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93
1293화 전부 믿다
백리칠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저씨!”
“뭐, 뭐야? 진짜 백리칠이었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영향을 하나 만들어냈거든요.”
그러나 백리칠은 곧장 다시 울상이 되었다.
“향사의 전승에 적힌 내용을 보니까 영향은 죽은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전할 때 쓰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진양 아저씨는 이미 죽은 건가요?”
“죽긴 했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 난 지금 망자의 세계에 있거든. 하지만 앞으로 조금만 더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 같아.
그런데 황금용 녀석에게 들어보니까 네가 향계에 갔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야?”
“네? 망자의 세계요? 정말로 그런 게 있었단 말이에요? 아저씨, 기다려요. 지금 당장 만나러 갈 테니까요!”
백리칠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안 돼!”
진양이 펄쩍 뛰며 그녀를 말렸다.
“열심히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여긴 절대 오면 안 돼. 여긴 너무 커서 쉽게 길을 잃을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러니 네가 찾아와도 서로 만나지도 못할 거라고.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돌아갈 테니까 괜한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겠지?”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절 죽이러 오고 있는걸요. 전 그 사람들을 꺾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고요. 지금 만든 영향도 힘들게 얻은 재료로 만든 거고요.”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백리칠의 목소리에선 조금의 절망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이 느껴졌다.
죽음 따위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잠깐. 향사의 영향이라고 했지? 잠깐만 기다려봐…….”
진양은 온몸의 감각을 집중시키고 느낌을 따라 자신의 이성을 날렸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이끌림에 따라 이성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조금씩 산 자의 세계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극심한 거부 반응도 느껴졌다.
그러나 진양의 이성은 계속해서 이끌림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마침내 연기 속에서 진양의 허상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천겁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허, 겨우 이성 조금 보낸 것 가지고 이럴 것까진 없잖아!“
애석하게도 진양이 투덜거린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은은한 연기를 통해 만들어진 육신에 진양의 이성이 실려있긴 했지만 온전한 이성은 아니었다.
겉보기엔 이성이 망자의 세계에서 산 자의 세계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였다.
심상치 않은 기류와 함께 하늘 위로는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어느덧 빗줄기까지 내리며 한층 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곧이어 천겁이 떨어질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 세계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진양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것이었다.
진양은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천겁 자체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성이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 산 자의 세계로 넘어왔기 때문에 천겁이 떨어져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순 있었다.
다만 다소 과장됐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싸움을 벌인 것도 아니고 이제 막 대화를 나누려던 것이 전부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천겁이 떨어질 때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향로에 꽂힌 향은 이제 막 절반 정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반 다경 남짓!
진양은 백리칠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몇백 년 못 본 사이에 그녀는 살이 쪽 빠져있었다.
원래의 젖살이 통통하게 오른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이긴 했으나 예전에 비해선 마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양의 손이 그녀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연기가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아저씨!”
백리칠은 그가 편하게 쓰다듬을 수 있도록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나 연기가 흩어지며 손이 사라지는 것을 보곤 실망한 듯 다시 물러섰다.
“시간이 없으니까 다들 빨리 올라오라고 해. 내가 대신 녀석들에게 얘기해 줄게.”
“하지만 다들 회가 잔뜩 난걸요. 절 요녀라고 부르면서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요.”
꽤 심각한 얘기였지만 백리칠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남의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얼른 서둘러야 돼. 죽는다고 해서 나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돼. 망자의 세계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곳이란 말이야. 일단 살아남아. 그래야 돌아가서 만날 수 있으니까.”
“네…….”
백리칠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긴 했으나 일단은 진양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백리칠은 사람들이 몰려오지 못하도록 파뒀던 함정을 모두 거둬들였다.
일단 진양과 만난 것만 해도 기뻤다.
하지만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건 영향을 피운 덕분이었다.
이 향이 모두 타들어 가면 진양은 사라지게 된다.
당장은 하나의 향을 더 만들 만큼 여유도 없다.
한시라도 서둘러야 한다.
백리칠이 함정을 거두기 무섭게 짙게 깔린 안개가 걷히며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한 무리의 수도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에는 기괴한 형상의 요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큰 사고를 친 거지?’
단순히 황금용을 죽였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올 리는 없다.
그것보다 더 큰 사고를 친 게 분명하다.
“백리칠, 근데 뭘 했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오는 거야? 황금용을 죽인 것 말고 또 다른 게 있는 거야?”
“몇 가지 물건을 좀 빌렸거든요. 향을 만들 때 재료도 필요하고, 만든 향을 피우려면 향로도 필요하잖아요.”
“…….”
누가 봐도 빌린 건 아니었다.
게다가 쉽게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듯했다.
당장 향 제작에 필요한 재료만 해도 최상급 재료들이었으며, 지금 향이 꽂혀있는 향로만 봐도 최소 도기급의 물건이었다.
‘몇 가지 물건’이라고 하긴 했지만 단순히 그 정도로 끝날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일단 알았어. 조금 이따 사람들이 몰려오면 내가 대신 얘기해 줄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알겠지?”
잠시 뒤.
이를 바득바득 갈며 몰려온 수도사들이 백리칠을 둘러쌌다.
진양은 포권을 취하며 공손히 예를 갖췄다.
“대인들, 잠시 고정하십시오. 여러분들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멀리서 한 노인이 날아와 수도사들을 제지했다.
그러자 씩씩거리던 수도사들은 하나씩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노인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함향종 현임 종주 묵향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신분이 조금 많긴 합니다만 일단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대황에서 온 진양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없었기에 진양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백리칠이 여러분께 폐를 끼친 부분에 대해선 사과드리겠습니다. 대신 여러분들께서 향계를 벗어나게 되시면 그때 두 배로 제가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향계를 벗어나시려면 반드시 백리칠이 필요하실 겁니다. 지금으로선 이곳의 한계선을 뚫을 수 있는 건 그녀가 유일하거든요.
바깥세상은 이곳과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이미 새로운 대세가 펼쳐지고 있는 곳이죠.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 계속해서 갇혀있는 건 여러분들께도 썩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아마 알고 계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망자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모든 죽은 자들은 죽어서 망자의 세계에 나타나게 되죠.”
이어서 진양은 요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금용은 이미 망자의 세계에서 환생하여 산 자의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직접 환생시켰죠. 뿐만 아니라 전생을 능가하는 능력으로 현생에선 진룡이 될 수 있는 기회까지 부여했습니다.
제 말이 사실인지는 추후 이곳을 벗어나 대황으로 가게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전 넉넉한 재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믿으실진 모르겠지만 생전에 팔품 영석을 무려 수백 개나 갖고 있었고, 도기도 수십 개를 부렸었습니다.
백리칠이 가져온 향로는 제가 후일 두 배로 갚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부 못 믿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서 진양은 일전에 들었던 황금용의 일생을 떠올리며 말했다.
우선 자신을 함향종 종주 묵향이라고 소개한 노인을 가리켰다.
“대인께선 아마도 황금용이 늘 ‘노친네’라고 부르시던 분이겠죠.
황금용은 생전에 대인과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것을 상당히 유감스럽게 여겼었습니다. 게다가 황금용은 함향종의 한 제자를 마음에 두고 있기까지 했었죠.”
노인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비록 진양은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건 비밀이다.
황금용이 살아있었을 때 이러한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얘기해주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어서 진양은 삼두사(三頭蛇) 요족을 가리켰다.
“대인께선 황금용의 공법에 눈독을 들이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아무리 해명해도 듣지 않고 대립하려고만 하셨다고 하더군요.
황금용은 비록 죽었지만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것에 대해 상당히 아쉬워했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대인을 속인 게 아닙니다. 진룡이 되기 위해선 공법이 아니라 혈맥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훗날 대황에 가게 되신다면 요국의 삼안용모를 찾아가십시오. 제 이름을 대신다면 기꺼이 대인께 진룡의 혈맥을 내어줄 겁니다. 물론 다른 걸 원하신다면 추후 망자의 세계에서 돌아가게 될 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진양은 또 다른 대요를 가리켰다.
“대인 같은 경우는 오히려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는 게 득이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일을 크게 키우려고 하진 마십시오.
안목을 멀리 두고 봐야 합니다. 내분을 일으켜봐야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는 사실만 명심하십시오.”
진양은 연달아 여러 요족을 지명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그의 말을 듣고 난 요족들은 한층 고분고분해졌다.
물론 노발대발 화를 내려는 자도 있었으나 대요가 나서서 이들을 제지했다.
인간 쪽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묵향이 버티고 있어서 그런지 아무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향종 종주라는 자리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신이 있는 자리인 듯했다.
묵향은 향로에서 타들어 가고 있는 영향을 바라보았다.
피어오른 연기를 통해 진양의 허상이 비춰지고 있었다.
이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모여들며 금방이라도 천겁이 떨어질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천겁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진양의 말을 전부 믿었다.
단순히 천겁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 한 가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만약 충분히 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진작 천겁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충분히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천겁을 발동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천겁이 계속해서 쌓이기만 하고 내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모인 힘으로는 진양을 소멸시키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