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77
777화 한번 놀아보자는 거지?
하루 뒤.
진양이 마지막 단계를 마치자 상자가 열렸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 살자비의 살기가 파도처럼 격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진양은 옆에 있는 금속 상자를 가지고 온 빈 상자로 바꿔치기했다.
이어서 상자가 열리자 나송이 눈을 떴다.
상자 안에는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살신전이 무려 열 개나 들어있었다.
“열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게 바로 이 상자입니다. 남은 두 개는 저도 잘 모르는 부문들로 이루어져 있어서요. 아무래도 직접 시도를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하나를 연 것만으로도 이미 족하오. 그럼 약속대로 남은 둘 중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 가져가시오. 그 외에 이것도 함께 가져가시오.”
나송은 주머니에서 둔연, 속명향, 그리고 추혼향을 꺼내 진양에게 건넸다.
‘어쭈? 이렇게 나오시겠다?’
사실 둔연이나 속명향, 추혼향은 외부인들에겐 상당히 귀한 대접을 받는 물건이지만 연나 일족의 직계 자손에겐 그저 평범한 소모품에 불과한 물건이다.
이에 비하면 살신전이야말로 엄청난 보물이다.
게다가 현재 사방에서 수많은 상자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 중에는 가짜도 존재한다.
열리지 않은 상자는 빈 상자나 다를 바가 없다.
오직 열린 상자에만 살신전이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분명 셋 중 하나를 보수로 주겠다고 하셨으니 열린 상자도 포함해서 골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보물을 건네받던 진양이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연나 일족이 이 정도 신용도 없는 세력은 아닐 텐데요?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전 담이 작은 사람이라 신용 없는 사람과는 협력을 할 수가 없거든요.”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나송이 당황한 듯 허겁지겁 보물을 더 꺼내 진양에게 건넸다.
“다 나의 불찰이오. 미리 설명을 제대로 못 한듯하오. 일단 이건 사과의 의미로 받아주시오. 우리 연나 일족은 결코 신용을 지키지 않는 세력이 아니오. 단지 이렇게 되면 진 선생께선 열 개나 되는 살신전을 가지게 되시나 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이건 제겐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물건입니다. 그러니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두 상자 중 하나를 가져가 주셨으면 합니다.”
나송이 건넨 보물들은 아까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은 양이었다.
“열지도 않은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이대로 모든 것을 운에 맡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나송은 방금 꺼내놓았던 것의 두 배, 그러니까 처음 받은 것보다 총 네 배에 해당하는 보물을 꺼내놓았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뭐, 나름 사정이 있으신 것 같으니 이번 만큼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진양은 못이기는 척하며 넘어갔다.
보물을 살펴본 진양은 습득 능력을 사용하여 완벽하게 연화한 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남은 두 상자를 살펴보았다.
나송이 내놓았던 상자와 진양이 바꿔치기한 상자.
이 중 나송이 내놓았던 상자를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이 상자에 든 것이 진품일 것이다.
새겨진 봉인으로 보아 족히 오만 년 전에나 사용하던 방식으로 만들어진 봉인인 듯했다.
상고의 것도 아니었고, 과도기 시절의 것도 아니었고, 현재 사용되는 방식도 아니었다.
대부분 추측과 추리로 풀어나가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크게 어려울 건 없는 듯했다.
* * *
사흘 정도 살펴보고 나니 대략적으로 뼈대가 잡혔다.
그러나 상자는 일단 놔두고 빈 상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서 또다시 사흘이 흘렀다.
빈 상자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스스로 열렸다.
안에 갇혀있던 농후한 살자비의 살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살기는 곧장 진양을 덮쳤다.
그러자 여지껏 체내에서 아무런 반응 없이 있던 흑옥 신문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치 맛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진양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내쉬며 벽에 등을 기대고, 몸에선 극렬한 진원의 파동과 함께 기혈이 끓어올랐다.
흑옥 신문의 반응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살자비의 살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차단해야만 했다.
한창 명상을 하고 있던 나송이 돌연 듯 눈을 떴다.
상자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에 의해 나송도 동굴 입구까지 밀려났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진양을 발견했다.
“진 선생, 괜찮으시오?”
“괜찮습니다. 단지 안에서 갑자기 이런 식으로 살기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네요…….”
진양의 몸에서 흘러나온 진원의 파동은 조금씩 진정되어갔고, 안색도 차차 회복되었다.
텅 빈 상자를 바라보는 진양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너무 성급했다.
상자 안으로 흡수된 살자비의 살기는 상자에 녹아든 게 아니라 그대로 보관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어딘가 이상하다.
아무리 모조품이라곤 하지만 진양이 이런 부분까지 놓쳤을 리는 없다.
그러나 제작 과정을 다시 돌이켜보니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진양의 실수가 아니었다.
단순히 금속 상자 자체가 살자비의 살기를 담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진작 알아차렸어야 할 사실이다.
한편, 나송은 다소 아쉬운 눈치로 빈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많은 상자 중에 하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자가 빈 상자일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진양의 표정이 굳어있는 것도 단순히 살기로 인한 충격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어쩌면 하나 남은 상자도 비어있는 상자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 분명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마지막 상자는 그가 가장 첫 번째로 얻은 상자다.
그리고 살신전이 발견된 상자는 두 번째로 얻은 상자로 산 중턱 근처에서 찾아낸 상자다.
마지막으로 빈 상자는 노창산 외곽 어딘가에서 묻혀있던 걸 발견한 것이다.
왠지 이 상자는 빈 상자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심지어 두 번째 상자를 얻었을 때부터 첫 번째 상자는 산 중턱에 있는 상자를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뿌린 눈속임용 상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그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산 중턱에서 발견한 상자에는 정말로 살신전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금속 상자는 첫 번째 금속 상자보다 살신전의 살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나송은 속으로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가지고 있던 세 개의 상자 중에 진짜는 단 하나.
그렇다면 남은 마지막 상자는 빈 상자가 분명했다.
진양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송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안타깝지만 빈 상자군. 약속대로 마지막 남은 상자는 당신의 것이오.”
나송은 일말의 미련 없이 아직 열지 않은 상자를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동안 상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 선생, 일단은 받으시오. 지금은 정황이 없어 보이니 가지고 가서 천천히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소. 게다가 상처를 조금 입은 것 같은데, 조금 쉬고 나서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소.”
나송은 진심 어린 얼굴로 진양의 말을 말았다.
진양은 겉으로는 입을 삐쭉이면서 속으로는 생각했다.
‘그래. 분명 네가 가져가라고 한 거다.’
빈 상자를 보자마자 태도가 완전히 뒤바뀌다니.
기가 찰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죠.”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썩 달갑지 않다는 듯 그가 건넨 상자를 챙겼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배웅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진양은 곧장 동굴 입구로 향했고, 나송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결국은 배웅하지 않기로 했다.
진양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발걸음 소리가 사라졌다.
나송은 재빨리 그곳으로 가보았다.
진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어서 밖으로 나가보았다.
멀리 외곽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들이 보였다.
그들은 아무 이상 없다는 듯 충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 * *
진양의 임시 거처.
진양은 탁자에 금속 상자와 나송에게 받아온 보물들을 전부 늘어놓았다.
그리고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습득 능력을 사용해 연화시켰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살자비의 살기가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연화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징표를 남겨놓는 것도 불가능하다.
즉, 이 물건은 애초부터 주인이 없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사실 흑옥 신문이 살자비의 살기를 빨아들이는 것만 아니라면 직접 살자비에 습득 능력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정도였다.
진양은 곧바로 금속 상자를 열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 섰다.
대략적인 구조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약간의 추측만 더하면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시 상자를 살펴보는 진양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어쩐지. 이런 위험한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에게 넘겼다 싶었더니. 다시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그랬던 거군.”
상자를 여는 건 그다지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상자가 이중으로 잠겨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올바른 방법으로 상자를 열지 않는다면 내부에 심어진 금제가 작동하게 되고, 그 즉시 내용물은 전송(傳送)을 통해 어딘가로 보내지게 된다.
일반적인 물건이라면 전송이 시전될 때 가해지는 힘을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살신전은 예외다.
하지만 살신전에 서려있는 살자비의 살기가 전송을 방해하기 때문에 살신전이 어디로 보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상대가 또 다른 상자로 전송되어온 살신전을 받을 리는 없다.
이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건 직접 열어보지 않는 이상 진양도 알 수가 없다.
지금으로서 확신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강제로 상자를 연다면 살신전이 어디론가로 전송되어져 버린다는 점이다.
진양의 미간이 있는 대로 잔뜩 찌푸려졌다.
이런 방법이라면 진양도 알고 있다.
도문의 기록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과거 도문의 한 종주가 일종의 ‘소형 금고’를 발명해낸 적이 있었는데, 공상자(空箱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상자다.
이러한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열게 되면 텅 빈 상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진양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책을 열심히 읽어둔 게 이런 때 도움이 된다는 건 다행이었다.
공상자의 제작법은 이미 실전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도문 내에서만 실전되었을 뿐, 외부에는 여전히 어딘가 제작법이 돌고 있었다.
그런데, 전조 녀석들이 도문의 방법으로 진양에게 한 방 먹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렸다.
‘좋아. 어디 한번 놀아보자는 거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놀아주도록 하지!’
금속 상자에 설치된 봉인의 구조나 내용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이해를 마쳤다.
새겨진 부문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도 대부분 추리를 마쳤다.
때문에,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