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94
1194화 희망의 끈
진양은 무덤에서 일어난 이후로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괜히 만나봤자 아쉬움만 더 커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전혀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장정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알아서 다시 살아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제의 생명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봉호도군을 뛰어넘은 존재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빛을 발하게 되면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게 된다.
예전에 여족으로부터 얻은 체신 신상이 있긴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체신 신상으로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뜻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건 바로 신봉 혈맥을 가진 자만이 쓸 수 있는 불사신황 신통력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장정의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진양은 구름을 천천히 아래로 움직이며 오행산으로 향했다.
꽤 많은 사람이 진양과 작별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동해에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왔고, 무려 만 리나 떨어진 남해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진양은 남해보단 동해에서 훨씬 더 큰 명성을 가지고 있다.
모두들 진양이 선천적인 결점을 타고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력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동안 진양이 수많은 선행을 벌여오며 많은 이들이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남해는 본래 넓은 해역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사해와 인접하다는 이유로 수도사들에게 필요한 자원은 매우 부족했다.
때문에, 자원 쟁탈전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었다.
쟁탈전이 이어지며 남해는 점점 더 큰 혼란에 빠졌고 그만큼 자원의 수도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양이 나서며 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많은 자원은 물론이고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었다.
이 외에 진양은 자신의 인맥을 통해 사해와 남만, 그리고 대영과 동해까지 교역로를 뚫었다.
그렇게 겨우 백여 년 만에 남해는 크게 변화했다. 더 이상 자원 부족에 시달리지 않게 된 것이다.
심지어 멀리 극북 지역에서도 손쉽게 자원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진양은 동해에서도 상당한 업적을 세웠다.
동해엔 수많은 세력들이 존재한다.
대영과 해족 사이에 끼어있는 신조라고 불리지 못하는 국가부터 시작하여 여러 섬까지 뒤섞이며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가 따로 없었다. 누군가 손을 대려고 해도 도무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대영 신조와 해족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뻔했을 때만 해도 그렇다. 양쪽 사이에 끼이게 된 동해 사람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을 당할 걸 알면서도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진양이 나서준 덕분에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다시 평화가 찾아온 뒤.
이번에는 새로운 교역로가 생기고 질서가 성립되었다. 이 모든 것이 진양이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덕분에 모두가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최하층에 있는 힘 없는 수도사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때문에, 모두가 진양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더 이상 경쟁자들에 의해 멸문당할까 두려움에 떨며 살 필요도 없었고, 안정적으로 발전을 이어나가며 문파 내에서 새로운 강자를 양성해낼 기회도 충분히 얻었다.
물론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싸움을 벌이거나 악랄한 수단을 쓰는 이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어쨌든 진양이 그동안 이뤄낸 수많은 업적 때문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작별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진양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저씨, 자리는 이미 다 준비해뒀어요.”
어느덧 어엿한 소년으로 자란 인마는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산겸 그 늙은 여우 같은 영감한테 자꾸 나쁜 거 배우면 못써. 본받을 거면 네 장문 사형을 본받아야지. 사람이 항상 정직하기만 해선 안 되는 법이거든. 적당히 피할 수 있을 땐 피할 줄도 알아야지.”
인마는 미소를 지으려다가도 한쪽에 있는 장추우를 힐끔 쳐다보며 다시 정색했다.
“사형, 뭐라고 하진 마세요. 죽은 뒤로는 머리가 멍해져서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허허……”
장추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만 들어가지. 명단에 있던 사람들 모두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네.”
이들과 함께 곁채로 들어서니 안쪽에 펼쳐진 비경이 나타났다. 진양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온 진양의 친구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있었다.
바깥은 그저 형식적인 게 전부였고, 진짜 추도회는 바로 이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장정의가 무대 위에 서서 한참 떠들어대는 모습이 보였다.
“잘 모르시겠지만 사형은 사실 상당히 나쁜 사람입니다. 제가 사형 때문에 얼마나 고생 했는지 다들 모르실 거예요.
이번에만 봐도 그렇잖아요. 하필 그런 곳에 자신의 무덤을 파다니. 그러니 도굴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건 제가 좋은 무덤을 찾아 사형을 다시 묻어주도록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합니다.
제 팔자가 얼마나 기구한지 이제 다들 아시겠습니까?”
진양은 마지막 자리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장정의가 떠들어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순간 곁에 있던 몽의는 무언가 느꼈는지 천천히 진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숙님.”
진양은 간단하게 견례를 올렸다.
몽의는 잠깐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아직 기회는 있을 테니 포기하진 말거라. 예전에 나 자신과 함께 힘을 합쳐 네게 사겁(死劫)이 찾아올 거라 예측했었지. 이미 겁난을 받아들였으니 사겁은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실 여기까지 알아낸 것만으로도 한계였지만, 당시 거울 속에서 걸어 나온 내가 스스로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훨씬 뒤까지도 계산했었다.
네 사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운 좋게 살아남은 것만 해도 결국은 좋은 결과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지.
더 이상 전도인은 못하겠다고 했으니 그럼 앞으로는 문주가 되거라. 자격이야 진작 충분했으니까.’
“허허……. 죽은 사람이 어떻게 문주를 합니까? 확실히 살아나게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시죠.”
진양은 웃으며 사양했다.
몽의도 더 이상은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도 굳게 믿고 있었다.
과거 두 눈을 잃으면서 얻게 된 삶의 희망이 이대로 날아갈 리는 없다고.
진양이 이대로 끝날 리 없다고.
설령 지금의 진양이 사망 상태라고 해도 말이다.
대화가 더 이어질 틈도 없이 무대에 있던 장정의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진양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진양에게 달려들었다.
“사형! 전 또 사형의 무덤이 도굴이라도 당한 줄 알고…….”
장정의는 목이 막혔는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대성통곡을 하며 진양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녀석을 발로 밀어냈다.
“다 큰 사내 녀석이 울긴 뭘 울어! 그리고 내가 누구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행을 행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누군가와 원한을 진 것도 아니고 왜 갑자기 무덤을 도굴당하겠냐? 도굴은 개뿔. 이 몸이 답답해서 직접 박차고 나온 거다!
망할 녀석! 네 녀석이 하도 도굴을 당했다고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헛소문이 진짜처럼 퍼지게 된 거잖아.”
백령은 어차피 이미 죽었으니 무덤을 도굴하려 했던 일은 없는 셈 치게 된 것.
진양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들을 살펴본 뒤, 의자를 하나 챙겨 제일 앞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어서 손을 뻗으니 영주(靈酒)가 든 잔이 잡혔다.
“분위기 왜 이래요?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은 죽게 되는 법이잖아요. 전 그저 가기 전에 여러분과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죽은 뒤에 평가된다고 하잖아요. 다들 절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술잔을 들어 올리며 유쾌하게 한마디 던지는 진양의 모습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진양은 술잔을 든 채 여족의 세 고수와 신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르신들께서 제게 큰 기대를 품고 특별히 여족 소주라는 칭호까지 내려주셨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기대를 저버리고 먼저 세상을 뜨게 되었네요.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여족의 소주가 되어 어르신들을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진양은 술잔을 높이 든 뒤 깔끔히 비웠다.
그리고 신물을 꺼내놓았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현여 노파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허락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나? 제대로 찾아오기나 하시게.”
흘누는 진양이 꺼내둔 신물을 다시 밀어놓으며 말했다.
“이건 우리 것이 아니라 자네의 것일세. 한 번 선물로 준 물건을 다시 회수하는 법은 없다네.”
“감사합니다. 그럼 기념 삼아 잘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우는 심란한 표정으로 술잔을 깔끔히 비웠다.
그러나 성에 차지 않았는지 단숨에 술 단지를 몇 개나 해치웠다.
진양은 다시 잔을 채우고 최양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최양평은 그간 많이 늙은 탓인지 기력이 쇠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진양은 술잔을 내려놓고 최양평을 힘껏 끌어안았다.
“사부님.”
일생을 살며 가장 큰 진심을 담아 누군가에게 ‘사부님’이라고 불러본 건 최양평이 유일했다.
그는 늘 진양만을 위해왔다.
항상 진양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사람.
바로 최양평이었다.
‘사부님’이라는 한마디에 최양평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너무 슬퍼하실 것 없습니다. 비록 사망 상태가 되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이 제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아시죠? 혹시 모르죠. 사후 세계가 지루해질 즈음 다시 방법을 찾아 돌아올 수 있게 될지도요.
사부님,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나중에 운 좋게 살아서 돌아왔는데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러니 약속해 주십시오. 꼭 건강히 잘 지내시겠다고요.”
최양평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마.”
진양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양평은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다.
만약 어느 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마지막으로 만나러 온 게 잘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괜히 헛된 희망을 품도록 만드는 건 어쩌면 잔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양평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하고 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지도 모를 것이다.
사실 최양평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