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사해 용귀왕
그런 무시무시한 거북이의 모습에도 백리 칠은 동요하지 않았다.
백리 칠은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간 백리 칠이 그를 몰래 살폈다.
거북이는 피식 웃으며 일부러 못 본 척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몸이 일 장 조금 안 되는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는 백리 칠이 자신을 훔쳐볼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두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진양은 피식 웃음을 퍼뜨렸다.
거북은 사랑스러운 백리 칠의 모습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으나, 막상 같이 놀아주자니 체면이 서지 않는 모양새였던 것이다.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거북의 뒤로 다가간 백리 칠은 재빨리 달려들어 거북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열심히 꼬리를 움직여 바닷가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작은 몸집으로 거북을 움직일 수 있을 리 있겠는가?
거북은 껄껄 웃으며 혹여나 백리 칠이 다칠까 봐 몸 곳곳에 솟아있는 날카로운 부분을 최대한 움츠렸다.
그리곤 백리 칠과 함께 바닷가를 향해 헤엄쳐갔다.
진양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 눈치였으나 진양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거북을 구워 먹으면 분명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양에게 가져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저택 근처까지 다가온 백리 칠이 힘차게 꼬리를 흔들자 물결이 일어나며 그녀와 거북을 함께 위로 올려주었다.
허공으로 떠오르는 순간 거북은 짧은 팔다리를 가진 난쟁이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머리는 반짝이는 대머리였으며, 턱 밑으로는 긴 수염이 달려있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목에 매달려있는 백리 칠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백리 칠은 멍한 표정으로 노인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며 그를 살폈다.
그러다 진양의 품으로 달려드는가 싶더니 노인을 가리키며 뭐라고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할멈, 이것 보라고. 이 녀석 당신은 손도 못 대게 하더니 나와는 꽤 잘 놀잖아! 이게 바로 수준의 차이라는 거지.”
노인은 한껏 으쓱해졌다.
청유는 동요하지 않고 은은한 미소를 유지했다.
“만약 내가 직접 가지 않았다면 백리 칠과 유덕 두 사람 모두 영태성종의 사람들에게 잡혀갔을지도 모를 거예요. 근데 당신은 어디 있던 거죠?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긴!”
“뭐라고?”
노인이 청유를 째려보았다.
“뭘 그런 눈으로 쳐다봐요? 괜히 유덕과 백리 칠을 놀래키지나 말고 잠자코 있기나 해요. 남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괜히 여기서 유세 떨긴.”
청유는 계속해서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청유의 차분한 모습과는 반대로 노인은 ‘다, 당신!’이라고 말하며 씩씩거렸다.
그러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쾅- 하고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좋아! 잠깐만 기다리라고.”
노인은 잔뜩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화선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양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란 말인가?
“걱정할 것 없어요. 거북 영감은 저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니까요. 게다가 지금까지 단단한 영감의 껍질을 박살 낼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게다가 당신은 도완 선자의 후계자이자 제 수천 년의 염원을 이뤄준 사람이에요. 거기에 백리 칠까지 다시 살려왔는데, 못된 인간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청유는 계속해서 나긋하게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진양이 보기엔 그녀의 목소리에선 살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진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저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한 번은 거절했지만 두 번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뭐, 그래도 아무 대책 없이 보낸 건 아니겠지.’
무엇보다 거북 노인에게서 느껴지던 기운과 그가 어떤 혈통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리 크게 걱정되지도 않았다.
아마 영태성종의 장문인이 직접 나서더라도 거북 노인을 방어를 뚫는 건 어려울 것이다.
씩씩거리며 화선 밖으로 나온 거북 노인은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청유에게 당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망할 할망구. 이럴 줄 알았다니깐. 결국은 또 이 몸을 이용해 먹는구만!”
거북 노인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영태성종이라고 했지?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녀오도록 하지.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칠 선자를 다시 부활시켜준 것만 해도 큰 은혜를 입은 셈이니까.”
허공으로 떠오른 거북 노인이 가볍게 발을 구르자 그의 발에 닿은 공간에 순간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충격파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며 매서운 폭풍이 일어났고, 공간이 부서지며 만들어진 조각은 예리한 칼날처럼 빠르게 날아다니며 주위의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그러나 거북 노인의 몸에 닿는 순간 소멸되어버렸다.
거북 노인은 팔자걸음으로 걸어가며 허공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특별한 공법이나 신통력을 부린 것이 아닌 온전히 힘으로만 해낸 것이다.
거북 노인은 강력한 방어 능력으로 허공에 가득 찬 혼란의 힘을 이겨내며 나아갔다.
심지어 공간에 만들어진 틈조차도 완벽하게 버텨냈다.
평범한 수도사였다면 감히 시도조차 해 보지도 못한 채 갈기갈기 찢겨 졌을 것이다.
그러나 거북 노인은 늘 그래왔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순간적으로 신해 수도사조차 단숨에 쓸어버리고, 영태의 고수도 꺾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몰려왔으나, 노인은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
그렇게 수십만 리를 건너오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한 시진이었다.
허공 밖으로 걸어 나온 거북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줄기의 빛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모습과 하늘 가득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에 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영태성종에 도착한 것이다.
거북 노인은 곧바로 영태성종의 호산대진(護山大陣)을 뚫고 들어갔다.
이어서 그는 삼천 장이나 되는 원래의 크기로 불어나며 강력한 기운을 방출해내기 시작했다.
호산대진과 거북 노인의 몸이 맞닿는 순간이었다.
대진은 거북 노인의 단단하고 거대한 육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강제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수백 장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산문은 거북 노인의 몸에 짓눌려 마치 썩어 문드러진 나무처럼 꺾이며 산산조각 나 버렸다.
영태성종의 산문을 박살 낸 거북 노인은 씨익 웃어 보였다.
산문 안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던 노인이 입을 벌리자 검은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나왔다.
입에서 쏟아져나온 검은 물이 빠르게 한곳으로 모여들며 백여 장 정도 되는 검은 구체가 되었다.
무거운 파괴의 기운이 느껴지는 구체였다.
거북 노인이 퉤- 하고 뱉자 구체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허공에는 수십 리 멀리 이어져 있는 무시무시한 빛의 궤적이 남아있었다.
이제 막 영태성종에서 날아오른 종주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는 감히 맨몸으로 받아낼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최대한 구체를 빗겨나가게 만든 것이다.
그 순간 버섯 모양의 구름이 멀리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사방으로 빛을 뿜어내던 여러 개의 산봉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영태성종의 머저리들아, 잘 듣거라.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하고 물러가도록 하마. 허나 다음에도 이 몸의 사람에게 손을 댔다간 단단히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게다.”
어느새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 노인은 중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영태성종의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참으로 건방진 요괴로구나. 그 입 닥치지 못할까!”
잔뜩 화가 난 영태성종의 종주가 손을 뻗자 손가락 끝에서 한 줄기의 빛이 발사되었다.
이어서 빛은 수십 리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도장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고, 곧바로 노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강렬한 빛이 함께 떨어지며 공간을 짓눌렀기에 거북 노인은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거북 노인은 허공에 둥둥 뜬 채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해 보라는 듯 피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계속해서 가만히 있었다.
콰광-!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거북 노인이 있던 곳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도장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압력은 넓은 범위의 땅으로 퍼지며 대지를 단단하게 압축시켰다.
그러나 놀랍게도 거북 노인의 등껍질은 깨끗했다.
일말의 흠집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종주가 소환해낸 도장 이곳저곳에는 금이 가 있었다.
“네 이놈! 오늘은 이만 할 일이 생각나서 돌아가도록 하겠다. 운 좋은 줄 알거라!”
거북 노인은 피식- 하고 웃는가 싶더니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 사이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한편 도장은 어느새 다시 종주의 손으로 돌아와 있었다.
도장을 바라보는 종주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정면으로 자신의 힘을 받아낸 것도 모자라, 법보까지 박살 낼 만한 실력자라니.
종주의 시선이 수십 리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거북 노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개의 봉우리가 우뚝 서 있었던 자리였으나 지금은 움푹하게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져있었다.
그곳은 영태성종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광산이 있던 곳으로 적지 않은 광물을 퍼 올리던 광산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바로 그때, 방금 보았던 거북 노인의 모습이 생각난 종주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사해 용귀왕!”
종주의 얼굴은 한 층 더 일그러졌다.
“어떤 미친놈이 사해의 대요괴를 건드린 거야!?”
화가 잔뜩 났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쫓아갈 순 없었다.
박살 난 산문, 완전히 사라진 광산.
이 정도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호량은 섬이다.
섬에 살고 있는 수도사들은 바다에 살고 있는 해족들과 상호 간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암묵적인 규칙으로 삼고 있었다.
때문에 인간 수도사가 바다에서 죽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이는 없었으며, 반대로 육지에서 해족이 죽어도 뭐라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용귀왕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호량에서 이토록 큰 소란을 피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바다로 나갔던 사람들 역시 단 한 번도 용귀왕에게 공격을 받았다거나 노여움을 샀다는 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누군진 몰라도 용귀왕의 심기를 심각한 수준으로 건드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곳까지 직접 찾아와 쑥대밭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종주는 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보복을 할 수는 없었다.
괜히 용귀왕을 건드렸다간 오히려 그 손실이 더 크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다음날이 되면 방금 있었던 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현천성종과 마석성종이 도와줄 리는 없다.
아마도 오히려 영태성종을 질책하려 들 것이다.
종주의 얼굴이 잔뜩 짜증 난 듯이 구겨졌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