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76
776화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잠깐의 대화를 나눈 뒤 나백은 돌아갔다.
홀로 남은 나송은 진양이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진양이 가지고 있던 건 열 개의 살신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외부로 흘러나온 건 총 여섯 개의 금속 상자.
만약 각 상자당 열 개의 화살이 들어있다고 친다면 총 육십 개의 살신전이 유출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자가 더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누군가 발견하고도 떠벌리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분실된 살신전은 분명 오십 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려진 상자 중에 진양의 말대로 아무것도 들지 않은 미끼 상자가 존재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쩌면 그가 가지고 있던 상자 중에 미끼 상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전조는 애당초 대영의 계략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끼 상자를 던져 그의 시선을 가리고 진짜 살신전이 든 상자를 몰래 노창산이나 소창산에 숨겨놓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다 같은 금속 상자임에도 살자비의 살기를 흡수하는 속도는 상자마다 차이가 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전조와 대영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연 땅에서 벌이는 싸움에서 나송 자신과 연나 일족을 하나의 돌로 삼아 바둑을 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추측들이 사실일지는 진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일단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진양은 충분히 손을 잡을 만한 사람이었다.
확실히 허공진경의 전수자를 죽일 의향이 있는 듯했다.
* * *
노창산을 빠져나온 진양은 곧장 안전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나송을 직접 만나고 나니 어떻게 해야 모조품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는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모조품과 아무것도 들지 않은 상자를 함께 뿌리는 것이다.
마치 보물상자를 여는 것처럼 한 무더기의 상자 중 하나를 여니 살신전이 들어있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상자를 뿌리면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상자를 뿌리면 심지어 진양조차 분별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진양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방법을 이제야 떠올리다니!’
살자비의 살기를 흡수하는 빈 상자를 만드는 건 모조품 살신전을 만들어 넣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도 절약된다.
그렇게 삼 일 뒤.
진양은 무려 삼십 개나 되는 빈 상자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든 상자는 제이검군의 도움을 받아 노창산과 소창산 곳곳에 뿌렸다.
어떤 건 일부러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에, 어떤 건 다소 집중해야 발견할 수 있을 만큼 깊은 곳에 묻었다.
뿐만 아니라 대영 신조 국경지대로 가서 사신살자비 근처에도 몇 개 묻어두었다.
예전에 풍수사에게 받은 물건들을 이제야 써먹게 되었다.
서른 개의 상자 중 봉인이 중복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설령 누군가 전부 파낸다고 해도 진양은 안전하다.
대놓고 나서서 자신이 만든 거라고 해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은 건 누굴까?
바로 신조다.
신조 같은 큰 세력 외에 이 정도로 많은 빈 상자를 만들어 뿌릴 수 있는 세력은 없기 때문이다.
진양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두 개의 빈 상자를 따로 챙겨두었다.
그리고 조용히 다른 사람들이 빈 상자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뒤늦게 추가된 계획인 만큼 허점은 존재했다.
앞서 뿌렸던 상자에는 살신전이 들어있으나 나중에 뿌린 상자에는 없다.
물론 아무도 상자를 열지 못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기에 크게 걱정할 건 없었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안전하게 가는 편이 좋다.
혹여나 누군가 상자를 열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다른 사람은 알아도 큰 상관이 없다.
문제는 나송이다.
비록 고생 한번 해 보지 않은 귀하게 자란 몸이긴 하지만 그래도 머리는 좋은 사람이다.
절대 그가 진양을 의심하도록 만들어선 안 된다.
그래서 상자를 열어줄 때 몰래 빈 상자로 바꿔치기해서 전해줄 생각이었다.
* * *
며칠 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살신전을 찾아내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대연 신조가 나서서 살신전을 찾는 행위를 금지시키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힘없는 자들에 국한되었다.
힘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나 세력들까지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그들은 신조를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한편 대연 신조와 대영 신조의 정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져 갔다.
뒤에서 황태손으로 불리는 녀석과 현임 태자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져 갔다.
그러나 대연 대제는 싸늘하게 쳐다만 볼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이 다른 일에 신경 쓸 마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번 일조차 양쪽 모두 자신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최근 몇 년간 싸움에 휘말려 죽은 사람만 수천이 넘는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고, 대놓고 소창산과 노창산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리고 겨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일곱 개나 되는 빈 상자가 발견되었다.
이쯤 되니 모두들 눈치를 챘다.
열리지 않는 금속 상자는 십중팔구 대영 신조의 함정이 분명했다.
현재 대연은 전조와 대영 신조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심하게 싸우던 어차피 이곳은 대영 신조의 땅도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손해를 입는 건 대연이니 일거양득, 아니 일거삼득이나 마찬가지였다.
* * *
시기가 적당하다고 판단되자 진양은 다시 노창산으로 숨어들어 갔다.
나송은 이번에는 잔뜩 경계를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가득한 살자비의 살기로 인한 방해가 너무 심했다.
감각이 한층 무뎌졌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도 상당히 힘들었다.
나송은 살자비를 등진 채 가부좌를 틀었다.
그의 시선이 동굴 입구 쪽을 향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발소리가 먼저 들렸다.
이어서 진양의 모습이 나타나고 나서야 진양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이곳까지 숨어들어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이곳엔 살자비에서 흘러나온 살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진양은 살기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방어 공법조차 펼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아니, 절대 그럴 리 없다.
무언가 별도의 방어 수단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실력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사실을 알 리 만무하다.
진양은 실제로 아무런 방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주위엔 살자비에서 흘러나온 살기가 가득했으나 진양에겐 그저 아무 해 없는 공기와도 같았다.
육신을 뚫고 체내까지 들어온 살기는 하나도 남김없이 흑옥 신문이 전부 삼켜버렸다.
그러나 그 양은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진양은 이런 식으로 흑옥 신문에 강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제 다시 시도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셋중 하나는 확실히 열 수 있을 것 같고, 나머지 둘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수고가 많소.”
나송은 주머니에서 세 개의 금속 상자를 꺼내 진양의 앞에 내려놓았다.
진양은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한참 무언가에 집중했다.
나송이 문득 물었다.
“듣자 하니 최근 며칠 동안 열두 개나 되는 금속 상자가 발견되었다고 하오.”
“열두 개라고요?”
매우 의외였다.
진양이 들은 건 겨우 일곱 개에 불과했었으니 말이다.
보아하니 누군가 일부러 사실을 숨긴 듯했다.
나송의 눈빛이 반짝였다.
진양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나송은 지난 며칠 동안 계속해서 생각해 보았다.
금속 상자에 새겨진 봉인은 그 위력이 상당히 강하다.
뿐만 아니라 방법조차 오늘날 자주 사용되는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상자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단단하다.
거기에 살자비의 살기까지 더해져 웬만한 방법들 모두 먹히지 않는다.
강제로 상자를 훼손하는 방법이라면 이미 시도해 본 사람이 있다.
그러나 큰 효과가 없었다.
살자비의 살기는 그 어떠한 수단으로도 쉽게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상자를 만들었다는 건 분명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상자를 만든 사람도 포함된다.
허공진경 전수자에게 원한을 맺고 있는 사람이 하필 이런 시기에 나타나 자신과 손을 잡다니.
지난 며칠 동안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쩌면 진양이 상자를 만든 제작자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다.
복수를 위해, 허공진경 전수자를 유인하기 위해, 그리고 협력자를 찾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발견된 상자마다 모두 다른 봉인이 걸려있었고, 심지어 봉인의 강도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물론 전부 다 극강의 봉인이 걸려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봉인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봉인에 사용되는 부문과 문자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 정도 수준을 진양이 해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이런 수준의 전승을 가지고 있는 건 오직 오랜 시간 유지되어온 거대 세력뿐이다.
예를 들면 대영 같은 곳 말이다.
혼자서 이런 많은 것들을 해내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설령 엄청난 전승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단시간 내에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진양은 많이 잡아봐야 겨우 오백 살에 불과한 사람이다.
이런 엄청난 일을 이뤄냈다고 하기엔 너무 젊었다.
진양의 스승에 대해 조사해 본 적이 있다.
황천마종의 최양평은 젊은 시절부터 많은 방면으로 통달한 사람으로, 온전하지 않은 지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는 더욱 높은 경지에 올랐고, 오늘날 그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최양평이라고 해도 그렇게 많은 지식을 습득했을 리는 없다.
이 중에는 이미 오래전에 실전된 것도 있을 텐데.
황천마종의 밑천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거기에 현재의 상황을 봐선 금속 상자는 계속해서 추가로 발견될 것이다.
나송의 머릿속에 나열되었던 수많은 경우의 수들 중 대부분이 지워졌고, 이제 남은 건 몇 개 없었다.
그러나 남은 경우의 수들은 전부 진양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질문을 한 것도 단지 그냥 물어보고 싶어서 물어본 것뿐이다.
진양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새로 상자를 더 뿌린 이후로 더 이상 진양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은 허점 따위에 영향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양은 최대한 천천히 봉인을 분석하며 푸는 척 연기했다.
비록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낯선 것처럼 보여야만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송은 더 이상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진양의 앞에 나타난 부문들 중 절반 이상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여기에 각종 도문과 금제들까지 더해지니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결국 그는 눈을 감은 채 수련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