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12
1512화 잘못된 기회를 잡고 말았다
십방 신조가 아닌 곳에서 십방 대제를 철저하게 죽음에 이르게 만들려면 모든 조건이 맞아야만 한다.
단 하나도 빼놓을 순 없다.
현재 가장 중요한 권력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장 십방 대제를 수십 토막으로 도륙을 낸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십방 대제가 태일 천제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십방 대제라면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리 없다.
그렇다면 권력을 자신의 몸에 녹여 넣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구상화된 실질적인 권력을 몸에 가지고 있지 않을 순 없다.
이대로라면 승패는 전혀 갈리지 않게 된다.
권력만 무사하다면 육신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도 충분히 부활할 수 있다.
상대의 수준을 고려해 본다면 대비책을 남겨놨을 확률도 상당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십방 신조가 아닌 곳에서 권력의 힘도 없이 진양을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나약한 상대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도리를 모를 리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십방 대제는 태일 천제의 본존이 맞다.
이렇게 되면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온 이유는 단 하나뿐.
부득이한 이유로 천제의 권력을 자신의 몸에 녹여 넣을 수 없었던 게 분명하다.
구상화된 실체를 소지하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무모한 짓을 했다는 건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훨씬 더 큰 함정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또 다른 가정도 있다.
그는 처음 진양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태일 천제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했던 모든 말들이 모두 거짓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즉, 그는 십방 천제이긴 하나 태일 천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해 있는 존재일 뿐.
진짜 태일 천제가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태일 천제가 가진 열 개의 권력이 모두 봉인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태일이 아직까지도 부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아니, 어쩌면 부활한 순간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다.
만약 두 번째 가정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골치 아프게 흘러가게 된다.
지금까지 수집해온 모든 정보, 그리고 온갖 판단들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태호가 죽은 뒤부터 수집해온 태일에 관한 모든 정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뒤집어야 한다.
다만 십방 대제가 태일 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나서서 시선을 끌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그가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 분명 자신에게도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십방 대제가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태일 천제가 유리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오히려 상대의 시선을 확실하게 끌어두면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경솔하게 십방계로 들어오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즉, 진양은 상대의 계략에 보기 좋게 넘어가며 수백 년이라는 시간을 날렸다는 뜻이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십방계에는 발을 들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십방 대제는 그동안 뭔지 모를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킨 게 분명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십방 대제가 태일 천제라는 사실 외에 다른 부분은 전부 진실일 것이다.
모든 건 십방 대제가 태일 천제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젠장…….”
권력이 없으면 십방 대제를 죽인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어쨌든 태일 천제는 어딘가에 살아있을 테니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이어가려고 하거나 추측을 하려고 하면 수만 가지의 음모론이 떠올랐다.
예를 들어, 만약 첫 번째 가정대로 눈앞에 있는 존재가 십방 대제이자 태일 천제의 본존이라고 할 경우.
권력도 없는 대제가 십방 대제의 영토를 벗어나는 건 진양에게 목을 바치러 오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방식을 통해 그를 죽이도록 만드는 것.
즉, 죽음 자체가 그의 목적인 것이다.
어쩌면 태일 천제가 신조 대제의 신분이라는 족쇄에 발목이 붙잡혀있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특정 방식으로 특정 인물에게 죽음을 맞이해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예전에 태호도 그랬던 적이 있다.
겉으로는 뒤로 물러서는 척을 했었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해도 벌써 수십 가지의 음모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진양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사자결을 거둬들였다.
어쩌면 자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상대의 음모일 수도 있다.
때문에 진양은 십방 대제에게 검을 휘두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래서 거물급 인물들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것이다.
겉으로는 상대가 이긴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뒤에선 이미 온갖 재미를 다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이 적의 손에 놀아났다는 사실도 모른 채 좋아하기만 할 뿐이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래서 남을 함부로 얕잡아보면 안 되는 거군.’
자신이 믿는 구석이 있는 만큼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계획대로 가는 게 좋을 듯했다.
상대의 장단에 맞춰주는 것이다.
십방 대제가 태일 천제의 본존인지, 아니면 기껏해야 화신에 불과한지.
이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생각을 이어나갈수록 더욱 깊은 함정에 빠질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시도부터 해 보자.’
애초에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간단히 일 검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득 진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이든 일 검 한 방이면 신이든 천제든 모두 처치해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일을 벌이고 나도 마음만은 후련할 텐데 말이다.
진양은 망자의 세계의 힘을 빌려 십방계 전체를 뒤덮고 있는 빛을 바라보았다.
빛은 여전히 천천히 흐르고 있었지만, 모든 생명체들의 눈에는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생명체들의 머릿속에서 이 순간의 기억이 잘려 나갔다.
진양의 흑검이 최대치의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 누구도 그의 일 검을 막을 수 없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십방계를 뒤덮고 있던 빛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생명체들의 이성이 강제로 꿈 세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한한 꿈 세계 내부.
먼저 수많은 생명체들이 나타났다.
이어서 다소 흐릿한 십방계의 모습이 나타났다.
진양이 만든 십방계 정보 나무도 구체적인 상을 갖추며 십방계 북부에 뿌리를 내렸다.
이 모든 것을 기반으로 복제 십방계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십방계로 변화했다.
진양은 이번 일을 위해 망자의 세계가 아닌 곳에서 세계의 힘을 빌렸다.
그러나 망자의 세계의 영역을 넓히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번 일로 인해 앞으로 세계의 힘을 빌리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양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방법 외에는 십방계의 강자들을 복제 십방계로 끌어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딴짓만 하는 건 아니었다.
거짓만으로 망자의 세계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반드시 설득이 될 만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그저 이를 위한 기반을 닦는 것뿐이다.
이번에 십방 대제가 보여준 행동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진양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가려다가 그만 잘못된 기회를 잡고 말았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한 방에 깊게 숨겨진 진상을 타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한 방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야 한다.
* * *
복제 십방계 내부.
모든 것은 진양이 검을 휘두를 때의 순간 그대로 복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대로 모든 게 멈춰있었다.
겉보기에는 방금 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대담하게 십방 대제를 향해 검을 휘두를 수가 있었다.
그의 검이 상대의 미간을 꿰뚫었다.
물리적인 공격과 영혼 부분에 대한 공격은 모두 무시된 채 오직 순수하게 기억을 공격하는 데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은 육신과 영혼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육신과 영혼이 가진 흑검에 대한 저항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진양의 일 검이 십방 대제의 미간을 꿰뚫는 순간.
멈춰있던 모든 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방 대제의 동공이 풀렸다.
그의 이성은 그곳에 박혀있었다.
나타난 이성은 소멸되었지만 그의 본능은 여전히 스스로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기 무섭게 진양은 육신의 힘으로 그의 사지를 찢고 뼈를 부수었고, 육신에 흐르는 모든 힘을 파괴해버렸다.
십방 대제는 아슬아슬하게 숨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진양이 흑검을 들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돌연 파괴된 육신과 너덜너덜해진 이성이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본 뒤 진양의 수중에 들린 흑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믿고 있던 것이 그것인가? 참으로 안타깝군.”
“역시 그랬군.”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설령 상대의 이성을 꿈 세계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하더라도 흑검으로 베어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상대가 만반의 준비를 했을 거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다.
“대몽진경인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일정 범위 내에서는 이미 과거의 몽사를 뛰어넘은 수준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
회복을 마친 십방 대제는 복제된 십방계를 꿰뚫어 보았다.
진양이 흑검을 털며 말했다.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군요. 현재 이곳에 있는 건 당신의 이성에 불과합니다만, 제 검은 마침 이런 쪽으로 특화되어 있어서 말이죠.”
진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가 진실을 꿰뚫어 보든 못 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복제된 십방계가 존재하는 의미는 단지 정보를 수집하려는 목적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