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11
1511화 다소 미묘한 결론
신수 아래에 도착한 진양.
그는 조용히 통로를 바라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만큼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
십방계의 호량 조각을 완전히 손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신으로도 연화시키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진양이 원하는 건 연화 과정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완전한 소유였다.
어느덧 그의 등 뒤로 다가온 몽의가 한마디 했다.
“꼭 직접 가야만 하겠나?”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일만큼은 반드시 제가 직접 해야 합니다.”
“나도 함께 가겠네. 시간을 벌어주도록 하지.”
몽의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진양의 곁에 서 있기만 했다.
더 이상 막지도 않았다.
아니,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진양도 마찬가지다.
그가 마음먹고 따라가려 한다면 진양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전 그저 땅 한 조각을 훔치려는 것뿐입니다.”
몽의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진양도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양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십방 대제를 죽일 수 없다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는 호량 조각은 십방 신조의 영토 안에 포함되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십방 대제 역시 그곳에서는 진양을 죽일 수 없다.
진양은 발걸음을 옮기며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으로 본존이 십방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통로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선천충각이 조용히 다가와 입구와 한 몸이 되었다.
진양이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가볍게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체내의 힘이 충격파처럼 호량 조각 전체를 휩쓸었다.
대지가 뒤흔들렸다.
진양은 곧장 손을 뻗어 이곳의 호량 조각을 완전한 자신의 것으로 연화시켰다.
이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도군 강자가 친히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진양의 눈빛이 마치 화살처럼 상대의 두 눈을 향해 파고들었다.
진양의 목소리가 마치 번개와 같이 상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잊어라!”
순간, 구름 뒤에 숨어있던 도군의 동공이 풀렸다.
멍해진 눈빛과 함께 그의 기억은 강제로 진양이 나타나기 이전으로 되돌려졌고, 더 이상은 이어지지 않으며 그 시점에 고정되었다.
그는 마치 온몸에 굳어버린 것처럼 제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상대는 도군.
그리고 진양도 같은 도군이다.
그러나 이 순간 발현한 진양의 도는 강제로 상대의 도를 제압해버렸다.
한 번 쳐다본 것만으로도 승패가 갈린 것이다.
이쯤 되니 진양의 걱정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비록 경지는 계속해서 도군에 머물고 있긴 했지만, 그의 실력은 이미 도군의 실력을 월등히 뛰어넘은 상태였던 것이다.
“사숙님, 딱 한순간이면 됩니다.”
“알겠네.”
몽의는 더 이상의 긴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양이 무엇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뒤.
어두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대문이 허공에 나타났다.
굉음과 함께 문이 열리며 십방 대제가 걸어 나왔다.
그는 지상에 있는 진양을 내려다보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발을 내딛는 순간.
부문이 나타나며 방원 만 리 내의 땅을 전부 뒤덮었다.
순간 모든 공간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대황과 연결된 통로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본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개자식. 보자마자 살수부터 쓰다니. 되든 안 되든 일단 시도라도 해 보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말은 어쩌면 진양을 유인하기 위해 그냥 던진 말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한 번에 모든 걸 삼켜버릴 수 있는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면 제안 같은 걸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 한발 물러서며 제안을 했던 것이다.
과연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만약 당장 십방 대제를 죽일 방법이 있었다면 진양 역시 제안 따위는 신경조차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대형 세력 간의 싸움에서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체면 따위는 아무 힘도 없는 천진난만한 약자들이나 챙기는 것.
“십방 대제,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죠?”
진양의 오른손에는 흑검이, 왼손에는 흑옥 신문이 나타났다.
이어서 흑옥 신문으로 흑검의 손잡이를 내려쳤다.
이성은 곧장 흑옥 신문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망자의 세계의 변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실험을 해 보려는 것이다. 난 세계의 힘이 필요하거든.”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워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요.
근데 이곳이 당신의 십방 신조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계신가요?”
“허허…….”
십방 대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진양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검을 휘둘렀다.
검은빛이 흑옥 신문에 나타났다.
빛은 흑검의 표면을 따라 이어졌다.
진양의 모든 힘을 담은 일 검이 뻗어지고.
두 세계의 충돌이 먼저 일어났다.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
마치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과도 같았다.
그러나 곧바로 십방계는 제압되기 시작했다.
망자의 세계에 속한 힘은 흑검의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망자의 세계는 황급히 자신의 땅을 넓히려고 했다.
그러나 그 힘은 곧바로 완전히 진양에 의해 변해버렸다.
순간 밝은 빛이 온 십방계를 뒤덮었다.
가장 먼저 공격을 당하게 된 십방 대제는 의식이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일 검이 뻗어지는 순간 온 세상이 멈춰 섰다.
그리고 이곳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진양이 유일했다.
고개를 돌려 시간의 강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듯 물보라조차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의 강에서 뻗어나온 몽의의 두 팔이 진양의 시간을 붙잡아 끊임없이 길게 늘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과연 몽의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시간의 강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반대로 미래로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간 자체에 변화를 일으키는 건 가능하다.
시간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양이 원래 살았던 세계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던 개념이다.
이 순간 십방계에는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만, 진양에겐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짧은 몇 다경의 시간이 될 수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몇 시진, 아니, 며칠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이건 몽의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조절하냐에 달려있었다.
사실 시간의 강 앞에서 몽의는 나뭇잎에 탄 개미 새끼와도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양이 몽의는 모든 생명체를 초월한 존재라고 했던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도를 연마했는지.
몽의에게 이런 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몽의와 비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그저 평범한 존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강력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상대를 죽이는 능력만 가지고 있는 게 전부다.
반면 몽의는 남을 쉽게 꺾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건 아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 한마디만으로도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고수나 상고의 거물들은 하나같이 몽의 앞에서 극진히 예를 갖추는 것이다.
진양은 빛을 따라 걸었다.
허공에 나타난 빛은 매우 느린 속도로 흐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느덧 십방 대제의 코앞까지 다가간 진양.
조용히 굳어있는 십방 대제를 바라보았다.
진양은 봉신서를 꺼냈다.
한 손에는 봉신서가, 나머지 한 손에는 흑검이 들려있었다.
진양의 예상대로 이곳에 있는 호량 조각은 십방 신조의 영토에 포함되지 않은 곳이었다.
십방 신조는 애초에 황폐한 땅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무 쓸모 없는 땅을 신조의 영토에 포함시켜 봤자 득이 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가희도 대영 신조를 통해 직접 실험해 본 부분이다.
치러야 하는 대가는 크지만 반면 이득은 매우 적은 것이다.
만약 십방 대제가 영토를 이곳까지 확장했다면, 진양은 습득 능력으로 호량 조각을 연화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곧바로 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굳이 쓸데없이 입 아프게 입씨름을 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십방 대제는 진양을 유인하여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했다.
반대로 진양도 그를 십방 신조의 영토 밖으로 유인하여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했다.
모두가 날로 먹으려는 생각은 같았다.
다만 진양에겐 무시무시한 두 개의 무기가 있었다.
진양은 봉신서를 펼쳐 든 채 십방 대제를 관찰했다.
그러나 이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봉신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태호에게 사용했을 때처럼 완벽한 결과를 기대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신을 봉인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아무리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신의 얼굴 바로 앞에 들이댔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십방 대제는 애초에 권력 따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란 말인가?
다소 미묘한 결론이 나왔다.
십방 대제는 태일이다.
단지 두 개의 이름과 두 개의 신분을 가지고 있을 뿐.
그런데 어째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걸까?
진양은 자신의 목표를 이룰 가장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태일 천제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성과 권력을 완전히 말살하여 부활은 꿈도 꾸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그가 일개 신조 대제에 불과했다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간단하게 죽이면 모든 게 끝이니까.
상황이 복잡해진 건 상대가 신조 대제와 천제가 한 몸이 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순한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천제를 처치하는 게 까다로운 이유는 단순히 힘 때문이 아니다.
바로 권력 때문이다.
권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굽고 삶아도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천제의 약점은 매우 명확하다.
가장 강력한 곳이 바로 가장 약한 곳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양은 곧바로 사자결을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