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잘 풀려간다 싶더니
그리고 보니 차사야말로 가장 암야우담화를 원했던 사람일지도.
암야우담화를 심은 건 바로 차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꽃이 무사히 자랄 수 있도록 그 어떠한 대가도 아까워하지 않았으며, 일부러 몰락한 형옥(邢獄) 세계 안에 심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전부 꽃을 키우기 위한 비료가 되었다.
흑여 선조 역시 차사에게 속아 목숨을 잃고 암야우담화의 비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강력한 육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던 것이었다.
차사는 암야우담화를 위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기껏 일만 년에 한 번 찾아오는 개화 시기를 맞이해놓고 꽃이 피어나는 순간 정신을 잃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면 꽃의 약효가 절반은 날아가 버릴 텐데.
그래서 차사는 머리를 굴렸다.
암야우담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일부러 암야우담화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 모든 사람을 죽였다.
그 어떠한 희생도 불사하고 암야우담화를 필요로 할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그 한 사람이 암야우담화를 채집하는 순간을 노려 빼앗아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만 년마다 사람이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만 년, 이만 년, 시간이 흘렀다.
차사는 그렇게 계속해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제이검군과 만나게 되었고, 성공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목숨까지 완전히 잃게 되어버렸다.
진양이 백색 광구로부터 얻은 정보에서 차사의 원통함과 아쉬움, 억울함, 집념이 느껴졌다.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으나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당연히 원통할 수밖에.
진양은 암야우담화를 잘 챙겼다.
그리고 멀리서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최양평을 불렀다.
“스승님, 이만 돌아가요.”
제이검군은 아내를 업고 힘겹게 검을 휘둘러 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먼저 반대편으로 건너가 진양을 기다렸다.
진양은 관을 꺼내 조심스럽게 흑여 선조의 시신을 수습했다.
제이검군은 안전한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내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양을 힐끔 쳐다보았다.
진양이 암야우담화를 꺼내 진원을 흘려보내자 꽃잎이 빛을 내며 떨어지며 여인의 몸속으로 녹아들어 갔다.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 위태로웠던 생기는 점점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꽃잎이 칠 할 정도 떨어져 그녀의 몸속으로 녹아 들어갔을 즈음.
여인의 몸에서 마침내 미약한 이성의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이검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리가 풀린 듯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그의 얼굴은 빠르게 창백해져 갔다.
기운도 빠르게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진양은 잠시 망설였다.
사실 이 정도만 도와주는 걸로도 충분했다.
현재 진양의 손에 들려있는 암야우담화는 활짝 폈을 때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한 상태였다.
게다가 완전히 연화시킨 상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시들진 않을 것이었다.
칠 할.
이 정도만 해도 그녀의 부서진 영혼을 치유하고 부활할 수 있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진양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왕 도와주기로 한 거 끝까지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이어서 팔 할 정도의 약효가 그녀의 몸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그녀는 이전에 만났을 때와 같이 최상의 상태가 되었다.
진양은 이쯤에서 암야우담화를 거두고 떠날 준비를 했다.
“고맙소.’
제이검군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고맙긴요. 도와준다고 약속했었잖아요. 근데 괜찮으신 건가요? 몸이…….”
“목숨을 빚졌소. 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소.”
이어서 제이검군은 품속에서 죽간 하나를 꺼내 진양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예전에 우연히 얻었던 사자결이오. 한 번 익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게요.”
“이렇게 귀한걸…….”
진양은 마음속으로는 한 번쯤은 사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손은 의지와 상관없이 곧바로 그것을 받아버렸다.
‘사자결이라니!’
진양의 감정이 고스란히 얼굴로 드러났다.
그러나 제이검군은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진양이 받아주었으니 그걸로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가 늦었구려. 제이검군이라고 하오. 제이는 나의 복성(復姓)이고 검군은 현재의 이름이오. 과거 사용하던 이름이 있었긴 하나 너무 오래전에 버린 이름이라 기억이 나질 않소.
일자결은 결코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딱히 수련의 지름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법 역시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입문 단계일 거요.
익히고 난 뒤의 위력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오. 일자결은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결코 사용하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오. 감정이 격해지면 오히려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소. 나처럼 사자결을 사용했다간 기혈과 육신이 상할 테니 항상 조심하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저도 그냥 살펴보기만 하려고요. 제게 이런 걸 익힐 만한 기회가 없다는 건 저도 잘 압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감정을 제어한다.
사자결을 익히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절대적으로 필수인 조건이 분명했다.
진양 같은 사람은 평생이 지나도 익히지 못할 것이었다.
이전에 얻은 애자결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자소도군 같이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인간조차 입구조차도 찾지 못했었다.
그런 사람은 애자결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었다.
입문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해서 입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양은 과거 자소도군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해가 됐다.
일자결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데 단 하나도 수련하지 못하다니.
진양의 시선이 최양평에게 향했다.
“스승님, 배고파요.”
“아, 그래. 이 스승이 맛있는 탕을 끓여주마!”
최양평은 익숙하게 솥을 꺼내 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탕이 완성되자 진양은 한 그릇을 퍼 제일 먼저 제이검군에게 건네주었다.
“드셔보시지요. 뭘로 만든 건지는 몰라도 기혈 보충에 이만한 게 없더라고요. 당신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고맙소.”
탕을 마신 제이검군의 안색은 아까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이어서 깊게 잠든 아내를 등에 업는 순간.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피어올랐다.
“이, 이럴 수가…….”
“그리고 보니 저도 소개가 늦었네요. 전 진양이라고 합니다. 의협심 강하고 남을 돕기 좋아하는 사람이죠.
인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이만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시죠. 이곳은 음기가 강한 곳이라 오랜 시간 머물면 아내 분께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고맙소.”
제이검군은 공손히 진양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진 형, 혹여나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이것을 쪼개도록 하시오. 어디든 곧바로 달려가 돕도록 하겠소.”
제이검군은 손바닥만 한 옥검을 진양의 손에 쥐여주고는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진양의 눈빛이 반짝였다.
‘꽤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얻은 것 같군.’
그렇게 제이검군이 떠나고 나자 진양과 최양평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진양은 탕을 마시며 그릇을 든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양평을 힐끔 바라보았다.
‘이걸로 증상이 호전될지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운에 맡겨보자고요.’
정신을 차린다면 진양을 못 알아볼 수도 있고, 심지어 때려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양은 이미 모든 결심을 마친 상태였다.
진양은 품속에서 암야우담화 꽃잎을 꺼내 조심스럽게 최양평의 그릇에 흘려 넣었다.
“자, 쭉 들이키시죠. 제가 명철이로서 마지막으로 드리는 효도입니다.”
“껄껄, 명철이 이 녀석. 철들었구나.”
최양평이 웃으며 그릇을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진양이 그를 멈춰세웠다.
“스, 스승님. 잠시만요. 제가 갑자기 할 일이 생겨서요. 제가 가고 난 다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최양평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양이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떠날 채비를 마친 진양은 곧바로 자리를 떠났고, 최양평은 진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그릇을 들었다.
“명철이 이 녀석. 이 스승에게 탕을 권할 줄도 알고 말이야. 이제 다 컸구나…….”
입으로 그릇을 가져가던 그는 또 다시 멈춰섰다.
“아니지. 명철이에게 줄 것도 남겨놔야지.”
최양평은 조롱박을 꺼내 그릇에 있는 탕을 도로 넣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래도 명철이가 나름 신경 써서 챙겨준 건데. 절반만 마시도록 하자.”
최양평은 조롱박에 넣었던 탕을 다시 절반 정도 그릇에 부었다.
그리고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마셔버렸다.
* * *
강물이 거친 물살과 함께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진양은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제 볼일은 모두 끝났다.
흑여 선조의 시신도 찾았으니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이곳에 다른 무언가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진양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물론 막상 떠날 때가 되니 멀리 보이는 수백 미터 굵기의 하늘 위로 뻗어있는 기둥을 이런 곳에 두고 가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별다른 수가 없었다.
대놓고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갈 만한 능력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바로 최양평 때문이었다.
암야우담화로 이성을 회복한 그가 갑자기 나타나 진양을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양은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일월성사를 사용하여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월성사 대신 비행 공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일월성사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나무라고 가정한다면 그곳엔 비경이라는 수많은 나뭇잎이 달려 있는 것이다.
일월성사를 사용하면 나뭇잎에서 줄기로, 혹은 다른 나뭇잎으로 건너뛰는 건 가능하지만 아예 다른 나무로 가는 건 불가능했다.
현재 진양이 있는 곳은 부서진 나무가 진양이 원래 있던 나무 위로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일월성사를 사용할 수 없는 것.
‘앞으로 어딜 가든 일월성사를 사용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둬야겠어.’
진양은 매우 심각한 문제와 대면하게 되었다.
어쩌면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이봐요. 올 때는 분명 후광 장비들로도 됐는데, 어째서 돌아갈 땐 안 된다는 겁니까?”
진양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불만했으나 뱃사공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진양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후광 장비들을 상자에 넣었다.
하지만 장비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상자 밖으로 밀려 나왔다.
‘빌어먹을! 어쩐지 다 잘 풀려간다 싶더니. 여기서 막힐 줄이야.’
뱃삯이 꽤 싸게 먹혔다고 좋아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뱃삯으로 같은 물건을 내는 것이 불가능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