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고객께서 만족하십니다
그러나 진양에겐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생각이 바뀐 것이었다.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온 사람이 야고헌이었기 때문이었다.
족보상 야고헌의 위로 여덟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혈월사시 야석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저 살기 위해 야석을 형님이라고 불렀을 뿐이었다.
그러나 능침에서 돌아와 가희에게 야석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고 나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모든 희생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충성을 바쳤건만, 결국 돌아오는 건 비참한 말로뿐이었다.
진양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경매는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입찰자는 단 세 사람이었다.
황천마종의 조영휘, 삼계산의 안산하, 그리고 부도마교의 야고헌.
이미 떨어져 나간 이들은 부도마교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전부 포기한 자들이었다.
이외에는 대황에서 온 손님들이었는데, 이들은 가져온 돈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비전 보책에 대한 소문을 사전에 입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경매는 단 하루만 진행된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영맥 열여덟 개.”
야고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격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엔 왠지 모를 한기가 서려 있었다.
이미 재정적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열아홉 개.”
야고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영휘가 기다렸다는 듯 가격을 불렀다.
마치 열아홉 개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이다.
진양의 예상대로였다.
그는 그냥 판을 키우러 온 것이 전부였다.
그냥 부도마교가 먹는 꼴은 어떻게든 막으려는 게 분명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고 나면 부도마교에겐 더 이상 기회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야고헌의 고민은 점점 더 길어졌다.
이쯤 되자 진양은 결정을 내렸다.
곧바로 사람을 불러 도파에게 말을 전하도록 했다.
말을 전해 들은 도파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보책이 경매에 나온 건 처음인 만큼 모두들 아직 충분한 상의를 못 하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지금부터 반 시진 동안 상의할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충분히 상의하시고, 고려하신 뒤 다시 경매를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고헌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빠져나갔다.
갑자기 경매가 중단되며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용히 불만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입찰자들도 가만히 있는데 관객이 된 그들이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편 야고헌은 마침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영맥 열아홉 개.
현재 그가 가져온 자원의 가치를 생각해 보면 대략 그 정도가 전부였다.
여기서 가격이 더 올라간다면 입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천천히 생각하면서 대안을 찾았겠지만, 경매는 겨우 하루뿐이라 시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주머니를 뒤지며 영맥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야고헌은 별실로 향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벽에 달린 문이 열리고 누군가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저는 유령호의 선장 진양이라고 합니다.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고객께서 잠시 경매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꼭 전해드려야 할 말이 있습니다.”
야고헌은 의자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마치 거대한 산이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무거운 공기가 방안에 흐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운은 방안으로 완전히 들어오기 무섭게 진양의 몸을 짓눌렀다.
“별로 궁금하지 않으시다면 조용히 물러가겠습니다. 그렇다면 반 시진 후에 다시 경매를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양의 머리 위로 어두운 초록빛을 띠고 있는 종이 나타났다.
종에서 흘러나온 빛은 야고헌의 묵직한 기운을 주위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야고헌은 굳은 표정으로 진양 머리 위에 나타난 호양보종을 노려보았다.
잠시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게요?”
“방금 저희 고객님께서 소협께 어떤 물건을 팔아달라고 의뢰하셨습니다.”
“무슨 물건 말이오?”
“검은 석탑입니다. 장해비전이 기록되어있는 석탑이죠.”
진양은 일부러 시간 차이를 두고 한 마디를 보탰다.
“참고로 여기 기록되어 있는 건 첫 번째 권입니다.”
순간 야고헌의 눈이 번쩍였다.
번개처럼 쏘아진 그의 이성은 곧장 진양의 두 눈을 통해 의식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마치 번개와 같은 속도로 진양의 머릿속을 뒤지며 강제로 진양의 기억을 살펴보았다.
진양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몸속으로 들어갔다.
의식의 바다를 뒤덮고 있는 야고헌의 이성을 바라보고, 체내에서 영혼을 뒤덮고 있는 선천의 기운을 느끼며 익숙한 길을 걷듯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은 지난번과는 달랐다.
지난번은 훔쳐볼 수 있도록 안내를 했지만, 이번에는 상대의 이성이 강제로 진양의 의식 안으로 침투했다.
진양은 가장 먼저 검둥이를 떠올렸다.
야고헌의 이성이 검둥이와 만나도록 한 것이다.
물론 검둥이가 당장은 허약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것도 상대에 따라 달라졌다.
마수는 진양에게 완전히 연화되었다.
검둥이는 법보 원령으로서 마수의 힘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긴 하나, 이는 두 번째 권한에 불과했다.
진양의 해안에 갇혀있고, 거기에 해안마석까지 더해져 완벽하게 제압당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둥이의 이성은 불멸의 이성이다.
수천, 수억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살아있으며,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진양이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이는 검둥이도 느낄 수가 있었다.
불멸의 이성과 야고헌의 이성이 서로 마주쳤다.
바로 그 순간.
야고헌은 이성을 통해 온 세상을 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마수를 보게 되었다.
마수에는 사납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당장 꺼지지 못해!”
검둥이가 잔뜩 분노한 듯 포효하자 야고헌의 이성은 강제로 진양의 머릿속에서 튕겨져 나갔다.
야고헌의 이성을 쫓아낸 검둥이가 이를 바득 갈며 소리쳤다.
“진양! 이 빌어먹을 자식!”
밖으로 쫓겨난 야고헌의 이성은 재빨리 진양의 의식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진양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어딜 감히!’
진양은 가희가 준 영패를 손에 쥔 채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고, 아직 완전히 이성을 빠져나가지 못한 야고헌의 이성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멀리 만 리 떨어진 곳에서 가희가 만 장 높이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을 뻗었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야고헌은 두 눈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크흑!”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진양은 다시 눈을 뜨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표정으로 야고헌의 얼굴을 응시했다.
야고헌은 신음 소리와 함께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볼을 타고 두 줄의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에게 느껴지던 기운마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밖으로 쫓겨나며 연쇄적으로 일어난 파동에 의해 중상을 입게 된 것이었다.
나무 인간처럼 단순히 몰래 기억을 엿보기만 할 생각이었다면 진양도 어느 정도는 허용해 주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나무 인간과는 달랐다.
‘마교 놈이라 그런지 버릇이 상당히 나쁘구나. 감히 이 몸의 이성 속으로 강제로 침입하려고 하다니.’
진양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럼 이제 거래 내용에 대해 들어보시겠습니까?”
야고헌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은 멀어있었고, 눈이 있던 자리에선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상처를 치료하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일단 물건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소.”
“그러시죠.”
진양은 흔쾌히 진품을 꺼내 보여주었다.
야고헌은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조품을 살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비록 혼란스러운 건 여전했으나, 개중에 서려 있는 신묘함의 차이는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컸다.
모조품과 진품을 비교하려면 반드시 진품이 필요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진품을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었다.
아무도 모조품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라 자신했던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검증을 마친 야고헌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석탑을 쥐고 있는 그의 두 손에 핏줄이 설 정도로 힘이 잔뜩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석탑을 가지고 눈앞의 진양을 죽인 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성 속에서 마주했던 두 사람, 검둥이와 가희가 떠오르자 등골이 서늘했다.
겨우 이성만으로도 그 정도의 실력을 내다니.
그렇다면 실제로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때문에, 석탑을 들고 도망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장해비전의 첫 번째 권이 기록된 보책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모조품.
그건 분명 방금 보았던 두 강자 중 한 사람의 작품이 분명했다.
오직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닌 사람만이 그럴싸한 모조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두 강자가 아무 미련 없이 버린 보책을 줍기 위해 남해 사람들이 쟁탈전을 벌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조품을 영맥 열아홉 개에 팔 수 있다는 건 진품은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봤자 쓸모도 없으니 이참에 팔아버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야고헌은 순간적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보책에 적힌 것이 첫 번째 권뿐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완전한 비전이 새겨져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현재 부도마교에 필요한 건 다른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권만 있으면 됐다.
그러니 그에게 곧바로 팔아버리면 불필요한 경매도 할 필요 없고, 귀찮은 일도 크게 덜 수 있었다.
야고헌의 시선이 진양에게 향했다.
어째서 갑작스럽게 경매를 중단시킨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불가사의한 강자들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맥 열아홉 개로 거래하겠소.”
“최대한 영맥으로 거래하는 것으로 하고, 부족한 건 다른 걸로 보충하도록 하시지요.”
진양의 말에 야고헌은 숨을 크게 들이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맥은 세 개뿐이오. 남은 건 다른 물건으로 채우겠소.”
진양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께서 그래도 된다고 하시는군요.”
“영맥 세 개 모두 이 반지 안에 들어있소. 이 외에 공법부터 영약, 법보, 그 밖에 여러 보물들까지. 영맥 열여섯 개를 대체하고도 남을 정도일 것이오. 하나, 대협께서 만족하실지는 모르겠소.”
“괜찮다고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고객이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는 건 진양도 알고 있었다.
그 고객이 바로 진양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