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46
1446화 요족과의 화해
육신의 힘으로 문을 박살 냈다는 진양의 말을 들은 노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세히 관찰을 해 보니 진원의 흔적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양은 오직 순수한 육신의 힘만으로 문을 부순 것이다.
과거 망자의 세계에 있었던 진양은 자신의 이성을 이곳으로 보내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이성 하나만으로도 사방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했었다.
때문에 그가 연체술을 익혔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에 하나 더.
규칙은 용예 스스로 정한 것이다.
이제 와서 뭐라고 하고 싶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양은 이미 자신의 성의를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인은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며 포권을 취했다.
“들어오실 수 있다면 귀한 손님인 법이죠.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진양은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주위의 용예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곤 진룡의 피 몇 방울을 꺼냈다.
“백리칠이 그동안 수많은 사고를 쳤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수습을 하지 않을 순 없겠죠. 당시 제가 약속했던 것도 지켜야 하고요.
이것은 제 큰 형님이신 응룡께서 나눠주신 진룡의 피입니다. 백리칠이 쳤던 사고에 대한 보상이자 만남의 선물로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니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붉은 호박처럼 생긴 진룡의 피는 강력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용의 후예라는 이름답게 용예들은 그 누구보다 선명하게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죽일 듯 진양을 노려보던 용예들의 시선은 전부 진룡의 피를 향해있었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진룡의 피를 쳐다보는 가운데 진양이 다시 한번 진룡의 피를 내밀며 말했다.
“사실 용예와 저희 백리칠 사이에 은원을 맺었다고 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비록 의도치 않게 황금용이 죽게 되긴 했지만 제가 큰 기연을 선물했으니까요.
덕분에 진룡의 혈맥을 이어받은 용예의 자식으로 환생하며 앞으로 한층 더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죠. 어떻게 보면 죽음을 통해 큰 기연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따지고 보면 은원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없는 셈 쳐도 무방하겠네요. 어떻습니까?”
노인은 진룡의 피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진양의 말은 묘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될 게 없는 것이다.
“이만 받아주시지요. 제 작은 성의입니다.”
노인이 아무 말이 없자 진양이 계속해서 말했다.
“응룡 형님께선 이미 세상을 뜨셨기 때문에 더 이상 진룡의 피를 구하는 건 힘듭니다. 다만 부족하시다면 대황에 계신 촉룡 대인께 말씀드려 조금은 부탁을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은 지금으로선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진룡이니까요.”
순간 노인을 포함한 모든 용예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두 명의 진룡이 언급된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한 명은 아직 생존해있다니!
왜 그걸 이제야 말을 한단 말인가?
진작 얘기했다면 애초에 이런 걸로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성의도 충분하고 보상도 충분하니 더 이상 얼굴 붉힐 일도 없다.
“진 대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단지 작은 오해로부터 시작된 게 세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와전이 된 듯하군요.”
노인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진룡의 피를 건네받았다.
그리곤 능청을 떨며 말했다.
“백리칠처럼 착하고 똑똑한 아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시기 많은 세간 사람들의 질투를 받은 것뿐이겠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 * *
사흘 뒤.
분위기는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기애애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리칠과 용예 사이에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백리칠은 썩 나쁜 녀석이 아니었다.
다소 사고를 치고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진양은 노인과의 한참의 대화 끝에 마침내 전도에 대한 얘기도 꺼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둘러보았는데, 곧바로 계승자로 삼기에 적합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은 한 용예였는데, 아버지가 인간이었기 때문에 혈맥은 다소 희박한 편이었다.
진양은 우연히 한쪽 구석에서 그가 연체술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피부가 갈라지고 살이 찢어져도 그는 멈추지 않고 수련에 전념했다.
훌륭한 혈맥을 타고 난 덕분에 그는 일반적인 범인보다 훨씬 더 높은 시작점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용예에 비하면 혈맥의 제약을 심하게 받는 편이기도 했다.
진양은 그를 며칠 동안이나 관찰했다.
그는 쉬지 않고 수련을 이어나가며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에 비해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효심 깊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여러 방면으로 배운 탓인지 곳곳에서 인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마침 크게 할 일도 없었는데, 이 정도면 제자로 받아도 무방할 듯했다.
근성도 충분하고, 독기도 어느 정도 있었고, 선천적인 조건도 훌륭하다.
이런 그가 연체술을 익히지 않는다면 이보다 아까운 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노인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눈치였다.
왜 하필 혈맥이 가장 뒤떨어지는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진양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히려 혈맥이 너무 좋으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다.
혈맥이 좋은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진룡의 혈맥을 그에게 나눠준다면 수천 년 동안 수련을 한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큰 성과를 일궈낸다고 해도 그건 단순히 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조건들 덕분이지, 결코 진양이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 준 덕분은 아니다.
수개월 동안의 입문 교육을 마친 뒤.
진양은 제자를 가르칠 분신을 남겨둔 채 백리칠과 함께 용예의 땅을 빠져나왔다.
떠나기 전, 진양은 분신에게 신신당부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이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는 확실히 다른 녀석이야. 삐뚤어지지 않도록 잘 가르쳐야 돼.”
분신은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걱정 마. 잘 가르칠 테니까.”
* * *
진양이 떠나자마자 분신은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분신은 코를 후비적거리며 제자를 발로 뻥 차버렸다.
어찌나 세게 찼는지 제자는 석벽 안으로 거의 일 리 가까이 처박혀 버렸다.
제자는 다소 상처를 입긴 했으나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당황한 그의 얼굴을 보며 분신은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꽤 훌륭한 본능을 가지고 있군. 연체술을 익힐 거면 모든 것이 본능처럼 반응할 때까지 익혀야 하는 법이야. 그래야 은밀한 수단을 쓰는 적을 만나 이성이 흐려져도 오직 육신의 본능만으로 적을 때려죽일 수 있을 테니까.”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듭니다.”
제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예를 갖췄다.
그러나 말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그는 또다시 뒤로 날아가 버렸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한층 더 깊은 상처를 입은 제자의 모습에 분신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르침을 받들겠다며? 만약 내가 적이었다면 넌 이미 진작 죽은 목숨이었을 거다.”
그렇게 세 번 정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 후.
제자는 비로소 그럴싸한 방어 태세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말로 가르치고 몸으로 직접 깨달으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분신은 코를 후비적거리며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군.”
본존이 분부한 대로 녀석이 삐뚤어지지 않게 잘 가르치는 방법.
그것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를 가르치는 것이다.
본존이 그의 방법에 불만을 품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다시 돌아와 그를 때려죽일 것도 아니니 말이다.
* * *
요족과의 대화는 매우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오히려 인간 세력과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했다.
때로는 신분이나 혈맥을 따지는 것보다 실력을 훨씬 더 중요시 여겼기 때문이다.
모두가 진양의 압도적인 힘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수월하게 풀린 건 백리칠의 공도 약간은 있었다.
요족 중에선 용예의 세력이 가장 크고 거대했다.
이들은 각양각색의 외모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모두가 용족의 혈맥을 이어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강한 실력과 압도적인 머릿수.
때문에 웬만해선 요족들은 용예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일전에 백리칠이 황금용의 힘줄을 뽑아 재료로 써버린 일은 상당히 큰 사건이었다.
용예는 크게 분노했고, 이를 본 요족들도 적당히 구색을 갖추며 분노하는 척 연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백리칠은 멀쩡히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백리칠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가 없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지만.
어쨌든 이젠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용예와 백리칠의 화해가 이루어지며 다른 요족들과도 자연스럽게 화해가 이어졌다.
여기에 뜻하지 못한 선물까지 받게 되니 모두가 만족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해족들의 얼굴엔 대놓고 이렇게 써 있기까지 했다.
‘저희는 반대를 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백리칠이 모든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에서 저희가 반대되는 입장을 밝혔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을 겁니다.’
진양은 그제야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백리칠이 교인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해족 강자들이 억지를 부리며 백리칠을 데리고 갔던 적이 있다.
망할 교황은 백리칠에게 소공주라는 봉호까지 내렸다.
직접 입 밖으로 말을 꺼낸 적은 없었지만 사실상 자신이 백리칠의 아버지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대황의 해족들의 반응과 향계 해족들의 반응을 보니 대충 이해할 수가 있었다.
향계는 비록 대황보다 훨씬 작은 곳이긴 하나 세계의 대부분이 바다로 뒤덮여있다.
육지가 차지하고 있는 건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용예와 인간과 화해하고 나니 그 뒤로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나 마찬가지였다.
진양은 능숙한 언사로 모든 이들을 휘어잡았다.
다만 이득이 될 만한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말했다.
자신이 지금 전도를 하는 것은 일단 이익을 나눠주는 것이고, 앞으로 대영의 시대가 오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서로가 공존을 하게 될지 등에 대해 얘기했다.
해족들은 진양의 말을 듣고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졸다가 멋쩍은 미소를 짓는 자도 있었다.
때문에 진양의 변명은 묵향을 설득할 때와는 다소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