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76
676화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야
“대인의 지혜와 결단력에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진양은 포권을 취했다.
전조 대제는 애초에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살려두고 협박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영제의 귀에 들어간다면 현재 영제의 상태로 보아 대장로는 물론이고 전씨 가문 전체의 목숨이 날아가게 될 것이다.
대장로와 전씨 가문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전조 대제와 같은 배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대장로는 과감하게 자신의 심장을 파내고 경맥과 혈맥, 그리고 기맥마저 전부 제거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설령 대장로가 전조의 잔당과 만났다는 사실이 영제의 귀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전씨 가문은 무사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더욱 총애하게 될 것이다.
전조 대제의 입장에서 봤을 때 대장로를 잃은 전씨 가문은 더 이상 이용의 가치도 없고, 이용해 먹을 방법도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유일한 답은 죽음뿐이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오랜 세월 수많은 명성과 위신을 쌓고, 가문을 떠받치며 살아온 대장로에겐 더더욱 말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진양은 결코 죽음을 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진심으로 그에게 탄복한 것이다.
잠시 대장로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최근에 벌어졌던 일들이 떠올랐다.
이쯤 되니 배후에서 일을 꾸미고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자들이 하나씩 추려지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로 전조의 대제가 진양을 이용해 거사를 치르려는 것이라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인, 혹시 미간에 뱀 모양의 징표를 새긴 자들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한참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진양이 돌연 듯 물었다.
대장로는 화들짝 놀라며 진양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걸 진 선생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오?”
“대인, 죄송합니다만 이미 대인의 차례는 지나갔습니다.”
진양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교인 황족의 공주가 대황으로 납치되었고, 살신전에 맞아 제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함정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이검군 형님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대인을 뵙게 된 겁니다.”
대장로는 진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표정은 한층 더 풀어진 모습이었고, 이내 ‘허’하며 웃어버렸다.
“아무래도 내가 진 선생을 너무 얕잡아본 모양이오.”
진양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대장로가 말을 이어갔다.
“진 선생이 말한 사람이라면 나도 만나본 적이 있소. 허나 그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묻지 마시오. 전씨 가문의 운명을 진 선생에게 맡길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오. 설령 그게 아니라고 해도 난 말할 수 없소.”
“이해합니다. 만약 저였어도 그랬을 것 같거든요.”
진양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진양의 시선은 대장로와 그의 뒤에 있는 백맥용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대인,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제게도 꼭 말씀해 주시지요. 대인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을 꼭 배웅해 드리고 싶습니다. 가문과 후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강자를 기리고 싶습니다.”
진양은 대장로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을 보니 더 이상은 불가능할 듯했다.
뱀 문양의 표식을 가진 자에 대해 언급을 하자마자 대화를 회피하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답을 듣기는 어려울 듯했다.
이토록 극단적으로 비밀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죽고 난 뒤 반드시 비밀로 가득한 기능서를 남기게 된다.
그러므로 일단은 조용히 넘어가고 나중에 그가 죽으면 습득 능력을 사용해 성불을 시키고 난 다음 살펴보기로 했다.
진양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비볐다.
나중에 다른 기능서를 얻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게 된다면 백옥 신문을 여는 난이도는 한층 더 커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는 법.
흑옥 신문이라는 전례가 있었기에 이미 두려울 건 없었다.
난이도가 커진다고 하더라도 흑옥 신문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증가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령 경전 하나가 통째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난이도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시간을 두고 풀어가다 보면 해결될 문제라는 뜻이다.
신문 경지에 오른 이후 눈에 띄게 좋아진 점은 바로 수명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다.
족히 수천 년은 여유를 부려도 될 정도였다.
때문에, 진양은 나중에 시간을 갖고 천천히 풀어가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들은 당장 급한 것들이 아니었다.
목숨과 엮여버린 성불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대장로와 의미 없는 화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장로는 일부러 화제를 돌리며 작금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과거의 일들에 대해 떠들어댔다.
특히 과거 팔족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 떠들었을 즘.
대장로가 돌연 말을 멈추었다.
“이만 돌아가시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올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돌아가실 때가 되면 꼭 말씀해 주세요. 마지막 가는 길 잘 배웅해 드릴 테니까요.”
“고맙네.”
진양은 포권을 취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이검군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먼저 돌아가고 나서 얘기 나누시죠.”
제이검군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 대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우야, 이만 떠나거라. 곧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올 게다.”
제이검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양의 어깨를 붙잡았고, 이내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뒤.
두 사람은 다시 진양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진양은 ‘순간이동술’로 인해 찌뿌둥해진 몸을 풀면서도 크게 감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당히 쓸만한 공법이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육신의 강도가 충분하지 않다면 ‘순간이동’으로 인한 압력을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전씨 가문의 저택이 이곳에 멀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지, 이보다 훨씬 더 먼 곳에 있었다면 제이검군도 이런 식으로 진양을 데리고 다니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몸을 풀고 나서야 주위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외출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묵양은 진양이 떠날 때 서 있던 그 자리에 선 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심각한 일인 듯했다.
“묵양, 거기서 뭐 해?”
“조용히 해봐. 지금 중요한 고민 중이라고.”
묵양은 날카롭게 진양을 쏘아보고는 계속해서 생각에 빠졌다.
진양은 크게 충격을 먹었다.
‘무, 묵양 저 녀석이 고민을 한다고? 도대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마음 같아선 더 캐묻고 싶었으나 진지한 녀석의 모습에 이만 단념하기로 했다.
진양은 제이검군을 별채로 데려갔다.
별채로 들어서기 무섭게 제이검군이 물었다.
“진양, 대장로님께서 도대체 뭐라고 하셨길래 그런 것이오?”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대인께서는 이미 전씨 가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겁니다. 이제 곧 결단을 내려야 할 테니 신중하게 고민을 해 보시지요.
그리고 이제 대인께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그러니 자주 찾아뵙도록 하세요. 아마 많은 것을 가르쳐주실 겁니다.”
차마 대장로가 뻔뻔할 정도로 낯짝이 두꺼운 사람이라는 얘기는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죽기 전에 자신을 불러주겠다고 약속을 한 만큼 제이검군에게는 좋은 기억을 남겨주기로 했다.
“…….”
제이검군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줄은 알았지만 아무리 그대로 이건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백맥용만 있으면 그가 충분히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진양, 함께 가줘서 정말 고맙소.”
한참 침묵하고 있던 제이검군은 포권을 취하며 한 마디를 남긴 뒤 홀연 듯 사라졌다.
제이검군이 돌아가고 나자 저택은 다시 조용해졌다.
온우백은 진양의 심부름을 받고 볼일을 보러 나갔고, 흑피는 여전히 깊게 잠든 상태였고, 묵양은 조각상처럼 멀뚱히 서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뭐, 일단은 간만에 찾아온 평화인가.’
하지만 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진양은 마당 한 편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수련을 이어가며 백옥 신문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누군가 묵양이 설치해둔 금제를 건드리며 평화롭던 저택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금제가 발동하며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거대 괴수의 형상이 나타났다.
상당히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심지어 저택의 보호를 받고 있는 진양에게조차도 뚜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까지도 고민을 이어오고 있던 묵양은 눈을 번쩍 뜨며 진양을 살폈다.
잔뜩 긴장한 그는 언제든지 손을 쓸 준비가 된 모습이었다.
* * *
같은 시각.
저택 밖에선 가희가 놀란 얼굴로 갑작스럽게 위험하게 변한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온함 뒤에 감춰진 위험한 기운은 마치 검은 연기처럼 끓어오르며 조금씩 저택 주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 가희는 적어도 일곱 가지 이상의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기운을 무시하고 저택 안으로 향했다간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 경지에 오른 수도사들은 자신의 느낌을 단순한 착각으로 여기지 않는다.
가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물론 이건 진양이 그녀를 노리고 만든 게 아니라 단순히 설치되어있던 금제가 스스로 발동한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토록 과민하게 반응할 정도라면 분명 누군가 진양을 노리고 있다는 뜻인데.’
하지만 최근에 들은 얘기는 없었다.
* * *
저택 내부.
진양이 잔뜩 놀란 얼굴로 묵양의 어깨를 두드렸다.
“적당히 좀 해. 왜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그냥 지나가선 사람이 물 한 그릇 얻어먹으려고 온 거일 수도 있잖아.”
묵양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공들여 펼쳐둔 방어 금제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기껏 힘들게 금제를 펼쳐둬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다.
제이검군은 이곳을 마치 제 방 드나들듯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진양은 그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묵양은 어딘가 잔뜩 풀이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진양조차 질문하기 조심스러울 정도의 비밀이 생긴 듯했다.
하지만 묵양이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제이검군이 아무렇지 않게 이곳을 오갈 수 있는 건 단순히 그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양이 그의 신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신물이 여러 개가 있는 건 아니다.
제이검군조차도 가지고 있는 게 몇 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바꿔가면서 사용했을 뿐이다.
물론 고정적으로 두고 사용하는 신물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제이검군의 아내인 온약언이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진양이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진양이 이걸 가지고 있는 건 전부 온약언 덕분이다.
어쨌든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묵양은 어떻게든 제이검군이 이곳으로 몰래 침범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진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제를 통해 방문자가 가희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비난령을 꺼내 확인해 보니 가희라는 사실은 더욱 확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