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31
1231화 결국 전혀 다르지 않았다
진양은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은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신이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 점점 더 많은 사지가 나타났고, 마주하는 망자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망자들의 집념으로 의해 만들어진 사지는 망자의 생전의 능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듯했다.
오히려 집념 그 자체와 더 큰 관련이 있어 보였다.
진양은 도달하는 곳마다 경고문을 세웠고, 신통력을 깨달을 수 있는 곳에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것에 집중했다.
때론 같은 물건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었지만, 결과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과 마주하고 있었지만, 진양은 갈수록 초조해졌다.
이 세계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앞으로의 길은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양은 시간이 가는 걸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망자와 사지를 마주했는지조차도 잊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꽤 먼 길을 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쯤 되니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 끝에 도달할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발걸음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하여 정심주를 외웠다.
냉정한 판단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잡념을 잠재우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수록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고 평정을 되찾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앞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며 사지를 만날 때마다 평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움직임을 통해 평정을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머리를 비우는 게 불가능하다면 오히려 한 가지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워버리면 된다.
온 정신이 오직 한 곳에 집중되는 순간 평정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진양은 아무 말 없이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모든 정신은 사지를 향해 조금씩 모여들고 있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사지를 지나치고, 여러 망자와 마주치고, 경고문을 세우고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양은 왠지 모르게 자신이 외부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싸늘한 눈으로 방관하듯 제삼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엔 그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쁨, 슬픔, 상처, 한탄.
그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한참의 공을 들인 끝에 마침내 평정을 되찾았다는 것을.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초조함은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물로 씻어낸 것처럼 생각이 맑아지며, 희미한 안갯속을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 우러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곳까지 오며 세웠던 비석들이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별들은 대지 위에 펼쳐진 채 빛나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오직 직선으로 걸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빙빙 돌아 한 사지에서 또 다른 사지로 간 것이다.
마침내 평정을 되찾고 나서야 이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양은 평정을 유지한 채 소설책을 펼쳤다.
이미 완전히 자리를 잡은 규칙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 중 하나의 규칙이 반짝이며 수많은 규칙의 최상단에 나타났다.
꽤 오래전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되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눈길을 준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 규칙은 이름을 가진 극소수의 규칙 중 하나였다.
상당히 눈에 익은 이름이었다.
‘황천’
그 누구도 대신 건너 줄 수 없으며, 반드시 스스로 건널 수만 있는 곳.
진양은 소설책을 덮고 눈을 떴다.
그리고 황무지 같은 이 세계를 살폈다.
돌연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처음엔 황천이라는 글씨를 봤을 땐 황천하만 생각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고 지부의 계획에 의해 완전히 세뇌가 된 건지 황천이라고 하면 황천하만 떠올랐다.
지금 밟고 있는 대지의 이름은 황천이다.
그것이 황천길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강한 집념을 가진 망자들은 죽어서 모두 황천으로 떨어진다.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건 황천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집념이다.
그들에게 집념은 일종의 ‘입장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황천을 가로지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끝없이 사지만 이어지는 이유를 마침내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진양은 집념 때문에 이곳에 온 게 아니라 강제로 수은 강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즉, 입장권 없이 들어왔으니 나가는 길도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법.
집념을 가지게 되면 집념으로 인해 이곳에 온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진양에겐 큰 집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집념이 없으면 해소가 불가능하니 당연히 황천을 빠져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쩌면 집념이 없는 것 자체가 진양의 마음을 옭아매는 족쇄일지도 모른다.
소설책도 가지고 있고 규칙도 살펴봤지만 보나마나였다.
존재하는 족쇄를 부수는 건 쉽지만 존재하지 않는 족쇄는 발견하는 것조차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보단 훈수를 두는 사람이 훨씬 더 정황에 밝다는 말이 있듯, 사람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의 큰 장애물이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언젠간 끝에 도달할 거라 생각했다.
그는 이곳에 가장 먼저 도달한 사람이다.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지금 나타난 건 뼈대에 불과하다.
아직 제대로 형상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
사실 이미 형상은 드러나고 있었다.
곳곳에서 집념에서 벗어난 망자들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대신, 집념으로 인해 사지를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여전히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는 망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며 더 이상 지금과는 다른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사지만 줄줄이 이어질 뿐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다.
현상을 살피고 변화를 발견한 뒤 소설책을 참고하여 진상을 추측한다.
이미 좋은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니 불가능할 건 없었다.
아직 변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세계가 진양의 눈을 가리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진양은 결국 눈이 가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눈을 가린 건 이 세계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는 마음의 장애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고 마음속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장애물을 제거하지도 못하고, 발견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안개에 가려진 진상을 알고 나니 더욱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평정을 되찾고 나서야 마침내 눈앞을 가리고 있는 하나의 장애물로부터 벗어났다.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뚜렷해진 것이다.
진양은 자기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선입견을 갖는 건 과연 좋은 습관이 아니었다.
너무 자신이 넘치는 것도 때론 독이 될 수 있는 법.
강한 힘을 가진 고수일수록 간파하는 게 어렵고, 더욱 높은 자신감과 총명함을 갖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곤경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망할 녀석이 이런 짓을 꾸민 거지? 아무리 봐도 평범하지 않은 길은 모두 막아버리면서 대국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수들을 위한 거잖아.”
진양은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았다.
망자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검은 바다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이상할 정도로 순조로웠다.
허공으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망자의 세계가 열렸고, 망자의 세계로 들어오자마자 소설책과 그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붓을 손에 넣었다.
‘배표’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손에 넣으며 첫 번째로 고해를 건너 대륙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물건이자, 망자의 세계에 처음으로 나타난 생명체와 관련 있는 물건인 벌레 껍데기, 선천충각(先天蟲殼)을 얻었다.
그다음으로는 무엇이든 가라앉게 만들고 녹여버릴 수 있는 수은 강을 건넜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그래서 진양은 자신이 대국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수동적인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약간의 주도권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는 사실도 잊었다.
상고 지부를 너무 얕잡아봤다.
이들은 모든 생명체를 속이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들였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랜 시간 동안 상고 지부의 수많은 강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 보았을 것이다.
거기에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뚜렷해졌던 다른 이들의 간섭과 모두가 규칙을 정할 수 있었던 점까지.
그렇다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소리 없는 전쟁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즉,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과 그것 이상의 예상 불가능한 모든 것까지 전부 집대성이 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최종적으로 변화가 끝났을 때 어떤 게 버려지고 어떤 게 취해지는지는 크게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책이 모든 규칙을 담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맹신한 건 단단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미 명시된 규칙도 언젠가는 배제될 수 있는 법.
진양은 어떻게 해야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처음부터 난국에 빠지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문득 소설가가 떠올랐다.
그는 수은 강을 건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그때부터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소설가도 큰 집념이 없는 사람에 속한다.
그가 써낸 소설책은 망자의 세계가 되어 실체화되었다.
순조롭게 망자의 몸으로 입도에 성공하며 일생 최대의 업적을 이룬 셈이다.
더 이상 이를 뛰어넘는 업적을 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모든 이들의 염원을 모아 소설책을 완성시키긴 했지만 큰 집념이 될 만한 여지는 없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계의 특성을 생각해 본다면 그때부터 이러한 점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추후 변화를 온전하게 만들 예비책으로 쓸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양처럼 교묘한 수단으로 강을 건너면 큰 약점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는 소설책의 규칙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므로 약점으로 간주되어 수정되는 것도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난국에 들어선 이상 어떻게 헤쳐나갈지 생각하는 게 우선이었다.
주제넘게 다른 사람들에게 집념을 해소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지만, 결국 자신도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진양도 마음의 족쇄에 묶인 망자에 불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