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형님께 인사드려야지
거친 파도와 강렬한 폭풍이 일어났고 하늘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달과 별은 검은 먹구름에 의해 완전히 가려졌다.
불길한 기운은 점점 더 강력해져 가며 주위를 휩쓸기 시작헀다.
“무두사시라니…….”
진양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어떻게 사람이 이리도 재수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일부러 인적이 드문 해역으로 왔건만. 허! 무두등롱을 벤 것도 모자라 무두사시까지 불러내 놓고 도망치다니. 젠장!’
단순히 허공을 타고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최소 신문(神門) 정도의 실력을 가진 무두사시가 분명했다.
무두사시는 해수면 위로 발을 내딛는 듯싶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유령호 위, 진양의 코앞에 서 있었다.
진양은 황급히 후광을 만들어냈으나 소용없었다.
다급해진 진양의 눈길이 무두사시의 가슴을 훑었다.
왼쪽과 오른쪽 양쪽에 두 개의 붉은 초승달이 새겨져 있었고, 오른쪽 하복부에는 세 뼘 정도 되는 흉터가 남아있었다.
진양이 반응할 틈도 없이 무두사시의 손이 진양의 목을 향해 뻗어왔다.
진양은 황급히 등껍질 안으로 머리를 쏙 넣으며 숨어버렸다.
그리곤 황급히 외쳤다.
“혈월 형님! 저예요! 저라니깐요!”
진양의 외침에 무두사시는 멈칫- 하고 멈춰 섰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은 빠르게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고, 머리 위에 달린 등불은 점점 더 빠르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진양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대충 눈치를 보니 무두사시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한편 속옷을 뒤집어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유령호 선원들은 잔뜩 겁먹은 메추리 새끼마냥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무두사시를 멈추게 만드는 데는 성공한 듯했다.
“다들 움직이지 마. 이제 시작이니까.”
도파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물론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선원들은 혹여라도 허튼짓하거나 주의를 끌었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두사시는 제자리에 선 채 가만히 서 있었고, 진양 역시 입술을 꾹 닫은 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혈월 형님’이라니.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할 정도였다.
무두사시의 몸에선 계속해서 불길한 기운이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그의 몸속에 있는 사기와 생기가 연신 뒤섞이며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계속해서 생사를 오가는 정체불명의 괴수를 보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에게 머리와 영혼이 없다는 점.
머리가 없었기에 지능이 없었고, 영혼이 없었기에 이성도 없었다.
사실 진양은 방금 전 궁지에 몰려 다급해진 바람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해졌다.
혈월사시(血月死侍).
예전에 대우와 한참 대화를 나누며 들었던 인물이다.
그는 장해도군을 따라다니던 강자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장해도군이 가장 신뢰하던 최측근이라고 한다.
가슴에 새겨진 두 개의 붉은 초승달, 그것은 신통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혈월사시의 가장 큰 특징.
과거 혈월사시는 한 검객의 검에 심장을 관통당하며 생기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우측 하복부에 남아있는 흉터가 바로 당시에 칼을 맞으며 남은 흔적이었다.
그는 순수한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었기 때문에 인간과는 신체 구조가 달랐다.
때문에 그의 심장은 우측 하복부에 위치해 있었던 것.
대우의 말에 따르면 혈월사시가 생기를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해도군도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혈월사시는 자신에게 공법을 사용하여 스스로 장해도군의 능침을 지키는 묘지기가 되었다고 한다.
혈월사시는 손아래의 사람들에게 극도의 존중을 받던 인물로 강력한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장해도군의 깊은 신임을 받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째서 무두사시가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바로 장해도군의 능침 입구가 이곳 부근에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한 비경 속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비경의 입구가 대황에 있었다면 혈월사시가 이곳에 나타날 리 없었다.
수십만 리의 거리는 간단히 건너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장해도군의 능침 입구인데 만신창이가 된 비경을 선택했을 리는 없었다.
진양은 우선 눈앞에 벌어진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까닥-
무언가 부러지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혈월사시의 머리 위에 얹어진 등불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완전히 박살 난 등불은 가루가 되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진양은 크게 놀랐다.
등불이 사라진 혈월사시의 목은 매우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죽은 뒤 기혈이 흐르지 않는 상태에서 머리가 잘려 나간 게 확실했다.
그의 가슴에 있던 붉은 달은 천천히 위치가 뒤바뀌었다.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흉골 정중앙을 손톱으로 긁어 혈흔을 만들어냈다.
혈흔이 점점 퍼져나가며 안쪽에서 하나의 눈이 생겨났다.
눈은 조용히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치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진양의 머리 위로 호양보종이 나타났다.
이어서 안에서 튀어나온 닭이 호양보종에 앉아 혈월사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 검둥이의 목소리도 진양의 머릿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흥미롭군.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상태로 생사의 가장자리를 오가는 녀석이라니. 이러니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거야.”
진양이 미간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시끄러워. 질질 끌지 말고 요점만 말해.”
“흥! 조급하긴.”
검둥이는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으나 확실히 크게 놀란 목소리였다.
반생반사의 존재로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선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게다가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괴물이라니.
이대로 진양이 이곳에서 죽는다면 검둥이 자신 역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녀석은 상고시대의 지부 사람들에게 탐비자(貪鄙者)라고 불리던 녀석이지. 탐비자들은 죽기 직전 스스로 반생반사의 괴수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어. 하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시간이 흐를수록 놈들은 이성을 잃게 되고 종국에는 본능만 남아있는 야수가 되어버리게 되지.
지금 네 앞에 있는 이 녀석은 아마도 자기 스스로 목을 잘랐을 거야. 그래야 조금이나마 더 오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테니까. 상당히 민감하고 쉽게 분노하는 녀석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미치광이기도 하지. 이런 녀석이라면……. 진양, 네 힘으로 꺾지 못하겠다 싶으면 그냥 순순히 육신을 내어주는 게 나을 거야.”
진양이 아무 반응이 없자 검둥이는 재빨리 한마디 보탰다.
“물론 내가 잠시 네 육신을 조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마수의 힘만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면 한낱 탐비자 따위는 한 손으로 해결 가능하거든.”
진양이 기가 찬다는 듯 피식 웃었다.
“오호,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어림도 없지.”
이어서 진양의 시선이 상대의 가슴에 생겨난 외눈으로 향했다.
“혈월 형님, 같은 식구끼리 살살 합시다. 전 뇌후 형님께 부탁을 받고 형님을 도우러 온 사람이라고요.”
진양은 최대한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며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 후- 하고 불었다.
펑-
진양의 옆으로 분신이 만들어졌다.
“보세요. 분신술이죠? 이건 뇌후 형님께서 큰 대가를 치러가면서 제게 전수해 주신 신통력이라고요.”
진양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말대로 뇌후는 큰 대가를 치렀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진양은 기능서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진양의 말은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상대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조용히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분신을 찔렀다.
펑-
손가락과 분신이 닿는 순간 분신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순간 진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혈월사시가 살아있을 때 뇌후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그는 뇌후의 충동적인 모습엔 혀를 내둘렀지만 충직한 그의 마음은 진심으로 인정했었다.
과거 혈월사시와 가장 좋은 관계였던 건 정직하고 헌신적인 대우였었다.
‘젠장! 하필 대우라니.’
진양은 대우의 대력우마신을 연마하지 않았다.
잘못했다간 요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럴 줄 알았으면 일단 연마라도 해둘걸.’
대력우마신을 미리 연마해뒀더라면 무두사시를 쉽게 속이고 넘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혈월사시가 뇌후에게 원한이라도 품고 있다면?
눈앞에 있는 뇌후의 최측근을 단숨에 베어버릴지도 모른다.
위기의 순간, 진양의 눈빛이 번쩍였다.
순간 머릿속으로 한 줄기의 빛이 스치며 지나간 것이다.
“사제!”
진양이 눈빛을 반짝이며 부른 것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귀였다.
“사제! 너도 어쨌든 대우 형님의 후계자잖아. 그럼 혈월 형님을 봤으면 당장 튀어나와서 인사해야지.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야?”
진양은 구석에 숨어있던 나귀를 끌어내 혈월사시 앞으로 데려왔다.
“사제, 빨리 숨겨뒀던 쇠뿔을 꺼내 봐. 혈월 형님께 진짜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나귀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진양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쇠뿔’과 ‘진짜 모습’이라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제! 멍하게 서서 뭐 하는 거야?”
진양은 나귀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야, 굶고 싶냐?”
나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어서 나지막하게 기합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나귀의 머리에선 한 쌍의 쇠뿔이 자라났고, 사람처럼 두 발로 일어서며 몸이 순식간에 삼 장 높이로 불어났다.
빼빼 마른 나귀의 사지에 큼직한 돌덩이와 같은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멍청하고 순해 보이는 나귀의 얼굴엔 새파란 힘줄이 솟아나며 한층 더 사나운 기운을 풍기기 시작했다.
진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귀에게 대력우마신을 연마하도록 하길 잘했군.’
여전히 나귀의 얼굴이 남아있긴 했으나 그것만 빼면 대우의 모습과 쏙 빼닮아있었다.
혈월사시의 시선이 나귀에게 향했다.
이어서 그의 눈이 번쩍 뜨이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대우는 죽은 건가?”
잔뜩 쉰 목소리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뒤를 저희가 이어받게 된 겁니다. 그리고 대인들께서 안식을 취하고 계신 곳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이어서 무언가 떠 오른 진양은 재빨리 한마디를 더 보탰다.
“대인들께서 잠들어 계신 장소가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대인의 안식을 방해하기 위해 그곳으로 몰려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진양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똥을 푸짐하게 싸놓고 가장 빠르게 도망쳐버린 바로 그 호화로운 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