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01
701화 난처하다
과거 초조가 멸망할 때 단순히 조정과 세력만 멸망한 게 아니다.
문화, 전승, 기록, 언어 등 모든 것들이 이 세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때문에, 과거 초조 관화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도망친 자들의 후손 중에서 초조 관화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순 있다.
하지만 거의 사라진 언어로 봐도 무방하다.
대영 신조에서 이런 억양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예전에도 자주 보았다.
대부분 바다에서 온 자들로 기연을 찾아 대연까지 온 자들이었다.
젊은 강도가 떠나가고 난 뒤.
주인은 홀로 쓸쓸한 가게에 남아 손님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가만히 있으니 방금 들었던 정보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초조 자민(子民)의 후예로 추정되는 산수, 그리고 호리병에서 하얀빛을 쏘아 상대의 머리를 베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을 함께 놓고 보니 가장 먼저 초조의 목씨 가문이 떠올랐다.
엄청난 명성을 가지고 있던 자들인 만큼 대영이 초조에 대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지금까지도 여러 기록에 남아있을 정도였다.
돈을 받는 대신 정보를 교환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한 일인 듯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돈이 될 만한 정보였다.
물론 이걸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는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보통 고지(故地)라 함은 과거에 존재했던 신조의 주요 성지나 관문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을 뜻한다.
진양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계속해서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체내에 흐르던 진원은 이전에 비해 절반 이상이 감춰진 상태였다.
심지어 아주 예전에 배웠던 저질 공법으로 기운까지 바꿔버렸다.
돈 없는 산수로 위장하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태껏 본 적 없던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급하면 많은 양의 영석을 들여서라도 비주를 타고 이동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묵양의 비주 덕분에 저층 강풍층까지 날아가며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고 이동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현재 진양은 영석 한 개조차 아까워서 함부로 쓰지 못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산수의 모습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약이 아닌 주변의 영기를 흡수하여 회복해야만 했고, 크게 급한 일이 아니라면 이동도 천천히 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 진양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영태 경지에 오른 수도사의 모습이다.
애매한 경지인 만큼 길을 가는 도중 많은 일과 사람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다짜고짜 가진 걸 내놓으라며 달려드는 강도들도 있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곧바로 살수를 쓰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흑림해를 빠져나온 뒤로 이런 자들은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다.
어느 산 정상.
진양은 멍한 얼굴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바라보았다.
길 위로 은은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가난한 척 연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왠지 모르게 과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분명 얼마 전에 누가 봐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은 자들을 둘이나 만났었는데, 이들은 진양을 못마땅하다는 듯 위아래로 훑어보곤 그냥 지나가 버렸다.
멀리 전투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러한 추측은 결코 틀린 게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다.
심지어 강도들조차 진양에겐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들의 눈에 진양의 이마에는 큼직하게 ‘가난’이라고 씌여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자를 죽여봤자 전투 후에 먹어야 하는 단약 값조차 제대로 챙길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실망감이 피어올랐다.
일전에 흑림해에서 살려줬던 그 녀석이 영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느리게 걷고 있고, 또 목표도 이토록 명확한데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단 말인가?
이전에는 도망치다가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자금 호리병을 꺼내 강도들을 처치해버렸다.
숨어있던 녀석에게 일부러 보여주어 따라오게 만들려던 것도 있고, 거기에 일부러 자금 호리병은 사용에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던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날 따라와서 죽인다면 엄청난 보물을 손에 넣을 기회가 생길 텐데 말이야!’
그러나 아무도 먼저 와서 건드리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정보를 흘릴 수가 없다.
진양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계속 걷기로 했다.
일단 유적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과거 목씨 가문의 영지가 있던 성지의 터가 남아있다.
지금은 뼈대만 남아있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 여정에서의 일곱 번째 목적지였다.
* * *
천칠백 리 정도 떨어진 곳.
푸른 산과 강이 수십 리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사방에서 온갖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흔적들은 과거 수십 리에 이르는 거대한 성지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값이 나가는 물건들은 이미 누군가 전부 휩쓸고 간 상태였다.
현재 이곳 폐허에는 일전에 운 좋게 살아남은 젊은 강도와 일곱 정도 되는 다른 수도사들이 한창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진법을 설치하는 자도 있었고, 함정을 설치하는 자도 있었고, 무언가를 만드는 자도 있었다.
“이봐,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고. 그 정보 확실한 거 맞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사도 수도사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젊은 강도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확실하다니깐.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초조의 고지를 여섯 개나 지나쳤다고. 아마 다음 목적지는 분명 이곳일 거야. 이미 그를 봤다는 사람도 꽤 있었고.”
젊은 강도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물론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진양을 쫓으며 그가 초조의 고지만 찾아다니고 있다는 건 확실하게 알아냈다.
하지만 여섯 개를 지날 동안 그의 위치를 전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려 일곱 번째 고지에 와서야 진양보다 먼저 도착하여 미리 매복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
이상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자였다.
특히 평범한 외모가 가장 문제였다.
길거리를 둘러보다 보면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산수의 모습이었다.
때문에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는데 상당한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가 성지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더욱 찾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오늘로 진양을 추격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진양은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 모든 이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만약 이번에도 허탕을 친다면 이들은 젊은 강도의 목숨을 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단히 독이 오른 만큼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진양은 느긋한 걸음으로 마침내 폐허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숲길을 걷다 보니 사방에 남아있는 폐허의 흔적들이 보였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섰다.
동술(瞳術)을 사용하니 진법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빛부터 날카로운 살기, 숨겨진 살기, 그리고 수도사의 기운까지 모든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백여 리 내 범위에 깔려 있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일전에 살려서 보내준 수도사의 기운도 있었다.
진양은 크게 기뻐했다.
단순히 상대가 자신을 포기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준비를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었다.
‘흐흐, 드디어 나타났군.’
진양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폐허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지어 상대가 자신을 포위하기 쉽도록 일부러 함정을 자연스럽게 피하며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강도 일당은 진양이 폐허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진양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곳은 평소에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이다! 다들 조심해. 놈은 범상치 않은 보물을 들고 있다고. 절대로 놈이 그것을 사용 못 하게 해야 해.”
젊은 강도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말했다.
혹여나 자신의 기척이나 기운을 진양이 먼저 알아차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폐허 중심지로 들어선 진양은 그제서야 미리 설치된 함정으로 발을 들였다.
지면에서 독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수십 마리의 독사들이 진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양은 법보를 꺼내 들 여유조차 없이 허둥지둥 진원을 끌어올려 방어막을 펼치며 뒤늦게 반응했다.
달려든 독사는 너무나도 쉽게 진양의 방어막을 뚫었고, 독사의 날카로운 이빨이 진양의 피부에 박혔다.
“물렸다! 전부 덤벼!”
강도 일당 중 한 노인이 진양을 가리키자 모두들 각자의 방향에서 튀어나와 진양을 중앙에 에워쌌다.
두텁게 깔린 독 안개 사이.
온몸에 독사를 주렁주렁 매단 진양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부러 약한 방어막을 펼쳐 독사가 자신을 물도록 했는데 독사의 이빨은 진양의 피부를 전혀 뚫지 못했다.
게다가 독사의 독과 안개에 서려 있는 독도 전부 허접한 수준이었다.
진원 방어막의 찢어진 틈을 통해 비집고 들어오긴 했으나 대부분 육신을 뚫지 못한 것이다.
이대로 진양이 멀쩡하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들은 진양을 크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산수가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숨을 들이마시며 일부러 독을 마셨다.
온몸의 진원과 기혈, 그리고 육신의 반응을 최대한 억제하고 나서야 간신히 중독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쯤 되니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지?’
체술을 연마한 덕에 강인한 육신을 갖게 되었으나 오히려 이럴 때는 독이 되어버린다.
상대는 나름 비장의 수단을 꺼내 들었으나 진양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일부러 독을 마시기까지 했으나 이 정도는 신통력으로 해독할 가치도 없었다.
그저 숨만 쉬어도 알아서 해독이 될 정도로 약한 위력이었으니 말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 그런지 적은 여전히 신중하게 진양을 관찰하고 있었다.
진양은 곧바로 몸을 흔들어 붙어있던 독사를 떨쳐냈다.
그리고 곧바로 독 안개가 깔려 있는 곳 밖으로 걸어 나갔다.
순간 독 안개는 말끔하게 사라져버렸다.
대신 뜨거운 불바다가 펼쳐졌다.
강렬한 화염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진양의 눈과 코, 그리고 입속을 파고들었다.
다행히 강도 일당 중에는 진법에 대해 아는 자가 있는 듯했다.
진양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적당히 둘러대기 훨씬 더 간편해진다.
무슨 진법이든 펼쳐기만 하면 조금이나마 시간을 끌 수 있다.
남은 자들은 전부 죽이면 그만이다.
이런 곳까지 찾아와 매복까지 할 정도면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 녀석들일 것이다.
그러니 망설일 필요도 없다.
체술을 연마했다는 사실은 숨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신분이 보조 공법으로 연체 공법을 연마한 걸로 하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