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너도 죽었고 나도 죽었다
진양은 붓꽂이가 찬란한 신위가 폭발하며 뿜어져 나오는 걸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시험 삼아 발동했을 때랑 비교해보면 위력이 천지차이였다.
지금 진면목을 보았다. 역시 붓꽂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위는 엄청났다.
붓꽂이의 신위가 발동하자 혈라마 같은 보물도 전부 스스로 신위를 거두어서 혈옥으로 다시 돌아갔다.
위기에서 벗어나고 한숨을 돌렸지만, 진양은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
붓꽂이 스스로 이렇게 발동될 때는 노인도 적수가 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진양은 붓꽂이 안에 숨어 고개도 내밀지 않았다.
노인은 뒤로 물러난 후 조각상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미동도 없었다. 눈빛은 다시 죽은 것처럼 돌아갔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오수 같은 죽음의 기운도 모두 사라졌다.
붓꽂이 안에서 진양은 공법을 움직여서 진원을 회복했다.
바깥에 있는 노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두 시진 후.
진원이 모두 회복되자 틈새로 바깥을 보았다. 노인은 여전히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서 미동도 안 했고 눈빛마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진양은 미칠 거 같았다.
‘이 망할 미치광이는 자기 죽음과도 맞서는 건가?’
노인은 죽은 채로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마치 머리카락 하나 떨어지지 않을 거 같았다. 진양 자신은 붓꽂이 안에만 숨어 있을 수 없어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우 어르신?”
진양은 떠보듯이 중얼거렸다.
“너는 노부가 누군지 아느냐?”
노인의 눈빛이 움직이더니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더는 묻지 마십시오. 어르신 이름은 오우이고, 마석성종의 오천 년 전의 태상 장로입니다. 그리고 이미 죽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죽었고 저도 죽었습니다. 저는 전에 당신에게 죽었습니다. 기억이 안 납니까?”
진양은 이를 악물고 붓꽂이에서 머리만 내밀었다.
과연 노인은 움직이지 않고 흐릿한 눈빛으로 그저 진양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눈의 흐릿함은 점점 짙어지더니 갑자기 노인의 두 눈에서 검은빛이 생기면서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검은빛은 붓꽂이가 발산하는 신광에 막혔고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노인도 더는 떠보지 않았다. 드디어 무표정하던 노인의 얼굴에 표정이 생겼다. 뭔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죽었고 너도 죽었다? 내가 널 죽였다?”
노인은 중얼거리더니 뭔가 생각난 거 같았다.
“그래, 내가 널 죽인 거 같구나. 너는 죽었다. 그런데 너는 왜 여기에 있느냐? 나도 죽었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맞습니다. 어르신, 우리는 모두 죽었습니다! 당신도 다시 죽을 수 없는 것처럼 똑같이 당신은 날 다시 죽일 수 없습니다.”
진양은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 간담이 서늘했다.
만약 붓꽂이가 막고 있지 않았다면 저 미치광이는 분명히 쉽게 자신의 역형술을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자신이 이미 죽은 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간파했을 거다.
진양은 계속해서 변명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르신, 당신은 전에 마석조묘의 깊은 곳에서 기이한 진상을 찾으려 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의 의지가 사라지지 않고 조묘에서 걸어 나왔으니 이미 가장 중요한 단서를 찾으신 게 분명합니다. 그리도 제가 조묘에서 나타난 이상한 현상을 찾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죽었고 마음도 달갑지 않지만, 가슴속의 한마디를 삼키지 못하고 그저 진상만을 찾기 바랄 뿐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찾았다고?”
그 말을 듣더니 노인의 눈빛이 굳어지면서 갑자기 엄숙해졌고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맞다, 나는 진상을 찾았고 이미 중요한 걸 찾았다. 하지만 중요한 게 뭐였지, 기억이 안 나, 기억이 나질 않아.”
노인은 실성한 거 같았다. 몸에서 또 검은 먹물 같은 죽음의 기운이 솟아 나오더니 그자의 기세도 따라서 미친 듯이 올라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덮였고 땅에서는 죽음의 기운이 솟아오르면서 붓꽂이가 막고 있어도 진양은 숨이 막히는 착각이 들었다.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진양이 다급히 소리쳤다. 이 미치광이가 만약 다시 발작하면 붓꽂이가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만약 그가 미쳐서 바로 비경 파편을 파괴한다면 자신도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말해라! 그게 뭐냐, 진상이 뭐야!”
노인은 흉악한 표정으로 붓꽂이 앞으로 돌진했다.
남은 왼팔로 붓꽂이를 잡자 마른 손과 붓꽂이의 강력한 기운이 계속해서 충돌했다. 그의 마른 팔은 천천히 가루가 되었지만, 전혀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완전히 미쳐버린 거 같았다.
“깊은 곳입니다. 음하를 타고 밑으로 가서 가장 밑바닥까지 가면 그곳에 진상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습니다!”
“맞아, 바로 그거야!”
노인의 눈에서 검은빛이 나오더니 갑자기 깨어난 것처럼 눈에는 지혜로운 기색이 가득했다.
“확실해. 바로 그곳이야!”
노인은 혼자 중얼거리더니 몸을 돌려 단번에 뛰어나갔다. 그는 이미 허공에서 음하 속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진양은 그대로 붓꽂이 안에서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다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살았다.”
진양은 마치 물속에서 건져진 것처럼 길게 한숨을 쉬고는 창백한 표정으로 붓꽂이에 기댔다.
허공에 흐르는 음하에는 오른팔과 왼손이 없는 오우가 은빛으로 찬란한 음하를 발로 밟고 있었다.
음하 안의 사방으로 연결된 수많은 갈림길은 오우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나의 갈림길을 선택할 때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음하 한 곳에서 평제백사는 강에서 머리를 내밀고는 불쾌한 모습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오우가 고개를 들자 허공을 넘어서 죽은 듯한 두 눈과 평제백사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평제백사는 고개를 돌렸다. 한 가닥으로 갈라진 뱀의 눈이 천천히 떠지더니 평제백사가 몸을 돌려서 갔다.
도문의 산문 앞으로 돌아가는 길에 평제백사는 음하를 빠져나와서 굵은 뱀의 꼬리로 도문의 산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돌이 부서지면서 ‘도문’이라고 쓰여 있는 두 글자도 모두 깨져버렸다.
콰아앙!
굉음이 나면서 산문으로 만든 돌산이 부서졌다. 산봉우리의 돌이 떨어졌지만 모두 평제백사가 꼬리로 쳐내면서 모두 음하로 빠져서 사라졌다.
“위 성실, 위 늙은이야, 빨리 튀어나와. 큰일 났어!”
평제백사는 입을 벌리고 울부짖었다.
옆의 허공에서 위풍은 인상을 쓰며 걸어 나왔다. 부서진 산문을 보자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백씨, 자네도 한때 신조제군(神朝帝君)이라는 대인물이었으면서 이렇게 매번 도문의 산문을 부숴야겠나?”
“쓸데없는 소리! 너희 도문이 멸문하기 전에는 내가 너희 산문을 부숴도 나한테 아무 말도 못 하는 거 몰라!”
평제백사는 참지 못하고 음하 쪽을 보며 말했다.
“이미 죽은 자가 지금 음하를 건너서 오고 있다. 어떡하지?”
위풍이 청회석경(靑灰石鏡)을 꺼내서 한 손을 스치자 신광이 떠오르더니 빛이 사라지고 바로 오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음, 이자였나. 오천 년이 지났건만 의지가 사라지지 않다니 집념이 대단하군.”
“어떡하면 좋지? 어서 말해. 곧 도착한단 말이야.”
평제백사는 꼬리를 다급하게 흔들었고 말은 점점 다급해졌다.
“산문을 봉인하세! 그는 우리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니 그와 충돌할 필요가 없네!”
평제백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에서 관검(寬劍)을 토해냈다. 관검은 보기에는 평범했고 화려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웠다. 검에 새겨진 고문자와 검 자루에 새겨져 있는 ‘평제’라는 두 글자가 이 검을 평범하지 않게 해주었다.
평제백사는 검을 물고 도문 산문과 음하 사이에 선을 그었다.
허공에서 허공이 절단된 것처럼 음하와 산문 사이에 갑자기 거대하고 깊은 골짜기가 나타났다.
반 장 크기에 불과한 골짜기였지만,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하늘 끝에 있는 것처럼 영원히 넘어갈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위풍과 평제백사는 산문 앞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음하를 보았다.
잠시 후 음하에서 오우가 나타났다.
오우는 음하를 밟으면서 다가왔다. 이곳을 지나가다 고개를 돌려 위풍과 평제백사를 봤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음하를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밑으로 내려가면 아마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은데.”
평제백사가 걱정이 되는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위풍은 길게 탄식했다.
오우가 다음 층 비경에 들어가면 반드시 파문이 일어날 것을 어찌 모르겠나.
지금 오우의 의식은 잠깐 살아난 거였다. 그가 이 세상에서 발하는 마지막 빛이자 가장 찬란한 빛이었다.
그의 집념은 대단해서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신이 막으면 신을 죽일 거고 부처가 막으면 부처도 죽일 정도로 거리낌이 없었다.
지금은 그 칼날을 피해야 할 때였다.
“산문을 철저히 봉인해서 주둔지가 영향을 받지 않게 하게.”
평제백사는 검을 입에 물고 연속으로 몇 번을 더 휘두르자 음하는 조금씩 멀어졌다. 주위는 완전히 끝없는 허공으로 변했다.
다시 검을 안으로 집어삼키자 평제백사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음, 내가 뭔가 잊은 거 같은데…….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힘을 너무 썼으니 우선 한숨 자야겠다.”
* * *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죽은 듯한 어두운 대지 위에서 진양은 여전히 붓꽂이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오우가 발산한 죽음의 기운에 파괴되었다.
특히 마석성종 제자들의 시신은 뼈조차 남지 않아서 더욱 아쉬웠다.
그동안 진양이 나오지 않은 건, 미치광이가 갑자기 돌아와서 공격할까 걱정돼서였다.
사흘이 다 되어가자 진양은 이를 악물고 붓꽂이에서 뛰쳐나왔다. 붓꽂이를 머리 위에 놓고 처음 들어온 곳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허공에 떠 있는 기다란 음하가 아래로 내려오길 기다렸지만 아무런 현상도 나타나질 않았다.
진양은 고개를 들고 중얼거렸다.
“백 사숙이 날 데리러 오는 걸 잊었나? 아니면 백 사숙이 미치광이에게 당한 건가? 그럴 리가. 비록 백 사숙이 평소에는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실력은 엄청나게 강한걸. 게다가 그가 그 미치광이를 건들겠어?”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시진이 지났지만 정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백 사숙이 정말로 그를 잊은 건 아닐까.
그는 그곳에서 함부로 벗어날 수 없었다. 백 사숙이 왔는데 그가 그곳에 없으면 낭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땅에 앉아서 수련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룻밤이 또 지났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됐다. 여기서 붓꽂이랑 대추나 연구하면서 기다리자.”
붓꽂이의 모양이 변했지만 사실 따로 연구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손잡이가 부러진 대추를 진양이 손으로 들자 눈에서 기이한 광채가 반짝였다.
전에는 똑똑히 보았다. 분명히 완벽하게 망가진 법보 껍데기인데, 신위를 뿜어내면서 오우의 죽음의 기운을 부쉈었다.
보통의 법보가 아무리 완전무결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몇 명의 수도사가 들고 있던 법보도 오우의 죽음의 기운 여파에 이미 가루가 되어버렸었다. 그런데 이 부러진 대추는 아무런 손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