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12
1312화 전부 털어놓다
오 대 수맥은 전부 두 세계를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만으로는 수도사들이 세계를 넘나드는 다리로 쓸 수가 없다.
황천만 봐도 그렇다.
진양은 오래전부터 이미 생각하고 있던 사실이다.
황천이 생명체를 붙잡아둘 수 있는 건 집념 때문이다.
모두에겐 내려놓지 못하는 커다란 집념이 있다.
그러므로 황천에 있는 수많은 원혼들은 황천에 붙잡혀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집념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황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뿐이다.
젊은 삼신이 황천에 갇혀있던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녀의 경우 집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체가 집념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그녀가 다른 원혼들처럼 세계를 건너올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양은 결코 소용돌이를 통해 세계를 건너갈 수가 없다.
소용돌이를 통과할 수 있는 건 오직 집념뿐이니까.
오직 집념만이 황천을 통해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다.
추후에라도 돌아갈 생각이라면 반드시 삼신이라는 후환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신을 황천 땅으로 보내지 않고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진양은 부군이 숨겨둔 복선을 간파하여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렇게 하면 다소 위험하긴 하지만 일단 연구를 진행하여 준비를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유로 진양은 부군의 일부가 대황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렇다면 대황에 반드시 오 대 수맥이 있어야만 세계를 건널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대황에 수많은 상고 지부 조각이 떨어진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진양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하니 왕백강도 일단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약수를 찾게 된다면 작은 것까지도 상세히 기록해야 돼.
하지만 혈해는 대략적으로 의심되는 곳만 알아내도록 해. 거긴 들어가면 무조건 죽는 곳이니까 절대로 살펴보진 말고.
그 누구도 절대로 혈해에는 들어가선 안 돼.”
모든 일을 마친 진양은 왕백강의 꿈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뜨자 주변 경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분신의 모습이 보였다.
한층 더 안심되었다.
진양은 분신을 다시 해안에 집어넣었다.
피 같은 머리카락으로 만든 분신을 낭비할 순 없었으니까.
* * *
진양은 오 대 수맥 곳곳을 돌아다녔다.
각 수맥의 지맥까지도 샅샅이 살피며 수맥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진양은 약수를 통해 상고 지부의 범위에서 빠져나왔다.
진양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디를 가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진양의 머릿속에는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기로 했다.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정말로 죽어버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대진마문의 대취와 막여산과는 작별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은 장문인이니까.
도문 사람에게도 작별을 해야 한다.
더 이상 그를 문주로 섬길 생각은 체념하라고 얘기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 외에 유무의 남은 반쪽과 만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깔끔하게 죽여야 한다.
약수에서 빠져나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진양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부 풍도대제 세력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허공을 가로지르며 상고 지부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진양은 조각에 몸을 숨긴 채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진양의 시선이 닿는 순간.
무리의 가장 중심에 있던 대취가 눈을 번쩍 뜨며 진양이 있을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진양이 있는 조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조각 가까이 다가온 그의 눈에선 차가운 빛이 모두 사라졌다.
비록 조각에 숨어있는 사람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그가 삼장문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대취는 성큼성큼 진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기운을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진양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누구신가 했더니. 대장문이셨군요.”
진양은 흑검을 거두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손짓을 했다.
“기운이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상고 지부의 사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대취가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할지 갈등에 빠져있을 때.
진양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전 이만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응? 어딜 말인가?”
“산 자의 세계요. 제 모든 것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거든요.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보려고요.
만에 하나 실패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장문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진양은 고민 끝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취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외모는 조금 그렇긴 해도 사람 자체는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속이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만에 하나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진양은 그를 잊게 되겠지만 그는 자신을 위성실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대장문, 이젠 솔직해져야 될 때가 온 것 같네요.
사실 저는 위성실이 아닙니다. 이건 제가 가진 수많은 가명 중 하나에 불과하고요, 사실 제 진짜 이름은 진양, 자는 유덕입니다.”
이어서 진양은 외모도 자신의 본모습으로 바꿨다.
대취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진유덕이 코앞에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그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진양이 막았다.
“일단 아무 말씀 마시고 제 얘기부터 들어주세요.
조금 괘씸하게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전에 전 풍도 세력의 환생부의 수장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환생시키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곳에 오자마자 풍도 세력의 한 뱀 머리 녀석에게 습격을 당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뭡니까?
뱀 머리 녀석이 자신이 상고 천정 사람이라고 했지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풍도대제의 명을 받고 저를 죽이러 온 거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모와 기운, 그리고 이름까지 모두 위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럴 리는 없네.”
대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양이 발끈하며 말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아무나 막 믿는 겁니까?
앞으로 실력도 괜찮고, 세력도 크고, 또 세간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세요. 이런 인간은 높은 확률로 음흉한 놈일 테니까요.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어요. 여기엔 저도 포함되어있으니까요. 인정합니다.
비록 망자의 세계로 넘어와 경고문도 써 붙이고 사람들도 환생시켜주면서 나름 괜찮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사실 예전에는 많은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곤 했었죠.
처음 경고문을 세운 건 좋은 일을 하자는 마음에서였지만, 나중에 보니 비석을 세우고 나면 기운을 일으킬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과는 다른 마음을 먹게 되었죠.
사람들을 환생시킨 것도 사실은 환생 신통력에 대해 파악하고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였고요.
전 대장문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처럼 좋은 일만 하고 다니던 사람조차 이런데 다른 사람은 어떻겠어요?
특히 그 부군이라는 놈이 그럽니다. 하마터면 놈의 함정에 속아 골로 갈 뻔했거든요.
게다가 제가 부군이 환생한 거라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놈들도 마찬가지예요. 분명 속이 새까만 놈들뿐일 거라고요.
부군이 돌아올 때가 됐으니 절 화살받이로 쓰려는 게 분명해요. 뭘 막는 화살받이로 쓰려는 거냐고요? 당연히 풍도대제겠죠.
두 사람은 생전에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사이였잖아요. 만약 풍도대제가 이 소문을 듣는다면 절 어떻게 했겠어요? 당연히 가만두지 않았겠죠.”
“그건…….”
대취는 마치 무언가로 강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진양의 진면목을 알게 되니 놀라긴 했지만, 얘기를 듣다 보니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특히 진양이 풍도대제에 대해 얘기할 땐 왠지 모르게 죄책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진양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일단 그를 붙잡고 보자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대취는 갈등에 빠졌다.
진양은 자신의 정체까지 밝히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반면 자신은 아직 정체조차 밝히지 않았다.
“사실 나의 정체는…….”
진양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어휴, 정체가 뭐가 중요합니까? 전 친구를 사귀는 데 상대의 정체나 신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외모도 말이죠.
게다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일수록 위험할 확률 더욱 높더군요. 예를 들어 저처럼 말이에요.
대장문, 망자의 세계에 와서 만난 사람들 중 대장문과 수라만큼 솔직하고 괜찮은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 솔직히 수라는 사존을 찾는 데 제 도움을 조금 받으려고 한 거긴 하지만요.
도문 사람들은 제가 그렇게 거절을 해도 문주로 삼으려고 하더군요.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그냥 놔둔 거죠.
반면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목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가 됐죠. 대진마문도 세우고 약간의 소란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잖아요.
어쨌든 떠날 때가 되기도 했고 언젠가는 얘기해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털어놓는 겁니다.
만약 재수 없게 정말로 죽게 됐는데, 아무도 진짜 제가 누군지 기억해 주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이것은 진양의 진심이다.
특히 대취를 만나고 나서 이런 생각은 한층 더 강해졌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전부 털어놓은 것이다.
진실을 모두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결국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감동할 필요 없어요. 그냥 조심하라고 잔소리 몇 마디 한 것뿐이니까요.
앞으로는 누굴 만나든 조심하세요. 특히 망자의 세계는 엄청 위험한 곳이잖아요.
본심을 지키는 건 어렵지만 선택을 하는 건 훨씬 더 어렵죠. 그래도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니까 무사하길 바라는 거예요.
물론 원한다면 환생시켜줄 수도 있어요. 대신 미리 말하지만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환생하게 될지는 저도 장담 못 합니다. 그건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급한 게 아니라면 나중에 망자의 세계가 전부 나타나고 제 신통력이 완벽해질 때까지만 기다려보세요.”
“삼장문…….”
대취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썩 편한 느낌만은 아니었다.
“아, 그건 그렇고 여긴 뭐 하러 온 거예요? 대장문도 상고 지부를 살피러 온 건가요?
웬만하면 가지 마세요. 엄청 위험하거든요. 게다가 안에 별것도 없어요.
그리고 웬만하면 상고 지부 놈들과 엮이지 마세요. 하나같이 못된 녀석들 뿐이거든요.
그래도 잘됐네요. 마침 작별 인사를 하러 가던 참이었거든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직 인사를 나눠야 할 사람이 더 있거든요. 만약 운 좋게 성공한다면, 나중에 수명이 다 됐을 때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하하하, 그렇게까지 감동한 표정을 지을 것까진 없잖아요. 얼른 정신 차려요.
자, 그럼 전 이만 갑니다!”
진양은 신나게 손을 흔들며 어디론가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