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99
399화 누굴 찾고 계신데요?
원래라면 몰래 황천마종으로 돌아간다면 최양평은 여전히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로 황천 맥주를 죽일 수 있을 것이었다.
마종의 규율이 엄격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미 죽어버린 맥주를 위해 살아있는 노조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이니 최양평도 무사할 터였다.
무엇보다 잘못은 황천 맥주가 먼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정식으로 황천마종에 발을 들이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성공적으로 그를 죽인 뒤의 일이 문제가 아닐 것이었다.
일단 황천 맥주를 죽일 수 있는 확률이 심각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최양평이 어찌할 줄 몰라하고 있을 때.
화지위뇌에 갇혀있던 진양은 마침내 풀려나게 되었다.
진양은 가부좌를 튼 채 온몸의 기혈을 끓어오르게 했다.
단전 아래로 혈해가 열렸고, 기혈의 힘이 바다로 몰려들었다.
혈해 깊은 곳에는 음천이 만들어져있었다.
음천에서는 차가운 힘이 마치 샘물처럼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육신의 힘과 진원의 힘 사이에 다리를 놓게 된 셈이었다.
황천비전에 정식으로 입문한 것이었다.
진양은 눈을 떴다.
진원이 육신으로 흘러 들어가며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반대로 육신의 힘이 끊임없이 솟구쳐오르는 음천의 힘에 단련되어 새로운 힘으로 바뀌어 가는 것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육신에 깊게 스며들어있는 마수의 힘도 그에 따라 천천히 연화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경지도 한층 더 높은 곳을 향해 움직였다.
이제 신해 후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진양, 네 앞에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야.”
진양이 수련을 끝냈다는 것을 느낀 검둥이가 한마디 했다.
“나도 알아.”
진양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솔직히 손이 근질근질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최양평은 진양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현재 눈앞에 있는 죽은 자에게 수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보답이라면 나중에 충분히 강해지고 난 다음 다시 살려주면 그만이었다.
충분히 강해지기만 하면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로 가능할 것이었다.
계산해 보니 전혀 해가 될 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최양평이 아직 살아있을지는 그 누구도 보장할 수가 없었다.
공법이라면 충분했다.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전승만 가지고 있고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마른 시체 따위에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성불시키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의 발상을 전환해 보니 다른 면이 떠올랐다.
반항할 힘이 없어진 뒤로 검둥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놈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전에 검둥이는 자신이 상고 지부의 어느 누군가에 의해 몸이 토막 났고, 자신을 진정으로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진양이 눈앞에 있는 자를 성불시키도록 부추기는 건 어쩌면 눈앞에 있는 이 뱃사공이 검둥이를 완전히 소멸시키거나 제어할 수 있는 공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뱃사공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검둥이를 제압할 수 있는 공법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검둥아, 너 자꾸 이러는 거 좀 수상한데. 상고 지부에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지?”
“진양, 설마 아직도 날 못 믿는 거야? 내가 네 몸을 빼앗을 수 있었다면 진즉에 했겠지! 무슨 의심이 이리도 많은 건지!”
검둥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끝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죽은 사람을 두고 있자니 손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진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어르신, 다시 한번 소개하도록 하죠. 제 이름은 진양입니다. 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제가 얼마나 선량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고난을 받고 계신 걸 보고 있자니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그리고 시신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대한 고통 없이 빠르게 해탈시켜드릴 테니까요. 부디 편히 쉬시길!”
진양이 가까이 다가와도 깡마른 남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제단 가까이 다가간 진양은 손을 뻗어 남자의 손을 잡았다.
진양의 손과 남자의 손이 닿는 순간 습득 능력 사용이 가능할 때 나타나는 반응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복면 뒤에 가려져 있던 남자의 얼굴에서 두 줄기의 빛이 피어올랐다.
그가 갑자기 눈을 뜬 것이다.
깡마른 몸매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 솟구쳐오르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인해 진양은 뒤로 날아가 버렸다.
진양은 재빠르게 뒤로 구르며 다시 중심을 잡았다.
한편 잔뜩 굽어있던 남자의 몸은 점점 펴지기 시작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섬찟할 정도로 검붉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 진양을 바라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체내에 있는 힘, 해안에 있는 물건, 영혼까지.
마치 진양의 모든 것을 전부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심지어 주머니 안에 있는 물건들까지도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의 눈빛은 진양의 손에 집중되어있었다.
마치 무엇을 찾는 것처럼 바쁘게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놀란 진양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의 이성은 깊게 잠들어있었다.
모든 동작은 남아있는 작은 의식에 의한 본능이었던 것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깨어났다.
잠시 머뭇거리던 진양은 잎이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암야우담화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의 손에 건네주었다.
남자는 그것을 쥔 채 멍하게 바라보았다.
“필요하면 가져다가 쓰세요.”
진양은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어 보였다.
어차피 겨우 꽃잎 두 개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효과 좋은 요상약 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었다.
멍하게 암야우담화를 바라보던 남자가 손을 폈다.
그러자 암야우담화는 다시 원래 들어있던 상자로 날아갔고, 다시 진양의 주머니 속으로 돌아갔다.
진양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검붉은 두 눈이 진양에게 향했다.
“진양이라고 했나요?”
진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소 쉬어있긴 했지만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뭐야? 여자였어?’
진양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진양이라고 합니다.”
“전 이미 금령을 어겼기에 최악의 말로가 정해져 있는 몸입니다. 하지만 아직 반드시 끝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역경도 불사하고 버텨야 합니다. 당신의 호의는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부군(府君, 돌아가신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에 대한 존칭)의 힘은 저 같은 죄인에게 쓰기엔 타당하지 않습니다.”
“별거 아니긴 한데…….”
진양은 멋쩍어졌다.
습득 능력을 사용하는 건 상대를 성불시켜주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기능서를 얻으려는 목적이 훨씬 더 컸다.
순수하게 성불만을 시켜주려는 목적으로 습득 능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생기가 완전히 끊어진 죽은 자가 강제로 이 세상에 남아있기 위해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렇게 강제로 세상에 남은 자들은 남아있는 힘이 점점 약해져 간다.
더 이상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
경지가 아예 바닥을 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보통 수도사들은 힘을 사용하고 보충하고의 반복이 가능했다.
그 힘은 진원일 수도 있고, 영혼의 힘일 수도 있고, 기혈의 힘일 수도 있고, 의지의 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남아있는 힘을 전부 써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힘도 조금씩 스스로 사라져가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소도군과 장해도군은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음에도 최대한 일을 벌이지 않으려 했던 것이었다.
한번 써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힘이 약해지는 속도는 생전의 실력과 연관되어있었다.
생전에 강한 실력자였다면 약해지는 속도가 느리고, 반대로 약했다면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공법이나 신통력을 익히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의 경우 죽는 즉시 곧바로 모든 힘이 사라지게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렇게 약해지는 과정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모든 힘, 영혼, 심지어 기억까지도 천천히 소멸하게 된다.
다른 점이라면 앞서 말했듯 실력의 강약에 따라 속도가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마석조묘에서 만났던 그 노승은 이성과 기억이 소멸되는 속도가 힘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었다.
살아있는 강시처럼 살아가다가 보면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신통력을 하나 잊어버리고, 내일은 공법을 하나 잊어버리고, 그다음은 생명력과 연관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빠진 이들은 자신들이 곧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하나도 남김없이 잊게 될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생기가 완전히 끊어졌기 때문에 천천히 소멸하는 것 외에는 성불 당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지였다.
아니면 다른 강자들처럼 미리 추후에 부활할 준비를 해두던가, 아니면 현재 진양의 눈앞에 있는 여인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계속해서 이곳에 있다는 건 그녀가 이전부터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이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 진양은 지금 그런 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눈앞의 여인이 성불되길 원하든 아니든 상관은 없었다.
어쨌든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진양도 별다른 수는 없으니까.
그가 들은 그녀의 말은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는 말이다.
“부군이요?”
“오직 부군께서 직접 채집하신 암야우담화만이 개화한 이후로도 시들지 않았거든요. 또한 오직 부군만이 지부의 망자들을 성불시켜주실 수 있었죠. 당신이 가진 힘으로는 날 성불시킬 수 없을 거예요.”
부군에 대해 얘기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떠올랐다.
진양 역시 지부에 대해 언급만 해도 이를 바득바득 갈던 검둥이가 부군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는 어조가 공손해졌던 것이 생각났다.
“무엇을 원하죠?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부활하고자 하는 욕심은 없어요. 제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당신이 강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내 저를 데려가 만나게 해 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누굴 찾고 계신데요?”
“그건 때가 되면 알게 될 겁니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말을 하다가 마는 것만큼 답답한 게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