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09
1409화 선을 넘었다
태호가 평온한 얼굴로 계속해서 십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저는 소녀의 몸에서 다른 종족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영성(靈性)을 찾아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인간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드시 다른 종족의 것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죠.
때문에 모든 공법과 신통력의 뿌리는 사실 다른 종족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자결을 어느 종족에게서 배워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성을 발견하며 모든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것, 그것이 바로 그 영성이었던 거죠.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다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저는 그 힘을 쥘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소녀와 영성을 베어 의사로부터 얻은 씨앗에 그녀를 집어넣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성장하도록 했습니다. 천궁을 세운 저는 수많은 인간 인재들과 거래를 했습니다. 권력을 줄 테니 인간이 가진 가장 귀한 영성을 제게 넘기라고 했죠.
놀랍게도 단 한 사람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얻은 인재들의 영성으로 씨앗을 키웠습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그녀가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며 제가 원하는 물건을 조금씩 만들어내는 것을 지켜보았죠.
그러나 결국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을 때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난관을 극복할 수가 없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바깥에 있는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어디 있는 누구와 어떤 얘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죠. 마찬가지로 그녀를 제지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 순간, 멈춰있던 변화가 다시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죠.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가 인간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진귀한 것이라고 여겼던 영성이 결정적인 게 아니라 인간 자체가 결정적인 것이었던 것입니다.
한때 인간 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던 천존은 제가 봐도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이러한 점을 깨닫고 있었거든요. 그는 인간이 가진 감정이라는 열쇠를 통해 무제한으로 이러한 힘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한 걸음뿐인 거죠.”
진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사자결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생각의 폭풍이 육신의 속박을 벗어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진양은 눈을 감은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십이, 저는 한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사람입니다. 반드시 구하러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태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당장이라도 판을 뒤엎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판을 뒤엎었다간 오히려 역으로 상대의 함정에 빠져버리는 수가 있다.
판을 뒤집을 수도 없고, 상대를 공격해서도 안 된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십이를 안정시키는 것.
진양의 눈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꽉 쥔 주먹에서 뼈마디 소리가 들려왔으며, 체내의 힘은 이미 폭주에 근접한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양은 끝까지 참으며 손을 쓰지 않았다.
진양은 요동치는 감정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한마디 했다.
“태호, 당신은 제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가장 역겨운 사람입니다.”
* * *
태호의 말을 들은 십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똑똑한 사람이다.
때문에 태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때론 그녀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
더 이상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가녀린 한 소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냉정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녀의 세계 속.
수많은 자료들이 스스로 펼쳐졌다.
수많은 책들이 마치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날아다니며 찢어지기 시작했다.
저택 중심의 복숭아나무에는 꽃송이가 하나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 * *
태호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직접 보았겠지만 그녀는 이미 완전한 선초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성숙한 단계로 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을 뿐이죠.
이 얘기는 당신에게 들려주려고 한 것이긴 합니다만, 십이에게 들려주기 위한 얘기이기도 하죠.”
태호는 조용히 복숭아나무를 살폈다.
나무에선 연달아 여러 송이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활짝 핀 꽃에는 공포와 절망, 그리고 불신 등의 표정이 가득한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호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조금 부족하군요.”
말을 마치는 순간.
태호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돌연 진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어서 무시무시한 힘이 진양의 머리를 향해 쏟아졌다.
강렬한 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진양을 뒤덮었고, 진양의 기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소멸해버렸다.
* * *
두근- 두근-
십이의 동공이 잔뜩 수축되었다.
그녀의 심장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반짝이던 두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소협…….”
나지막하게 진양을 부른 십이.
그녀는 다시 한번 큰소리로 절규했다.
“소협!”
오직 인간만이 일으킬 수 있는 강렬한 감정의 파동.
하나의 일자결에 입문하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극심한 감정의 파동이 그녀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그녀는 날뛰기 시작했다.
십이의 저택엔 사나운 폭풍이 일어나며 이곳에 있던 수많은 기록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저택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십이의 육신도 폭풍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복숭아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분노, 절망, 그리고 공포.
극한으로 치달은 모든 감정들이 복숭아나무에서부터 폭발하듯 쏟아져나왔다.
아직 완전하게 피어나지 않은 꽃들은 이 순간 전대미문의 강력한 힘을 내뿜으며 마침내 완전히 피어났다.
선초가 마침내 성숙해진 것이다.
무시무시한 위세 가운데 평범한 생명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현묘함이 서려 있었다.
심지어 태호조차 폭발의 위세에 밀려 뒤로 날아가 버렸다.
꽃이 피어나기 무섭게 복숭아나무는 시들어버렸다.
나무에서 떨어져나온 꽃잎은 마치 비처럼 복숭아나무 주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요동치는 감정을 따라 모든 꽃잎들은 다시 나무 안으로 녹아들었다.
나무 최상단에 하나의 작은 싹이 자라났다.
그것은 점차 작은 꽃봉오리로 변하더니 이내 격렬한 감정과 함께 피어났다.
줄곧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었던 태호의 얼굴에 마침내 웃음이 피어났다.
그는 나무 위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 피어난 꽃을 꺾었다.
“참으로 놀랍구나. 십이, 넌 과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 * *
눈부신 빛 가운데 온몸에 검은 기운을 두른 진양이 빛을 가르며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만신창이가 된 부군의 화신이 들려있었다.
태호가 진양을 공격하려는 순간 부군이 진양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애석하게도 태호는 진양을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진양을 죽여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진양을 망자의 세계로 보내려던 것뿐이다.
진양은 망자의 세계에서 다시 산 자의 세계로 돌아온 유일한 사람이다.
이미 한 번 돌아온 적이 있으니 또다시 돌아오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태호는 그저 진양을 희생양으로 삼아 십이를 폭발시키려던 것에 불과하다.
오랜 시간 홀로 갇혀 외로운 시간을 보내온 소녀에게 뻗어진 희망의 손길.
그녀의 감정에 소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반드시 그녀를 구해주겠다며 약속했던 그 사람.
십이는 이런 그가 눈앞에서 죽는 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강한 존재가 아니었다.
한편, 진양의 손에 붙들린 부군은 어느새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곁눈질로 태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한 번 인간을 경험해 보더니 꽤 많은 걸 배우긴 한 모양이군. 남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수완이 상당해진 것 같소.
허나 너무 자만하진 마시오. 인간에겐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오.
태호, 그대는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소.”
진양의 눈빛은 한층 더 싸늘해졌다.
격한 감정은 한 차례 폭발을 일으킨 후 다시 잠잠해졌다.
가슴엔 아직 강렬한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진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해진 상태였다.
분명 사자결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한층 느리게 보였다.
진양은 냉정하게 생각을 이어나가며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되새겨보았다.
진양의 근본적인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보물, 공법, 기능서, 원한, 기연 등…….
그 어떤 것도 목숨보다 귀한 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강한 실력을 갖게 되며 살아남는 것 외의 것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때론 살아남는 것이나 적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도 있는 법.
바로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느려진 세상 속에 십이의 본체와 부서진 육신을 회복 중인 부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흡족스러운 듯 역겨운 미소를 짓고 있는 태호의 모습도 보였다.
진양은 우선 작은 목표를 세웠다.
십이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
그리고 태호가 다시는 웃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그의 계획을 철저히 망쳐버리는 것.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진양은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냉정해지고 있었다.
분노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 만약 진양이 노자결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스스로를 불태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화염을 뿜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노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양은 한층 더 냉정하게 자신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태호가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그의 근본적인 계획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태호는 지금까지 인간의 영성과 창조력을 이용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현재의 상황으로만 보면 어떤 공법을 만들어내려는 게 분명했다.
일단 일자결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천제는 일자결에 입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자결의 본질은 인간의 기초가 되는 것들이다.
비록 태호는 한때 사람으로 살아본 적이 있다곤 하지만, 그는 이미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다.
일자결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공법.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법.
태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줄 만한 공법.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