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17
717화 엄좌도 수도사 언예
교전 장소에서 만 리 정도 떨어진 동해의 어느 작은 섬.
그리고 그곳에 만들어진 정천사의 거점 내부.
천장에 장식처럼 달려있던 유리구가 스스로 파괴되며 폭발을 일으켰다.
이어서 백연과 함께 전뇌가 나타났다.
그는 곧장 지면 위로 떨어졌다.
그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로 새까맣게 변해있었고, 온몸에 난 실금 같은 상처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붉은 피가 아니라 새까맣게 변해버린 피였다.
“적성수, 언예…….”
전뇌는 눈을 부릅뜬 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완전히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의 몸에선 생기가 끊임없이 빠져나와 흩어져가기 시작했다.
뒤늦게 달려온 정천사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전뇌를 치료하기 위해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그러나 전뇌를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중독이 됐다.
결국 거점을 관리하는 외후가 그동안 고이 간직하고 있던 만재현빙(萬載玄氷)을 꺼내 전뇌를 강제로 얼려버리며 일단은 목숨은 붙잡아두었다.
* * *
같은 시각.
거대한 손은 거대한 검을 천천히 고공으로 들어 올렸다.
이어서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검광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거대한 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잠시 뒤.
한 노인이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노인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언예라고 하네. 과거 자네의 선조들 중 많은 이들과 교분을 나누었던 사이지. 자네가 진정 목씨 가문의 후예라면 아마 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일세. 자네는 목씨 가문의 어느 지파의 후손인가?”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진양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아직 새로 만든 가짜 신분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던 것.
“이름이 없다라……. 다행이군. 이름이 없다는 건 그만큼 풍파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언예는 바다 위에 선 채 아직까지도 작동되고 있는 진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오랜만이군. 목씨 가문의 일원해진을 직접 보는 날이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진양은 아무 말 없이 노인을 지켜보았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소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예가 계속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직 폭풍우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이곳에 조용히 숨어있는 게 좋을 걸세. 지금까지 살아남은 초조의 사람들은 이제 얼마 없다네. 목씨 가문은…….
목씨 가문의 사람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지. 자네는 지난 만 년간 내가 본 유일한 목씨 가문의 후손일세.
대윤 제군의 법신은 아직까지도 생존해있다네. 대윤 사람들은 이미 거사를 일으킬 준비를 모두 마치고 움직이고 있다네. 허나 노부는 오랜 시간 은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이었지. 그러던 도중 대윤 사람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왔다네. 과거에는 무력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게 지금까지도 큰 한이 되었지. 그래서 더 이상은 목씨 가문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두고만 볼 순 없었다네.
어서 가시게나.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게.”
이쯤 듣고 나니 진양은 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건지 이해가 됐다.
‘뱀 문양 그 녀석, 이 정도로 신중할 줄이야!’
그들은 목씨 가문의 후손을 자신들의 거사에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숨겨둔 자신들의 힘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목씨 가문의 후손이 나타난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언예가 어쩔 수 없이 나서도록 만든 것이다.
여기서 나서게 된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대영과 대립하는 쪽에 설 수밖에 없게 된다.
설령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뱀 문양의 남자는 반드시 이 정보를 정천사가 입수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목씨 가문의 후손 외에 강한 고수의 힘까지도 함께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힘은 조금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전뇌가 도망가는 걸 보고도 언예가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붙잡을 힘이 없었던 게 아니다.
아예 잡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잡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확신 없이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되겠어. 뱀 문양 그 녀석, 생각보다 무서운 놈이군.
한 번에 끝내야 돼. 한 번에 끝내지 못한다면 기회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
언예는 진양을 데리고 전장을 떠났다.
아직 진법에 갇혀있는 정천사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진양 역시 그들은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남아있는 녀석들은 살려두나 죽이나 크게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신분으로 언예 앞에서 손을 쓰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두 사람은 낡은 양탄자에 탄 채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기괴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양탄자는 사실 걸레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언예는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예전 일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었으나 목씨 가문의 후손이 더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진양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지났을 무렵.
언예는 혼자 떠나버렸다.
떠나기 전, 그는 진양에게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고 절대 목씨 가문을 위해 복수 같은 건 꿈꾸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
홀로 바다 위에 남겨진 진양은 멀어지는 언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언예가 뱀 문양 남자의 사람이 아니라는 게 한층 더 확실해졌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그저 목씨 가문의 마지막 남은 후손이 허망하게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은 없었다.
설령 신분이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그는 다른 수도사와는 다르다.
젊은 수도사에게나 찾아볼 수 있는 패기는 당연히 없었고, 모든 수도사들이 바라는 높은 경지에 대한 갈망도 없었다.
더 이상 많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화를 하는 도중에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으나 언예가 말을 막는 바람에 물어볼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전부 고의였다.
진양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목씨 가문의 후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혹여나 자신의 귀에 들어온 정보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완벽하게 비밀을 지키는 방법은 아예 그 비밀에 대해 듣지 않는 것이다.
언예는 상당한 실력을 갖춘 고수인 만큼 비밀이 흘러나가는 여러 방식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전부 다 방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건 진양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지금껏 죽은 사람들의 시신에서 수도 없이 많은 정보를 얻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이도에 살고 있는 만큼 여기까지 나선 것을 이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자신의 제자와 함께 이도를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만약 목씨 가문의 기록을 본 적이 있다면, 과거의 일들에 대해 알고 있다면 다음에 다시 연이 닿아 만났을 때 반드시 언예의 제자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냥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언예라는 이름조차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그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언행부터 태도까지 많은 것들이 몽의를 생각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 * *
조용히 동해로 돌아온 진양은 한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도문의 거점에 들러 정보를 구매했다.
언예에 대한 오랜 정보들이었다.
비록 상당히 오래전의 정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강자와 관련된 정보인 만큼 가격은 상당했다.
습득한 정보지를 읽어 보니 그제서야 언예의 이름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수도사를 만나보았지만 ‘예(穢)’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이 글자는 더럽다, 거칠다, 불쾌하다 등 온갖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수도사는 이러한 것들을 가장 멀리해야 한다.
특수한 체질 중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것들 중에는 무하도체(無瑕道體), 무구도체(無垢道體), 유리도체(琉璃道體) 등이 있다.
이것들은 전부 순수함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들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오예도체(汙穢道體)와 같은 기괴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수도사나 법보의 힘을 더럽히는 사도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순수함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더럽거나 흠이 있는 것은 반드시 피하기 마련.
언예는 과거 초조의 은둔 수도사로, 그가 속한 문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물론 문파에 속한 사람은 언예 한 사람뿐이었으나 그는 꿋꿋하게 자신을 정예문(凈穢門) 문주라고 칭했다.
예는 문주의 이름이다.
각 세대의 문주에겐 예라는 이름이 내려졌다.
그가 익힌 공법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도로 불리던 공법이다.
사도란 주류 공법과는 다르게 극소수만이 알고 있고 남들과는 매우 다른 공법, 그리고 좌도(左道)와 같이 낙이니 찍힌 공법들을 통틀어 칭하는 말이다.
모든 수도사들이 영기를 흡수하는 목적은 불순한 것은 제거하고 정화만을 남겨놓기 위해서다.
그러나 언예의 수행 방법은 조금 달랐다.
정화를 제거하고 불순한 것만 남겨두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일반적인 수도사들이 사용하지 않는 잡다한 것들만을 취했다.
때문에, 그가 손을 쓰면 그 사실은 숨기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기운 자체가 너무나도 튀어 보였기 때문이다.
배척을 당한 또 다른 이유는 평범한 수도사들이 사용하는 수많은 수단들은 그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고, 반대로 그의 공법이나 신통력 역시 평범한 수도사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가 초조에서 은둔 수도사로 살아갔던 건 당시 초조가 그나마 가장 개방적으로 모든 것을 포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간다면 그는 곧바로 사도 수도사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러나 초조에서는 좌도(左道)로 인정을 받을 뿐 사도로 낙인이 찍히진 않는다.
초조에서는 좌도와 사도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곳에서 좌도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명칭이 아니다.
그저 주류 공법과는 다소 다른 공법이라는 뜻의 중성적인 의미를 가진 명칭에 불과하다.
초조가 멸망할 때 언예와 같은 좌도 강자들은 자연스럽게 중점적인 관찰 대상으로 꼽힐 수밖에 없었다.
정세가 어지럽던 시기 언예는 폐관 중이었다.
사실 초조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언예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저 초조의 땅을 빌려 수련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언예는 늘 그렇듯 평소와 같이 행동하며 조용히 수련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뒷정리를 하던 대영 신조의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좌도의 강자를 들쑤실 이유는 없다.
언예는 그때 이후로 사라져버렸다.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전심 수련을 이어가고 있는 산수 강자 정도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 어떠한 이익도 상충되지 않았고, 은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건드릴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가 직접 나서서 목씨 가문의 잔당을 구해주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