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47
1447화 호량의 주인
인간 강자들이 원하는 것은 향계에 채워진 족쇄를 푸는 것이다.
향계를 떠나 새로운 길을 찾는 건 차선책이다.
향계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다.
하지만 요족에겐 백날 이런 얘기를 해봤자 관심을 끌기 어렵다.
차라리 옥도 수백만 근을 선물로 준다고 하면 모를까.
대황에 찾아온 전대미문의 평화의 시기 덕분에 각종 단약과 자원들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얘기해 준다고 하면 모를까.
어쨌든 진양은 후일 이곳이 대영 신조의 영토가 된다고 해도 각자의 자치권은 인정해 줄 것이며, 대영이 정한 선을 넘지 않는 한 원하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거래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해족들은 하나같이 ‘왜 그걸 이제야 얘기합니까?’라는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곧장 진양에게 고개를 숙였다.
대영 따위는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이들이 인정하는 건 오직 진양뿐이었다.
‘하여튼 게으른 녀석들이라니깐. 어떻게든 간단한 방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니.’
하는 수 없었다.
진양도 그저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통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향계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특산품들이 존재한다.
단순히 향 제작에 필요한 재료만 해도 대부분이 대황에선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어쨌든 이들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략적인 방향만 보면 크게 문제될 건 없을 듯했다.
그 이후로도 진양은 일 년 정도 더 머물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대황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백리칠은 진양과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아쉽게도 수련을 위해선 향계에 남는 수밖에 없었다.
넓은 바다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향사의 전승을 익히기 위해선 이곳에 계속해서 남아있어야만 했다.
결국 진양은 그녀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도록 엄청난 양의 음식을 만들어주고 나서야 간신히 그녀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
사실 이제는 원하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설득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 * *
해저로 들어온 진양은 거대한 호량 조각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량 조각은 점점 더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두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이것을 부순다면 향계는 또다시 고립 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이것을 보호해야 한다.
다만 어떻게 보호할지가 문제였다.
진양은 고민 끝에 잠시 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조각 안에 진원을 흘려 넣어 마치 법보를 강화시키는 것처럼 강제로 강화시켰다.
다른 재료를 섞게 되면 호량 조각의 신묘함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선 가장 간단하면서도 믿을 만한 방법은 이것뿐이었으니까.
효율은 낮고 소모가 크긴 했지만 그런 것 따위는 문제 될 게 없다.
어느 정도 진원을 흘려넣다 보니 자신의 방식이 통로 자체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양의 힘은 오히려 대황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확인을 마친 진양은 신수의 뿌리와 이어진 통로를 통해 다시 대황으로 돌아왔다.
* * *
신수 아래에 앉아 일념을 움직이니 신수를 중심으로 진원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진원은 사방으로 퍼져가며 통구주 일대를 통째로 연화시킬 준비를 이어나갔다.
강화를 하게 된다면 통구주를 중심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신수의 꼭대기에 새롭게 자라난 가지들은 거대한 하나의 취령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대황으로 쏟아져 드는 일월성휘를 영기로 바꾸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새로 자라난 잎사귀의 엽백도 취령진의 방향에 따라 변화했다.
덕분에 신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진양이 일념을 움직이자 신수 주위를 돌던 영기가 뿌리로 모여들었다.
이어서 거대한 폭포를 이루며 진양을 향해 쏟아졌다.
방대한 양의 영기가 진원으로 바뀌었고, 끊임없이 흙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호량 조각과 호량도 사이의 연결고리를 철저하게 연화시켰다.
방대한 양의 진원이 마치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나오며 조각 안으로 흘러들었고, 끊임없이 조각을 강화시켰다.
이어서 그것은 신수의 뿌리를 통해 향계의 조각과 은월계의 조각까지 흘러들어 한층 더 조각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세 개의 조각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수만 리에 이르는 조각은 마치 법보와 같이 한층 더 견고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진양의 진원이 끊임없이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강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것은 법보를 연화시키고 강화시키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자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도기들이 이런 방식을 통해 점차 더 강한 힘을 갖게 된다.
소문난 고수들이 기껏해야 한두 개의 강력한 법보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수들이 문파 내의 법보의 사용권을 후손들에게 넘기는 것도 일종의 게으름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것을 강화시켜줄 ‘호구’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면 후손은 강력한 법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로 인해 높은 확률로 법보가 유실되기도 한다.
진양도 이런 호구를 하나 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지금 진양이 하는 일을 대신해서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힘의 소모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완전히 안정기에 들어서지 않은 초반에는 가장 강력한 분신을 꺼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소모량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쯤 되니 자신도 화신을 하나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신은 시작점은 다소 낮긴 해도 스스로 수련을 이어나가며 강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론상으로 본다면 화신은 본존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절세 고수들이 화신을 두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심심해서도 아니고 화신의 단점을 전혀 보지 못해서도 아니다.
모든 단점을 짓누르고도 남을 만한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단념했다.
화신이 죽으면 본존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이 간다.
아무렇게나 죽게 내버려 둬도 되는 분신과는 차원이 다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분신의 경우 기껏해야 머리카락 한 올 날리는 게 전부지만 화신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 * *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안정기에 들어서기 시작하자 진양은 뿜어내는 힘의 양을 점차 줄여가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가희의 모습이 보였다.
“호량 조각만 덜렁 놓여있는 게 썩 불안해서 말이에요. 괜히 부서지기라도 했다간 길이 끊어져 버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강화를 시키고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그렇잖아요. 지금만 해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끼치겠어요?”
“그렇군요.”
가희는 진양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잠깐의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아예 호량의 주인이 되는 건 어때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호량을 대영이 쥐고 있는 건 대영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독점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장차 더욱 많은 세계와 연결이 되면 분명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겨날 거고요.
하지만 진양이 호량을 쥐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대영 사람도, 대영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모두가 만족할 거예요.”
사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진양의 입장에서 보면 왼쪽 주머니에 있던 돈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겨놓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든 것이 대영 신조에 치중되었는 것보단 적절하게 분산되어 있는 게 좋다.
제약은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향계의 해족과 요족들의 의견을 떠올리며 잠깐의 고민을 이어나간 끝에 진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영이 영토를 갖고 다른 문파들은 그에 따른 이익을 누리는 조건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호량이라는 중요한 곳마저 대영이 쥐게 된다면 사실상 대영이 그들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아직 발전하는 단계라 뚜렷하게 나타나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다 보면 호량은 한층 더 중요한 곳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돈줄과 목숨줄이 호량과 연관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곳은 모두가 믿을 만한 중간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보자면 이곳은 최대한 중립으로 유지되는 게 최상이다.
당장은 대영이 쥐고 있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다.
가희가 음모를 꾸민다거나 이를 통해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압박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대영에 이러한 생각을 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되면 호량은 모든 혼란의 근원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거대한 세력조차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무너지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대영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제약을 가할 필요가 있다.
아예 혼란의 싹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진양은 어느 정도 명성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인물이다.
입지도 충분하고, 산 자의 세계나 죽은 자의 세계에서도 흔들린 적 없는 인물이다.
이 정도라면 모두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결과였다.
“좋습니다. 제가 호량도의 주인이 되도록 하죠. 여전히 대영 신조의 영토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대영에선 전혀 간섭할 수 없다는 거죠?”
“맞아요.”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옥새가 찍혀있는 문서를 하나 진양에게 건넸다.
“모든 건 다른 세력과 정한 것과 같아요. 다만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이 대영 신조의 영토라는 것 외에 모든 주도권은 진양이 갖게 된다는 것뿐이죠.
영토와 관련된 문제를 제외한 다른 문제에 대해 대영 신조가 간섭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진양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죠.
초장에 확실하게 규칙을 세워놔야 앞으로도 아무 문제 없이 유지될 거예요.”
진양은 문서를 건네받으며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그녀는 애초부터 모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던 듯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 진양은 대답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문서에 적힌 내용들도 상당히 주도면밀했다.
애매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한 조건들이었다.
심지어 진양이 지금부터 대영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고 선포하더라도 문제가 될 게 없을 정도였다.
호량을 대영의 영토에서 분리시키는 것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진양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진양은 가볍게 들고 있던 문서를 지면에 내려놓았다.
이어서 문서는 황금빛이 되어 대지 안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