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40
1240화 다시 대화를 나눠볼까?
화혈마두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주인, 다른 녀석들은?”
“아직도 여기서 뭐 하고 있어? 한참 전에 모두들 여기서 나가라고 얘기했었잖아.”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마도에게 한마디 했다.
“하지만 난…….”
화혈마두는 억울하다는 듯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진양의 모습과 주위의 상황을 보니 문득 한참 전에 닭이 자신에게 뭐라고 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당시 그는 닭에게 잔뜩 욕을 먹고 기분이 상해 귀를 닫은 채 구석에 처박혀있었다.
“그래도 마침 잘 됐다. 와서 여기 향료에 불 좀 붙여봐.”
진양은 향로에 든 향료를 가리켰다.
화혈마두는 법보 원령임과 동시에 마두로 상당히 애매한 신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망자는 절대 아니었다.
화혈마두가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검붉은 불꽃과 함께 향료에 불이 붙었다.
향로에서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향이 밖으로 퍼지지 못하도록 최대한 감싸줘.”
화혈마두는 군소리 없이 진양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향로에서 흘러나온 향은 향긋한 냄새 외에는 다른 수상한 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양은 향에 닿지 않으려는 듯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화혈마두를 바라보았다.
닭과 다른 녀석들을 모두 방생해 주었지만 화혈마두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은 항상 구석에 처박혀있는 걸 좋아했으니 잊지 않으려고 해도 잊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었기 때문에 화혈마두까지 염두에 둘 여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일단은 데리고 다니는 수밖에.’
화혈마도는 길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난폭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진양이 몸속에 봉인을 해두고 해안에 있는 다른 식구들이 교육을 시킨 덕분에 잠잠했던 것.
이런 녀석을 밖에 자유롭게 풀어준다면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의 모든 교훈을 잊고 다시 본성이 되살아나 날뛰게 될지도 모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주인과 함께 묻힌 부장품이라고 생각하고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사흘 정도 도망치던 진양은 돌연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잠시 뒤.
검은 폭풍 사이로 살기등등한 모습의 소머리 요괴가 걸어나왔다.
“이제 힘들어서 더 이상 못 도망가겠어. 그러니까 뭐 하나만 물어보자.”
진양의 진지한 모습에 소머리 요괴는 다소 당황했다.
갑자기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소머리 요괴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라.”
“너희들은 어디서 온 녀석들이냐?”
“상고 지부에서 왔다.”
소머리 요괴의 말은 진양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과연, 상고 지부의 계획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진양이 멍하게 있는 사이.
소머리 요괴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이어서 얼굴보다 더 큰 주먹이 빠른 속도로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진양은 웃기만 할 뿐 전혀 피할 생각이 없었다.
이어서 손을 뻗으니 무형의 힘에 의해 구체가 된 연기가 소머리 요괴를 향해 발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진양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연기 구체가 소머리 요괴를 덮치며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순간 몸에 일어난 변화를 느낀 소머리 요괴는 흠칫 놀라며 멈춰 섰다.
뒤늦게 반응을 하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소머리 요괴의 생기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검은 폭풍 안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명의 진양이 나타났다.
두 명의 진양은 각각 한 사람씩 맡아 달려들었다.
노인의 손에 들린 나판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일말의 위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추측 속에 눈앞에 다가오는 진양은 그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결과만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소머리 요괴의 변화를 통해 진양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이미 완전히 파악했다.
진양은 이들을 죽이려는 게 아니다.
이들의 생기에 다시 불을 붙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가 무슨 힘을 부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치명적인 위협이 없다는 추측이 나오자 그도 어찌해야 할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노인은 진양을 향해 나판을 던졌다.
분신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소멸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작은 구슬 크기로 압축되었던 연기 구체가 튀어나와 노인의 가슴을 덮쳤다.
큰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연기 구체는 노인의 체내로 그대로 흘러 들어갔다.
한편, 뚱뚱한 사내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진양의 분신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그다음 분신의 등을 향해 손가락을 뻗자 검은빛이 쏘아졌다.
분신은 검은빛은 무시한 채 계속해서 뚱뚱한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뚱뚱한 사내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빛에 맞게 되면 놈은 더 이상 그를 향해 다가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검은빛은 분신의 오른쪽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분신의 오른쪽 가슴에는 세 뼘이나 되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분신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었다.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뚱뚱한 사내의 코앞까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전부 뚱뚱한 사내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진양이 씨익 웃으며 한마디 했다.
“놀랬지? 분신이 아니라 본체가 올 줄은 몰랐을 거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양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은 천천히 다시 채워졌다.
한편, 진양을 쫓던 세 사람의 몸에선 생기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껏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진양을 쫓던 세 강자의 얼굴에 마침내 새로운 표정이 나타났다.
생명의 불꽃이 뜨겁게 타오르며 몸에 있던 죽음의 기운들은 전부 전생의 힘으로 전환되었다.
덕분에 이들이 발휘할 수 있는 힘도 몇 배나 더 강해졌다.
모든 망자들이 꿈꾸는 부활을 했으나 이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억제할 수 없는 짙은 절망감이 마음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세 사람의 표정을 통해 진양은 중요한 정보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반생수가 망자의 생기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전에 진양이 보았던 한 무리의 희생자는 아마 첫 희생자는 아닐 것이다.
앞서 일어난 희생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해도 뒤이어 이곳을 찾을 사람을 위해 경고문을 세울 만큼 여유로운 자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세 사람은 상고 지부에 속한 자들이다.
아마 원하는 결과는 손에 넣었을 것이다.
반생수에 의해 다시 생기가 되살아난 자들은 생기를 모두 소진하고 난 뒤 다시 망자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소진한 힘과 함께 소멸되어버리는 결말을 맞게 된다.
망자의 세계에서 생기가 다시 되살아났다는 것은 이제 죽음을 향한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은 죽음의 기운이 매우 짙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부활을 하게 된다면 시시각각 강력한 죽음의 기운의 견제를 받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강자에겐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긴 하나, 문제는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은 모든 힘을 소진하게 된다는 것.
이런 상황 속에선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없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방법이 있었다면 이들의 얼굴에 절망한 기색이 나타나진 않았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다시 천천히 대화를 나눠볼까?”
진양은 세 사람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이대로 가다간 어떤 결말이 날지도 알고 있겠지?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진 않겠어.
지금부터 순순히 협조해 준다면 너희들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혹시 모르잖아. 그렇게 되면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질지도.
하지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마지막 남은 기회조차도 허공 너머로 사라져버리게 되겠지.
끝까지 버팅기면서 나와 싸운다고 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난 버티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결국 소멸되는 건 너희들이겠지.”
소머리 요괴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며 강인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우렁찬 포효성과 함께 강력한 힘이 온몸을 감싸며 그는 본모습을 드러냈다.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고개를 숙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진양이 손을 뻗으니 화혈마도가 나타나 잡혔다.
진곤이 사용했던 참동일격을 떠올리자 몸이 본능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겉보기엔 상당히 느린 동작이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강력한 힘을 품고 있었다.
마치 그 어떠한 공간과 변화도 이겨내고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릴 듯한 기세였다.
진양의 몸은 번쩍이며 사라졌다가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칼을 꽉 움켜쥔 채 소머리 요괴의 등 뒤에 나타났다.
소머리 요괴의 동공이 풀리며 번쩍이던 빛이 사라졌다.
그의 거대한 육신이 쓰러지려는 순간 퍼석- 하며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려 사라져버렸다.
거대한 육신 곳곳에 있는 급소는 전부 안팎으로 파괴되었고, 방대한 양의 기혈은 하나도 남김없이 마도에 의해 삼켜졌다.
진양은 마치 피를 털어버리듯 화혈마도를 휘둘렀다.
그리곤 미소를 지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생기를 회복한 상태인 만큼 방금 전 진양의 일격이 소머리 요괴의 목숨을 빼앗아가고도 남을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직접 나서서 소머리 요괴에게 말을 해 주지도 않았고, 막아주지도 않았고,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진곤 대인의 도법은 감히 내 추측으로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오…….”
소머리 요괴와는 달리 노인은 꼬리를 내린 듯했다.
“당신, 정체가 뭐요?”
“뭔가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여기서 질문을 할 사람은 나지 당신이 아니야.”
진양은 상대의 질문에 답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질문을 이어나갔다.
“너희들 정말 상고 지부 사람들 맞아? 그럼 부군 쪽 사람이냐? 아니면 풍도대제 쪽 사람이냐?”
“대제 휘하의 사람들이오.”
노인은 순순히 진양의 물음에 답했다.
자신이 진양을 이길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노려보고자 했던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진양이 진곤의 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풍도대제의 사람들이 벌써부터 나타났다고? 놈들은 이곳을 아예 독점해버릴 생각인 건가?’
“예전부터 궁금하던 게 하나 있다. 너희들의 진짜 목적이 뭐냐?”
“상고 지부의 재건이오.”
“그건 세 살짜리 애들도 아는 거고. 내 말은 희생도 불사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앞길을 막는 이유가 뭐냐는 거야. 도대체 왜? 뭔가 원하는 게 있기라도 한 거야?”
진양의 물음에 노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은 부군 쪽 사람이니 이미 알고 있을 게요. 그러니 말을 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겠지. 사실…….”
그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뚱뚱한 사내가 노인의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 손으로 노인의 머리를 쥔 채 나머지 한 손으로는 노인의 가슴을 꿰뚫었다.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