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27
1427화 물러 터진 사람이 아니야
소년은 낑낑대며 자신의 형이 누워있는 관을 다시 동굴로 가져갔다.
한편 장정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봐도 자질도 재능도 전부 평범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사형,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제자를 들인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즉흥적이신 것 아닙니까?”
진양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만약 내가 이성을 잃고 역귀가 되어 네게 덤빈다면 넌 어떨 것 같아? 과연 날 죽일 수 있을까?”
“못할 것도 없죠. 물론 가슴은 조금 아프겠지만, 어쨌든 사형을 망자의 세계로 보내기 위해 노력할 것 같습니다.”
장정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말을 끝낸 그는 돌연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진양은 온화한 눈으로 여협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제자를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면 아마 호량부터 이도까지 긴 줄이 이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겠지.
자질이 훌륭한 사람을 원한다고 말하면 알아서 대황에서도 알아주는 인재를 데려올 것이고, 똑똑한 사람을 원한다고 말하면 기를 쓰고 똑똑한 녀석들만 데리고 올 거야.
이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흔해 빠질 정도로 많아. 그래서 그런지 난 오히려 저 녀석처럼 적당히 맹한 녀석이 더 마음에 들더라고.”
장정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양은 크게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어차피 전도(傳道)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곳에서 여협과 만나게 된 건 하나의 인연일지도 모른다.
그가 진양의 눈에 띄었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의 재능인 것이다.
장정의가 주위를 조사하러 간 사이, 진양은 여협에게 기초적인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아직까지 많은 걸 보진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살펴본 것만으로도 은월계의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천지의 환경 자체에 결함으로 인해 정상급 강자들이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다.
게다가 대황에서 건너온 굶주린 늑대들이 사방을 활보하고 있는 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대황’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진양은 이곳을 첫 전도 목적지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지하로 들어오자마자 여협과 만난 것도 단순히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양은 작정하고 제자를 거둬들여 가르치고 보호해 줄 만큼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여협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여협에게 사제지간의 깊은 정 같은 걸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필요할 때 진양의 편에 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창한 바람은 없었다.
그저 작은 소망만이 있을 뿐.
무엇보다 진양은 오랜 시간을 들여 성심껏 제자를 양성할 만큼의 시간도 없다.
때문에 진양이 여협에게 가르쳐 준 문규(門規)는 전부 도문의 것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다.
스승이나 동문 사형, 사제를 죽이는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상관없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법이다.
처음에는 올바른 길을 걷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는 법.
사실 진양이 여협을 제자로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그가 변한다고 해도 절대 진양이라는 높은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수백 가지의 기초 공법 중, 네게 적합한 건 딱 여덟 개다. 그러니 이 중에 배우고 싶은 걸 고르도록 하거라.
우선 기반을 다지기에 가장 좋은 공법은 자소도경이라는 경전 공법이다. 비록 첫 번째 권밖에 없긴 하지만 양기, 축기, 삼원 세 경지까지 수련하고도 남을 정도니 걱정할 건 없다.”
진양은 계속해서 다른 공법들도 장점과 단점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이제 남은 선택은 여협의 몫이었다.
“도경으로 하겠습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여협은 마침내 선택을 내렸다.
“잘 생각해 보거라. 자소도경은 단 한 권뿐이야. 그러니 앞으로 네게 어울리는 공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할 게다.”
“이미 모든 생각을 마쳤습니다. 말씀해 주신 공법 중에 포용성도 높고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공법은 도경뿐인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해신 대로라면, 마도 공법은 성불을 수련하려는 저와는 별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불문의 공법은 비록 성불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길이 좁아지기 때문에 제약이 너무 크다는 단점이 있죠.”
“그래. 알겠다.”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그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공법이 없어 아쉬운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충분한 상황에서는 자신에게 적합한 공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진양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큼직한 책을 꺼내 여협에게 건네주었다.
“스스로 깨달아보도록 하거라.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따로 설명해 주도록 하마.”
* * *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진양은 수련 외에도 잡다한 여러 가지를 그에게 가르쳤다.
부문, 단약, 연기(煉器), 진법까지.
수도사로서 갖춰야 할 네 가지의 기예의 기초를 전부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다음에는 여든한 개의 장례법 등 성불과 관련된 것을 가르쳤다.
하지만 망자를 성불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가르쳐주지 않았다.
여협은 매 순간 진지했다.
어렵게 얻은 기연이라 그런 걸까?
단 하루도 수련을 거르지 않으며, 진양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도 항상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다만 아직까지도 진양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고, 또 어느 경지에 도달한지는 알지 못했다.
진양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협은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초급 수도사다.
이런 그에게 도군의 경지에 대해 얘기해 준다고 해도 그게 어느 정도로 강한 건지 가늠할 수 있을 리 없다.
* * *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협은 아무런 자원의 도움 없이 오직 스스로의 힘만으로 수련을 이어나갔고, 어느덧 양기 정점에 이르러 축기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진양은 ‘기초는 탄탄할수록 좋은 법!’이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기초만 다지도록 했다.
이때, 주변을 둘러보러 갔던 장정의가 돌아와 진양에게 눈빛을 보냈다.
진양은 여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스승은 이만 볼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니,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하거라.”
그러나 이대로 ‘방목’을 하자니 썩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적어도 호신 수단 정도는 갖춰놔야 안심이 될 듯했다.
그래서 옥부 하나를 꺼내 여협에게 쥐여주었다.
“이건 스승이 네게 하사하는 호신부다. 그 어떤 치명적인 공격이라도 최소 세 번은 막을 수 있을 게다. 아마 도군 이하의 존재들은 네 목숨에 위협을 가하지 못할 게다.
분신을 남겨두고 갈 테니,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은 분신에게 배우도록 하거라.”
진양은 소중한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분신을 만들었다.
겨우 도궁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약한 분신이었지만, 그래도 여협을 가르치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진양과 장정의는 아쉬워하는 눈치인 여협을 남겨둔 채 길을 떠났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발굴 작업을 이어나갔다.
공법을 제한하는 시신과 망자들이 아직 세월에 의해 소멸되지 않은 지금의 시기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앞으로 은월계에 싸움이 벌어진다면 이러한 것들은 전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 * *
진양과 장정의가 감지 범위에서 사라지기 무섭게 무표정으로 서 있던 분신은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그리곤 돌로 만든 침상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그러나 여협은 여전히 눈을 내리깐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분신은 그 모습을 흘깃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만하면 됐어. 어차피 분신도 갔는데. 뭘 그렇게 긴장해?”
“아무리 분신이라고 해도 스승은 스승인 법입니다.”
여협은 끝까지 예를 갖췄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신이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가 아직 진정한 강자를 못 만나봐서 잘 모르나 본데. 본존 정도 되는 실력을 갖추게 되면 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은 훤하게 들여볼 수 있거든.
본존은 네가 완벽하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럴싸하게 예나 갖추기를 원하지도 않아. 그저 가르쳐 준 문파의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만 넘지 않는다면 네가 뭘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니까.
반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든지, 아니면 규칙을 어긴다면 그때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지만 말이야.”
여협은 여전히 쭈뼛쭈뼛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분신은 본존과 아예 다른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분신은 어느새 다시 침상에 대자로 누웠다.
그리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야생 과일을 하나 꺼내 서걱서걱 베어먹기 시작했다.
분신이 여협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 네가 죽어도 손을 쓰지 않았던 이유. 아마 목소리를 냈던 강자가 널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네가 죽기를 바라지도 않고, 역귀로 변한 네 형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사, 사부님…….”
여협은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나 더 이상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분신이 옆으로 누운 채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말했다.
“건방진 놈! 윗사람이 아직 말을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끼어들다니. 버릇이 없구나.
본존이야 물러 터진 녀석이지만 나까지 그렇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주의하도록 하거라.”
분신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계속해서 말했다.
“어차피 상황이 더 나빠질 것도 없었으니 네 녀석은 목소리를 낸 강자에게 모든 걸 걸어보기로 했을 게다. 하지만 역귀가 된 네 형에게 정말로 목숨을 잃게 될 줄은 몰랐겠지.
죽게 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이대로 죽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더냐? 함부로 강자의 뜻을 가늠했다고 생각이 들진 않았더냐?
그건 네 사부가 네게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이 부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그저 네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렸던 것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알고 있다. 사부의 물음에 죽어도 좋다고 대답했던 건 아마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겠지. 하지만 전후의 차이를 네 사부가 모를 줄 알았느냐?
여협, 네 사부가 왜 너를 제자로 받아주었는지 생각해 보았느냐?
네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다. 네가 성실하다고 생각해서도 아니고. 혈기를 꾹 눌러 참는 노력에 감동해서도 아니다. 바로 꽤 똑똑하면서도 스스로의 선은 지킬 줄 아는 그 자세 때문이다. 네 사부가 널 높이 평가한 것도 바로 이러한 것 때문이지.
방금 떠난 네 사부가 다시 돌아올 확률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이제부턴 내가 널 가르칠 스승이라고 생각하거라.
허나 난 본존처럼 물러 터진 사람이 아니야. 중요하지 않은 것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테니 잘 알아두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여협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분신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심지어 베어먹고 있는 과일이 한층 더 달게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