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29
929화 안녕하세요!
높은 하늘에 산하도의 형상이 마치 거대한 화폭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세 개의 손가락과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이 뻗어져 나와 하늘에 큰 틈을 만들어냈다.
마치 문풍지가 날카로운 것에 의해 찢겨나간 것처럼.
이수의 발에 의해 만들어진 틈이 십 리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무렵.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산하도 안에서 마구 뿜어져 나왔다.
두둥-! 둥-!
전고(戰鼓)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며, 온몸에서 죽음의 기운을 두르고 있는 망자 군단이 틈 밖으로 걸어 나왔다.
가장 먼저 나타난 건 제일 약한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점점 더 강한 망자 군단이 나타났다.
그 아래로는 아방궁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가희가 서 있었다.
진양은 고개를 들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대장로, 직접 여기까지 나선 걸 보니 나름 꽤 큰 희생을 감내했나 보군. 게다가 산하도의 힘을 빌어 이도 상공에 대형 환술까지 펼치다니. 단순히 죽음의 세계에 대한 위협이나 윤제의 협박 때문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윤제가 도대체 뭘 약속했길래 이 정도까지 나오는 걸까?”
진양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눈빛을 반짝이며 환술을 뚫고 가려진 공간으로 들어섰다.
아래를 바라보니 진양이 제단 위에서 뛰어올랐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환술의 영향을 받고 있는 듯했다.
과연, 환해 일족의 실력은 단순히 전투력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했다.
그나마 그들에겐 몸을 피할 수 있는 환해라는 피난처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영제는 진작 그들은 단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버렸을 것이다.
현재 이들이 벌이려는 일은 열 명의 법신 강자가 나타나서 위협을 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협스러웠다.
대치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틈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망자 대군은 바로 달려들지 않고, 우선 틈 근처를 철통같이 수비하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틈은 더욱 커갔다.
그리고 안쪽에 살아있는 사람과 환수의 모습도 보였다.
대장로 한 사람만 움직인 게 아니었다.
환해 일족 전체가 반란에 가담한 게 틀림없었다.
한편, 위협은 느낀 대제희는 아방궁 형성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진양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급할 것 없으니까 천천히 하세요. 아래 있는 사람들한테는 미리 얘기해 뒀어요. 앞으로 일 다경 이내로 제가 제단 아래에 나타나지 않으면 무언가 이상이 생긴 걸 느끼고 다들 몰려올 겁니다.”
진양은 조용히 틈이 확장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느덧 틈은 백여 리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불어나 있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사기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니, 금방이라도 윤제가 모습을 드러낼 듯했다.
이때, 진양은 진판을 꺼내 벌어진 틈을 향해 들어 보였다.
“대장로, 감히 일족 전체를 동원해 반란에 가담하다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게 될 거라고 했던 말을 빈말로 한 줄 아느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마. 지금 조용히 물러선다면 충분히 돌이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진판 보이나? 이 진판에는 수십 개의 도기(道器)가 진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진법이 펼쳐지는 순간 사방에 파멸의 기운이 몰아닥치게 될 거다. 네가 얼마나 많은 자들을 끌고 오든 모두 허사다.”
같은 시각.
틈 안에선 대장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는 진양의 말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틈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속도를 높여라. 이 정도로는 수많은 망자와 윤제가 지나가기엔 부족하다.
놈의 말은 신경 쓰지 마라. 이곳은 만 장 높이 상공이다. 땅의 기운조차 닿지 않는 곳에 무슨 진판을 쓴다는 것이냐? 수십 개의 도기를 진안으로 삼았다고? 전부 헛소리다. 녀석의 실력으로 무슨 수로 수십 개의 도기를 사용한단 말이냐?”
틈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진양은 조용히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때가 되었다.
대장로의 반응을 보아하니 진양의 말을 전혀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좋아.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진양은 이미 삼백 리 정도 크기로 불어난 틈을 향해 가지고 있던 진판을 던졌다.
화사의 산하도는 매우 강력하기에 진양의 진판으로 벌어진 틈 전체를 틀어막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산하도에 의해 진판이 압도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건 가능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날아오른 진판은 눈부신 빛을 뿜어냈고, 허공에 거대한 성낙대진이 펼쳐졌다.
펼쳐진 성낙대진은 수백 리에 달하는 거대한 틈을 뒤덮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엔 먼저 틈 밖으로 나온 망자 대군도 포함되어있었다.
이들을 모두 뒤덮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문을 막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성낙대진에는 수십 개의 도기 수준의 제기들이 진안으로 박혀있다.
여기에 자색의 잔월까지 더해지며 일반적인 수도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방대한 양의 힘을 제공하고 있었다.
유성우가 떨어지며 파멸의 기운이 천지를 뒤덮었다.
진법에 휘말린 자는 누구든 유성우의 강력한 위력을 직접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녀석들 따위는 수십 배로 더 몰려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때를 노리며 윤제가 나타난다고 해도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이들의 손을 조금 빌릴 생각이었으나 이제 보니 굳이 빌릴 필요는 없을 듯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난처한 광경이 펼쳐졌다.
틈에서 쏟아져나온 이들은 전부 대문을 틀어막고 있는 진법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이 정도라면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충분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설령 녀석들이 또 다른 곳에 틈을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진양은 또다시 입구를 틀어막아 버릴 생각이었다.
이 모습을 본 대장로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이내 결단을 내렸다.
“계속해서 속도를 높여라! 최대한 빨리 윤제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제만 통과할 수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망자 대군은 크게 염려할 필요 없다.
현재 양쪽 모두 시간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다.
가희가 먼저 수련을 끝낸 이후에 윤제가 나타나는 건 상대에게 목을 바치러 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윤제가 먼저 나타나 가희의 수련을 방해한다면 이는 곧 커다란 틈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며, 결과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가희가 윤제를 쓰러뜨리려면 적어도 법신까지는 수련을 마쳐야 하며, 여기에 신조의 원조를 받아야만 확실하게 꺾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가희는 다시 수련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 기회는 오직 단 한 번뿐인 기회였다.
또한, 단시간 내에 윤제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진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녀가 다시 수련하는 쪽을 권했던 것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눈에 갈 데까지 가버린 윤제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가희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으며, 진양 역시 가희의 실력을 믿었다.
게다가 윤제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자신감을 얻었다.
단순히 위협의 수준만으로 본다면 윤제는 이미 대장로보다 한참 아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희의 경지는 다시 법상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벌어진 틈은 어느덧 천 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른 시신의 모습을 한 윤제가 마침내 틈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틈을 통과하는 순간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진법의 범위를 뚫고 나왔다.
윤제의 몸은 마른 시신처럼 깡마른 상태였다.
두 눈은 이미 완전히 썩어 없어졌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 싸늘한 두 줄기의 빛뿐이었다.
입고 있는 장포는 곳곳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는 상당히 짙은 죽음의 기운이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과 지독한 부패의 기운까지 뒤섞이며 신조의 제군으로서 가지고 있던 위엄과 권위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강력한 힘을 가진 시신의 모습에 불과했다.
그의 힘은 오늘 대전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그 누구보다도 강력했다.
그러나 진양은 다소 실망한 기색이었다.
윤제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영제와 비교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미 죽은 상태였던 두 봉호도군에도 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두 봉호도군은 비록 이미 사망하긴 했으나 외모는 살아있는 사람과 같았고, 그들이 부리던 힘 역시 자신 스스로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윤제는 이미 완전한 사망 상태가 되어 그저 본능만 남아있고 자아는 남아있지 않은 강시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상태로 싸워봤자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진양은 우선 생각을 뒤로하고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집중했다.
윤제가 모습을 드러낸 이상 더 이상 진법으로 안에 붙잡아두며 시간을 끌려는 시도는 무의미했다.
진법은 현재 출구의 위치를 완벽하게 가로막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움직이기라도 했다간 망자 대군이 벌떼처럼 몰려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게 될 것이다.
가희의 등극 과정은 반드시 완벽해야만 한다.
그래야 등극 후에도 안정적으로 정세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도에 큰 혼란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등극 대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는 가희의 위신에 절대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녀가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진양이 버텨야 한다.
반드시 압도적인 힘으로 윤제를 단숨에 꺾어버려야 위세를 유지할 수 있다.
가희의 경지 재건 과정은 이제 겨우 법상 경지에 이르렀다.
기운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여기서 강제로 중단하기라도 했다간 자신조차도 모르는 치명적인 틈이 남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 눈앞에 놓인 기회는 놓칠 수도, 놓쳐서도 안 되는 유일한 기회다.
잠깐의 고민을 마친 진양은 곧바로 가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윤제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윤제의 시선이 가희 쪽에서 진양에게로 옮겨졌다.
순간 윤제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빛이 흘러나왔다.
“진양!”
기억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하마터면 진양조차도 못 알아볼 뻔했다.
그러나 히죽거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번쩍이며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주체할 수 없는 강력한 분노가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랐다.
화염처럼 타오르며 몸 주위를 맴돌던 죽음의 기운은 순간 번개처럼 번쩍이기 시작했다.
윤제의 몸은 번개로 변했고, 깜짝할 사이에 진양을 향해 날아들었다.
진양은 곧바로 흑옥 신문을 꺼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윤제의 몸이 흑옥 신문과 충돌하는 순간 새까만 번개가 번쩍이며 사방을 비추었고, 마치 날카로운 창으로 흑옥 신문을 찌른 것처럼 번개로 이루어진 물결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