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01
1301화 놀랐어?
진양은 얌전히 발을 뒤로 뺐다.
망천에 대한 기록이 얼마 없는 이유, 아무도 망천을 지키지 않는 이유, 그리고 상고 지부 사람조차도 망천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이곳은 지킬 필요도 없고, 안으로 들어가서도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른 건 아마 지금 있는 곳이 상고 지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외부에서 망천을 통해 상고 지부로 들어가려고 했다면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망천을 완전히 건너는 순간 자기 자신이 누군지조차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진양은 깔끔하게 체념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딘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위쪽으로 흐르고 있는 망천의 한 지맥에 거꾸로 비친 그의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양은 다른 지맥을 살펴보았다.
그곳에서도 진양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위쪽에 있는 얼굴처럼 웃고 있진 않았다.
진양은 다시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그러나 순간 상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눈빛은 차가워졌다.
“갑자기 왜 정색하는 거야? 계속 웃어.”
수면에서 물결이 일어나며 비친 그림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머리 위로 흐르던 망천 지맥도 함께 사라졌다.
순간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맑았던 망천에 녹색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치 염료를 물속에 떨어뜨린 것처럼 망천은 빠르게 녹색으로 물들었다.
진양은 머리를 긁적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망천 지맥을 내려다보았다.
잔잔한 수면 위로 뻗어져 나온 한 쌍의 손이 진양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손이 닿지 않자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손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수면 위로 피어오른 빛에선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은 마치 가까이 다가오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수면 아래에서 아슬아슬한 복장을 한 반나체의 여인이 올라왔다.
그녀는 맨발로 수면에 선 채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지며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가 퍼졌다.
그녀의 춤에 따라 물방울 소리와 함께 고쟁(古箏)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변의 환경도 바뀌었다.
어느덧 커다란 궁전이 나타났다.
그리고 궁전의 중심에선 요염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는 반나체의 여인이 마치 유혹을 하는 것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걸쳐진 얇은 천은 마치 스스로 자아가 있는 것처럼 너풀거렸고,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도 바람에 흩날리듯 움직였다.
그때, 여인이 진양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진양을 향해 섬섬옥수를 내밀었다.
“쯔쯧, 꽤 예쁘긴 한데 너풀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니 썩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말이야. 겨우 그 정도로는 날 유혹할 수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휘황찬란하던 궁전에 금이 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모습이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기대로 가득 찬 얼굴로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얼굴도 너무 평범하잖아.”
진심이 가득 담긴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궁전이 무너져내리며 수천 개의 조각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다시 망천하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인은 강가에 선 채 진양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마치 망천 안으로 들어오도록 권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여인의 모습이 부서지며 망천 안으로 흘러들었다.
이번엔 물속에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주 예전에 보았던 여인.
꽤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여인.
화상용이었다.
“비참하게 죽은 사람을 왜 다시 끌고 나오는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영태 성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진양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정말 답이 없군…….”
물속에 나타나는 여인의 모습을 계속해서 바뀌었다.
영태 성녀 다음으로는 해요선자가 나타났고, 그다음에는 성인이 된 백리칠, 심지어 혼례복을 입고 있는 가희의 모습까지 나타났다.
진양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쯔쯧. 보기보단 멍청한 녀석이네. 남자를 유혹하려면 반드시 여인의 모습으로만 유혹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한때는 인간이었던 녀석인 것 같은데.
게다가 여인이면 반드시 남자를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로 봐선 너도 한때는 남자였던 거지? 남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남자잖아. 그게 아니라면…….”
그러나 이번에는 진양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고 있는 키 작은 뚱땡이가 하나 나타났다.
그는 기대로 가득 찬 얼굴로 진양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
진양은 황당해서 더 이상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이걸로는 안 되겠다고 싶었는지 아예 목을 쭉 내밀고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탁탁 두드렸다.
“이 자식이!”
구경만 하던 진양은 마침내 반응했다.
그는 진양을 망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유혹을 하는 게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자신을 죽여보라는 듯 도발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인 충동이 솟구치며 진양의 눈은 붉게 물들었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진양의 한쪽 발이 망천의 수면 위를 밟았다.
장정의의 모습을 한 상대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망천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진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진양은 그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상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하다는 듯 진양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인 충동에 의해 완전히 이성을 빼앗긴 모습이었으나, 지금 진양의 눈에는 싸늘한 빛이 가득했다.
마치 하찮은 존재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빛, 아니, 불쌍한 자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왜? 더 보여줄 게 있으면 더 보여주든지. 날 안으로 끌어들이려던 거 아니었어? 자, 네가 원하는 대로 안으로 들어왔잖아. 그래서 이젠 어쩔 건데?”
수면 위 진양의 발이 닿은 곳에서부터 물결이 일어났다.
물결은 진양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녹색으로 물든 물은 끓는 것처럼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진양의 도기에는 선천충각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금단이 있다.
그곳에는 진양의 인생과 기억이 담겨있다.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억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세 개의 금단이 동시에 빛을 뿜었다.
진양의 도기를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에 금단에선 윤기가 흘렀다.
조금의 결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망천의 힘은 진양의 도기의 힘과 세 개의 금단에서 뿜어져 나온 힘을 꺾을 수가 없었다.
강제로 금단 안에 있는 진양의 기억을 뽑아내 망각하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망천 안에서 자신을 유혹하기 위해 온갖 변화를 일으키는 녀석을 볼 때부터 진양은 알고 있었다.
상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아마 진양의 기억을 토대로 환상을 만들어내 보여준 게 분명하다.
즉, 진양은 아직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망천에 비친 모습은 이미 진양의 기억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진양이 이러한 부분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상대는 여자로 변신하여 유혹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장정의로 변해 자신의 목을 부러뜨리라며 유혹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양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장정의의 목을 부러뜨리고 싶다는 충동심이 솟구쳤었다.
마음속에 충동심이 솟구치는 순간, 어째서 상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비열한 수단을 동원하여 진양을 유혹하려는 것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진양의 마음속에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서였던 것이었다.
아주 약간의 동요만 일으켜도 이성을 잃고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진양은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대신 선천지물이 녹아있는 자신의 도기와 진양의 기억과 인생이 들어있는 세 개의 선천충각으로 만든 금단으로 망천의 힘을 버텨냈다.
망천의 힘을 막아내고 나니 억제할 수 없던 충동심도 쉽게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광폭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냉정한 진양처럼 이 일 자체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된다.
눈앞에 있는 장정의의 목을 부러뜨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하도록 유도하는 일은 높은 확률로 함정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일은 해선 안 되는 일이 된다.
모든 판단이 끝났으니 이제 그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놀랐어?”
장정의는 다시 목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을 얘기해 주지.”
진양은 씨익 웃으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절대로 내가 네 목을 비트는 일은 없을 거야.”
순간 장정의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그의 얼굴엔 놀라움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나타났다.
그는 손을 뻗어 진양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진양은 손이 뻗어지는 순간 빠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아슬아슬하게 상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네가 날 유혹한 근본적인 목적은 날 망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거야.
망천을 건넌 사람은 모든 것을 잊게 되지만, 망천을 건너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잊지 않게 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었지만, 하지만 네가 하는 행동을 보니 내 생각이 다소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어.
망천으로 들어와 끝까지 가야만 모든 걸 잊게 되는 거지. 내 말이 맞지?
망천과 관련된 자세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망천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망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건 모든 걸 망각해버린 자들뿐이기 때문이야.”
장정의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양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말했다.
“네 녀석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너 역시 망천에 깊이 빠진 녀석이겠지.
날 망천 안으로 끌어들인 것만 해도 네 목적은 달성한 셈이야. 네 목적은 내가 네 녀석의 목을 부러뜨리도록 만드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넌 끝까지 이 방법으로 날 유인했어. 그렇다면 네 목을 부러뜨리는 건 사실 나의 목적이었던 거야.
각자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면 이 일은 완전히 끝나게 되는 거다. 그게 바로 망천의 규칙이니까.
내 말이 맞지?”
진양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며 망천 강가로 가까이 다가갔다.
“난 망천에 빠진 적도 없고, 무언가를 망각하지도 않았어. 그러니 굳이 나의 목적을 달성할 필요는 없는 거야.
이렇게 되면 상황은 더욱 재미있어지지. 내가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네 목적은 이미 이루게 된 거잖아.
그렇다면 넌 반드시 내가 나의 목적을 달성하게 만들어야만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데. 만약 내가 네 목을 꺾어버리지 않는다면 넌 영원히 지금의 모습으로 내가 목을 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거야.
그렇지?”
진양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