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비밀이 무엇일까?
준비된 연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술과 맛 좋은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운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진양은 자신의 앞발을 핥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어르신, 저랑 내기 하나 하죠. 한 판에 새구이 열 마리를 걸도록 하죠.”
고양이는 진양을 째려보며 관심 없다는 듯 계속해서 앞발만 핥았다.
“그러지 말고 한 판만 하자니깐요.”
그러나 고양이는 앞발을 핥은 뒤 진양의 어깨에 매달린 채 잠들어버렸다.
“싱겁긴……”
진양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때, 나귀가 씨익 웃으며 진양 곁으로 다가왔다.
진양은 나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단약을 한 알 꺼내 건네주었다.
단약을 받은 나귀는 금방이라도 기뻐서 날아갈 듯한 모습이었다.
진양은 안락의자에 누운 채 바깥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니까 안심하라는 뜻에서 대장거에게 그런 말을 했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대장거는 갑자기 절대로 일도협에는 가지 말라며 진양을 말렸다.
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한참을 말리고 나서 갑자기 일도협에서 가장 가볼 만한 곳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유적 탐험 같은 걸 좋아한다고 말한 건 단순히 안심시키기 위해 던진 말에 불과했는데, 그 말을 정말로 믿기라도 한 거란 말인가?
대장거는 겉으로는 말리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으나 사실 속뜻은 전혀 달랐다. 일도협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좋은 것들이 있으니 어서 가보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임 삼장거가 그곳에서 죽었다면서 진양을 그곳으로 떠밀려 하다니.
이건 대놓고 진양을 죽이려 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렇게 진양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 하인이 책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가지고 찾아왔다.
상자에는 종이로 만들어진 책 외에도 옥으로 만들어진 옥간(玉簡)도 꽤 많이 있었다.
“구 장거님, 대장거님께서 보내신 책들입니다.”
하인이 떠나고 나자 진양은 곧장 책을 꺼내 훑어보았다.
대장거가 보내온 책은 전부 횡단산맥과 일도협에 대한 내용이 적힌 책들이었다.
대부분 수도사들이 직접 기록한 친필 서적들이었다.
대략적으로 책을 훑어본 진양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확실히 대장거가 보내온 책들은 전부 쓸모 있는 책들이었다. 일도협 깊은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도협 내에 어떤 독충이 있는지, 얼마나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해독을 해야 되는지, 그리고 음하가 언제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등등.
여러 방면으로 꽤 자세히 기록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진양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상호의 일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째서 대장거는 진양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인가?
겉보기엔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경고를 하긴 했지만.
속마음은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런 자세한 정보까지 보내는 걸 보면.
탐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얻고도 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대체 왜 날 죽이려는 거지? 날 죽이면 도대체 어떤 이득을 보길래 이러는 거냐고?’
이곳에 온 첫날 이장거는 진양을 죽이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장거까지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진양은 머릿속이 짙은 안개로 가득 들어찬 기분이었다.
‘아무런 은원도 없고 서로의 이익이 맞부딪치는 것도 아닌데 둘 다 왜 나를 죽이려는 거지?’
한참의 고민 끝에 답을 찾지 못한 진양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일도협으로 가서 양범에게 장해도군의 유물을 빼앗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 *
대장거가 보내온 자료들을 읽고 숙지하는데 무려 칠 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충분한 준비를 마친 진양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곧바로 출발했다.
만영상호 대문을 나선 진양은 갑자기 돌연 듯 고개를 돌려 만영상호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순간 머릿속에 빛이 번쩍이며 스쳐 지나갔다.
진양은 두 망할 인간들이 왜 자신을 죽이려는 지에 대한 답변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알 것만 같았던 것이다.
‘이익!’
그렇다. 대부분의 수도사들이 싸우는 이유는 바로 이익 때문이다.
특히 아무런 은원도 없는 상태에서 이유 없이 악의를 가진다면 그건 무조건 이익 때문이다.
진양은 만영상호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는 글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아주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바로 만영상호에 모인 이들은 모두 수도사 세계의 상인이라는 점이다.
상인은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이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상인이 있다.
그렇기에 충분한 이익만 보장된다면 상인들은 무엇이든 할 것이다.
다른 세계로 넘어오긴 했으나 이건 불변의 진리나 마찬가지다.
성해주에서 일부러 만영상호의 고위층에게 정보를 흘려주었던 일이 생각났다.
당시 진양은 상인은 이익을 쫓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 정보가 만영상호에 절대적으로 이득이 되는 정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그렇기에 만영상호의 고위층들이 얌전히 자신에게 협조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창주로 넘어온 진양은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거와 이장거가 이곳에서 꽤 높은 서열을 가진 건 사실이었으나 그들은 장거이기 이전에 상인이었다.
즉, 철저히 이득에 의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러한 면에서 생각해 보니 풀리지 않던 수많은 문제들이 한 번에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만영상호의 고위층들이 진양을 이곳으로 보낸 건 이전에 있던 일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걸 철저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보면 파격적으로 인사를 감행하며 진양을 진창주의 삼장거로 앉혀두는 건 사실 그들에겐 일거양득이나 다름없다.
진양을 진창주로 보내면 두 장거가 벌이는 수상한 일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위층과 대면할 것도 없이 곧바로 임명서만 달랑 전달되었다.
이 말은 즉 진양의 생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진양이 진창주로 가게 된다면 생사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무언가 반응이나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면 두 장거가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며 못살게 굴 것이다. 만약 살고 싶다면 계속해서 반항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죽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다. 앞서 말한 비밀을 완전히 지킬 수 있게 되니 말이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 내에 진창주의 장거가 둘이나 연달아 죽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만영상호의 고위층들은 대국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도 순조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실력 있는 강자를 보내 단칼에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면 이곳의 모든 것을 손에 넣게 될 뿐만 아니라 고위층이 아랫사람들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호의 입장에서 내부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건 안정적으로 이익을 얻기 위한 조건 중에 꼭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진양은 기둥에 쓰여 있는 글자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혼자 생각을 통해 알아낸 건 이것이 전부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 더 있을 것이다.
최근 며칠 동안 대장거와 이장거가 계속해서 진양을 간 보는 것으로 보아 무슨 짓을 해도 그들은 진양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듯했다. 설령 상호의 일이나 권력 따위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고 삼장거라는 이름도 그저 감투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말은 곧 진양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두 사람의 이익에 심각한 위협이 가해진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그들이 위협을 느끼는 건 삼장거라는 신분 때문이지 진양 때문은 아니다.
“비밀창고……”
진양은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앞서 생각한 것들을 종합하여 삼장거의 신분을 고려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바로 비밀창고였다.
진양이 찾고자 하는 답은 아마도 만양상호의 진창주 비밀창고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호 규정에 따라 귀한 물건들이 팔리지 않은 경우, 혹은 그 물건을 잠시 보관하게 되는 경우 무조건 비밀창고에 보관하게 되어있다.
한 주(州)를 통틀어 비밀창고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오직 세 장거뿐.
이 외에 다른 사람은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날아간다.
비밀창고에 걸려있는 진법 금제와 기관 함정은 손님을 자주 맞이하는 가게에 설치된 것처럼 친절하지 않다.
가게에 걸려있는 진법 금제는 사실 손님에게 경각심을 주거나 유사시에 시간을 끌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가게는 많은 손님이 찾는 곳인 만큼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려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누군가 실수로 발을 들였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단 한 번의 사고로도 만영상호의 명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하지만 비밀창고에 걸려있는 진법 금제는 다르다.
비밀창고에 걸려있는 진법 금제는 순수히 사람을 가두거나 죽이기 위한 것들이다.
감히 불순한 목적을 갖고 몰래 비밀창고로 발을 들이는 순간, 그들을 맞이하는 건 십중팔구 죽음뿐일 것이다.
비밀창고는 한 주의 모든 재화가 보관되어 있는 곳인 만큼 만영상호에선 각별히 신경을 썼다.
보잘것없는 하급 영석 하나를 가져가더라도 반드시 세 장거 중 한 사람이 직접 들어가야만 안전하게 가지고 나올 수 있다.
진양의 얼굴에 괴상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원래대로라면 비밀창고를 둘러볼 계획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땐 구승의 신분을 버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슬슬 구승이라는 신분을 버릴 때가 된 것이다.
비밀창고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명부에 따로 기록이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세 장거가 매번 출입할 때마다 무엇을 가져갔고 무엇을 넣었는지까지 세세하게 현장에서 기록이 이루어진다.
아무런 은원도 없는데 이유도 없이 진양을 죽이려고 한다고?
만약 두 장거의 이러한 행동에 대한 답이 비밀창고에 있다면 답은 오직 한 가지.
바로 그 물건이 기록되지 않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무슨 물건인지는 모르지만 두 장거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구는 것만 봐도 심상치 않다는 건 확실했다.
아직 서로를 극도로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장거와 이장거 모두 이 물건을 손에 넣지 못한 게 확실했다.
생각해 보면 삼장거도 이러한 분쟁에 휘말려 죽게 되었을 것이다.
일도협에서 죽었다고?
그건 전부 지어낸 얘기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양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나귀를 타고 계속해서 걷기 시작했다.
성 밖으로 나온 진양은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후- 하고 불었다.
그러자 진양과 똑같이 생긴 분신이 나타나 나귀의 등에 앉았다.
“일도협 쪽으로 가. 급할 거 없으니까 천천히 가.”
진양은 분신을 태운 채 멀어지는 나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금제를 펼쳐 자신의 모습을 숨겼다.
나무 위로 올라온 진양은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