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
진양이 물었다.
“그래서 뭘 할 줄 아시는데요?”
그녀가 되물었다.
“무엇을 배우고 싶으신가요?”
“불사신황이라는 신통력이요. 할 줄 아세요?”
“그건 처음 들어보는 신통력이군요.”
“그럼 문천검전(問天劍典)은요?”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
진양은 그녀와의 문답에 황당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건데?’
원하는 걸 얘기하래서 했더니 막상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을 줄이야.
“됐어요. 어차피 신통력을 배우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요. 제가 배우고 싶은 건 경전이나 일자결 같은 겁니다. 하지만 보아하니 보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설령 보책 없이도 전수 가능하다고 해도 제가 반드시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을 거고요.”
진양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현재 쓸 수 있는 일자결은 애자결과 사자결 두 개다.
그러나 두 개 모두 아직 문턱조차 제대로 만지지 못한 상태였다.
“보책 없이도 제가 할 줄만 안다면 충분히 전수는 가능합니다. 상고시대에는 입으로 직접 전달해선 안 된다는 귀찮은 규율 같은 건 없었거든요.”
“그럼 할 줄 아는 경전은 뭐가 있는데요?”
“황천비전입니다.”
“…….”
진양은 그녀와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다.
“됐습니다. 사람을 찾는 일이라면 제 일을 하면서 시간이 남으면 해 보도록 하죠. 대신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뭐, 당장 보수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당신 역시 별로 성불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고, 저 역시 강제로 성불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죠.”
진양은 깔끔히 포기하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상고시대에 있었던 일이나 사건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백과사전 검둥이가 그의 해안에 있지 않던가?
궁금하면 검둥이에게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이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인간에게는 잠시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여인은 떠나는 진양을 보고도 만류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기 때문에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만약 다음에 상고 지부의 사람을 만난다면, 어느 정도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당신이 부군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걸 숨기는 게 좋을 겁니다. 특히 한 번에 제압할 수 없는 상대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할 겁니다.”
진양이 다시 지하 미궁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여인이 내뱉은 말이었다.
‘부군의 힘은 무슨. 이건 그냥 이곳에 처음 올 때부터 갖고 있던 습득 능력인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괜한 오해로 인해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경고로 들렸다.
상고 지부에서 높은 직위를 가진 자들.
결코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닐 것이었다.
진양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얼른 해명하듯 말했다.
“무언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제가 사용하는 이 신통력은 당신이 말하는 부군의 힘 같은 게 아닙니다. 암야우담화 채집이나 성불에 사용하는 신통력은 습득 능력이라고 불리는 신통력으로 당신이 말한 부군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그런 힘이라고요.”
그때,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을 닮은 기괴한 모양의 노란 귀걸이가 진양의 손 위로 날아왔다.
“그것은 제 신물입니다. 부군의 힘을 사용하다가 난처한 상황을 만났을 때 이것을 보이십시오.”
“아니, 진짜 이건 부군의 힘이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능력이라니깐요…….”
진양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만 가십시오. 이곳은 과거 제가 받아들였던 한 제자가 세운 문파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하시지요. 보답이라면 추후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된 뒤 천천히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진양은 입을 삐쭉 내밀며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당신이 얘기한다고 해서 황천마종 녀석들이 들어먹을 것 같습니까?’
마종 녀석들의 성질머리만 봐도 어떨지 뻔했다.
아니, 황천 맥주 그 녀석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놈의 스승이 무덤에서 뛰쳐나와 이만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하면 도로 스승을 관 속에 처박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도움은 개뿔!
상고시대의 사람이라 그런지 물정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아니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미덥지 못한 것인지 몰라서 저러는 걸까?
진양은 상고시대에는 사람들이 전부 순박하고 착했다는 말 따위는 코딱지만큼도 믿지 않았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항상 간사하고 사악했었다.
예절이든 뭐든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야 차릴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수도사들이 언제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했던 적이 있던가?
진양은 들어왔던 길을 따라 곧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입구에 도착했을 때.
최양평은 이미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왔구나.”
최양평이 웃으며 진양을 맞이했다.
“스승님, 어떻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최양평이 멀쩡히 살아서 진양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비록 나이가 들긴 했어도 아직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진양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가자.”
두 사람은 사당을 떠나 최양평이 한때 머물던 거처로 향했다.
이 산은 마종 안에 있는 산으로 영기가 농후한 좋은 땅이었다.
게다가 마종의 취령대진의 핵심 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온화한 온기가 짙게 퍼져있었다.
산 정상에 도착하자 최양평은 하나의 영패를 꺼내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마종 안에서도 문제 하나 없이 다닐 수 있을 것이었다.
진양은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누구든 진양에게 길을 비켜주었고, 심지어 예를 갖추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서 사람들이 최양평에게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도대체 최근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복수했는데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은 그렇다 치고.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마종 사람들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반응하다니.
도무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스승님, 복수는 하셨습니까?’
“복수는 무슨. 복수하러 유명성종에 갔더니 글쎄 놈들이 귀신들과 얽혀서 난전을 벌이고 있더구나. 복수하려던 녀석들이 전부 다 귀신들에게 맞아 죽었는데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었겠니?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
“황천 맥주는요?”
“그놈은 부도마교의 마불 맥주와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쓰려졌어. 지금은 종문 내에 있는 은밀한 곳에서 요양 중이지. 그리고 요즘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단다. 남만 마도 삼대 종문이 한곳에 얽혀 난전을 벌이고 있으니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거라.”
“근데 왜…….”
원래대로라면 왜 황천 맥주에게 복수를 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다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순간 왜 그런 것인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느낀 바로는 황천마종 내의 분위기와 방어 상태가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지상에선 방어대진과 취령대진이 최대치로 가동되고 있었고, 하늘엔 순찰을 돌고 있는 사람과 괴수들로 가득했다.
만약 최양평의 도움 없이 혼자 밖으로 나왔더라면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온 최양평은 이성을 완전히 회복한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 당장 황천 맥주를 찾아가 그를 때려죽이지만 않는다면 이전에 미쳐서 날뛰며 벌인 일들에 대해 마종 역시 더 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었다.
황천보책을 가져간 건 최양평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몰래 빼돌린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최양평은 결론적으로는 공신이었다.
종문을 위해 연구를 하다 그런 꼴이 되었던 것이니까.
이러한 이유로 그 누구도 그의 잘못에 대해 지적할 수가 없었다.
복수를 포기하기만 한다면 지금처럼 최양평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었다.
진양은 자신이 판 구덩이에 누군가 빠져들면서 이로 인해 연쇄반응이 일어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었다.
현재 최양평이 돌아온 건 단지 진양을 데리러 온 것뿐이었다.
진양은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좋은 일이라면 최양평이 살아서 돌아온 것.
나쁜 일이라면 황천 맥주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
최양평은 정신이 나갔을 때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며 복수를 포기한 것이었다.
“얘야.”
최양평이 미소를 지으며 진양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죽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단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꽤 나쁘진 않구나.”
“저는 그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꾸나. 모두가 장기판에 살아가는 장기알과 같아. 살아있으면 언젠간 기회가 찾아오는 법이지. 허나 죽으면 모든 게 끝나게 되는 거야.”
최양평은 온갖 역경에 지친 노인의 모습이었다.
웅장한 이상과 포부 따위는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그저 제자들이나 가르치며, 여유롭게 차도 음미하고, 즐겁게 술도 마시며, 조용히 노년을 보내고 싶었다.
해탈한 듯한 모습이긴 했으나 지우지 못한 타협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긴 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미치광이 최양평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던 모습도, 살기로 넘치던 모습도,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끝내지 않는 끈질긴 모습도 전혀 없었다.
마도의 수도사라고 하기엔 전혀 믿기지 않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꽤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었다.
진양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최양평은 자신이 얻은 것에 비해 잃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양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죽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살아있는 게 훨씬 나았다.
진양은 최양평의 말에 공감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진양이 최양평이었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길을 가진 않았을 것이었다.
아직 적은 많이 남아있다.
종문으로 돌아와 다시 원래의 자리를 되찾고 가장 유리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었다.
복수의 기회.
자신은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고 복수할 기회가 분명 언젠가 찾아오게 될 것이었다.
궁지에 몰린 것도 아닌데 굳이 나의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살을 베어올 필요는 없었다.
앞길 창창한 자신의 인생을 내어주고 이름조차 모르는 놈의 목숨을 빼앗아온다.
이건 상대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니 마음이 꽤 편안해졌다.
현재 진양은 황천마종 최양평의 제자가 되었다.
지위가 높아진 것이었다.
게다가 당당하게 나설 수도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기에도 상당히 좋은 환경이 갖춰졌다.
진양은 최양평의 말대로 얌전히 황천마종 내에 머물며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외부인과는 일절 접촉하지 않으며 최양평과 함께 그가 예전부터 연구해오던 것들을 함께 연구하고, 배우고, 깨달아갔다.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진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