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68
968화 원래 이런 모양이었나 궁금하네요
진양은 진심으로 책의 내용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렇게 열 편이 넘는 일대기를 모두 읽은 뒤.
진양은 공책과 옥으로 만든 붓 하나를 꺼냈다.
이어서 첫 장을 펼치고 다시 내용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진양이 내용을 읽을 때마다 옥으로 만든 붓이 스스로 움직이며 공책에 내용을 그대로 적어 내려갔다.
여기 적힌 내용들은 가치가 있는 것들이 분명하다.
진양은 이곳에 적혀있는 일대기들이 실존했던 인물들의 일생을 적어둔 일대기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몇몇 인물이 겪은 일들은 결코 지어낼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평범한 일대기라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내린 선택은 그들의 성격과도 상당히 부합한 선택지였다.
진양이 법상서의 내용을 베끼고 있는 걸 본 왕백강의 표정은 한층 더 찌푸려졌다.
‘도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저걸 또 베끼기까지 한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책의 내용을 베껴갔던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진양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베껴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진양의 비주는 어느덧 대영 진영에 도착했다.
하지만 진양은 책을 살펴보고 베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왕백강은 다 죽어가는 얼굴로 진양의 비주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비주가 진영 안쪽으로 들어서니 진양에게 부탁을 했던 편장이 입구까지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양과 왕백강의 모습을 보고 그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왕백강이 먼저 한 걸음 나아오며 예를 갖추었다.
“왕백강이라고 합니다.”
“왕백강? 당신이 그 진법을 펼친 그 자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다만, 보기 좋게 진 선생님께서 제 진법을 파해해버리셨지만 말이죠. 진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존경심이 들어 가르침을 받고자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일은 각자의 입장이 달랐던 만큼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여나 앞으로 제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 불러주시지요. 손 닿는 곳이라면 얼마든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진 선생님께 저에 대해 잘 말씀해달라는 부탁 하나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왕백강은 편장이 뭐라고 말을 할 틈도 주지 않고 그의 혼을 쏙 빼놓으며 아부를 떨어댔다.
그리곤 한마디 덧붙였다.
“진 선생께서는 현재 큰 깨달음을 얻어가시는 중이라 상당히 바쁘신 상태입니다. 제가 이곳에 남아 진 선생을 보좌할 터이니 장군께서는 이만 제게 맡겨주시지요.”
편장은 무언가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긴 했으나, 왕백강은 물어볼 틈도 주지 않고 진양의 곁으로 다가가 옆에 섰다.
마치 그를 지키는 첩신호위와 같은 모습이었다.
편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연, 왕백강은 소문 그대로였다.
물론 그가 진양을 해치거나 불필요한 사고를 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어디에서 누군가를 해쳤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무를 끝내고 돌아왔으니 남은 일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진양은 모든 정신을 책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그리고 붓이 베껴나가는 속도도 그에 맞춰 빨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진양은 삼백 개가 넘는 일대기를 살폈다.
각각의 일대기는 각각 길이가 모두 달랐다.
일부 일대기의 주인공들은 심지어 평생 범인의 생활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있었으나, 일부는 법신 경지까지 오른 자도 있었다.
어떤 일대기는 겨우 한두 장 만에 끝나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일대기는 무려 수백 장이나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일대기의 주인공과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 그리고 배경 등 모든 것이 달랐다.
아무래도 약자인 만큼 돌아다닐 만한 곳도 적은 탓인 듯했다.
마치 진양이 예전에 호량도에 있었을 때와 같았다.
호량에 살고 있던 수도사 중 구 할 이상이 평생 호량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사해가 너무 위험하거나 유령호와 같은 튼튼한 배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외에도 위험한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백 개나 되는 일대기를 읽다 보니 모든 주인공마다 유일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전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수명이 다하여 죽은 사람 중에서도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명이 다하는 순간 반드시 무언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던 것이었다.
사실 수도사는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다.
조용히 침대에 누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수도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편안하지 못한 죽음을 맞이한 건 어느 정도 수긍이 됐다.
하지만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점은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일대기들이 어떤 쓸모가 있는 건지는 진양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베끼기 시작한 이상 중간에 멈출 순 없다.
일단 가지고 있다 보면 언젠간 깨달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보름이 지났다.
진양은 계속해서 책을 읽고 베끼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평온하던 진양의 표정도 점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익숙한 배경과 익숙한 이름이 나타난 것이다.
‘부도마교!’
일대기의 주인공은 부도마교에 입문했다.
조무래기로 시작한 그는 온갖 노력을 쏟아부으며 조금씩 위로 향했다.
이 과정 중 그는 한쪽 눈을 잃는 대신 엄청난 법보를 손에 넣는다.
갈고리처럼 생긴 법보였다.
이것을 사람에게 거는 순간 상대의 진원을 모두 묶어버리고, 장렬하게 희생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법보였다.
이어서 그는 사해로 향했고, 그곳에서 신비로운 한 장소를 찾게 된다.
그곳은 사마가 봉인되어있는 섬이었다.
그가 그곳으로 간 목적은 대황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절세의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마와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은 사마에게 당하여 영혼까지 소멸되는 죽음을 맞고 만다.
여기까지 읽은 진양은 잠시 멈추었고, 이전의 내용을 다시 세 번 정도 읽어보았다.
특히 사해로 들어가서 보물을 찾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살펴보았다.
이 이야기에서 진양이 무명인으로 잠시 등장했었기 때문이다.
무명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진양이 이 사건에서 아주 큰 영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대기의 주인공은 만나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름은 모른다.
당시 부도마교의 정탐꾼으로 위장을 했다가 일대기의 주인공에게 죽을 뻔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갈고리로 진양을 위협하며 제대로 된 길을 찾아야 목숨을 살려준다고 협박하기도 했었다.
그는 결국 진양의 눈앞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었다.
죽기 직전 마지막 생각은 어째서 그가 죽은 것인지, 어째서 사마가 눈앞에 벌벌 떨고 있는 제자를 죽이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마침내 일대기의 비밀을 알아냈다.
일대기는 전부 실제로 있던 일을 적어둔 것이다.
그리고 일대기의 주인공들은 전부 실존하던 인물들이다.
처음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모든 내용이 적혀있었다.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는 등의 내용은 간단하게 한 줄로 생략되어있었지만, 그 외에 조금이라도 중요한 부분이 있으면 하나도 빠짐없이 적혀있었다.
이토록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본인뿐이다.
특히 일대기 속의 몇몇 법신 강자들의 경우 태어나서 죽기까지 족히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을 텐데, 아무리 본인이라고 해도 이토록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했을 리는 없다.
진양은 계속해서 다음 일대기도 읽어내려갔다.
여기까지 읽은 이상 남은 내용도 단 한 글자도 빠짐없이 모두 읽어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한 달이 지나고.
잠도 줄여가며 읽은 덕에 마침내 완독할 수 있었다.
육백육십칠 편이나 되는 일대기에 육백육십칠 명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이 중 대황을 배경으로 기록된 일대기는 정확히 열일곱 개가 전부였다.
영제가 대황을 종횡무진하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도 있었고, 대윤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을 때 살았던 사람도 있었고, 그보다 훨씬 더 먼 혼란의 시기에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살았던 인물에 대한 기록은 부도마교 사람이 유일했다.
구체적으로 모든 시간을 계산해낼 순 없었지만, 십삼만 팔천 년은 아마도 이곳에 있는 인물들 중 가장 오래전에 살았던 인물과 관련된 시간일 것이다.
어쩌면 왕백강이 엄청난 기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곳에 적혀있는 모든 사람들의 일대기는 그가 환생을 거듭 반복하며 겪은 과정을 적어둔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모두 읽고 나니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일대기에 나온 육백육십칠 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는 겨우 몇십 년을 산 사람도 있고, 길게는 수백, 수천 년을 산 사람도 있다.
각 사람들이 살았던 시기는 모두 이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을 모두 합한다고 하더라도 십삼만 팔천 년은 훌쩍 뛰어넘었다.
환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 여부를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은 하나의 대세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검둥이를 불러 동시에 수많은 사람으로 환생하거나 대세계를 뛰어넘어 환생했던 사람이 상고에 존재했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검둥이는 이곳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가능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의 안목이 좁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양은 책을 덮으며 왕백강을 불렀다.
그에게 책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건 그의 법상이다.
이런 귀한 걸 막무가내로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법.
그렇다고 왕백강을 죽이고 뺏는 것도 불가능하다.
왕백강이 죽으면 책도 사라질 테니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시 새로운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나중에 또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상당히 진지한 진양의 모습에 왕백강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쯤 되니 그가 단순히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들여다본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발견해서 들여다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몇 달에 걸쳐 식음은 물론 잠까지 미뤄가며 책을 완독한 사람은 진양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미 볼 만한 내용은 한참 들여다본 듯했고, 더 이상 보여준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을 것 같았기에 왕백강은 흔쾌히 승낙했다.
“좋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가장 먼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이 법상 말입니다. 당신이 직접 책으로 만든 건지, 아니면…….”
잠시 뜸을 들이며 먼저 책을 건네주었다.
그리곤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면 법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이런 모양이었는지 궁금하군요.“