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무두사시를 만난 것 같습니다
“계속해 봐.”
진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정보상에게 들었는데 부도마교에서도 사람을 보냈다고 합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온 건지는 확실하진 않습니다. 물론 저희를 방해하거나 견제하러 온 건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등천조의 일 때문에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이 더 있습니다.”
도파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예전에 정천사의 한 외후가 유령 해적단의 손에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꽤나 신분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사람을 보내 보복을 할 모양인 것 같습니다.”
결국은 실력 없이 원한만 잔뜩 샀으니 일단은 물러서고 보자는 말이었다.
진양이 씨익 웃으며 도파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말투로 물었다.
“도파, 선장 되고 싶지 않아?”
“……네?”
도파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멍한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바로 고개를 힘차게 휘저었다.
“선장님, 그런 말은 농담으로라도 마시지요. 전 지금 상황에 만족합니다.”
“아쉽네. 지금으로선 선장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는 건 너뿐인데 말이야.”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기분이었다.
“크흠! 선장님, 그럼 전 아직 할 일이 더 남아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파는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본인은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을 돌려서 표현한 것이었다.
“됐고, 이제 다들 돌아온 거 맞지? 다들 돌아왔으면 이만 출항하자고. 괜히 섬에 가까이 붙어있는 것보단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게 훨씬 더 안전할 테니까.”
말을 마친 진양은 벌렁 뒤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똥을 싼 건 유령 선장인데 왜 내가 그걸 치워야 하냐고!’
하지만 원한을 가진 이들이 그런 걸 따질 리 없다.
유령 선장이든 진양이든 어쨌든 유령 해적단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진양은 억울했다.
남해의 해적이라면 단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급 영석 한 개조차도 빼앗아 본 적이 없는 녀석들인데 억울하게 원한을 사고 말았다.
죽은 정천사의 외후 역시 진양이 직접 죽인 게 아니다.
진양은 그저 유령 선장에게 한 방 먹여줄 생각으로 함정을 판 것이 전부였고, 외후를 죽이기로 결정한 건 온전히 유령 선장의 판단이었다.
게다가 단공도는 심지어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세력이다.
한 마디 얘기도 나눠본 적 없는 자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진양을 쫓아오고 있다니.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재 상황을 생각해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난 그냥 조용히 수련만 하고 싶을 뿐인데. 왜 다들 엄한 나한테 난리인 거냐고!’
그렇게 누워있다가 보니 훌쩍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유령호는 잔잔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며 배 곳곳에 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아직 배가 섬에 정박해있을 틈을 노려 가지고 있는 돈이란 돈은 모두 긁어모아 술과 먹을 것을 사 왔다.
때문에 배 곳곳에선 술에 취해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시각.
진양은 상층 갑판에 앉아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소장환은 그의 곁을 지키며 아무 말 없이 술잔이 빌 때마다 술을 따라주었다.
“장환아. 나 어떤 사람인 것 같냐? 나만큼 착한 사람도 없지 않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진 대인께선 지금까지 제가 보아왔던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인품을 지니고 계십니다.”
소장환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거절했던 사람은 진양이 유일했다.
“확실히 보는 눈이 있군!”
진양은 피식 웃으며 술잔에 남아있던 술을 모두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때, 하늘에 갑자기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땅과 하늘로 이어져 있는 무언가였다.
놀란 진양이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쳐다보았다.
천주(天柱)인 듯했다.
“도파, 왜 또 남해 가장자리까지 온 거야?”
“여긴 사람이 없어서 안전하니까요. 진해패방 쪽은 아마 인산인해일 겁니다.”
얼큰하게 취한 도파의 우렁찬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안전하긴 개뿔! 저기 천주 옆에 둥둥 떠다니는 불빛 안 보여? 딱 봐도 몇 척은 돼 보이는구만.”
배가 천주와 가까워질수록 흐릿했던 불빛은 점점 더 뚜렷해져 갔다.
그렇게 아주 잠깐 사이에 불빛은 점점 더 뚜렷해지며 배의 윤곽까지 육안으로 살필 수 있을 정도였다.
“자, 잠깐!”
놀란 도파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워지는 배를 살폈다.
거대한 배는 가만히 떠 있는 게 아니었다.
파도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젠장! 누군가 다가오고 있잖아!”
도파는 잔뜩 분노한 눈빛으로 전망탑을 바라보았다.
“경계병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도파의 성난 외침과 함께 배 위에서 벌어지던 술판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이어서 선원들은 전부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한편 배는 어느덧 모두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총 세 척의 배였다.
가장 앞장서서 오고 있는 배에는 당각(撞角, 선수에 달린 뾰족한 충돌용 뿔)이 달려있었고 선체는 전부 철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제일 빠른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는 배의 가장 높은 곳에는 초록색 바탕에 ‘단공’이라고 적힌 깃발이 달려 있었다.
초록색 바탕에 검은 글씨가 적힌 깃발은 단공도의 직계 제자들이 탄 배에만 달려 있는 깃발이었다.
두 번째 배는 크게 특별한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딱히 특별할 건 없었으나 가장 높은 곳에 새까만 깃발이 걸려 있었다.
이 배는 해적선이 분명했다.
검은 깃발이 달려 있다는 건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마지막 배는 수면으로 드러난 부분만 무려 여덟 층이나 되었다.
용과 봉황이 겉 부분에 조각된 상당히 호화로운 배였다.
이런 배는 기껏해야 평온한 해역에서나 항해가 가능하지, 사해와 같은 험난하고 먼 바다로 나갔다간 십중팔구 뒤집히고 말 것이었다.
‘잠깐!’
어딘가 이상했다.
세 척의 배, 그리고 세 무리의 세력들.
모두가 하나같이 서로의 눈치는 살피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잠깐 보았을 뿐인데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도망치고 있는 게 확실했다.
“배를 우현으로 돌려라! 다가오는 배를 피해 전속력으로 전진!”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가 기우뚱하며 오른쪽으로 빠르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배가 선회를 마치는 순간, 진양은 세 척의 배 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면 위를 가득 채운 무두등롱이 마치 파도와 같이 세 척의 배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수면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무두등롱이 수면으로 떠 오르고 있었다.
“뭐, 뭐야? 어디서 저렇게 많은 무두등롱이 몰려온 거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던 불빛들은 다른 배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전부 무두등롱이었던 것이었다.
진양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도망치고 있는 거지? 그냥 속옷을 뒤집어쓰면 되잖아? 그럼 알아서 사라질 텐데.’
바로 그때, 호화로운 배에서 한 줄기의 검기가 뻗어져 나왔다.
길게 뻗어진 검기는 곧바로 수백, 수천 개의 작은 검기로 나뉘어지며 검기의 폭풍을 이루었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무두등롱을 절반으로 갈라버렸다.
써걱- 써걱-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무두등롱은 일제히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나 반으로 갈라진 무두등롱은 천천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모여들며 원래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금 불빛이 희미해지긴 했으나 어쨌든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이 모습을 본 유령호의 모든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모두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리고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무두등롱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들 멍하게 서서 뭐하고 있는 거야? 죽고 싶어? 빨리 움직여!”
진양은 다급기 외치며 직접 유령호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대일화로의 출력이 최대로 올라가며 유령호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양의 고함 소리에 뒤늦게 정신이 든 선원들은 일제히 자신의 속옷을 벗어 머리 위에 뒤집어쓴 뒤 각자의 자리로 황급히 움직였다.
“도파, 전설의 일부는 진짜고 일부는 가짜라고 했었지?”
이쯤 되자 남해의 터줏대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단공도 세력과 해적들이 발에 땀이 나게 뛰는 이유, 그리고 속옷을 뒤집어쓰지도 않는 이유도 알 것만 같았다.
“서, 선장님. 아무래도 이번엔 정말로 무두사시를 마주한 것 같습니다.”
도파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는 그였다.
한편, 해수면 위를 떠다니던 무두등롱은 한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미약했던 무두등롱의 불빛은 맑은 주황빛으로 밝게 타오르며 해수면 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때, 평온했던 바다가 조금씩 요동치며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뒤이어 만들어진 거대한 소용돌이가 주위에 있던 모든 무두등롱을 소용돌이 안쪽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벌써 대부분의 무두등롱이 모습을 감추었고, 아직 남아있는 무두등롱도 힘없이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선 점점 더 강력한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편 세 척의 배는 어느덧 유령호와 가까워졌다.
해적선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유령호의 뒤쪽으로 쌩- 하고 지나쳐버렸고, 뒤따라오던 호화로운 배 역시 속도를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빠르게 유령호를 지나쳤다.
마침내 선회를 끝낸 유령호는 단공도의 배와 나란히 움직이게 되었다.
단공도의 배에도 유령호와 마찬가지로 전부 자신의 속옷을 뒤집어쓴 선원으로 가득했다.
진양이 큰소리로 물었다.
“방금 지나간 저 호화로운 함선은 어디서 온 배죠?”
“대황에서 온 배요!”
정교한 자수가 새겨진 속옷을 뒤집어쓴 한 젊은 남자가 유령호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속옷을 뒤집어쓴 채 진양에게 포권을 취했다.
“뭐 하는 분인지는 몰라도 아주 강한 분이신 것 같군요. 살아서 돌아오시게 된다면 꼭 연을 맺고 싶습니다. 그럼 이만!”
단장공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단공도의 철갑선은 다시 속도를 높여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소용돌이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었고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텅 빈 통로가 하나 생겨났다.
이어서 붉은 화염에 의해 둘러싸인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 머리 위에 무두등롱을 쓴 일 장 정도 되는 키를 가진 사람이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나타나기 무섭게 바닷물은 마치 먹물이라도 풀어놓은 것처럼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검게 물든 곳에선 물고기들이 거품을 문 채 배를 까뒤집으며 해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