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못생겨진 게 다행일 줄이야
“뭐, 일단 가서 보기로 하죠. 사실 딱히 필요한 건 없어서 말입니다. 나중에 보고 필요한 것 몇 개만 챙기도록 하고 나머지는 전부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진양의 한 마디는 정동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무슨 뜻이지? 정말로 상관없다는 건가? 아니면 혹여나 다른 변고가 있을까 봐 저러는 건가?’
진양이 말했다.
“일단 배표 값을 지불해 주셨으면 합니다. 먹여야 할 수하들이 꽤 많아서요. 한 번 모험을 나갈 때마다 지출되는 비용이 꽤 큽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바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정동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선장실을 나오고 나서야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대장로가 한마디 했다.
“종주. 아무래도 선장은 진심으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해는 비록 위험하긴 해도 자원이 풍부한 곳이니까요. 이 정도 비경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게 틀림없을 겁니다.”
“뭐, 어쨌든 자극할 것 없이 조용히 협력만 하면 되니까요. 만약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저희는 곧바로 물러서도록 하죠.”
종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 * *
어느덧 시간이 흘러 훌쩍 일주일이 지나갔다.
남해 남부 해역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진해천주.
한 구역에서 부자연스럽게 파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파도의 높이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이곳은 삼백 년 전 진해천주가 무너졌던 바로 그 장소였다.
등천조가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바다 위로 크고 작은 배 수십 척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유령호가 다가오자 작은 배들은 즉시 물러섰다.
그러나 철갑으로 둘러진 배는 오히려 가까이 다가왔다.
“오, 정말로 살아남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화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가 진양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누구십니까?”
어딘가 낯이 익는 얼굴이었으나 생각이 나진 않았다.
“그때 무두사시와 마주했을 때. 기억 안 나십니까?”
“아, 당신이군요.”
진양은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주신다니 다행이군요.”
“기억하고 말고요. 그런 고급진 속옷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기억하지 못하면 오히려 이상한 거죠.”
“…….”
웃고 있던 단장공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난번 모두가 황급히 속옷을 뒤집어쓴 채 허둥대고 있는 틈에 홀로 아무것도 뒤집어쓰지 않는 진양의 모습을 보고 크게 감탄했었다.
굳이 속옷을 뒤집어쓸 필요도 없이 무두등롱을 상대할 수 있는 고수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남해에서 무두등롱을 마주하고도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당시 연을 맺고 싶다고 했던 건 진심이었다.
그러나 다소 후회가 되었다.
‘젠장. 하필 첫인상이 그런 식으로 기억이 될 줄이야.’
당시 입고 있던 화복도 꽤 비싼 옷이었으나 야속하게도 진양은 속옷만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단장공은 그래도 예의상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했으나 도저히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입을 꾹 닫고 있는 단장공의 모습에 진양은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양은 단공도 사람과는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전부 하나같이 쪼잔한 놈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득은 보고 싶지만, 돈은 못 내겠다? 이런 쪼잔한 놈들!’
이런 인간들은 가까이 두는 것만으로도 손해일 것이다.
한편 바다에선 계속해서 파도가 일어났고 사람들 역시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모두들 파도가 하늘 높이 솟구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서로를 견제하느라 말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으나, 정말로 싸움을 벌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순간에 싸워봤자 득이 될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옆에 있는 무관한 다른 사람들에게만 좋은 꼴이었다.
박 터지게 싸워서 전부 죽게 된다면 더 이상 경쟁할 사람이 없어지는 셈이니 말이다.
진양은 현재 상황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사람이 더 몰려들수록, 그리고 더 난잡해질수록 좋았다.
어차피 크게 손해 볼 일도 없기 때문에 등천조에 있는 비경 안쪽에 장해도군의 능침 입구가 없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물론 없는 것보단 있는 게 훨씬 더 좋았다.
그리고 설령 다른 사람들이 입구를 찾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사전에 입수한 정보로 입구를 찾아주면 되기 때문이었다.
‘서로 치고박고 싸우게 만들어야지.’
진양의 목적은 매우 확실했다.
장해도군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작은 이득에 눈이 멀어 큰 이득을 놓칠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좋아. 어디 제대로 한 번 물을 흐려볼까? 아, 아니지. 이건 남을 돕는 거라고. 암! 돕는 거고 말고! 이렇게 선뜻 남을 돕는 착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이러한 이유로 진양의 마음은 매우 편안했다.
이곳으로 몰려드는 그 어떤 배, 사람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차피 전부 진양이 이용해먹을 인간들이기 때문이었다.
“도파, 조금 이따 파도가 치기 시작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도와주도록 해. 파도가 한 번 솟구치면 무려 만 장이나 치솟는데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뻔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다 같은 사람들인데 그런 식으로 죽게 된다니 마음이 아파서 말이야.”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여기 모인 인간들, 그리고 지난번 저희를 방패막이 삼았던 녀석들까지. 전부 비참하게 죽게 만들 거니까요. 흐흐흐.”
도파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감히 우릴 엿 먹이다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겁니다!”
“아니, 난 진지하게 하는 얘기야.”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도파는 여전히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끝까지 진양이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허, 진지하게 하는 얘기라니깐 그러네. 우린 악당이 아니잖아.”
진양은 혹여나 도파가 정말로 그렇게 할까 봐 두려웠기에 황급히 그를 말렸다.
“그러니까 그날 우릴 방패막이 삼았던 그 녀석들을 뺀 다른 사람들은 됐다 이 말이야.”
“아…….”
도파는 그제야 진양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
진양은 한숨과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다들 내가 반어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심지어 곁에 있는 나귀마저 실실 웃는 얼굴로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날 뭘로 보는 거야? 해적이라고 해서 남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거야?’
진양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전망대로 올라갔고, 계속해서 주위에 있는 배를 살피며 주의해야 할 점을 생각해 보았다.
청의가 타고 있었던 호화로운 배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특별히 주의할 점은 없었다.
무엇보다 저런 배로는 결코 파도를 타고 올라갈 수 없을 것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단장공의 철갑선이었다.
수많은 법기를 부품으로 한곳에 모아 만든 평범한 전함보다 훨씬 더 강해 보이는 전함이었다.
이 외에 누가 봐도 해적선같이 생긴 배도 꽤 많이 보였다.
당연하게도 배에는 흉악하게 생긴 해적들이 잔뜩 타고 있었다.
무두사시가 나타났던 그 날, 그 누구보다도 가장 빠르게 도망쳤던 해적선의 모습도 보였다.
이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평범하게 생긴 배들 뿐이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한 척의 배가 있었다.
새까만 배였는데 돛 대신 정중앙에 무려 구 층이나 되는 높은 탑이 세워져 있었다.
하층부터 상층까지 탑을 따라 뼈로 만든 풍경이 달려있었는데, 바닷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마치 누군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고 있자니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지는 소리였다.
큰 배 주위로 여러 척의 작은 배들이 몰려있었는데, 갑판에서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거, 부도마교에서 온 배지? 혹시 누가 타고 온 건지 알고 있어?”
진양이 곁에 있던 도파에게 물었다.
“마불일맥의 한 소마불(小魔佛)이 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쟁녕일맥의 고혈도희(枯血道姬) 함께 왔다고 하더군요. 나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칠십이천주의 빛과 연관된 비경이라 온 게 확실할 겁니다. 매일 나타나는 수많은 비경들을 전부 쫓아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두 사람 모두 대황에서 유명한 사람이야?”
이곳은 남해의 끝과 맞닿은 곳인 만큼 대황이나 남만에서 온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매년 세상에 나타나는 비경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때마다 벌집처럼 모두가 몰려드는 경우는 없었다.
강자들은 비경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난 후에야 나서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설령 장해도군의 능침 입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섣불리 나서진 않을 것이었다.
대신 문하의 재능 있는 제자들을 보내 기연(機緣, 기회와 인연)을 찾도록 할 것이었다.
눈에 띄지도 않고, 실력이 부족하여 아무런 수확을 얻을 수 없겠지만 어쨌든 하나의 경험과 수련을 쌓는 셈이니 말이다.
“소마불은 마불일맥의 현임 불왕의 관문제자로 태생적으로 불골마심(佛骨魔心)을 가지고 있고 보도마전을 익힌 자라고 합니다. 근 천 년 동안 두 번째로 두 겹의 후광을 만들어낸 인물로 경지는 신해 최고봉 수준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한 문파의 사람을 강제로 성불시킨 사건입니다.
고혈도희는 살인에 도가 튼 자입니다. 특히 잘생긴 남자 연체 수도사만 보면 곧장 피와 골수를 뽑아먹고 반인반시(半人半屍)의 고혈도병(枯血道兵)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괴하며 악랄한 성격을 가진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며 무시무시한 괴력을 가진 존재라고 합니다.
사실 쟁녕일맥은 연체 수도사를 가장 천대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로 공법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 것을 중요시하는 곳이죠. 고혈도희는 일종의 별종인 셈이죠. 때문에 같은 일맥에 속한 사형제를 적지 않게 죽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못생겨진 게 다행으로 여겨질 줄이야.”
진양은 잔뜩 튀어나온 뱃살을 어루만졌다.
아직 완전히 연화시키지 않은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고혈도희, 얘기만 들어도 진양의 엄청난 천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장님, 등종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도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세 줄기의 빛이 날아와 유령호 갑판 위에 착지했다.
정동, 정삼모, 그리고 과묵한 중년인이 빛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약속했던 물건입니다.”
정삼모가 주머니를 건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