앞에 꽂아놓았다.
“영제, 너와 나의 은원은 이로써 모두 사라진 셈이다. 잘 가거라. 나도 곧 따라가마.”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적당한 곳을 파서 관을 묻고 대충 그럴싸한 무덤으로 만들어주었다.
영제를 수습해 준 뒤에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자신의 묫자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전투의 여파로 인해 사방은 쑥대밭이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곳은 다시 푸른 초목이 깔리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
다만 영제도 제대로 된 무덤조차 갖추지 못했는데 진양이라고 굳이 무덤을 갖출 필요는 없을 듯했다.
죽어서 좋은 무덤에 묻혀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그저 적당한 구덩이를 하나 파고 관을 꺼내 넣은 뒤 그곳에 누웠다.
그다음 뚜껑을 덮고 진원을 흘려 주변에 쌓아두었던 흙이 관을 뒤덮도록 했다.
묘비조차도 없는 초라한 무덤이었다.
진양은 손등에 나타난 징표를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가슴에 올렸다.
지금 이 순간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너무 급작스럽게 떠나게 된 탓일까?
아니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걸까?
막상 생각해 보니 매듭짓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접었다.
“곧 죽을 마당에 뭘 또 그런 것까지 생각해. 어떻게든 되겠지…….”
진양은 능력을 발동시켰다.
손등에 번쩍이던 습득 징표에서 허상으로 된 손이 불쑥 튀어나와 진양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허상이 밖으로 나오며 몸속에 있던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크게 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성불을 할 때와는 어딘가 달랐다.
진양의 이성은 여전히 멀쩡했고, 여전히 무언가 느껴졌다.
손바닥에 잡힌 광구는 눈을 멀게 만들 만큼 눈부셨다.
열 개가 넘는 황금색 광구가 줄줄이 튀어나온 것.
광구는 점점 더 많아지더니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광구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절정에 이르더니 이내 중심에 아무런 빛도 없는 새까만 점 하나가 생겨났다.
그리고 겉 부분에는 눈부신 하얀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특수한 광구 하나를 제외하면 남은 건 새하얀 광구 하나가 전부였다.
최종적으로 두 개의 광구가 나온 것이다.
전부 다 기능서였다.
진양은 안은 까맣고 겉은 하얀 광구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름 없는 공법이 들어있었다.
진양의 모든 공법이 뒤섞인 것들이 도기에 녹아들며 천천히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하나의 공법을 이루었다.
남은 하얀색 광구도 기능서였다.
마찬가지로 아무 이름이 없었다.
기능서 겉표지에는 손바닥 모양의 징표 하나 새겨진 것이 전부였다.
상당히 대충 그린 듯한 징표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습득 징표와 똑같이 생겼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습득 징표의 손은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고 있지만, 기능서에 새겨진 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진양은 그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내용도 없었다.
문득 그것이 습득 능력에서 파생된 새로운 능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징표에 그려진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성불을 하는 능력이라도 나온 걸까?
진양은 손을 뻗어 다시 한번 자신의 몸을 건드렸다.
그러나 능력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소 실망스러웠다.
진양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다 죽게 된 마당에 그런 걸 신경 써서 뭐 하냐…….’
진양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한참 뒤.
진양의 머릿속엔 잡념이 가득했다.
어딘가 이상했던 것이다.
어째서 아직까지 이성이 남아있단 말인가?
분명 자기 자신을 성불시켰는데 어째서 아직까지도 멀쩡하단 말인가?
보통 지금쯤이면 죽음을 맞이하고도 남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양은 마치 불면증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뒤척이며 죽음을 맞이하질 못했다.
아니, 죽음은커녕 오히려 이성이 한층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진양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다시는 뜨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제기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어쩌면 스스로를 성불시키는 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아직 사방을 무력화시켰던 힘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하지 말자.’
진양은 숨을 고른 뒤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으니 호흡과 심장이 멎었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죽음을 맞이한 평범한 시신의 모습이었다.
* * *
진양의 죽음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이건 수도사의 세계에선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일이다.
그 어떤 수도사도 갑작스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진양이 죽었다는 소식은 아직 퍼지진 않았으나, 누군가는 여전히 진양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우선 닭.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진양의 곁을 지켜왔던 동료다.
그는 호양보종을 든 채 매일 괴산 주위를 맴돌았다.
혹여나 아직 떠나가지 않은 진양의 넋이라도 달래주려는 걸까?
돼지는 늘 해왔듯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 부지런히 탕을 끓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녀석은 아마 지금까지도 자신이 이 판국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역할을 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묵양은 진양의 죽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저 조각상처럼 우두커니 선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을 뿐.
모든 것이 이전처럼 흘러갔다.
진양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날 온 세상에 퍼졌던 비통함과 무력함은 모두 사라졌지만, 세계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이전과 다르게 수틀리면 손부터 쓰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고선 최대한 대화나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비주 등의 법보의 판매량이 급등했다.
그리고 비행 괴수를 직접 키워서 타고 다니는 것도 각 세력의 암묵적인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땅으로 곤두박질쳤었다.
심지어 오래전에 높은 경지에 오른 고수조차 이제 막 나는 법을 배운 수도사처럼 무력하게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어서 새로운 전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날 역외에서 어느 한 사마가 대황에 모습을 드러냈다.
괴산의 산귀와 대영 대제,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봉호도군이 합심하여 괴산에서 사마와 결투를 벌였다.
산귀는 싸움에서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대영 신조는 여전히 평화로웠고 아무런 파장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제 역시 중상을 입고 요상을 하는 듯했다.
당시 상황은 매우 급박했다.
그래서 이름 없는 봉호도군은 전설에만 존재하는 ‘애자결’을 펼쳤다.
사마를 완전히 무력화시킨 봉호도군은 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당시 사방에 퍼졌던 엄청난 위세에 천하의 수많은 고수들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들 중에서 무언가를 느낀 이들도 있었다.
괴산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이 나타난 것을 느낀 것이다.
그리하여 이 이름 모를 고수는 현재 천하제일 고수의 자리에 등극하게 되었다.
심지어 각 세력들은 궁금해 미칠 것 같아하면서도 감히 이 사실에 대해 조사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날 대황 전체를 압도했던 힘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특히 강한 사람일수록 당시의 힘을 더욱 뚜렷하게 느꼈었다.
구름 위에서부터 끝없는 골짜기 아래로 무력하게 떨어지던 그 느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운 공포감이었다.
괴산은 현재 금지(禁地)가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기 무섭게 모두들 벌떼처럼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감히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괜히 이름 모를 고수의 심기라도 건드렸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유언비어도 퍼져나갔다.
예전에 영제가 대제였던 시절 괴산을 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이름 모를 고수가 은둔해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다 영제의 뒤를 이어 대제가 된 가희는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그 고수의 허락을 받아 괴산을 대영 신조의 영토에 포함시켰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그럴싸한 소문이었다.
* * *
괴산 북부 구석에 있는 작은 마을.
백령은 멀리 있는 산귀의 사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당에선 향불이 끊이질 않았다.
최근 들어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한 탓이었다.
특히 범인들은 산귀가 자신들을 보호해 주고 있던 게 사실이라고 한층 더 굳게 믿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괴산과 가까워질수록 함부로 싸움을 벌이는 수도사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에 살고 있는 들짐승이나 괴수들도 마찬가지다.
먼저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절대로 먼저 사람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백령은 멀지 않은 곳에서 이전에 퍼진 것과는 다른 새로운 전설을 떠들고 다니는 목소리를 듣고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쯔쯧, 말만 들으면 참 그럴싸하단 말이지.”
그는 괴산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백령 역시 그날 애자결을 똑똑히 느꼈다.
그건 분명 전설의 애자결이 확실하다.
게다가 애자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신통력이었다.
이토록 무시무시한 위력을 내뿜은 것으로 보아 시전자는 이번에 처음으로 그것을 시전한 듯했다.
그가 가진 기록에 따르면 처음 시전하는 신통력은 최강의 신통력이라고 한다.
전대미문의 강력한 신통력이었다.
심지어 기록에 남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 말은 곧 상대가 매우 무시무시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똑똑히 느꼈다.
그날 괴산 안에서 벌어진 전투는 전설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격렬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름 모를 강자 역시 그곳에서 죽었다.
모두 죽은 것이다.
산귀의 진신도 완전히 붕괴된 듯했다.
직접 느끼고도 믿지 못할 만큼 놀라웠다.
백령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괴산에 가보기로 했다.
* * *
괴산은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조용했다.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산귀가 자신들 따위에게 신경 쓸 틈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혹여나 심기를 건드리게 될까 노심초사한 모습이었다.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간 언젠간 큰 벌이 내려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백령은 아무런 방해 없이 무사히 괴산 안쪽으로 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