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94
794화 살아있는 화석
한 달 뒤.
태자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국상 사전 준비는 거의 막바지 단계였고, 이도에는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칠 것처럼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편, 진양은 저택에 머물며 돼지가 쓴 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다는 괴수 세 마리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설령 그런 녀석들이 정말로 있다고 해도 봉인도 안 된 상태에서 진양이 먼저 덤벼들기엔 무리였기 때문이다.
위치를 불라고 한 건 나중에 돼지를 길들이기 위해 준비한 하나의 보루다.
만약 녀석이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같은 괴수를 팔아먹었다는 증거로 사용하여 협박을 하기 위해서다.
진짜로 궁금한 건 돼지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다.
녀석은 멀리 사해에 있는 호량도에서 태어나 대황으로 오게 되었으며, 이 년 정도 떠돌다 붙잡혀 대영 신조에 붙잡혀 지금까지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은 진양은 종이를 탁- 내려놓고, 두말없이 녀석을 반쯤 솥에 집어넣었다.
녀석의 두 다리는 또다시 탕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돼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왜 이러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녀석의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고 있으니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왠지 무언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지금 간 보는 거냐? 이렇게 지어내면 모를 줄 알았어? 그래도 이왕 지어내는 거면 제대로 좀 지어내지 그랬냐. 괜히 들켜서 이런 꼴을 당하고 말이야.”
“대협,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정말 있는 사실 그대로만 적은 것뿐입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게 원하시는 게 있으면 그냥 말씀해 주십시오.”
돼지는 이제 완전히 꼬리를 내린 듯했다.
진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아. 호량에서 태어났다고 했지? 그곳에서 수천 년 살아가는 동안 진창주라는 곳의 인간들에게 헌납을 받기도 했다고?
누굴 바보로 아나! 이 몸이 바로 호량 출신이다 이 말이야. 사해의 유명한 해적 유령 해적단의 선장이 바로 이 몸이다 이 말이야!
그리고 네가 말했던 세 괴수들이 살고 있는 곳 말이야. 네가 적어준 길을 따라가면 상고 지부의 조각이 있는 곳이 나오지 않나? 난 거기 뱃사공이란 안면까지 있는 사이거든. 거기 무슨 괴수들이 살고 있는지는 다 꿰고 있다 이 말씀이야.
그리고 괴산에 사는 녀석이라면…….”
진양이 말을 모두 마치기도 전에, 녀석은 곧장 이마를 땅에 찧었다.
“대인,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래. 지금이라도 인정했으니 용서해 주도록 하마. 대신…….”
돼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조용히 솥으로 들어가 자신의 두 다리를 담갔다.
이어서 밖으로 나오자 사라진 다리는 다시 자라났다.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군. 그래도 아까 제안했던 거래는 아직 유효하다고. 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내게 가짜 정보를 넘기진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간 험한 꼴을 당할 테니까.
말했던 대로 네가 준 정보가 돼지 곰탕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아무 말 없이 널 보내줄게. 무사히 대영 땅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좋습니다.”
돼지는 그제서야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마치 강아지처럼 말이다.
“진작 이렇게 나오면 얼마나 좋아? 굳이 폭력을 쓰게 만들다니 말이야. 난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
“물론입니다, 대협. 헤헤…….”
돼지는 그제서야 사실대로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진양은 녀석에게 글을 쓰도록 하고 자신은 한쪽에 놓여있는 의자에 가서 누웠다.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영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돼지를 자신에게 보낸 것일까?
무제한으로 재생되는 육신을 가지다니.
그야말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녀석 아닌가?
게다가 영제는 어떻게 자신이 이 녀석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까?
설마 진양이 가진 솥으로 충분히 녀석을 곰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걸까?
이틀 뒤.
돼지가 다시 쓴 글을 읽어보니 영제가 왜 자신에게 돼지를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무언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단순히 진양 덕분에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보답을 한 것뿐이었다.
보답으로 이런 엄청난 괴수를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니.
과연 천하를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수준이 달랐다.
이제 보니 돼지 녀석 상당히 불쌍한 녀석이었다.
하필 이도의 수많은 감옥 중 가장 경비가 삼엄하다는 천자호에 갇히다니.
심지어 일만 년 동안이나 말이다.
녀석은 우연히 얻은 한 두루마리에서 대황 괴산이라는 곳에 신선의 유산이 숨겨져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호량에서 대황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일만 년 전이라면 영제의 실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강자와 봉호도군이 대황 전체를 섭렵하던 시절.
녀석은 자신의 실력을 맹신하고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유령 해적단.
당시 유령 해적단은 봉인 강화 임무를 한창 수행하고 있을 시절이다.
그렇게 유령 선장을 쫓아가 한바탕 싸움을 벌이던 그는 한 섬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상고 고수의 손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버렸다.
설령 유령 해적단을 처치하고 고수를 해방시킬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감히 해방시킬 순 없었다.
왜냐하면 풀려난 고수가 가장 먼저 노릴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남해로 도망치게 되었다.
때는 남해도군이 진해패방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아직 건재했던 남해도군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고 했다.
간신히 빌고 빌어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몸에 봉인이 새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난 뒤로 그는 현실을 깨닫고 조용히 살아갔다.
수십 년 동안 남만 땅을 떠돌며 흑림해에도 가게 되었는데, 어떤 재수 없는 일로 인해 봉인이 한 겹 더 늘어나게 된다.
흑림해를 빠져나온 그는 이번에는 부도마교를 건드렸는데, 당시 살아있던 장해도군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그의 봉인을 흥미롭게 여기던 장해도군에 의해 잠시 실험체가 되었다.
그리고 봉인이 또 한 겹 더 늘어나는 대참사를 맞고 말았다.
간신히 도망쳐 나온 그는 이번에는 여족과 만나게 되었다.
특히 한 여인이 자신이 먼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미친 듯이 덤벼왔다고 한다.
거기에 어떤 노인의 수에 넘어가 저주까지 걸리며 상당한 양의 힘이 봉인되었다.
이렇게 되니 그저 꼬리를 내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읽은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냥 가는 곳마다 미움을 사는 녀석인 모양이군.’
여족 노인들은 겉보기에는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는 고수들이다.
대충 당시의 시기를 계산해 보니 여족의 성수가 사라졌을 때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밀다니.
맞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게다가 당시엔 초조가 멸망을 앞둔 상황이었다.
초조 멸망을 앞둔 상황에서 영제는 의문의 검은 화살에 맞게 되었고, 이런 민감한 시기에 몸에 괴상한 봉인을 단 돼지가 나타나니 정천사는 곧바로 그를 잡아들였다.
그리고 여러 전문가를 초빙하여 녀석의 봉인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과정이 고됐던 탓일까?
녀석은 수십 번도 넘게 탈옥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봉인 전문가들에 의해 오히려 몇 개의 봉인이 더 새겨지게 되는 일을 당하게 되었다.
물론 연구는 그 이후로도 무려 수천 년이나 더 지속되었다.
모든 정보를 빨아 먹힌 그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고, 감옥에 갇혀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렇게 돼지는 매일 먹고 자는 생활만 반복하다가 며칠 전 끌려 나와 진양에게 제물로 바쳐지게 된 것이다.
녀석은 진양이 만만해 보이기도 했고,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발견하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진양에 의해 따끔하게 혼이 나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진양은 마수의 힘을 끌어내며 검둥이의 감각이 해안 밖까지 뻗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이 녀석 본 적 있어?”
“어딘가 눈에 익은데. 기운도 굉장히 익숙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검둥이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
“기억났다! 예전에 한 괴수가 내 본체 안으로 들어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대협,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괴수가 아니라 요족, 강모흑저요(剛毛黑豬妖)입니다. 약수돈(弱水豚)과 탄천호(吞天虎)의 혈맥을 가진 요족입니다!”
검둥이의 기운을 느낀 돼지는 곧바로 부복하며 사죄했다.
“멍청하긴. 그게 뭐가 중요해?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돼지고기가 얼마나 맛있는 줄 알아!”
감히 자신의 말을 끊어먹다니.
검둥이가 으르렁대며 한마디 했다.
돼지는 겁에 질린 채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한편, 진양은 녀석의 말이 전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외에 그동안 겪었던 일들도 전부 사실이 확실했다.
하지만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녀석의 말대로 녀석의 몸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봉인이 걸려있었다.
이쯤 되니 진양도 흥미가 생겼다.
‘나중에 제대로 연구해 봐야겠군.’
이건 사라진 상고 고수들의 비법이 담긴 봉인이다.
눈앞에 있는 돼지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화석이나 다름없었다.
“계속해서 써봐. 네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 빼놓지 말고. 지금 쓴 건 너무 모호하잖아. 좀 더 자세히 적어보라고. 그리고 나랑 같이 있는 동안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벌을 받을 일은 없을 거야. 물론 조금이라도 내 심기를 건드렸다간……. 알지?”
진양은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살벌한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결코 만만하게 볼 녀석은 아닌 듯했다.
과거 고수들이 녀석을 죽이지 않고 봉인만 새기고 풀어준 것만 봐도 그렇다.
무엇보다 녀석은 천외(天外)에서 몰래 건너온 녀석이다.
호량은 비록 지금은 이미 버려진 지 오래긴 하지만, 한때는 사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자 천외를 잇는 다리로 유명했던 곳이다.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녀석이다.
이런 녀석을 그냥 잡아먹기엔 아까웠다.
남겨두고 봉인 연구 실험체로 사용하던지, 아니면 정보를 더 쥐어 짜내는 게 더 이득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통력이나 비술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전에 신문을 개방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녀석이 말한 괴산에 있는 신선의 유산이란 일념의 바다를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영제가 그곳으로 가게 된 것도 어쩌면 돼지 녀석이랑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양은 더 이상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