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95
1195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 법
진양은 새로 잔을 채우고 유령호 선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우백, 지금까지 대부의 이름을 달고 선장 노릇을 하느라 고생 많았다. 앞으로 넌 대부가 아니라 유령호의 선장, 유령 선장이다.
유령호에 딸린 식구들, 그리고 유령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 이젠 네게 맡기도록 하마. 잘 해낼 수 있지?”
“걱정 마세요. 반드시 잘 해내겠습니다.”
온우백은 잔을 들어 올린 뒤 깨끗이 비웠다.
한편, 먹을 것을 잔뜩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먹어 치우던 흑피가 의아하다는 듯 진양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선장님, 선장님께선 멀쩡히 살아 계시는데 왜 다들 선장님이 죽었다고 하는 거죠?”
“하하, 신경 쓸 것 없으니까 실컷 먹도록 해. 그리고 앞으로는 우백이를 잘 따르도록 하렴. 그럼 적어도 굶을 일은 없을 테니까.”
“선장님도 조금 드세요.”
흑피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간식거리를 진양에게 건넸다.
진양은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착한 녀석.”
그의 곁엔 돼지인지 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살이 찐 흑구가 엎드려있었다.
그는 새하얀 콧김을 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나무 정령은 오지 않았다.
아마도 흑구 녀석이 일부러 데려오지 않은 듯했다.
다소 아쉽긴 했지만, 오히려 이게 더 잘 된 거라고 생각했다.
검둥이는 거북이 등껍질을 뒤집어쓴 채 해족들 틈에 서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검둥아, 나도 이제 곧 떠나게 될 텐데 마지막으로 할 말 같은 건 없냐?”
“네가 이대로 죽는다고? 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 없어.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검둥이는 진양이 죽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믿지 않는 듯했다.
“진짜 한마디도 안 할 거냐?”
“한 마디는 무슨. 네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면 그때 할 거야.”
“망할 녀석!”
진양은 잔을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모여있는 사람을 서로 인사시켜주기도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움을 주라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대영 신조는 아직 가희가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특히나 주위를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일일이 모든 이들과 작별을 하고 나니 어느덧 사흘이 흘렀다.
진양은 다시 한번 잔을 가득 채우며 높이 들었다.
“여러분, 제 진유덕의 완벽하지 않았던 삶도 이제 여기서 끝인 듯합니다.
이 잔을 마지막으로 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기로 하죠.”
진양은 잔을 비운 뒤 자리를 떠났다.
비경 밖으로 나오니 제이검군이 진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장정의는 끝까지 진양과 함께하겠다며 따라나섰다.
진양은 상자를 하나 꺼내 장정의에게 주었다.
상자 안에는 예전에 순목에게 얻은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어디에 쓰는지 몰라 지금까지 구석에 처박아두었는데, 쭉 잊고 있다가 최근에 물건을 정리할 때 발견했다.
고민 끝에 어쩌면 장정의에겐 쓸모 있는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주기로 했다.
게다가 곧 죽을 마당에 가지고 있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
“선물이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신봉 혈맥과 관련이 있는 물건일지도. 그래도 조심해서 쓰도록 해. 어떻게 처리할지는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상자를 건네받기 무섭게 장정의는 진양의 팔에 매달렸다.
“사형, 어디로 가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죽은 사람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지.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은 것들이 잊혀져 가기 시작했어. 심지어 맨 처음 널 어디서 봤는지도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아. 난 자아를 잃은 강시가 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아.
정의야, 그럼 잘 지내라.”
진양은 장정의의 목을 끌어안은 뒤 단숨에 비틀었다.
그가 죽은 걸 확인한 진양은 다시 그의 목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벌써 몇 번째로 죽인 건지도 모르겠군…….”
이어서 제이검군을 바라보았다.
“형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같은 형제끼리 무슨 부탁을 한단 말이오. 너무 미안해할 것 없소.”
진양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동해 쪽을 바라보았다.
백리칠 녀석,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건지.
마지막 순간에 그녀와 만나지 못한 게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어서 제이검군은 진양을 데리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 * *
잠시 뒤.
진양과 제이검군은 괴산 주봉에 나타났다.
진양은 땅을 두드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죽기 직전에 잠깐 들러봤어요. 태미를 데려갈 수 있을지 한 번 살펴보려고요.
혹여나 제 말이 들린다면 녀석을 데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계속해서 여기 놔뒀다간 분명 또 부활을 하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릴 겁니다. 그러니 지옥이든 망자의 세계든 어디든 같이 데려갈 생각입니다. 설마 거기에서까지 헛수작을 부릴 리는 없겠죠.”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봉우리 위로 일전에 얻었던 지팡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진양이 손을 뻗어 지팡이를 잡는 순간, 공간에 단층이 생기며 허무 가운데 일 촌 남짓한 땅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권력 지팡이 하나가 땅에 꽂혀있었다.
진양은 지팡이를 쥔 채 허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리고 지팡이를 뽑아 드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이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진양은 피식 웃으며 땅에서 뽑아낸 지팡이를 해안 안으로 던져넣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일 촌 남짓한 작은 땅까지 삼켜 해안 안으로 집어넣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어떻게 하든 큰 상관은 없다.
누군가를 저승길 길동무로 삼기로 한 이상 태미 천제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다.
설령 해안에 붕괴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두려울 건 없다.
허무에서 걸어 나온 진양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도 해안 안으로 던져넣었다.
비로소 완전한 일념의 바다가 갖춰진 셈이다.
순간 진양은 비틀거렸다.
해안에서 강력한 힘의 역류가 느껴진 것이다.
해안마석으로 권력 지팡이와 땅의 힘을 짓누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동귀어진일 수밖에 없다.
“형님.”
진양이 나지막하게 제이검군을 불렀다.
제이검군은 아무 말 없이 진양을 끌고 또다시 어디론가로 떠났다.
* * *
이번에는 영야의 땅에 도착했다.
진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불길한 존재가 느껴지는 순간, 일체의 망설임 없이 불길한 존재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불길한 존재에게 삼켜진 진양은 긴 통로를 지나 또다시 죽음의 세계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번 느껴졌던 불편한 느낌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고기가 물에 들어온 것과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과연 이곳은 망자들의 세계였다.
한편, 해안 내부에선 괴산의 봉인에서 풀려난 태미 천제의 힘과 권력이 진양의 힘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해안마석은 간신히 권력 지팡이를 봉인하긴 했으나 완전히 막아내진 못했다.
진양은 해안에 걸려있던 자물쇠를 열었다.
그의 몸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모든 힘과 생기가 해안으로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권력 지팡이엔 실금이 일어나고 빛이 사그라들었다.
황금빛도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죽음의 세계에 존재하는 끝없는 죽음의 기운과 수많은 사자의 힘이었다.
진양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네 녀석도 무리인 모양이군. 아쉽지만 여긴 네 권력으로 쉽게 짓누를 수 있는 세계가 아니거든. 그러니 얌전히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고.
사실 난 망자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던 참이었거든.”
두 개의 지팡이가 맞부딪치며 하나로 합쳐졌다.
모든 힘이 굳어지기 시작하며 제포를 입은 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끊임없이 몰려드는 죽음의 기운과 죽음의 힘을 제거하기 위해 끝까지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진양이 해변가를 향해 다가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에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조금도 없었다.
진양은 새까만 바닷물을 밟으며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두 걸음쯤 내디뎠을 때.
해변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며 끝없이 이어진 새까만 바다가 나타났다.
죽음과도 같은 정적, 그리고 공허함.
이곳에선 방향감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양은 해안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오도록 가만히 놔두었다.
해안에서 흘러나온 빛은 일 장 정도 퍼져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완전히 소멸되었다.
진양은 큰소리로 웃기만 할 뿐, 태미 천제가 끝까지 발버둥 치도록 놔두었다.
그리고 목적도, 방향도 없이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해안 내부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일전에 해안마석에 새로 봉인시켜두었던 힘은 아마도 태일 천제의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그 힘은 완전히 소멸되고 없었다.
그 힘이 태일 천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태미 천제에겐 상당히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 시괴에 의해 삼켜졌다.
그리고 살과 피는 괴산이 되어 오랜 시간 동안 봉인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것들은 전부 일념의 바다가 되었고, 만 년마다 반복되는 윤회에 따라 존재했다 소멸되었다를 끝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나 현재 남은 힘과 권력들은 설령 다시 일념의 바다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점은 신문조차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힘은 거의 전부 다 사라졌다.
사라지는 걸 억제할 방법은 없었다.
진양은 죽었고 이곳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으면 진양은 더 이상 기억을 잃거나 힘을 잃지 않게 된다.
이곳에 있는 끝없는 죽음의 기운은 오히려 진양의 몸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태미 천제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아직 완전히 죽은 게 아니다.
혹은 신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상태나 개념 따위는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태미 천제라는 존재는 천지의 진리에 엮여있다.
그러므로 존재하거나 소멸되거나 두 개의 상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양의 예상대로 그의 권력은 죽음의 세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해안은 어느덧 완전히 평온을 되찾았다.
태미 천제의 허상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힘도 완전히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빛을 잃은 채 새까맣게 변하여 해안마석에 단단히 봉인된 권력 지팡이뿐이었다.
진양은 발걸음을 멈추고 끝없이 이어진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돌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을 때.
진양의 몸 주위로 향불이 피어올랐다.
귓가에 마치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소리와 향불이 하나로 합쳐지며 하나의 배가 진양의 발아래 만들어졌다.
진양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마치 오행산에 몰려든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동해와 남해에는 그의 위패와 조각상이 세워졌고, 많은 이들이 진양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도 보였다.
수많은 이들이 진양의 이름을 부르며, 대황에는 그에 대한 전설로 가득했다.
진양이 탄 배는 스스로 먼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양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과연,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 법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