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성장한 화련
고양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꽤 많은 양의 침을 뱉었던 것 같았는데, 세 뼘 정도 높이의 옥병 속의 침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진양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옥병을 고양이의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고양이의 벙찐 표정을 보니 그는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사실 진양이 꺼낸 옥병은 큰 항아리 십여 개에 해당하는 양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신비로운 옥병이었다.
‘며칠 내내 뺀질거리더니. 꼴 좋다! 오늘 게거품 물 때까지 한번 침이나 뱉어보라고!’
진양은 작정하고 그를 골탕 먹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괜히 다른 마음 먹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다른 생각을 했다간 재미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거든요!”
진양은 백리 칠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으나 별수 없었다.
약속대로 계속해서 옥병에 계속 침을 모으는 수밖에.
그렇게 반나절 넘게 침을 모았으나 옥병 속의 침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진양은 여유롭게 팔자걸음으로 걸으며 밖으로 나갔다.
지금까지 고양이가 사용한 신비로운 힘은 전부 고양이 본인 스스로만 사용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본 결과 신비로운 힘의 원천은 다름 아닌 고양이의 침에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야 왜 그가 매번 상처를 치유해 줄 때마다 상처를 핥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런 좋은 재료는 분명 언젠가는 쓸 일이 있기 마련이다.
‘기회가 왔을 때 많이 모아둬야지. 다음엔 절대 같은 방법으로 속아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단순한 상처 치유 기능 말고도 또 다른 기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기능에 대해선 조금 더 연구해 봐야겠지만, 만약 만병통치약 같은 효과라도 발견한다면 훌륭한 보물로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 진양은 청유에게 인사를 한 뒤 화선을 빠져나왔다.
육지로 돌아온 진양은 가장 가까운 도시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진우달이 떠올랐다.
‘약골 자식, 잘 지내고 있으려나?’
아쉽게도 이미 구승이라는 껍데기는 벗어버렸기 때문에 그를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진양을 알아보진 못할 것이다.
물론 설령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괜히 찾아갔다가 또다시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도시 내부는 시끌벅적했다.
현천 종주의 천 번째 생신 연회가 곧 다가올 예정이었기에 도시 곳곳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곧 열릴 생신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여러 문파에서 보낸 사람들이 성해주로 몰려든 탓이었다.
물론 다른 목적으로 성해주를 찾은 사람도 빼놓을 순 없었다.
연회 때 과연 종소리가 울릴지 살펴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이었다.
만약 연회 때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다면 호량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호량 성종 서열 일 위인 현천성종의 자리는 위협받게 될 것이고, 가장 높은 곳부터 낮은 곳까지의 자원 분배 등의 문제들이 크게 뒤바뀌게 될 것이었다.
물론 단숨에 모든 것이 바뀌진 않을 것이었다.
변화는 가장 아래 있는 문파에서부터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래쪽 문파에 속한 사람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진양은 인파를 뚫고 한 주루 안으로 들어갔다.
창가 쪽에 앉은 진양은 주루 밖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과 주루 안쪽에서 술을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을 살폈다.
하지만 한참을 살펴도 영태성녀에 대해 떠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그 사건도 벌써 수개월 전의 일이니까.’
게다가 영태성녀가 벌인 일은 지금 당장 크게 주목받을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영태성종에 벌어진 일에 대해 떠드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소식이 이곳까지 전해지지 않은 듯했다.
대신 다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신임 영태성자인 임지성이 성해주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특별한 체질을 가진 그는 마흔 살이 채 되지 않아 이미 기해기에 올랐고, 영태성종의 삼양개태지법(三陽開泰之法)까지 익혔다고 한다.
경허한 성품, 강인한 실력, 유창한 말솜씨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인물이었다.
이 외에 마석성종에 관한 소식도 있었다.
마석성종의 화제의 인물인 소성자(小聖子), 화련에 대한 소식이었다. 진양을 우호적으로 생각했던 바로 그 화련이었다.
화련이 신해기에 들어서며 실력이 크게 늘었다는 내용이 퍼져 있었다.
얼마 전 성해주에 도착한 화련과 임지청은 한바탕 비무를 펼치게 되었는데, 낮에 시작한 비무가 밤이 늦도록 이어졌지만, 결국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싸움이 벌어지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역혈망상(瀝血莽象)의 허상이 나타나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무려 십 리나 떨어진 곳에서조차 똑똑히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현천성종의 수배와 관련된 소식 등 여러 소식이 있었으나 크게 가치 있는 정보들은 아니었다.
진양은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앞으로 성해주에 재미있는 일이 더 많이 벌어지겠군.’
그렇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던 진양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검붉은색의 장포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굳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뒤로 젊은 청년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곧장 주루 아래쪽 길을 빠르게 지나갔다.
진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량도원의 허신 장로잖아.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지?’
허신이라면 예전에 음괴귀묘에서 다락귀왕과 싸움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를 뒤따르고 있는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일부 눈에 익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전부 무량도원의 제자들이었다.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진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곳이나 잡아 들어온 도시가 하필 무량도원의 사람들이 발을 들인 곳이라니.
허신이 나타나자 길가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알아서 양쪽으로 물러났다.
시끌벅적했던 길거리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상하군. 무량도원이 성해주에서까지 이렇게 강력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단 말이야?’
바로 그때,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누군가? 정말 강력한 살기로군.”
“살기는 무슨. 무량도원 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성해주까지 와서 세도를 부리겠는가? 단지 무량도원의 노조가 급사해서 그런 걸세.”
진양은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급사했다고? 무량 노조가? 그것도 수명을 다해서 죽은 게 아니라 급사를 했다니.’
계속해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 듣다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만 같았다.
무량 노조는 아마 양범의 수에 말려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양범이 죽자 그도 함께 목숨을 잃은 것이다.
어쨌든 이 일은 금세 주위로 퍼져나갔다.
소문에 의하면 무량 노조는 상당히 소란스럽게 죽음을 맞이했기에 이를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어찌 됐든 수천 년 가까이 살아온 늙은 괴물 아니던가? 정말 아쉽군. 습득 능력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분명 괜찮은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텐데.’
아쉽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또다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며 성해주 전체가 들썩였다.
“자네 그 얘기 들었나? 영태성종의 산문이 사해 용귀왕의 손에 산산조각이 났다고 하더군.”
“들었고말고. 용귀왕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쯤에서 끝난 거라고 하더군. 그것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진 않았을 걸세.”
“듣자 하니 영태성종 사람들이 용귀왕의 사람을 건드린 것 같더군. 아마 이전에 영태성녀가 학살을 벌이던 시기에 실수로 건드린 것 같던데.”
사해의 요괴가 육지까지 올라온 것으로도 모자라 삼성종 중 한 곳의 산문을 산산조각 내버렸지만, 그 누구도 그를 비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영태성종이 먼저 원한을 살 짓을 벌인 것이 분명하다며 몰래 그들을 헐뜯었다.
심지어 삼성종 사람들조차 영태성주가 도대체 무슨 원한을 샀길래 이러한 사단이 벌어진 것이냐며 불만을 했을 정도였다.
진양은 용귀왕이 큰일을 벌이고 돌아와서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 청유가 용귀왕을 부추겼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진작부터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역시 명성만 있으면 장땡이군.’
만약 다른 요괴가 영태성종의 산문을 박살 냈다면 사람들은 결코 지금처럼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었다.
적어도 지금과는 달리 인간의 편에 섰을 것이었다.
용귀왕은 수천 년을 살아가며 단 한 번도 사해를 지나가는 인간의 배를 공격하거나 육지로 올라와 사람들을 해치는 일을 벌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본래 온화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아예 화를 낼 줄 모르는 요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거북류 요괴들이 그렇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용귀왕에겐 이러한 명성이 있었기에 설령 이번 일로 영태종주가 맞아 죽었다고 하더라도 용귀왕에게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었다.
오히려 모두들 후련해했을지도 몰랐다.
진양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난 이번엔 어떤 신분으로 다녀야 할까?’
아무래도 원래의 모습으로 다니기엔 부담이 되었던 것이었다.
비록 현천성종의 수배령은 이미 끝이 난 듯했지만, 여전히 진양을 기억하는 이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진양은 곧장 도시를 빠져나가 작은 배를 하나 샀다.
그리고 그곳에 누워 바다로 나가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 * *
같은 시각, 내해 해변에 위치한 작은 마을.
화련은 탁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동안 화련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정신은 훨씬 더 맑아져있었고, 눈빛은 날카로워졌으며, 더욱 호방해졌다.
혈한보체(血汗寶體)가 진정한 위력을 뿜어내기 시작하며 화련의 성격에도 다소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지청, 영태성종도 참으로 대단하구만. 도대체 무슨 일로 용귀왕의 심기를 건드린 겐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임지청이 한숨과 함께 씁쓸한 얼굴로 웃었다.
임지청은 스무살 정도의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온화한 인상과 책벌레의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은 영태성녀와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허허……”
화련이 술잔을 비우며 물었다.
“생각해 보시게나. 온화한 성품을 가진 용귀왕이 직접 찾아와 산문을 박살낸 것으로도 모자라 자원이 묻혀있는 산까지 날려버리지 않았던가? 웬만한 일로는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텐데. 모르겠다고? 농담하지 마시게나.”
임지청은 그저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술잔을 비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사해의 대요괴에 의해 산문이 박살 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무슨 일로 대요괴의 심기를 건드렸냐고 묻다니.
“하하하, 너무 신경 쓰지 마시게나. 자, 그럼 다시 한번 붙어보지!”
화련은 주전자에 남아있던 술을 전부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허, 자네가 이겼다니깐. 난 자네를 이길 수가 없어. 이제 됐나?”
임지청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며 싫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다 갑자기 빛무리와 함께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거기 서지 못하겠나!”
화련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쫓고 쫓기며 내해 쪽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