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탈탈 털다
진양은 또다시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흑구의 머리와 등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던 나무 정령이 갑자기 바닥으로 쭉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그리고 짧은 다리로 통통해진 배를 뒤뚱거리며 진양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흑구는 앞발로 나무 정령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나무 정령은 잠시 앞발에 매달려 노는 듯하더니 이내 돌연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진양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흑구도 말리지 않았다. 대신 잔뜩 경계하며 마치 보호자처럼 나무 정령의 뒤에 딱 붙어 천천히 진양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진양은 눈빛을 반짝이며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크르르……”
진양의 행동에 흑구는 한층 더 경계했다.
그러나 진양은 개의치 않다는 듯 손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나무 정령이 진양의 손바닥 위로 완전히 올라오고 나서야 천천히 손을 들어 녀석을 자신의 앞으로 데려왔다.
흑구는 조용히 앞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한참 진양을 노려보던 흑구는 진양이 나무 정령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드러냈던 이빨을 다시 감추었다.
이어서 흑구는 천천히 진양의 어깨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고양이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거대한 콧구멍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란 고양이는 털을 바짝 세우며 펄쩍 뛰었다.
땅 위로 떨어진 고양이는 그제야 그것의 정체가 털 없는 흑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을 놀라게 만든 흑구에게 잔뜩 화가 난 고양이는 고민할 것 없이 곧바로 앞발을 날렸다.
흑구는 반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콰광-!
날아간 흑구가 석벽에 부딪히며 거미줄과 같은 실금이 벽에 생겨났다.
정신을 차리며 다시 일어난 흑구의 눈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주위에 새까만 살기가 마치 안개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흑구가 우렁차게 짖으며 고양이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퍽-!
고양이에게 또 한 대 얻어맞은 흑구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날아가 석벽에 처박혔다.
그러나 흑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진양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흑구가 생각 이상으로 맷집이 좋았기 때문이다.
힘 좋은 고양이에게 한 대 얻어맞은 걸로도 모자라 현철만큼 단단한 흑요석이 부서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도 흑구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진양은 익숙해진 듯 무표정으로 땅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이는 흑구를 바라보았다.
고양이에게 한참 얻어맞은 덕분에 그 여파로 부서진 흑요석이 비밀창고를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흑구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편 고양이 역시 지쳤는지 진양의 어깨에 축 늘어진 채 불만 가득한 얼굴로 흑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절대로 발에 떨어지지 않는 개똥이라도 밟은 듯한 얼굴이었다.
싸움이 대충 마무리되자 진양은 씨익 웃으며 흑구 앞으로 다가갔다.
흑구는 또다시 경계하며 으르렁대기 시작했으나 그러건 말건 진양은 할 말만 했다.
“조금 못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맷집은 꽤 쓸만하네. 너, 나랑 같이 여기서 나가는 건 어떠냐? 어차피 내가 이곳에 있는 물건을 전부 쓸어가도 넌 나를 막을 수 없을 거야. 물건이 전부 털린 걸 알면 과연 사람들이 널 가만히 둘까?”
흑구는 아무런 반응 없이 계속해서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진양은 자신의 왼쪽 어깨에서 머리카락에 매달려 놓고 있는 나무 정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괜히 그런 반응 보일 필요 없어. 너도 알겠지만, 이 녀석은 자연에서 태어난 존재라 감각이 매우 예민하다고. 내가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너보다 이 녀석이 훨씬 더 잘 알겠지. 나와 함께 가면 앞으로도 이 녀석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거야.”
“크르르……”
흑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으르렁댔다.
“이 녀석아, 여긴 먹을 것도 없다고. 설마 이 녀석을 굶겨 죽이기라도 할 셈이야?”
진양은 을목정기 결정을 꺼내 흑구의 앞에 흔들거렸다.
흑구는 눈앞을 왔다갔다하는 을목정기 결정을 바라보며 잠시 갈등에 빠졌다.
흑구는 마침내 더 이상 으르렁대지 않았고 진양을 노려보던 악의 가득한 눈빛도 거두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계를 늦추진 않았다.
나무 정령이 다시 흑구의 머리로 넘어오고 나서야 그는 진양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거두었다.
흑구는 멍하게 입을 벌린 채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며 놀고 있는 나무 정령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흑구는 진양을 따라 이곳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훅구가 결정을 내리자 진양은 다시 한번 비밀창고 전체를 둘러보며 챙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챙겼고 챙길 수 없는 건 미련 없이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그렇게 다시 석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진양은 갑자기 제자리에 선 채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돌연 무언가 떠오른 듯 뒤돌아서더니 챙길 수 없는 물건을 전부 주워 한 주머니 안에 넣기 시작했다.
물건을 모두 챙긴 진양은 빠뜨린 것이 없는지 살피고 나서야 석문으로 향했다.
석문은 곧바로 열리지 않았다.
대신 석문에 있던 두 마리의 보소 석상이 다가와 진양을 뚫어져라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진양을 살피는 듯싶더니 한 보소 석상이 커다란 두루마리를 토해냈다. 대략 사람의 키만 한 거대한 두루마리였다.
두루마리는 진양이 있는 쪽으로 스스로 날아오며 펼쳐지기 시작했다.
두루마리에는 비밀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의 이름과 정보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보소 석상이 대략 두 척 되는 주홍대필(朱紅大筆)을 토해냈고, 그것은 두루마리와 마찬가지로 알아서 진양의 앞으로 날아왔다.
장거들은 이곳을 드나들 때마다 무엇을 가져갔는지 반드시 기록해야 된다. 물론 가지고 들어와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게다가 보소 석상이 비밀창고 입구를 지키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이곳을 강제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강제로 떠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얼마나 깊은 지하에 있는지 모를 흑요석 광맥이 위치한 곳을 찾아 강제로 새로운 통로를 뚫고 그곳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면 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건 이론상으로나 가능하지 실제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흑요석 광맥이 있는 곳은 결코 지상낙원이 아니다. 십중팔구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험준한 장소다.
진양은 둥둥 떠 있는 붓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보소 석상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알아? 사실 난 망자들의 천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이거든. 그리고 내가 여기 아무런 대책도 없이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너희들 어차피 죽었잖아. 지금 남아있는 건 이성 없는 잔혼뿐이고. 그러니 차라리 날 도와주고 성불하도록 하렴.”
진양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우두커니 서 있는 보소 석상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순간 기술이 발동되며 두 개의 하얀 광구가 떠올랐다.
그러자 석상에 있던 기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고, 남아있던 잔혼의 흔적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영성을 잃은 석상은 회백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곳곳에 균열이 생기는 듯싶더니 돌조각이 되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진양은 두 개의 하얀색 광구를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기능서는 아니었다. 사라진 보소들이 살아있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기억 장면이었다.
기대하던 보물에 대한 단서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기억 속의 장면은 그저 보소들이 어렸을 때 즐겁게 놀던 장면이 전부였다.
진양은 다소 측은한 눈빛으로 돌조각이 된 석상을 바라보았다.
아마 죽은 뒤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유일하게 남은 기억이 이것뿐인지도 모른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주머니에서 관을 꺼냈다. 그리고 부서진 돌조각을 관에 주워 담았다.
‘습득 능력을 사용했으면 반드시 시신을 수습해 줘야 되는 법.’
이건 그가 반드시 지켜야 할 직업상의 윤리와도 같았다.
설령 그 상대가 석상에 붙어있던 보소 후예의 잔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두 보소를 성불시키고 나자 두루마리와 거대한 붓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습득되었다.
진양은 조심스럽게 석문을 밀어 열었다.
석문 밖으로는 공허 가운데 무시무시한 혼란의 폭풍이 휘황찬란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진양은 죽은 보소를 끝없는 허공으로 안장하는 셈치고 조용히 관을 허공으로 흘려보냈다.
관을 흘려보낸 진양은 허공에 떠 있는 석판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진양은 걸어가면서 주머니에 있던 습득 불가능한 보물들을 허공을 향해 던졌다.
“쯧쯧, 정말 아깝군. 이 정도면 만영상호의 진창주 본부가 있는 성을 몇 개나 살 수 있을 정도일 텐데.”
습득할 수 없는 물건인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만영상호 놈들이 물건에 이상한 추적 장치나 증표 같은 걸 남겨놨을 수도 있기에 함부로 가져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물건은 파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물건은 진양의 능력으로 파괴할 수 없는 물건이기에 지금으로선 허공에 던져버리는 게 최선이다.
‘뭐, 허공에서 이 물건들을 다시 찾아온다면 그건 인정해줘야지.’
하지만 진양은 허공에서 물건을 찾아오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진양이 걷고 있는 돌다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위험이 도사리는 곳 투성이였다. 주위에선 알게 모르게 힘의 파동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누출이 된다면 순식간에 백 리 밖까지 폐허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위험한 곳은 설령 허공을 횡단하는 공법을 가진 강자라고 해도 함부로 오지 않는다.
그렇게 주머니 안에 있던 물건을 전부 처분한 진양은 마지막으로 남은 주머니도 파괴해버렸다. 그리고 남은 조각들을 허공으로 흩뿌렸다.
신해 수도사가 경지를 돌파하고도 남을 정도의 양의 자원을 전부 허공에 날려버렸으나 진양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훨씬 더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시 만영상호 뒷마당으로 돌아온 진양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며 아무도 지켜보는 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흑구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작아질 수 있겠어? 이렇게 큰 모습을 하고 있으면 데리고 나가기 조금 난처한걸.”
진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흑구는 고개를 들어 진양을 바라보는 듯하더니 몸집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작은 강아지만 한 크기로 줄어든 흑구는 진양의 어깨 위로 뛰어올랐다.
그렇게 진양은 흑구를 데리고 진법 금제가 겹겹이 깔린 곳을 통과했다.
다행히 진법 금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