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더 이상의 추격은 포기한 채 천천히 지면으로 향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도무지 어떻게 된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먼저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한 것은 호양보종 아니던가?
근데 왜 갑자기 도망을 쳐버린단 말인가?
어느새 지면으로 내려온 영태종주는 허망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절망감과 함께 억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분노가 솟구쳐올랐다.
바로 그 순간, 왠지 모르게 현천종주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모두가 다 같구나……’
* * *
진양은 다시 성해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닭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호량을 떠나 대황으로 건너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호량에서 바다로 출항할 수 있는 배 중 팔 할 이상은 내해에서 출발한다.
이는 호량 삼성종 중에서 현천성종이 가장 부유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천성종은 배에 수많은 연구 자원을 쏟고 있었고, 또 출항 경험도 풍부했기 때문에 무역으로 얻어 들이는 수입도 가장 많았던 것이다.
삼성종에 속하지 않은 다른 배 역시 대부분 이곳에서 출발한다.
바다와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훌륭한 선원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배를 찾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혹여나 운이 좋다면 사해를 건너는 배를 찾아 얻어탈 수도 있을 것이었다.
물론 사해로 나선 배들이 전부 대황에 도달한다는 법은 없었다.
대부분 여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침몰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사히 대황에 도달하는 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매우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진양은 별다른 수가 없었다.
겨우 삼원기 밖에 되지 않은 수도사가 혼자 사해를 건너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해의 하늘은 매우 격렬한 영기로 뒤덮여있었다.
이를 연화시키기 위해선 보통 영기를 연화시킬 때보다 적게는 수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더 많은 힘을 사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재수 없이 체내의 진원이 격렬한 영기에 의해 침식되어 주화입마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홀로 날아서 사해를 건너려다 목숨을 잃는 수도사들 중 절반 이상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고 배로 가는 것이 마냥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배로 사해를 건너려면 족히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는데, 중간에 날씨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파도, 폭풍우, 거기에 배를 달가워하지 않는 바다 생물들까지.
자소도군과 견줄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면 혼자서라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부 도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해는 사막과도 같은 곳이었다.
설령 강력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실력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해를 건너기 위해선 반드시 배를 타야 했다.
보통 배가 아닌 반드시 원양 항해가 가능한 배로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진양은 또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스승님도 참 너무하시지. 이사 간다고 했으면 나도 데려가야 되는 것 아닌가? 나만 쏙 빼놓고 간 것도 모자라 알아서 건너오라니.’
진양은 내해를 따라 걸어 배들이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이곳은 내해에서 출발한 모든 배들이 지나가는 통로였다.
배를 얻어타기에 이곳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다.
그렇게 길목에 도착한 진양은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길목 옆으로 높이 세워진 정자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두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영태성녀와 임지청이었다!
진양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저 두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세 성종 간의 싸움이 시작되며 현재는 한참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이런 시기에 영태성종의 성자와 성녀 두 사람 모두 전장을 벗어나 이곳에 있다니.
‘설마 두 사람도 호량을 떠나려는 건가?’
그렇게 진양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 정자에 서 있던 영태성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십여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양과 눈이 마주쳤다.
진양은 흠칫 놀라며 재빨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하지만 영태성녀가 이를 놓쳤을 리 없다.
찰나의 순간에 눈을 마주친 것이 전부였지만 영태성녀는 곧바로 반응했다.
그녀가 소매를 휘두르자 찬란한 은색 빛깔의 빛줄기가 피어올라 날카로운 칼날의 형상을 이루었다.
칼날의 형상을 이룬 빛줄기는 곧장 진양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간 싸늘한 기운이 등골을 훑으며 지나갔다.
형언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가 가슴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찰나의 시선이었으나 곧바로 진양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살초를 펼쳤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영태성녀는 영태기에 오른 고수로 진양과 무려 두 경지나 차이가 난다.
그녀의 가벼운 손짓조차 진양은 감당할 수가 없다.
현재 그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뿐.
검은 솥과 등껍질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사용하는 순간 곧바로 자신의 정체가 확실하게 드러나 버리게 된다.
물론 무조건 정체가 드러나는 건 아니다.
등껍질은 무조건 들키게 되겠지만 검은 솥은 그나마 약간의 희망을 걸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생각할 틈이 없었다.
어느새 은빛 칼날이 진양의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에 이젠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챙- 챙-!
한 뼘의 틈도 없이 빼곡하게 날아든 은빛 칼날은 진양이 뒤집어쓴 검은 솥 위로 쏟아져 내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검은 솥은 방어구로서의 성능은 매우 확실했다.
어디까지가 한계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영태성녀의 공격에 흠집도 하나 나지 않은 걸로 보아 진양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성능을 지닌 게 확실했다.
칼날 부딪히는 소리가 완전히 사그라들자 진양은 조심스럽게 검은 솥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멀리서 영태성녀와 임지청이 허공답보를 사용하며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양, 아직도 살아있었을 줄이야.”
차가운 눈빛으로 진양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감정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진 형, 지난번 화 형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전부 진 형께서 도왔기 때문이죠?”
임지청은 나긋한 미소와 함께 매우 평온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라도 만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굳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두 사람 모두 덤벼들 필요는 없잖아?”
두 사람 모두 눈치를 챈 분위기였기 때문에 진양도 더 이상 부정하진 않았다.
어차피 용귀왕의 사람이라는 신분의 내막은 알만한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화상용에게 수배령을 내려 널 죽이라고 했었을 것이다.”
영태성녀가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진양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겨우 이름 때문에?’
임지청이 미소와 함께 한마디 했다.
“진 형, 사실 전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한낱 촌구석 조무래기에 불과하던 사람이 출세하여 오늘날의 진양이 되다니. 게다가 다른 일에는 일체 관심조차 주지 않는 용귀왕에게 인정을 받은 것도 모자라 귀갑(龜甲)까지 선물로 받다니 말입니다.”
표정으로 보아 그는 진심으로 진양에게 감탄한 듯했다.
이어서 그는 진양이 의아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한 마디 덧붙였다.
“진 형, 더 이상 속일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단순히 이름만으로는 당신과 원래의 진양을 연관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물론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어떻게 눈치챈 거지?”
이렇게 된 이상 희망을 바라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차라리 발버둥 치는 편이 나았다.
물론 발버둥 친다고 해서 두 사람에게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매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곧 죽을 사람이니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으니 말이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우연히 일치하니 말입니다. 호량 같은 작은 섬에서 출중한 젊은이가 동시에 둘이나 나올 리 없지 않겠습니까? 화상용의 죽음, 용귀왕이 산문을 부순 사건,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당신까지. 이 모든 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치를 챈 겁니다. 솔직히 처음엔 믿지 않았었지만요.”
임지청의 얼굴에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제 확실해졌군요. 두 진양이 사실은 한 사람이라는 사실 말이죠.”
진양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젠장! 이럴 수가!’
이제 보니 두 사람은 진양을 떠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흥,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진양의 등 위로 등껍질이 나타났고 손에는 어느새 부문검을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쌓인 원한으로 보아 이 싸움은 누군가 죽어야만 끝날 것 같았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진양이 화상용을 죽인 일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꽤 용기가 가상하시군요. 일단은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고 난 뒤에 죽이려고 했었는데. 어쩔 수 없군요.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이상 끝을 보는 수밖에.”
임지청은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으나, 영태성녀는 그와 상반되게 얼음장같이 차가운 모습이었다.
진양은 문득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진양이 생각한 그런 관계가 전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임지청이 주도하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지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상황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쏴아아-!
그때였다.
갑자기 물소리와 함께 얇은 빗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떨어진 물줄기는 한곳으로 모여들며 사람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푸른 장포를 두른 장발 여인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사고를 치는 능력이 점점 늘고 있군.”
여인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그녀는 벙찐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양의 모습에 피식 웃어버렸다.
“과연, 날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저… 누구시죠? 저희가 아는 사이였던가요?”
생신 연회 때 딱 한 번 본 것 같은 기억이 드는 듯하면서도 처음 보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진양은 자신의 뺨을 한 손으로 쓸었다.
‘보아하니 날 도와주러 온 모양인데. 설마 이 몸의 매력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겨우 길가다가 한 번 만났을 법한 여인인데, 갑자기 날 돕겠다니?’
“양범을 찾으러 다녔으나 결국은 찾지 못했어. 대신 네가 양범을 죽인 흔적을 발견했지. 복수는 끝이 났으나 더 이상의 목적은 없어져 버렸어. 그래서 사해를 건너 모험을 떠나기로 했었지. 근데 이제 보니 내게도 널 도울 기회가 찾아온 것 같네. 죽어도 상관없어. 어쨌든 빚은 갚을 수 있게 됐으니까.”
여인의 목소리는 매우 평온했다.
마치 남의 일을 얘기하듯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설마 여, 연욱?”
진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