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50
550화 젠장……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생명체도 죽여선 안 돼. 내부에 존재하는 힘도 삼켜선 안 되고. 여기 있는 모든 건 몽경 그 자체야. 절대로 몽경을 파괴해선 안 돼.”
진양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앞을 바라보았다.
멀리 유일하게 하늘이 개어져 있는 곳이 보였다.
바로 이곳 몽경과 산하도가 맞닿으며 이어진 곳이었다.
“격무, 네가 나보다 빠르니까 부탁 좀 할게. 저기 앞에 이어진 부분으로 가서 그곳을 봉쇄해줘. 두 세계가 이어지지 않도록 말이야.”
인형사는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쌩- 하고 사라져버렸다.
진양도 곧장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날아드는 번개의 칼날과 날뛰는 정괴를 피해 천변(天邊)을 향해 달렸다.
반 시진 뒤.
진양은 천변에 도착했다.
이곳은 몽경의 가장자리다.
멀리 수십 장 높이에 위로 푸른 하늘과 이어진 곳이 보였다.
일부 정괴들은 번개를 피해 그곳을 뛰어넘으려 했으나, 인형사가 그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진양도 더 이상은 도박을 할 순 없었다.
이곳의 정괴들은 아마 영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것들일 것이다.
몽경 안에 있는 것들이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산하도로 만들어진 몽경으로 뛰어들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양은 인형사와 함께 장막을 뛰어넘었다.
인형사는 자신의 뱃속에서 나무 조각들을 한 움큼 꺼내 뒤로 던졌다.
그러자 나무 조각들은 거대한 나무가 되어 빽빽하게 자라났고, 마치 장벽과 같이 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이어서 빛이 번쩍이며 나무의 장벽은 거대한 바위산으로 변했다.
양쪽의 사람들은 누구든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번개가 내려치던 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머리 위로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이들이 현재 있는 곳은 황무지다.
돌로 만든 산 하나 더 생긴 건 크게 위화감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산과 들을 따라 뛰어다니는 야수와 벌레,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그리고 이따금 멀리서 느껴지는 교전의 여파까지.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가일몽의 말이 사실이었군.’
이곳은 수많은 일념들이 쌓여있는 곳이자 몽경이며, 영제의 기억의 일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혹여나 일념의 바다에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을 흘릴까 봐 이곳에 가짜 일념의 바다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신명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는 가짜다.
그저 단편적인 기억으로 이루어진 몽경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일념의 바다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진짜다.
이는 남가일몽이 벗어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본래 실존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사실이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그는 인형사처럼 자신 스스로를 인형으로 만들어버리거나 영혼을 원령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반대로 실력이 강해질수록 기예 또한 높아졌고, 일념의 바다와의 계합이 맞을수록 더욱더 강하게 발목을 잡았다.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결말은 성불뿐이었다.
진양은 멀리 빛이 번쩍이며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누군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진양은 하나씩 눈앞의 상황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영제는 어떤 기억을 도려내어 이곳을 지키려고 했을까?
그의 문은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시간이 많지 않기에 서둘러야만 한다.
인형사와 함께 빠르게 허공을 가르던 진양은 어느 순간 돌연 듯 멈춰 섰다.
높은 창공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이곳의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중 일부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눈에 익은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저건 이도잖아?”
그러나 진양이 알던 이도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곳곳에 살기가 남아있었고, 성벽은 이곳저곳 심각하게 부서져 구멍이 나 있었다.
공부의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며 망가진 성벽을 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외에 강렬한 기혈을 뿜어내고 있는 갑사(甲士)이 성벽 곳곳을 돌아다니며 순찰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대다수의 성문은 닫혀있었으며, 일부는 열려있긴 했으나 매우 삼엄한 경비하에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젠장……. 골치 아프게 됐군.’
일부의 사람만 만들어낸 게 아니라 이도의 경비병까지 죄다 만들어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로써 이도 내부에 영제의 문이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저길 도대체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잠깐 생각하는 동안에도 벌써 성문 앞에선 열 사람이나 넘게 죽어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거나 신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베어 넘기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이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원래 이도는 감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곳으로, 누구든 신조의 도성인 이도에서 사고를 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때문에 경비병들도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였다.
심지어 최말단 경비병들까지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상태는 꽤 오랫동안 지속된 듯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제가 도려낸 기억이 어느 특정 인물이나 일부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한 구간의 기억을 통째로 도려냈다는 사실은 이제 확실해졌다.
이런 곳에서 원하는 물건을 찾는다?
그야말로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한참을 관찰하던 진양은 일단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느껴졌던 싸움의 여파가 떠오른 것이다.
진양은 인형사를 데리고 싸움의 여파가 느껴졌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참 전투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한 사람은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대영 신조의 사람은 아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청색 장포를 두르고 있었는데, 전형적인 대영 신조 서생의 복장이었다.
진양은 일단 거리를 두고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세 시진 뒤.
누군가 이도 쪽에서 이곳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전히 대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순간 진양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하고 스쳐 지나갔다.
“격무, 서생은 기절시키고 달라붙은 옷 입고 있는 저 사람은 처치하도록 해.”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라붙은 옷을 입고 있는 자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이어서 격무가 한 손으로 서생을 내팽개치자 그 충격으로 서생은 기절해버렸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잠시 뚜둑- 거리는 뼈 맞추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더니 순식간에 서생의 모습으로 변했다.
거기에 화형지법까지 사용하니 영혼의 본상까지도 완벽하게 복사가 되었다.
분장을 마친 진양은 목이 떨어져 나간 남자의 시신에 다가가 손을 댔다.
예상대로 습득 능력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과할 정도로 생생하다는 것이 전부일 뿐, 그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서생에게도 다가가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하나씩 뒤져 꺼냈다.
작업을 마친 뒤, 진양이 물었다.
“죽이진 말고. 그냥 사라지게만 만드는 건 어려울까?”
“아니, 그 정돈 간단해. 괜히 죽였다간 영제의 주의를 끌 수도 있을까 봐 그런 거잖아? 그런 거라면 어려울 건 없지.”
인형사는 배에 달린 뚜껑을 열고 그곳에 기절한 서생을 집어넣었다.
“좋았어. 그럼 넌 일단 몸을 피하도록 해.”
진양은 인형사를 해안으로 회수한 뒤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서생이 들고 있던 검을 들어 머리 잘린 시신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시신은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진양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진양은 마치 중상을 입은 것처럼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잠시 뒤.
이도에서 날아온 사람이 진양에게 다가왔다.
“막한!”
한 노인이었다.
그는 멀리서부터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큰소리로 서생의 이름을 부르며 날아왔다.
진양은 아무 대답 없이 조용히 누워있기만 했다.
이어서 다가온 노인이 진양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막한, 네가 누이를 얼마나 아끼는진 알고 있다만. 우리도 방법이 없는 걸 어쩌란 말이냐…….”
“대인, 도련님의 상처가 깊습니다. 일단 안쪽으로 옮기고 나서 말씀하시지요. 이런 곳에서 대윤 놈들이라도 만났다간 큰일입니다.”
함께 온 중년인이 사방을 경계하며 노인의 말을 끊었다.
“알겠네. 그럼 일단 돌아가도록 하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양을 둘러업었다.
그렇게 노인 일행은 다시 이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곧바로 이도로 들어갈 순 없었다.
성문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신분 검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비병들은 단순히 신분 영패만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본상까지도 검사를 했다.
진양은 계속 기절한 척 누워있었기 때문에 함께 온 중년인이 대신하여 막한의 영패를 꺼내 경비병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기절한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 신분 영패를 가동시킬 수는 없었다.
그때, 경비병장이 다가와 노인에게 포권을 취했다.
“소 대인, 이게 소인의 임무라서 저도 어쩔 수 없는 점 용서하십시오.”
이어서 한 줄기의 빛이 쏟아지며 각 사람의 영혼의 본상이 성벽에 비춰졌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영혼 본상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경비병들은 이들을 보내주었다.
무사히 이도 안으로 들어오게 된 진양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 씨라. 꽤 권세 있는 집안인 것 같군. 잔뜩 날이 서 있던 경비병들조차 저렇게 조심스러운 모습이라니.’
진양의 기억에 육부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들 중 소 씨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며 몰락한 집안인 듯했다.
성안으로 들어온 노인은 곧장 커다란 저택으로 진양을 데려갔다.
그리고 방 한 켠에 눕히며 편히 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젠장……. 이게 아닌데.’
그저 적당한 신분 하나 빼앗아 이도로 들어오는 게 목적이었는데.
하필 빼앗은 신분이 권력가 집안의 귀한 자제의 신분이라니.
이렇게 되면 계획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소막한이라는 자의 신분으로 움직이는 쪽으로 생각을 해야 할 듯했다.
사실 어찌 보면 일이 더 잘 풀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정도 집안의 자제라면 불심 검문을 당하더라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괜히 수상한 행동을 했다간 오히려 더 크게 눈에 띌 수도 있긴 하지만.
‘뭐, 일단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고.’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았을 때 소막한이라는 자는 상당한 다혈질인 듯했다.
집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그것을 참지 못해 홧김에 성 밖으로 뛰쳐나가 일을 저지르다가 진양에게 발견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추측만 하고 움직이는 건 위험하다.
일단은 잠자코 다른 이들이 소막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