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72
1272화 결국엔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
진양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마종 천재를 바라보았다.
마종 천재는 한참 동안 진양을 쳐다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네.”
“사라져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들이 스스로 제물을 자처한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던 걸세.”
진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야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그는 불완전한 상태가 틀림없었다.
이대로라면 그를 구한다고 해도 큰 이득을 못 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상황만 본다면 오히려 상대에게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양은 오히려 그를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풀어 상황을 휘젓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거대한 문 안으로 들어오기 전엔 몰랐지만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곳이 죽은 상고 세계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과거에 완전히 끝나지 않았던 전쟁과 여전히 남아있던 은원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인정을 베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안될 듯했다.
뱀 머리 녀석에게 완전히 뒤집어씌우기로 한 이상 최대한 관심을 끌 수 있는 만큼 끌어두는 게 좋을 듯했다.
지난번 진양을 기습한 일은 절대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빠르게 생각을 마친 진양은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상고 천정 사람들이 마종의 땅을 다시 끼워 맞추고 있더군요. 왜 그런지 알고 계시나요?”
“그들에게 마검의 징표가 마종의 땅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네. 그리고 그 징표를 발동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라고도 했고. 마검을 손에 넣기 위해선 땅을 다시 끼워 맞추는 수밖에 없지.”
“설마 놈들을 속인 건가요?”
진양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허접한 거짓말로 상대를 속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진짜일세.”
“…….”
상대는 애초에 인간을 걱정하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단순히 상고 천정 사람들이 공법을 얻게 되면 실력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진양은 이미 상고 천정의 세 천제들과 깊은 원한을 맺었다.
정면으로 맞붙게 될 일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일단 천정의 힘이 늘어나는 건 결코 원치 않았다.
“좋습니다. 일단 구해드리도록 하죠. 대신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해두겠습니다. 전 대의 때문에 당신을 구해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 마검 공법 때문에 구해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진양은 철장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조금 이따가 제가 위에 있는 자들을 놀라게 만들 겁니다. 그럼 아마 아래로 상황을 살펴보러 오겠죠. 그 틈에 봉인이 풀릴 겁니다. 혼자 문을 열고 나오는 것쯤은 가능하시죠?”
마종 천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은 철장에 흐르고 있는 힘을 느껴보았다.
거대한 탑에서 흘러나오던 힘과 비슷한 가닥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 힘은 태호 천제나 수많은 상고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힘이 아니었다.
하지만 태호 천제에게 속해있었다.
거대한 탑이 부서지며 철장에서 흘러나오는 속삭임이 꽤 많이 미약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만 본다면 굳이 진양이 끼어들지 않아도 마종 천재는 스스로 이곳을 뚫고 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수백 년 정도의 시간은 걸릴 수밖에 없다.
진양은 손을 뻗어 철장 표면의 힘을 만졌다.
속삭임의 힘이 다시 한번 진양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기운이 동반된 힘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 한 글자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소멸해버렸다.
진양이 입 밖으로 외친 진리는 태호 천제가 망자의 세계로 침투하기 위해 쌓았던 기반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현재 태호 천제가 가진 힘은 진양에겐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침투한다고 해도 아예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철장을 붙잡은 채 체내의 힘을 역으로 흘려보내자 쇠창살을 타고 철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때, 철장 대문 위에 앉아있던 남자가 돌연 눈을 번쩍 떴다.
그가 제자리에 앉은 채 나지막하게 기합 소리를 내자 위압감이 실체화되며 방원 백여 장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대지가 완전히 박살 났다.
남자는 여전히 철장 대문 위에 앉아있었다.
그의 눈에 철장 쇠창살을 잡고 있는 뱀 머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엉덩이 한번 더럽게 무거운 자식이군. 이래도 안 일어난단 말이야?’
보통 간수라면 누군가 죄수를 탈옥시키려 하는 순간 곧바로 철장 문을 열어 안에 있는 죄수가 잘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는 것 같군.’
진양은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벌리며 웃어 보였다.
그 순간.
습득이 완료되며 철장의 주도권이 진양의 손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는 순간 철장이 작은 조약돌 크기로 줄어들었다.
철장 위에 앉아있던 사각 턱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래 있던 철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와 동시에 사각 턱이 실체화시킨 위압감이 주변을 강하게 짓누르며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렸다.
진양이 가볍게 손을 흔드니 철장 대문이 열렸다.
짙은 검은 기운이 안에서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검은 기운은 위압감을 버텨내며 마종 천재의 모습을 이루었다.
마종 천재의 몸에선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은 죽음의 기운이 아닌 또 다른 기괴한 힘이었다.
그는 자신의 갈비뼈를 하나 부러뜨렸다.
그러자 갈비뼈는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이어서 검이 휘둘러졌다.
땅과 하늘을 관통하는 검은 빛이 위압감의 늪을 강제로 뚫었다.
검은빛이 가르며 지나간 자리에 있던 모든 것들이 잘려 나갔다.
이제 막 하나로 맞춰진 대지도 다시 잘려버렸다.
위압감의 늪이 사라지고 나자 진양은 철장을 챙겨 대지에 드러난 갈라진 틈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버렸다.
“당신 정도의 실력이라면 알아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럼 전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 * *
지면 위.
마종 천재는 흑검을 쥔 채 사각 턱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
“언제까지 절 막을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당신은 절 죽이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 언젠간 밖으로 다시 나가게 될 겁니다.”
사각 턱이 한숨을 푹 쉬며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라야,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다. 이곳은 망자의 세계. 우린 이미 모두 죽었다. 설령 세 천제를 죽이려고 해도 더 이상은 기회가 없어.”
“사존,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휘둘러진 수라의 장검에서 검은 힘이 쏘아졌다.
매서운 검광은 사각 턱을 향해 날아갔다.
무시무시한 힘이 휘몰아치며 그는 끊임없이 뒤로 밀려났다.
수라는 무표정으로 조금씩 그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태호 천제의 힘이 이곳까지 침투했다는 건 세 천제의 권력도 언젠간 이곳에 들어오게 된다는 뜻. 그렇다면 그냥 베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제가 태미 천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마종이 소멸되어 가던 그 순간, 어째서 모두들 절 막으셨던 겁니까?”
지금이야말로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 그 누구도 절 막을 순 없습니다.”
사각 턱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라야, 제발 정신 차리거라. 마검이 널 파괴하도록 해선 안 된다. 마존의 힘은 단순히 빌리는 것.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다. 그것을 조종하려고 한다면 결국엔 제어불능에 빠지게 될 게다.
신을 끌어들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넌 모르고 있다. 세 천제를 죽이는 게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도 넌 전혀 모르고 있어.”
사각 턱은 자신의 힘으로 수라를 막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설득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수라가 정신을 차리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가 익힌 마검은 이미 그를 파괴시켰고, 모든 생각도 극단적이게 바꿔버렸다.
당시 이로 인해 미약하던 균형이 깨져버렸고, 이는 곧 태미 천제가 물불 가리지 않고 직접 나서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아주 오랜 옛날, 천존은 인간을 위해 일자결을 남겼다.
그러나 일자결 입문의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경지가 높은 자일수록 입문은 더욱 어려웠고, 때문에 진정으로 입문한 자는 전부 경지가 높지 않은 자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자결을 시전하는 데 상당히 높은 수준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각 공법마다, 심지어 신통력마다 치러야 하는 대가는 모두 상이했다.
그러나 마존이 남긴 도결은 일자결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었다.
입문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치러야 할 대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전자의 모든 것이었다.
도결은 상고 시대에는 위협의 수단으로써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정상급 인간 강자들이 도결을 펼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는 곧 동귀어진을 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라가 이 균형을 깨버렸다.
단순히 위협을 가하는 수단으로 쓰던 것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바꿔버린 것이다.
치러야 하는 대가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고, 발휘할 수 있는 힘도 이전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수라의 마검은 극단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치러야 하는 대가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된 듯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반드시 그 대가가 있는 법.
수라는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위험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마치 고심주에 걸린 사람처럼.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파멸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파멸하는 최후를 반드시 맞게 되는 법이다.
마종은 이미 수라에 의해 한 번 파괴되었다.
사각 턱은 수라가 스스로 파멸함과 동시에 더 큰 범위의 파멸을 몰고 오지 않기를 바랐다.
한편 교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수라는 잠시 상황을 살폈다.
그러다 자신이 사존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고는 곧장 멈춰 섰다.
“전 지금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는 걸 느낀 순간 한층 더 좋은 느낌을 받았죠. 사존, 당신들은 신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허나 세상은 이미 변했습니다.
이곳이야말로 신들의 무덤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 설령 신을 끌어들이게 된다고 해도, 설령 그들이 이곳에 다시 천정을 세우게 된다고 해도 모든 과정에는 희생이 필요한 법. 결과만 좋으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절 이곳에 가둔 건 태호 천제의 침투를 막지 못했기 때문 아닙니까? 이미 모든 게 시작되었으니 계속해서 진행하는 수밖에요.”
사각 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득을 포기했다.
여기서 더 이상 얘기해봤자 진전이 없을 듯했다.
거대한 탑이 무너지는 순간 태호 천제가 영원히 망자의 세계에 나타날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망자의 세계의 진리 자체가 그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말을 한다고 해서 수라가 믿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사각 턱은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쉬곤 자리를 떠났다.
한참을 막으려고 애를 썼건만 결국엔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
사각 턱이 떠나고 난 뒤.
상고 천정 사람들이 나타났다.
수라는 탑 바닥에 선 채 무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은 없다. 서둘러 다시 마종의 땅을 끼워 맞추고 신탑(神塔)을 세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